시대데스크
[시대데스크]시장은 '품격'에 반응한다
최근 자본시장은 실적보다 분위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한 모습이다. 코스피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며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자 시장의 민감도 역시 극단적으로 높아졌다. 기업들의 실적 발표는 물론 기업을 둘러싼 논란과 말 한마디, 조직 문화와 사회적 태도에도 즉각 반응한다.최근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이 불거진 날 모회사인 이마트 주가는 장중 6% 가량 하락했고 하루 만에 시가총액 수천억원이 증발했다. 결국 8일 만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후 주가는 반등했지만 증권가는 목표주가를 낮추며 이번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봤다.비슷한 상황은 또 있었다. 삼성전자는 성과급 지급을 둘러싼 창사 첫 총파업 국면에서 장중 2% 넘게 하락하며 약 10조원 안팎 시가총액이 출렁였다. 2026년 임단협 최종 타결 이후 앞으로 5년 동안 5조원 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이날 여러 호재와 맞물리며 주가는 급등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초과 이익 활용' 관련 발언 뒤 삼성전자 투자심리가 흔들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발언 자체보다 정책 방향성과 정부의 기업 인식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과거 한국 증시는 '실적' 중심의 시장이었다. 기업의 가치를 판단할 때 공장과 설비 등 유형자산이 핵심이었기에 공장 가동률과 수출, 영업이익과 점유율이 중요한 평가요소였다. 하지만 현재 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자 감수성, 노사 안정성, ESG 리스크, 사회적 신뢰까지 함께 평가받는다. 이런 이유로 "돈만 잘 벌면 된다"는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이처럼 시장 평가 기준이 달라진 건 SNS를 중심으로 한 정보 생태계 변화 때문이다. SNS로 인해 시장의 반응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라졌다. 과거에는 기업이 이슈를 일정부분 직접 관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논란이 실시간으로 퍼진다. 이는 단순 투자심리를 넘어 주가에도 빠르게 반영된다.기업 리더십에도 시장은 반응한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받는 압도적 프리미엄은 단순히 AI 반도체 기술력 때문만은 아니다. 젠슨 황 CEO는 장기 비전과 시장과의 소통 능력, 고객 신뢰와 엔지니어 중심 문화까지 함께 평가받는다. 엔비디아의 칩을 넘어 리더십의 안정성과 신뢰에도 프리미엄을 부여한 것이다.반대로 보면 정책 혼선과 돌발 발언,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은 기업을 넘어 국가의 '디스카운트' 요인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정책 일관성이 높은 국가에 자본이 유입되고 통화도 힘을 얻는다. 정보 반영 속도가 빨라진 만큼 군중심리와 감정적 과잉 반응도 커진 부작용도 있다. 실제적 영향보다 주가가 더 크게 흔들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온라인 여론이 기업 가치를 지나치게 좌우하는 현상 역시 경계해야 한다.글로벌 자금과 시장은 이제 기술력을 넘어 신뢰와 사회적 책임까지 함께 요구한다. 과거 시장이 공장과 숫자를 평가했다면 현재는 기업을 넘어 정부와 사회 전체의 신뢰 수준까지 함께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 트렌드 변화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성장, 선진국 시장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구조적 변화에 가깝다.결국 시장은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에 가장 높은 가격을 매긴다. 가장 비싼 가치는 '신뢰'며 시장은 품격에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시대데스크]성과급 전쟁, '소속'이 이기고 '기여'가 졌다
전란(錢亂)이다. 성과급을 둘러싼 대기업 노조의 투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영업이익 N%' 성과급 논란은 반도체를 넘어 자동차·통신·조선·플랫폼 기업 등 국가 주요 대기업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기존 성과급에 더해 '사업성과'를 반영한 특별경영성과급 10.5%를 추가 지급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노조는 영업이익 일부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연동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측이 인건비 부담 확대와 투자 재원 감소, 경영 자율성 축소를 이유로 거부해 사업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도체 부문에 속해 있으면 적자 사업부 직원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해 '성과 있는 곳에 보상한다'는 원칙은 빛을 잃었지만 급여 수준에 따라 'n분의 1' 형태로 나눠주는 성과급 체계는 공고해졌다. 보상 기준은 개인의 '기여' 대신 '소속'이다.탁월한 성과를 올린 개인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라 경기 사이클상 호황기를 맞은 사업 부문에 속해 있어야 성과급을 받는 구조다. 노사 모두 파국을 막기 위한 결단이었지만, 이 타협이 삼성이 자랑해온 '초격차'(경쟁자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 기술·조직·시스템의 우위)를 지속할 동력을 갉아먹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상한선 없는 특별경영성과급' 도입은 분명 파격적이다. 일반 임직원에게는 연봉의 수 배에 달하는 막대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어 동기부여 효과가 작지 않다. 하지만 분배 방식이 '개인 연봉 비례'라는 점은 핵심 인재들에게 딜레마를 안긴다. 차세대 공정이나 혁신적 청사진을 제시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 소수의 'S급 인재'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여가 'n분의 1'로 희석되는 현실이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속에 쌓이는 박탈감도 작지 않을 것이다.TSMC를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반도체 엔지니어 량멍쑹은 2009년 17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 대학교수의 길을 택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 량멍쑹을 시스템LSI사업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력 향상에 크게 기여한 그는 짧은 재직 기간에도 파운드리 사업의 기틀을 놓아 '삼성 파운드리의 갓파더'로 불렸다. 지금은 중국 SMIC로 자리를 옮겨 첨단 공정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 그의 행보로 대만, 한국, 중국 반도체 산업 지형이 바뀌었다.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은 2002년 사장단 워크숍에서 "21세기에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살린다"고 역설했다. 이른바 '천재경영론'이다. 이후 삼성은 S급 인재 확보에 전사적 역량을 쏟았고, 한국 기업 전반에 인재 경영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S급 인재를 붙들어 두어야 할 보상 체계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한국 대기업 특유의 연봉 비례 성과급 구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변화의 출발점은 현금 중심 보상에서 주식 연계 보상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보상 기준을 단기 실적이 아닌 기업가치 상승분과 연동해야 인재와 회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장기적인 헌신을 끌어낼 수 있다. 직원 평가의 정밀한 등급화와 투명한 기준 공개도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모호함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결국 핵심 인재의 이탈로 이어진다. 소속 부서가 아닌 '개인의 기여도'를 철저히 객관화하고 회사의 명운을 바꾼 인재에게는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보상을 안길 수 있어야 한다. 기여가 아닌 소속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기업에 남을 S급 인재는 없다.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초격차도 무너진다.
[시대데스크]'포용'의 대가
'포용'이라는 단어만큼 정치적으로 따뜻하고 매력적인 수사가 있을까. 최근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내놓는 일련의 민생 금융 정책들에서는 '포용' 분위기가 물씬 배어 있다. 취약층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책 목표에 이견을 제기할 이는 드물다. 그러나 정책이 발표되는 무대의 뒷편, 비용을 조달하고 실행하는 구조를 들여다보면 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과 상충하는 지점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정부의 재정 투입이나 제도적 지원보다 민간 금융사의 재무적 부담을 지렛대 삼아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21일 발표된 호르무즈 해협 사태 관련 중소 선사 지원책도 그랬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10개 손해보험사가 자체적으로 10척의 중소 선박에 대해 '전쟁보험'을 공동으로 인수해 최저요율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정학적 분쟁 리스크는 글로벌 대형 재보험사들조차 인수를 기피하는 영역이다. 충분한 글로벌 커버리지 없이 국내 민간 보험사들이 이를 자체적으로 떠안는 것은, 개별 기업의 리스크 허용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이달부터 도입된 자동차보험 차량 5부제 할인 특약도 가격 결정 메커니즘의 왜곡을 보여준다. 고유가 부담 완화라는 명분 아래 약 1700만대 차량에 연 2% 수준의 보험료를 환급해 주겠다는 것이다. 손보사들은 지난해 자동차보험 부문에서만 708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구조적 적자 사업부문에 추가적인 부담이 가해진 만큼 자동차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커진다.카드사들 역시 2007년 이후 14차례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거치며 본업인 신용판매 부문의 수익성이 한계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연내 또 한 번의 수수료 추가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주유비 할인카드 수수료의 추가할인 요구 등은 수년간 감익 흐름을 이어왔던 카드업계를 시름에 잠기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새로운 혁신 모델로 자리 잡은 인터넷전문은행과 빅테크도 예외는 아니다. 고금리로 연체율이 급등하는 거시경제 환경 속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인가 조건이라는 이유로 '중저신용자 대출 의무 비율'을 무조건적으로 맞춰야 한다.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수반되는 빅테크 결제망 역시 원가 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인 수수료 공시 및 인하 압박에 직면했다.모든 정책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경제·금융 정책은 더 그렇다. 위기 상황에서 금융업권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겠지만 그 실행 방식이 기업의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이어서는 안된다. 본업의 수익 구조가 악화된 상태에서 포용 명분의 자금 출연이나 금리·수수료 인하 요구가 누적되면 금융사들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결국 중·저신용자 대상의 신용 공급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포용금융 정책이 되레 취약계층의 제도권 자금 접근성을 제약하는 '풍선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금융회사의 자본 건전성이 약화된다는 것은 위기 발생 시 거시경제의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Buffer)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지속 가능한 포용금융은 시장의 자율성과 가격 결정 기능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 정교한 재정 정책과 규제 유인 체계가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포용 금융의 구조적 비용과 편익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대데스크]마이클 잭슨의 추억, 도시를 무너뜨린 시장
#1. 최근 개봉한 영화 '마이클'의 실제 모델인 마이클 잭슨. 그 전설의 시작은 미국 디트로이트 기반의 모타운(Motown) 레코드였다. 1969년 5인조 보이그룹 '잭슨5'를 발굴한 모타운은 막내 보컬 마이클을 슈퍼스타로 키워냈다.'팝의 황제' 마이클은 훗날 모타운을 떠났지만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1983년 모타운 25주년 기념 TV 방송에 출연한다. 마이클이 '빌리 진'을 부르며 그의 시그니처 댄스인 '문워크'를 처음 선보인 전설적인 무대가 바로 그때다. 마이클 외에도 스티비 원더, 슈프림스, 마빈 게이 등의 흑인 스타 뮤지션들이 모타운의 손에서 탄생했다.모타운이란 이름은 자동차 도시였던 디트로이트의 별명 '모터타운'(Motor Town)에서 따왔다. 과거 GM(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의 본사와 주요 공장이 모두 디트로이트 주변에 있었다. 자동차 산업 덕분에 디트로이트는 한때 미국 내 인구 순위 4위에 올랐다.그러나 디트로이트는 20세기 중반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 2010년을 전후해서는 '유령도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추락의 중심에 한 남자가 있었다. #2. 콜먼 영은 무려 20년(1974~1993년) 동안 디트로이트 시장을 지냈다. 그는 연임을 위해 야심찬 대형 프로젝트들을 펼쳤다.73층짜리 빌딩을 중심으로 한 복합단지 '르네상스 센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거대한 유리 건물만으로 쇠락하는 도시를 되살릴 수 없었다. 남겨진 건 텅 빈 사무실들뿐이었다. 1970년대 3억5000만 달러를 쏟아부어 지은 이 건물은 1996년 1억 달러에 팔렸다. 2억 달러를 들여 모노레일도 깔았지만 좌석이 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새로운 아이스하키 구장을 짓는 데에도 시 예산이 들어갔다.영은 도시를 건물로 채우면서도 사람은 몰아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영은 흑인과 백인을 갈라쳤다. 시장이 욕설까지 동원하며 백인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자 이들은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흑인 사회에서의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연임을 노리던 영의 입장에선 그게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영은 5연임에 성공했다. 이 기간 디트로이트의 백인 비중은 약 55%에서 15% 이하로 급감했다.그가 시장으로 재직한 20년 동안 도시 인구는 150만 명에서 10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백인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이 사라졌고 기업도 떠났다. 시 재정은 바닥이 났다. 이때부터 무너진 재정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 디트로이트는 2013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방정부 파산을 신청했다. 2026년 현재 디트로이트 인구는 약 63만 명에 그친다.연임을 위해 반대쪽 주민을 도시 밖으로 밀어낸 시장은 보스턴의 제임스 컬리가 먼저다. 그는 1914년과 1950년 사이에 4차례 보스턴 시장을 지냈다. 아일랜드계인 컬리는 잉글랜드계 주민들을 '멍청한 종(種)'이라고 비하하며 몰아세웠다.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6년 영국 징병관이 보스턴에서 영국 출신 주민들을 징집해가도 되느냐고 묻자 컬리는 "마음대로 하시오. 아무나 잡아가도 좋소"라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잉글랜드계 주민들이 떠나자 컬리는 선거에서 유리해졌지만 도시는 더 가난해졌다.#3.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영과 컬리를 도시를 망가뜨린 시장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둘 다 사람을 버렸고 영은 그 대신 건물을 올렸다. 그 결과는 도시의 몰락이었다.글레이저는 "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고 강조했다. 건물이 많은 도시는 무너질 수 있지만 인재가 많은 도시는 망하지 않는다. 사람이 빠져나가는 도시가 아닌 인재를 끌어들이는 도시를 만드는 게 시장이 할 일이다.실리콘밸리와 암스테르담 등에서 보듯 포용력 높은 도시가 성장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다양성이 높을수록 갈등이 많을 수도 있지만 그건 번영의 대가일지 모른다. 득표를 위해 편을 가르고 적을 만드는 시장이 도시를 키울 가능성은 희박하다.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개발 공약들이 쏟아진다. 물론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도 없지 않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표를 얻기 위해 기대감만 부추기는 비효율적 사업은 과연 없을까.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면 건물보다 사람에 투자하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던져보면 어떨까.
[시대데스크]노란봉투법 선의보다 연대가 필요한 시점
올해 1월 '동행미디어 시대'는 제호를 바꾸고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을 기치로 내걸었다. 경제활동 주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미디어의 역할을 다시 정립했다.사회 각 구성원의 권리 요구와 공익의 가치 사이에서 기준을 정하는 것은 갈수록 더 복잡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노조 활동을 보호해야 하는 제도와 규제, 그리고 기업 경영의 균형점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는 때다.규제는 공정한 경쟁과 지속가능한 경영 활동을 전제해야 한다. 약자로서 보호되는 하도급사와 노동자의 권익만큼 중요한 것은 기업 경쟁력이라는 시대의 과제를 부정할 수도 없다.최근 건설업계의 최대 이슈로 부상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은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이어 기업들을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지방노동위원회는 건설 하도급사를 상대로 한 원도급사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를 놓고 여러 해석을 하고 있어 빠른 제도 수정이 요구된다. 사용자성 판단은 원도급사가 하도급 노조와 단체교섭 의무를 갖는지 결정하는 문제인데, 노동자의 근로계약 조건에 실질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전국건설노동조합이 포스코이앤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에서 노동위는 노조의 손을 들어 포스코이앤씨가 하도급 노동자의 임금 지급, 안전 관리, 작업 공정을 결정하는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포스코이앤씨는 노동위의 결정을 존중하며 교섭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유사한 취지로 진행된 중흥건설의 사용자성 심사에서 노동위는 노동자의 인사, 채용, 징계 등에 원도급사가 관여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원·하도급사의 '직접 사용자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노조의 교섭 신청을 기각했다.과거 현대건설도 하도급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았다가, 당시 노동위와 법원은 노사 관계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원도급사의 지배력을 폭넓게 인정한 사례가 건설업계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사회 발전의 관점에서 볼 때 환영할 만한 변화다. 다만 건설업은 중층 하도급 구조가 광범위하고 가장 약한 고리인 하도급사가 실제 보호 조치에서 배제될 수 있는 허점이 존재한다.건설노조와 단체교섭을 수용했던 포스코이앤씨가 한국·민주노총 산하 각 플랜트노조의 교섭 분리 요구로 기존 절차를 중단한 사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정한 노동환경 구축이라는 법 취지가 최선의 결과만을 낳지 않는 점을 보여준다.현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규제'의 대가다. 쟁의 행위의 대상이 사법 판단의 영역으로 넓혀지면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결단하지 못한다.노동자의 권익과 기업 경영권을 보호하는 길이 반드시 평행선이어야만 할까. 진정한 의미의 동행은 희생이 아니라 서로가 인정하는 '룰'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노동자의 삶을 보듬는 정서만큼 중요한 것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정책의 디테일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법 시행의 보완 방안을 만드는 정책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대데스크]CU 사태, 남겨진 숙제
파업이 끝났다. BGF로지스와 화물연대 CU 지부가 합의에 도달했고, 막혔던 물류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나온 도시락과 김밥이 물류센터를 거쳐 점포로 들어오며 비어 있던 매대를 채운다. 평소 모습을 되찾고 있지만 남은 숙제도 적지 않아 보인다.BGF리테일의 대응은 빨랐다. 결품으로 팔지 못한 몫과 폐기된 상품 비용을 계산해 지원금을 지급하고 위로금을 별도로 더한다. 점포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겉으로 보면 상황은 정리된 듯하다.현장은 다르다. CU 점주협의회는 화물연대를 상대로 손해배상 절차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보상 지원에도 갈등은 남아 있다.파업이 끝난 뒤에 긴장이 이어지는 흐름은 단순한 노사 갈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협상은 위에서 마무리됐고 보상은 별도로 이뤄졌다. 정리는 됐지만 현장의 불만과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주체를 나란히 놓고 보면 더 분명해진다. BGF리테일, BGF로지스, 화물연대 CU 지부, 점주협의회. 협상은 물류와 노조가 맡았고 본사는 수습과 보상을 담당했다. 매장은 결과를 받아야 했다. 모두 연결돼 있지만 역할은 다르다.문제는 이 연결이 끊기는 순간 드러난다. 물류센터가 막히자 점포로 이어지던 상품 흐름이 멈췄다. 삼각김밥과 도시락이 빠지고 간편식 매대가 비었다. 매출은 곧바로 흔들렸다. 더 큰 변화는 고객의 이동이었다. 비어 있는 매대를 경험한 손님은 다른 매장을 찾는다.점주들은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 협상 테이블에도 없었고 물류를 조정할 권한도 없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가장 먼저 받아야 했다. 유통의 구조가 이렇게 작동한다. 위에서 내려온 결정은 결국 매장에서 현실이 된다.BGF리테일은 손실을 빠르게 메웠다. 결품과 폐기 비용을 보전하고 위로금을 더했다. 기업의 역할로 보면 충분한 대응이다. 다만 그 보상은 이미 발생한 손실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문다. 손실이 왜 특정 지점에 집중됐는지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점주협의회가 소송을 이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협상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로 발생한 약 140억원의 부담이 누구에게 쌓였는지 묻고 있다. 보상은 받되 책임은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상이 어디서 이뤄졌는지가 아니라 그 결과의 비용을 누가 감당했느냐가 초점으로 남았다.유통은 본사, 물류, 운송, 매장이 이어져 작동하는 구조다. 평소에는 계약으로 움직인다. 문제가 생기면 계약보다 책임이 먼저 드러난다. 그리고 그 부담은 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래로 내려온다. 싸움은 끝나도 그 비용이 남는 자리는 따로 있다.필요한 것은 복잡한 해법이 아니다. 손실과 책임의 기준을 정하는 일이다. 물류 차질이 발생했을 때 손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협상 밖에 있는 점주 같은 현장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최소한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 기준이 없다면 같은 상황은 반복된다.
[시대데스크]코드와 데시벨: 목청 전쟁에 묻히는 AI
"새로운 정부 모델이 출범합니다. 2년 내 정부 서비스, 운영의 50%가 AI 에이전트로 대체됩니다. 세계 최초의 자율 시스템 정부로 만들 것입니다." 2026년 4월 23일,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셰이크 무함마드가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선언했다. 이어진 문장은 더 단호했다. "2년 뒤부터 정부의 성과는 AI 도입 속도, 실행의 질, 업무 재설계 역량으로 측정합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시한과 측정 지표가 박힌, 국가 운영체제를 통째로 갈아 끼우겠다는 비전 발표였다. 15년 전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투자자 마크 안드리센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애플·구글·아마존이 산업의 지형을 다시 그렸다. 2017년 젠슨 황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이제는 AI가 소프트웨어를 먹어 치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다. '코드(Code)' 한 줄이 공장 하나를, 알고리즘 한 묶음이 부처 하나를 대체할 수 있다. UAE 총리의 선언은 그 흐름의 한 변곡점일 뿐이다. 미국은 2026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사상 처음 1조 달러(약 1400조원)까지 끌어올렸고, 2027년에는 1.5조 달러를 제안했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이 무인기와 AI, 자율 시스템으로 흘러간다. 세상의 중심이 빠르게 '코드'로 옮겨가는 중이다. "어우 정말 난장판이다. 정말 난장판이야 …." 한 특위위원장의 자조 섞인 독백이 마이크를 타고 흐른다. 삿대질을 이어가는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 사이에서 카메라는 누구의 얼굴도 잡지 못한 채 회의장 전경을 비춘다. 4월 30일 한국 국회의 풍경이다. 고성이 30분 넘게 이어지고 나서야 회의가 다시 시작됐다.AI·과학·통신을 다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도 난장 같은 모습이 자주 펼쳐진다. 과방위는 22대 국회 출범 직후부터 방송4법을 둘러싼 극한 정쟁의 장이 됐다. AI 기본법은 가까스로 통과시켰지만, 그 외 과학·AI 분야 법안은 줄줄이 밀려 표류 중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84시간에 걸친 과방위 속기록을 분석해봤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쿠팡 혼내기'였다(38%, 30시간). 최대 현안이자 미래 먹거리인 AI(20%), 우주항공(5%) 분야의 시간 점유율은 초라하다. 한국 정치의 핵심은 '코드'가 아니라 '데시벨'이다.이런 시간 속에서 한국이 키운 AI 인재들은 짐을 싼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에 발간한 보고서 'AI 전문인력 현황과 수급 불균형'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AI 전문인력 5만7000명 가운데 약 1만1000명이 해외에서 일한다. 한국의 AI 전문인력은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한국을 빠져나가고 있다. 올해 4월 발간된 스탠퍼드대 'AI 인덱스 2026'도 한국을 AI 인재 순유출국으로 분류한다. 인재 유출 속도는 조사 대상 50개국 중 8위다. 정치권의 요란한 목청 싸움 속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떠난다. 일찍이 쇼펜하우어는 '소음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한 인간이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소음의 양은, 그의 지적 능력과 반비례한다."UAE의 'AI 정부 선언'은 50%라는 자동화 목표 뿐 아니라 '2년'이라는 시한, 그리고 '도입 속도·실행의 질·재설계 역량'이라는 측정 지표도 명시했다. 한국 정치가 같은 2년 뒤 무엇으로 측정될지는 누구도 답하지 못한다. 중국 AI 모델은 지난 2월 세계 최대 AI개발자 플랫폼 허깅페이스 다운로드의 41%를 가져가며 미국(36.5%)을 처음 추월했다. '코드'는 전에 없이 맹렬한 기세로 세상을 뒤바꾸는데, 국회의 소음은 조용히 한국의 잠재력을 집어삼킨다. AI 골든타임은 이렇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소진되고 있다.
[시대데스크]수천조 바이오 신대륙 가로막는 관료주의
"정부가 경제를 보는 시각은 세 마디로 요약된다. 그것(경제)이 움직이면 세금을 매기고, 계속 움직이면 규제하고, 멈추면 보조금을 줘라."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80년대 재임 당시 자주 인용한 말이다. 불필요한 규제로 혁신의 발을 묶는 관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이 경고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 기자가 만나는 업계 관계자들은 모두 정부 눈치를 보면서 "관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전격적인 약가 인하 규제가 그 단면이다.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지난 3월 제네릭(합성복제약) 가격을 오리지널의 45%(현행 53.55%)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11월 복지부가 건정심에서 인하 방침을 처음 공식화한 지 4개월 만이다. 하반기 시행을 앞둔 이 전격적인 조치를 두고 현장의 불신은 팽배하다. 일각에선 "복지부 관료들이 약가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약가 제도라면 거쳐야 할 협의와 공청회, 유예기간 등 공론화 과정이 생략되거나 축소돼 속전속결로 진행됐다는 게 이유다. 결국 건보 재정 효율화라는 명분 뒤에 관료의 편의주의적 행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약가 재편과 관련한 명확한 법적 근거나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부가 안전한 규제를 선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호한 법 규정을 들어 가장 손쉬운 방식인 약가 통제로 기업에 비용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며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 결국 신약개발이라는 혁신의 싹이 잘릴 것"이라고 토로한다. 특정 정책을 넘어 보건의료 정책 전반의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사례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규제 완화론자였던 레이건은 재임 당시 시장 경쟁을 통해 약가를 낮추는 해치·왁스먼법을 제정했다. 제네릭 승인 절차는 간소화하되 신약 개발에 소요된 기간만큼 특허를 연장해 주는 당근을 병행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가격을 직접 억누르는 대신 진입 장벽을 낮춰 자율 경쟁을 유도하고 기업 손실은 제도적으로 보전해 준 것이다. 정부 규제 완화 철학과 약가 안정이라는 공공성이 결합해 미국의 호황을 견인한 혁신의 서막이었다. 최근엔 미국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 주요국들도 바이오 규제 완화에 열을 올린다. 현 정부 역시 제약·바이오헬스 강국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 엔진은 가동되는데 브레이크가 발목을 잡는 구조로는 어떤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규제 완화 구호가 이번에도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글로벌 AI(인공지능) 패권 경쟁 속에서 바이오는 미래 최대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AI와 생명공학의 만남으로 제약·바이오 생태계는 10년 내 최소 수천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현재 반도체와 자동차 시장을 합친 규모마저 추월하는 거대한 신대륙이다. 한국이 황금알을 낳는 바이오시장 주도권을 잡으려면 관료사회부터 달라져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장과 협력하는 파트너로 전환해야 한다. 규제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한국의 관료주의가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천문학적인 기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시대데스크]가해자 아닌 피해자만 때리는 나라
영업정지 4.5개월에 과징금 50억원. 지난해 해킹을 당한 롯데카드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사전 통지한 제재안이다. 지난 16일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렸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추가 논의로 넘어갔다. 결론이 미뤄진 이유는 하나다. 이번 사고가 내부 직원 소행이 아닌 외부 해킹이었다는 점, 즉 '롯데카드도 해킹의 피해자'라는 사실 때문이다.지난해 8월 롯데카드에서 서버의 구형 취약점을 악용한 해킹이 발생해 전체 회원의 30%에 해당하는 297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이미 롯데카드에 96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국이야 각각의 법률에 정해진 대로 제재할 뿐이라고 하지만 해킹을 당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중제재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도둑 맞으라고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는 사람은 없다. 해킹은 작정하고 침입하는 외부 공격자의 엄연한 범죄행위다. 물론 롯데카드도 구형 취약점 패치를 방치한 관리 부실의 잘못이 있다. 그 책임을 전혀 묻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2025년은 대한민국 사이버 보안의 민낯이 드러난 해였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는 물론이고 예스24, 쿠팡 등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해킹사고가 터졌다. 해킹은 더 이상 특정 기업의 실수가 아닌 산업 전반의 일반화된 리스크가 된 것이다.이같은 상황에서 당국은 걸린 기업만 강하게 때리고 있다. 징벌적 과징금을 높이고, 영업정지 기간을 늘리면 기업들이 보안에 더 투자할 것이라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게 전부여서는 안 된다.이대로라면 역효과도 우려된다. 해킹 신고를 빨리 할수록, 사고 규모가 정확히 드러날수록 제재는 더 세진다. 기업들로서는 신고를 미루거나 축소하고 싶은 유인이 생긴다. KT는 해킹사고 처리 과정에서 서버를 폐기해 증거를 은닉했다는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해킹에 대한 제재 구조가 기업의 자발적 신고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해외는 다르게 접근한다. 영국 정보보호위원회(ICO)는 해킹에 의한 정보 유출이 발생했던 영국항공(British Airways)와 메리어트(Marriott) 사건에서 애초 수천억 원대 과징금을 예고했지만 적극적인 조사 협력, 즉각 신고, 신속한 사후 대처 등을 감경 사유로 인정해 최종 과징금을 대폭 낮췄다. 미국 사이버보안·인프라보안국(CISA)은 기업들이 공격 수법과 침해지표를 제출하면 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정보공유 체계를 운영한다. 기업이 해킹 정보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발적으로 제출하게 만드는 구조다.보안 업계에서는 '사고를 막는 보안'에서 '사고를 견디는 보안'으로 중심축을 옮겨야 할 때라는 얘기가 나온다. 아무리 보안에 투자해도 국가 배후 해킹 조직이나 고도화된 공격자를 100%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당국이 해야 할 일은 사고 이후의 투명한 신고와 정보공유를 장려하고, 해커를 추적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롯데카드 제재심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건, 금융당국 내에서도 지금의 법리가 맞는지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 결정이 우리카드, 신한카드 등 후속 제재의 기준선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 기준선이 처벌의 수위가 아니라 협력과 재발방지의 실효성을 중심으로 설계되기를 바란다.해킹한 놈을 잡는 나라가 돼야지, 털린 기업만 때리는 나라여서는 안된다.
[시대데스크]"트럼프에 군대를 맡기는 건 어린이에 총을 주는 꼴"
#1. 영국의 전설적 록 밴드 '퀸'의 천재 보컬 프레디 머큐리는 평생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다. 머큐리의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 그는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인도 서부에서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페르시아(현 이란)인 공동체 출신이다. 짜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일신 종교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도 영향을 줬다. 불을 신성시해 '배화교'로도 알려진 조로아스터교는 선한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한다. 세상을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마 '앙그라 마이뉴'의 끝없는 대립으로 본다. 퀸이 남긴 불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엔 '비스밀라'(Bismillah)와 '벨제붑'(Beelzebub)이란 표현이 나온다. 비스밀라는 이슬람교 경전 코란의 각 장을 시작할 때마다 나오는 구절로, '신의 이름으로'란 뜻이다. 벨제붑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악마로, 신약성경엔 '바알세불'로 등장한다. 조로아스터교 세계관의 선악 대립이 노래에 표현된 셈이다. 머큐리의 생애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년)에서 극중 머큐리의 부친은 그에게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을 강조한다. 선한 신을 모시는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1991년 머큐리의 장례식은 전통적인 조로아스터교 방식으로 치러졌다. 런던에서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 고대 이란 언어인 아베스타어로 기도를 올리며 머큐리를 떠나보냈다. #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휴전 기간을 연장했다. 당초 기한은 한국 시간으로 23일 오전, 미국 동부시간 기준으로 22일 저녁이었다. 양국의 담판 결과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릴지, 봉쇄가 길어질지 결정된다.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20~3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 여부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운명이 달렸다. 폐쇄가 장기화될 경우 1970년대 오일쇼크 때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물가상승)이 재현될지 모른다.인류를 도탄으로 몰고가는 호르무즈의 어원이 조로아스터교의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란 사실은 아이러니다. 아후라 마즈다는 중세 페르시아어(팔라비어)에서 '오르마즈드'로 변했고, 아랍어를 거치며 오늘날 호르무즈가 됐다. 조로아스터교의 세례를 받아 유대교 신앙을 완성한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킨 탓에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다는 사실도 묘하다. 기원전 6세기 유대인들을 바빌론에서 해방시켜준 게 페르시아 제국인데, 그 후예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오늘날 앙숙이 돼 전쟁이 벌이는 현실도 얄궂긴 마찬가지다.#3. "트럼프에게 군 통수권을 맡기는 건 어린아이에게 장전된 총을 쥐어주는 것과 같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캠프에서 쓰던 캐치프레이즈다. 약 10년이 지난 현재, 우려는 현실이 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섣부른 결단 탓에 후르무즈 해협이 막혔고, 피해는 전 세계가 짊어졌다. 전쟁으로 이란에서만 2만명 넘게 죽거나 다쳤다. 미국 입장에서도 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약 40조원 어치의 무기가 소모됐다. 미국 대통령은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멋대로 지속할 순 없다. 적어도 법적으론 그렇다. 미국 전쟁권한법에 따르면 의회의 승인이 없을 경우 '교전'은 90일 내 끝내야 한다. 원칙적으로 60일이고, 철수를 위해 30일 연장할 수 있다. 이란 전쟁이 2월28일 시작됐으니 단순 계산하면 5월말까지, 휴전기간을 제외해도 6월까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을 순순히 따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자위권 발동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전쟁권한법을 위헌으로 몰아왔다. 또 '제한적 자위권 행사'는 전쟁권한법이 규정한 '교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도 2011년 리비아 공습 당시 의회 승인 없이 90일을 넘기며 이 논리를 폈다. 대통령 중심제의 단점 가운데 하나가 과도한 권력 집중이다. 성급한 대통령 1인이 국가에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우리 역시 1년여 전 경험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범여권이 개헌을 추진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개헌안은 대통령의 계엄 관련 권한을 대폭 줄였다. 계엄령을 선포할 경우 반드시 48시간 내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승인받지 못한 계엄은 무효가 된다. 한 개인의 폭주로 인한 위험은 대통령제를 선택한 대가다. 그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권한 분산이다. 비록 이번 기회에 못하더라도 개헌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시대데스크]약자만을 향하는 '공사비 리스크'
최근 만난 대형 시공사의 임원들은 한목소리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사태를 우려했다. 전쟁 국가의 국민들이 치러야 하는 고통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국제사회를 공급망으로 연결한 21세기의 군사 분쟁은 자본주의 국가들에 '복합 위기'로 다가왔다.위기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고리는 경제 약자일 수밖에 없다. 정부기관보다 기업, 기업보다 개인 투자자가 리스크 관리에 취약하다.최근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분쟁과 신축 아파트 하자 사태의 배경에는 자재 대란으로 인한 공사비 리스크가 있다. 글로벌 물류망의 이상으로 돈이 있어도 물건을 못 구하는 수급 불균형, 물건을 구해도 운송비가 공사비를 갉아먹는 상황은 기업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1990년대 자재 파동의 악몽을 상기시킨다.정부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민간 공사현장에서 벌어진다. 대형 발주사가 시공사에 공사 적자를 전가하면 시공사는 더 힘이 약한 하도급업체와 정비사업 조합, 중소 시행사로 그리고 다시 분양계약자 등으로 떠밀리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최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사업의 공사비 인상 결정에서 보듯 공공공사는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에스컬레이션)이 인정된다. 반면 대기업 발주사가 시공사와 체결한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소송 사태는 계약 불확실성과 계약자간 불신을 키운 단적인 사례다. 이는 국가적인 손실이다.시공사는 계약 상대에 따라 협상의 우위를 갖기도 하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 향후 후속 수주를 고려하면 발주사를 상대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관계 절교' 선언과도 다름없기 때문이다.정부는 표준계약서 활용을 권고해 중재에 나섰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권고는 거대 발주사의 독소 조항 앞에 무력하다는 게 건설업계 주장이다. 이에 민간 계약의 불공정 특약을 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협상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경제 고성장기에 한국 산업의 뿌리 역할을 한 K건설은 전환점에 섰다. 국내 주택사업을 기반으로 매출을 키워온 대형 시공사들이 원전과 인프라, 플랜트 수출로서 주택건설 사업자들과 다른 노선의 경쟁을 꾀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국내 건설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해외 기업들을 상대로 실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 플레이어들이 글로벌 현장으로 나아가고 외교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으려면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의 25%를 차지한 중동 시장은 기회의 땅이 아닌 화약고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 50억달러 아미랄(Amiral) 석유화학 프로젝트, 카타르 37억달러 담수복합발전 플랜트 건설 등 수조원대 사업을 수행 중인 국내 기업들은 공정 지연과 인력 철수를 결단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20% 오를 때 건설 원가는 7% 이상 상승한다. 석유화학 계열 페인트, 단열재, 방수재 가격은 한 달 만에 20% 이상 폭등했다. 2022년 러시아 전쟁으로 발생한 원자재 가격 폭등 사태가 채 안정되기 전에 다시 '원가율 100%'의 절벽 앞에 섰다.원·달러 환율과 국제유가 변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경제활동 주체는 없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파고 속에 상생 없는 독자 생존만을 강요하는 것이 시스템의 부재는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시대데스크]유통가의 AI 파도, 바람을 읽고 있는가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인데 말이요."영화 <관상>에 나오는 이 대사는 현상에만 시선을 고정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을 잘 보여준다. 눈앞의 움직임을 좇느라 그 배경을 이루는 구조를 보지 못하는 순간, 판단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유통업계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대사가 절로 떠오른다.요즘 유통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다. IT와 전자 산업을 넘어 AI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유통업계도 이런 흐름에서 비켜나 있지 않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 생성형 모델 도입, 데이터 인프라 고도화 같은 움직임이 이어진다. 기술을 둘러싼 메시지는 빠르고 분주하다.유통 대기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AI 전략을 내놓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오픈AI 코리아와 협력에 나서는 한편 지난 3월에는 미국 기업이 자국의 AI 기술과 인프라를 해외에 적용한 첫 수출 사례로 평가되는 국내 데이터센터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 서비스 차원을 넘어 데이터 처리의 물리적 기반까지 손에 쥐겠다는 선택이다. 롯데그룹은 구글의 AI 서비스 '제미나이'를 앞세워 유통 현장 전반에 AI 활용을 확산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카카오와 손잡고 AI 추천 기반 이커머스 실험에 나섰다.AI는 유통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처럼 언급된다. 이 지점에서 한 번쯤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정말 새로운 바람을 읽고 있는가 아니면 또 하나의 파도에 올라타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이 질문은 유통 산업이 처한 현실을 떠올리면 더 무게를 갖는다. 유통업계는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소비 회복은 더디고 인건비와 물류비 부담은 여전히 크다. 실적에 대한 기대보다 방어적인 전망이 앞서는 이유다.온라인 유통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몇 차례 경쟁을 거치며 시장의 중심은 이미 단단해졌다. 단기간의 기술 도입이나 서비스 변화만으로 판이 흔들릴 만큼 유통 시장은 단순하지 않다. 속도보다 체력, 확장보다 구조가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이런 환경에서 AI는 설명하기 좋은 언어가 된다. 효율과 미래를 말할 수 있고 당장의 숫자보다 다음 단계를 이야기하기에 적절하다. 하지만 기술은 방향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 방향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AI는 분명 운영 효율을 높이고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든다. 재고 관리와 발주, 고객 응대, 추천과 분석의 품질도 개선된다. 다만 이런 변화가 소비자의 선택 이유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왜 이 채널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기술의 효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AI는 정리되지 않은 구조를 대신 정돈해 주는 장치가 아니다.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쌓이고 물류와 매장, 고객 경험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구조가 흩어져 있다면 AI는 기능 개선의 수준에 머문다.지금 많은 유통 기업들은 그 중간 지점에 서 있다. 기존 구조를 쉽게 부정하기에도, 전혀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AI라는 언어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다.분명한 사실은 시간이 지나 살아남은 기업들은 늘 비슷한 선택을 해왔다는 점이다. 기술에 앞서 소비자의 마음을 읽었고 파도를 쫓기보다 바람의 방향을 먼저 읽었다. AI를 붙인다고 미래가 오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유통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시대데스크]삼천당제약은 왜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오를까
"시장은 당신을 능멸하고 싶어하며 배우자 앞에서 망신시키려 합니다." '역발상 투자의 대가' 켄 피셔가 지난해 말 공식채널에 올린 인터뷰 영상에서 한 말이다.그는 주식시장에 대해 능멸의 대가(The Great Humiliator)라는 평소 소신을 밝히며 "영적인 존재와 같다"고 했다. 경고도 잊지 않았다. "당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할수록 시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정교하게 짜여집니다"자산 변동성은 필연적이지만 극복하기 말처럼 쉽지 않다. 최근 기자가 만난 주식투자자들은 미국과 이란의 확전 등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시장이 요동치자 "마침 어제 샀는데 급락하고 팔았는데 오른다"고 불만을 쏟아낸다. 약속이나 한 듯 불확실성의 시대 "우리를 조롱한다"는 한탄이다. 시가총액 상위권을 휩쓰는 제약·바이오 업종은 그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코스닥 시총 30위권 내에 절반 이상이 포진한 주도주들의 급박한 등락과 함께 시총 순위가 뒤바뀌는 대혼란을 겪고 있다. 올해 시총 1위 알테오젠에 이어 삼천당제약이 그 바통을 이어받는 듯하다.지난달 3개월여 만에 5배 가까이 급등했던 환희도 잠시, 이후 수조원의 시총이 증발하며 장부상 수익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불안감이 확산하자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은 여전히 냉담하다. 미래가치의 핵심인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과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등에 대한 기대감이 가격에 과도하게 선반영된 탓이다. 여기서 초보 투자자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한다. 주가는 호재나 악재 그 자체보다 그 재료가 가격에 얼마나 녹아 있느냐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눈부신 호재라도 이미 충분히 반영됐다면 발표와 동시에 투자심리는 얼어붙고 변동성만 키울 수 있다.능멸의 대가는 무지한 자보다 자신의 지능을 과신하는 투자자를 먼저 사냥한다. 투자는 인내의 영역에서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군중심리를 거스르는 역발상 투자를 주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중동 사태 우려가 선반영돼 업종이나 종목별 차별화 흐름이 심화되고 특정 제약·바이오주가 요동칠 때 시장이 나를 유혹하는 건 아닌지 차갑게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투자자에게 달콤한 수익을 맛보게 해 깊숙이 유인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그 수익을 처참히 앗아가는 시장의 특성을 역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살아 움직이는 시장에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깊이 있는 분석과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 제약·바이오주에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가격수준)이나 수익성, 건전성 심지어 R&D(연구·개발) 현황, 주요 경제지표 등을 전혀 모른 채 돈을 묻는 것은 전쟁터에 무기 없이 나가는 것과 다름없다. 확신을 얻었다면 그다음은 시간의 힘을 빌려보자. 시장은 투자자를 조롱하지만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고ROE(자기자본이익률), 낮은 부채비율을 갖춘 바이오주라면 일시적 풍파를 견뎌낼 수도 있다. 신약 등 기술개발에 통상 10년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중장기 관점의 투자전략도 필요하다. 워런 버핏이 부의 비결로 꼽은 복리효과도 기대된다. 원금과 수익에 배당금까지 다시 투자해 투자금을 불리는 소위 복리의마법은 장기투자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쌈짓돈을 날릴 판인데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격언은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도 돈을 잃지 않으려면 시장을 이긴 대가들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씨앗을 심었다면 그 성장을 믿고 묻어둔 채 잠자리에 드는 배짱이 필요하다. 시장의 능멸을 이기는 유일한 무기는 차가운 분석과 뜨거운 인내다.
[시대데스크] 주식투자와 골프의 공식
골프와 주식투자는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손실 관리가 성과를 좌우하는 만큼 '뺄셈의 게임'이라는 점이 묘하게 닮았다. 큰 수익을 올리는 것이 투자 성과의 목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큰 손실을 피했느냐가 핵심이다.투자자들은 종종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을 찾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정작 시장에서 살아남은 투자 고수들은 대박 종목을 많이 가진 게 아니라 치명적인 손실을 피하는 능력이 뛰어난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투자금이 50% 줄었을 때 이를 원래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100%의 수익이 필요하다.모든 종목에서 높은 수익을 올릴 수는 없다. 시장은 언제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고 어떤 투자도 완벽하게 성공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손실 관리가 전제된 상태에서 수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리한 레버리지 투자나 단기 급등 종목을 쫓는 매매가 위험한 이유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전체 투자 성과를 크게 흔들 수 있다.이런 원리는 골프에서도 적용된다. 골프를 배우기 전에는 '버디'를 많이 잡으면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게임을 하다 보니 '더블보기'와 '트리플보기'를 만들지 않아야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한 번의 화려한 샷이 주는 짜릿함에 골프 매력이 더해질 수 있지만 최종 스코어를 좌우하는 건 결국 실수를 줄이는 것이었다.골프 고수들은 비슷한 전략을 언급한다. 버디는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이지 매번 노리는 목표가 아니라는 것. 버디를 노리기 위해 무리한 샷을 하기보다 홀별 규정 타수인 '파'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이보다 하나 덜 치는 버디가 스코어를 줄여주지만 두 타를 더 친 더블보기 하나는 단일 버디로는 만회하기 어려운 손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정확성'도 골프와 투자의 공통점이다. 골프 초보자들은 단지 '멀리 치는 것'에 집착하기 쉽다. 그러나 경험이 쌓일수록 '방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멀리 날아간 공이라도 숲이나 러프에 떨어지면 다음 샷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페어웨이에 공이 있다면 여유롭게 다음 기회를 만들 수 있다.이와 마찬가지로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리는 투자보다 중요한 것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쌓아가는 투자다. 시장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성장주에 투자, 높은 수익을 올린 화려한 성공 사례가 자주 언급되지만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는 투자자들은 대체로 꾸준한 수익을 쌓아 온 사람들이다.결국 장기전이라는 점에서도 골프와 투자는 닮았다. 골프는 18홀을 거치는 경기다. 한 홀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다음 홀에서 만회할 기회가 있는 만큼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 실수에 연연하면 또다시 미스샷을 낼 가능성이 높지만 차분하게 다음 샷에 집중하면 흐름을 되찾을 수 있다.주식투자도 긴 시간에 걸친 게임이다. 상승장과 하락장이 반복되고 투자자는 그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투자 성과를 결정하는 것은 장기간에 걸친 선택들의 누적이다.골프장에서 스코어가 좋은 사람을 보면 무리한 샷을 하지 않고,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회를 포착하는 공격 또한 투자에서 배제할 수 없는 요소지만 오래 살아남는 투자자들은 언제 공격해야 하는지보다 언제 물러나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골프 스코어와 주식 수익률의 공식은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투자란 결국 버디를 쫓는 게임이 아니라 보기를 줄여가는 과정에 가깝다.
[시대데스크]'강요된 희생'과 '성공 담보금'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5극 3특'(5개 광역메가시티+3개 특별자치도) 전략을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다극 체제로 전환해 국가 경쟁력을 회복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하지만 이전 대상이 되는 기관들의 구성원에게 대의를 위한 희생만 강요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곤란하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이들과 그들이 정착할 지역 주민들 간의 동의와 화합이 필수다. 2차 이전 대상 규모는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된 1차(153곳) 때보다 훨씬 많은 최대 500여 곳, 대상 직원 수는 1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경기도 과천시 전체 인구보다도 많다.일각에서는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공기관 종사자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의무라고 말하며 이들의 저항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세운다.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당사자들은 이 같은 주장에 답답하다. 단순히 근무지만 옮기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자녀의 교육 환경, 배우자의 경력 단절, 생활 인프라의 차이, 극심한 자산 격차를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강요된 희생'이다.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정부와 기관의 방침에 순응하거나 정든 조직을 떠나는 것뿐이다.과거 1차 지방 이전 정책은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 가족 동반 이주율이 50%를 밑도는 지역들은 주말이면 유령도시로 변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기관 이전 후 5년 내 핵심 인력의 자발적 퇴사율은 이전보다 최대 2배 넘게 증가했었고 일부 기술 전문 기관 신입 사원의 30% 이상이 1년 안에 사표를 던졌다고 한다. 인재가 떠난 자리는 업무 공백과 공공 서비스의 질적 저하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경제 활성화는커녕 불필요한 관리비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될 뿐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국가 정책에 따라 희생한 이들에게 미미한 이사비 정도와 한시적인 세금감면 혜택만 준 것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금전적인 보상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본인과 가족의 희생을 통해 국가 균형 발전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정주(定住)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정주 수당은 공공기관 종사자를 위한 특혜가 아니라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화벽'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혈세 낭비'라고 비난할 수 있으나 이는 지방 이전이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계산하지 못한 단견이다. 수만 명의 우수한 인력이 지역에 안착하지 못하고 수도권을 그리워하며 떠돌 때 발생하는 국력 낭비를 직시해야 한다.정주 수당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이 '건물만 남고 인재는 떠나는' 참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유지비이자 사업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지역 경제의 '활성화 펀드' 역할도 겸할 수 있다. 이주 직원들에게 지급된 수당이 지역 내 소비로 이어지면 지역민들이 '사람이 오니 돈이 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에서도 강제로 근무지를 옮기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금전적으로 지원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처럼 희생에 못 미치는 소액 지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2만 개 이상의 공직 일자리를 런던 밖으로 옮기고 있는 영국 정부는 공무원 배우자의 재취업까지 직접 알선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를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보고 필요한 것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대한민국을 재설계하는 거대한 구조 개혁이다. 해당 기관 종사자들에게 주어지는 정착 비용은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라고 할 수 있다. '5극 3특' 체제가 헛돌지 않게 하려면 정부의 세밀한 정착 지원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번 공공기관 이전이 진정한 국가 균형 발전을 여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시대데스크]'월급 150만원 김병장'의 도박·빚투, 해법은 교실에 있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군대와 관련한 씁쓸한 소식을 들었다. 올해 기준 이병 월급은 75만원, 병장 월급은 150만원. 매월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이 넘는 돈을 쥔 젊은 사병들이 불법 도박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자금을 대주는 대부업체 금융상품까지 등장했다고 한다.사회 경험이 있거나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사병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문제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대한 청년들이다. 생애 처음 매달 수십만원의 고정 수입을 손에 쥐게 됐지만 저축하고 굴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 도박이나 과소비 유혹에 쉽게 휩쓸린다. 뭉칫돈 씀씀이를 몰라 보이스피싱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이들이 금융의 기초를 미리 배웠다면 그 돈은 제대 후 사회 진출을 위한 종잣돈으로 쓰였을 것이다.일각에선 이 같은 일탈의 원인으로 '스마트폰 보급'을 지목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스마트폰 앱 하나로 비대면 대출과 투자가 가능한 고도의 디지털 금융 환경이 열렸다. 금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획기적으로 높아졌지만 이를 다룰 금융 지식은 그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변동장세 국면에서 반복되는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도 그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기업의 펀더멘털이나 산업 성장성을 분석하기보다 소셜미디어(SNS)에 떠도는 소문에 휩쓸려 투자를 감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상자산이나 특정 테마주가 급등한다는 소식에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일으키기도 한다. 시장의 변동성을 간과하고 당장의 수익률에 눈이 멀어 감당하기 힘든 빚을 낸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닥뜨린 자본시장은 냉혹하다. 투자 실패로 인한 손실과 막대한 빚은 오롯이 투자자 본인의 몫이다.금융상품을 선택하고 투자 결정을 내리는 마지막 결정권자는 소비자 자신이다. 스스로 재무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은 국가도 금융사도 대신 메워주지 않는다. 수익을 좇는 만큼 위험을 안아야 한다.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자기 책임 원칙'은 현대 사회의 필수 생존 지식이다. 성인이 돼서 갑자기 큰돈을 만지거나 대출을 받게 됐을 때 비로소 이 원칙을 깨닫는다면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크다.지난해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이 신설된 것은 반가운 변화다. 은행 예·적금의 복리 효과, 보험의 필요성, 주식 및 채권 투자의 실제 등 당장 현실에서 부딪히는 실용적인 지식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비록 수학능력시험 출제 과목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수능을 치른 뒤 남는 시간에 배우거나 2학년이 교양으로 이수하며 재무적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고 있다. 과거 주요 과목에 밀려 금융을 터부시하고 학생의 돈 이야기를 부적절하게 여겼던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자기 책임 원칙과 합리성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10대 시절부터 체계적인 교육으로 금융 체력을 다져야 한다. 소비와 저축의 균형을 맞추고 투자의 원칙과 위험성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된 변화가 청년들의 무모한 빚투 비극을 끊어내고 건강한 경제 주체로 성장하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똑똑한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기반도 한층 탄탄해질 수 있다.
[시대데스크]6·3 지방선거에서 절대 찍으면 안 되는 후보
#1. 황야에 두 남자가 마주 섰다. 한 남자의 등 뒤엔 무너진 성벽이, 다른 남자의 뒤엔 거대한 군대가 서있다. 성벽 앞에는 수많은 시체가 쌓여있다. 대군 속에선 무수한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성을 넘겨주면 모두 살려주겠다는 승자의 제안에 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2005년)의 결말부 장면이다. 1187년 십자군과 이슬람 연합군이 실제로 벌인 '예루살렘 공방전'이 배경이다. 여기서 승자는 쿠르드족 출신의 이슬람 영웅 살라딘(살라흐 앗 딘), 패자는 프랑스 대장장이 출신의 발리앙이었다.영화에서 발리앙은 협상을 끝내고 돌아서는 살라딘에게 묻는다. "예루살렘에 무슨 가치가 있나?(What is Jerusalem worth?)" 살라딘은 처음에 "없다(Nothing)"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서 두 주먹을 들어보이며 덧붙인다. "모든 것(Everything)"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이다. 8차례에 걸친 십자군 전쟁부터 현대 중동전쟁까지. 역사 속 수많은 비극들이 예루살렘이란 한 도시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종교와 신념, 지도자의 욕망과 정치적 성취가 이런 희생을 정당화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일까. #2. 이란의 1000리알 지폐 뒷면에는 2020년까지 예루살렘 '바위의 돔'(황금 돔)이 그려져 있었다. '예루살렘 수복'이라는 이란 신정체제의 목표를 상징한다. 바위의 돔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알려진 바위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슬람에서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 성지로 꼽히는 '알 아크사 모스크'(은색 돔)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예루살렘 바위의 돔을 지폐에 그린 나라는 비단 이란 뿐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요르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스라엘 절멸을 국가의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는 곳은 이란 뿐이다. '사탄'인 이스라엘이 이슬람 성지인 '알 쿠드스'(예루살렘)을 점유하고 있는 건 이슬람에 대한 모독이라는 게 이란 신정 지도부의 인식이다. 레바논 헤즈볼라, 가자지구 하마스, 예멘 후티반군 등을 통해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이유다. 자국을 겨냥해 핵무기까지 개발 중인 이란을 이스라엘이 적대시하는 건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가 개인적 욕망을 위한 도구로 전쟁을 선택하는 건 다른 얘기다. #3.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친형을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손에 잃었다. 1976년 '엔테베 사건' 당시 이스라엘 특수부대의 유일한 사망자가 요나단 네타냐후 중령이었다. 당시 승객 248명을 태운 에어프랑스 여객기를 납치해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강제 착륙시킨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에 수감된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새벽을 틈 타 공항을 습격, 납치범 전원을 사살하고 인질 102명을 구출했다. 그러나 현장 지휘관이었던 요나단은 공항 관제탑에서 쏜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이 사건은 네타냐후라는 강경파 우익 정치인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2월28일 TV 연설에서 "40년 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불구대천 원수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뒷배인 이란 신정체제를 미국과 손잡고 붕괴시키는 게 그의 숙원이었다. 네타냐후가 전쟁으로 얻은 건 이뿐만이 아니다. 뇌물 수수 및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는 전쟁 전까지 '사법부 무력화' 입법 시도로 인해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대 시위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공습 직후 지지율은 급등했고, 연정 붕괴 위험은 사라졌다. 10월27일 총선을 앞두고 네타냐후가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빠진 시점에 공습이 시작된 게 과연 우연일까.전쟁 개시 이후 어린이를 포함해 6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국제유가는 폭등했다. 네타냐후가 설계하고 주도한 이 전쟁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내릴 것이다.이번 지방선거에서 우린 또 한 번 시장과 도지사, 구청장 등을 뽑는다. 누굴 뽑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어떤 사람을 뽑지 말아야 할지는 분명하다. 재선 등 자신의 욕망을 위해 공동체를 희생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다. 그게 누군지 모르겠다면 '자기애'(나르시시즘)가 가장 강한 사람을 찾으면 된다. 키스 캠벨 조지아대 심리학 교수는 저서 '나르시시즘의 역습'(The Narcissism Epidemic)에서 "나르시시스트들은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공공 자원을 남용해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괴한다"고 했다. 6월3일 나의 한 표에 공동체의 운명이 달렸다.
[시대데스크] 용산기지 담장 허물어라
아무리 추워도 겨울은 가고 봄은 온다. 2025년 12월 시민에게 조건 없는 개방을 결정한 미군 용산기지 내 용산어린이정원에는 요즘 주말이면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로 북적인다.서울 도심에 30만㎡ 크기의 공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 용산기지 면적(203만㎡)은 정원의 6.8배다. 2022년 정부가 공개한 용산기지 반환 면적은 76만4000㎡로 전체의 38%에 해당한다.얼마 전 만난 복수의 지방정부 고위공무원들은 "용산기지 부지 사용이 외교 협상에 의해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감안해도 담장(외벽)만은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2003년 한·미 당국이 용산기지 이전에 합의한 후 수십년간 반복돼온 반환 논쟁과 보안 해제, 오염 정화 등 여러 난제에서 '담장 철거'라는 아이디어는 신선하게 다가왔다.알고 보면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2020년 5월 용산기지의 일부 땅인 미군장교숙소는 개방보다 앞서 담장 15m를 철거했다. 공사 차량의 출입 목적도 있지만 시민들이 기지 반환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유였다.2022년 8월 국토교통부가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을 변경·고시한지 4년째를 맞는다. 올해 1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지만, 공원 조성의 방향을 제시했을 뿐 담장 철거 계획은 명시하지 않았다. 과거 논의에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도심 한가운데 이태원과 해방촌, 용산역과 남영동을 가로지른 수킬로미터의 벽돌·철조망은 1904년 이후 122년 동안 시민의 발길만이 아니라 눈길마저 거부해온 금단의 땅이다.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알리는 영문 경고문은 도시 지형과 녹지의 단절을 넘어 일제강점기, 그리고 전쟁 역사의 아픔으로 인식된다.용산기지 밖에서 보면 담장 너머 광활한 땅은 면적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용산기지 부지는 여의도 면적(290만㎡)보다 약간 작은 규모다.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또 다른 현실은 물리적인 담장보다 견고한 '정보의 장벽'이다. 국가 주권의 회복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정보 독점은 '심리적 점유'와 다름없다.용산어린이정원은 예약과 신원 검사 없이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됐고 용산가족공원과 산책로도 시민 이용 공간이 된지 긴 시간이 흘렀지만 체감하는 이들은 여전히 적다. 반환이 완료된 후에도 방치된 부지는 정부 통계와의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토양과 지하수 오염 수치, 정화비용 등 정보 공개에 대해 정부는 지극히 폐쇄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벤트성 체험행사 등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보다 정보 공개가 더 시급하다.글로벌 도시 서울의 발전에도 용산기지 사업 지연은 방해가 된다. 정부가 약속한 2027년 용산공원 조성계획은 이행이 쉽지 않고 한국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수용해야 하지만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기약 없이 미뤄지는 용산기지 반환보다 담장을 먼저 허무는 것은 '연결'의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용산의 주인인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아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발행인노트]공론의 장을 여는 '숙의 미디어'가 되겠습니다
기자 생활 40년차에 발행인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입니다만, 언론의 현주소를 돌아보자면 참회록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기자가 된 1987년 무렵이 한국 언론의 최전성기라고 생각합니다. 현장 체감으로 보자면 그 무렵 언론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가장 높았습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공헌한 점을 독자들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후 40년, 언론에 대한 신뢰는 하향곡선을 그렸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저항불가능한 변화, IT기술의 발전입니다. 대략 10년 주기로 쓰나미가 몰려왔습니다. 첫번째 쓰나미는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등장이었습니다. 인터넷 언론이 앞다투어 생겨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선정적 보도 경쟁 속에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번째 쓰나미는 2000년대말 등장한 스마트폰입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했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언론이 되었기에 기존 미디어들은 생존경쟁에 직면했습니다. 언론사들은 공공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세번째 쓰나미는 AI입니다. 구글이 검색창에 Gemini를 포진한 이후를 '제로 클릭(Zero Click)' 시대라 부릅니다. 기존의 뉴스사이트를 아무도 클릭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미디어 생태계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언론의 추락은 언론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 결과 여론의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갈등과 대립이 첨예해지고 있습니다. 건강한 공동체가 되려면 구성원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정확한 정보를 공유해야 하고, 서로 대화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화의 통로 역할을 맡는 것이 언론입니다. 기술 발전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의 도전에 언론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생존이란 핑계 아래 신뢰를 상실해왔습니다. 짠 맛을 잃은 소금처럼 온갖 집단으로부터 무시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세계적 현상입니다만 특히 우리나라가 심각합니다. <동행미디어 시대>는 '언론의 공공성 회복' 프로젝트입니다.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건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정확한 정보제공은 양극화된 집단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생각의 기반을 넓혀줄 것입니다. 그같은 공감대 위에서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겠습니다. 저는 이같은 <시대>의 소명에 공감해 지난해 11월 '머니S 고문'이란 타이틀로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머니S'는 지난 2월 1일 <시대>로 제호를 변경했습니다. 지난 몇달간 사내외로 많은 사람을 만나 <시대>의 철학과 소명을 설명하고 자문을 얻었습니다. '머니S' 편집국 기자들이 <시대>로의 변신에 대한 기대와 의욕을 보여주었기에 용기백배할 수 있었습니다.외부에서 동지들이 합류했습니다. 정용관 전 동아일보 논설실장이 주필이 되어 논설위원실을 만들었습니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가 논설위원으로, 이상복 전 Jtbc 보도국장이 논설위원 겸 미디어랩 소장으로 영입됐습니다. 미디어랩은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게 됩니다. 소수지만 정예인 논설위원들이 매일 사설을 출고하고 있습니다. 각계 전문가를 칼럼니스트로 초빙해 오피니언면이 풍성한 공론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할 제도혁신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이상언 전 SPC 부사장이 제도혁신연구소장, 이무영 전 트러스톤자산운용 헤지펀드본부장이 부소장을 맡았습니다. 연구소는 편집국과 협업하면서 시대의 아젠다를 발굴하고, 이를 공론에 부치는 포럼 등 행사를 주관합니다. 쓰나미는 끝 없이 밀려올 것입니다. <시대>는 '존중 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이란 모토를 지향점 삼아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민주주의 공동체를 지탱할 '숙의 미디어' 역할을 자임합니다. 발행인으로서 그 무게를 기꺼이 견뎌내고자 하는 다짐으로 이 글을 씁니다.
[시대데스크] 대형마트는 왜 식료품에 올인할 수밖에 없나
대형마트 매장 지도를 펼치면 남은 것보다 사라진 것이 먼저 보인다. 의류는 가장자리로 밀려났고 가전과 생활용품은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한때 '다 파는 곳'이었던 마트에서 끝까지 버틴 영역은 식료품이다. 겉으로 보면 후퇴다. 하지만 실상은 선택이다. 생존을 위한 대형마트의 재설계다.온라인은 가격, 선택, 배송에서 이미 승부를 냈다. 비식료품은 빠르게 흡수됐다. 대형마트가 이 경쟁을 이기지 못한 이유는 의지 부족이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회전율은 떨어졌고 재고 부담은 커졌다. 2025년 업태 결산에서도 대형마트는 연간 역성장을 기록했다. 비식료품 부진이 실적을 끌어내렸다. 경기 탓으로 돌리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판이 바뀌었다는 신호다.그 판에서 식료품은 다르다. 오늘 먹을 것을 오늘 사는 즉시성.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하는 신선도. 매장에서 조리되는 델리의 체험성. 이 세 가지는 아직 화면 너머로 완전히 이전되지 않았다.냉장·냉동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물류 난도가 가장 높은 그로서리(식료품)에서만큼은 대형마트가 여전히 '현장성'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다. 그래서 식료품은 대형마트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방어선이 됐다.올해 초 유통 체감지표(RBSI)에서도 대형마트 전망은 가장 낮았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식료품 특화와 점포 리뉴얼로 방어선을 다시 긋고 있다. 경쟁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누가 더 싸게 파느냐'에서 '누가 더 신선하고 믿을 만하냐'로 이동 중이다.다만 시간은 마트 편이 아니다. 온라인 그로서리는 새벽배송과 퀵커머스로 근거리 즉시성을 잠식하고 있다. 플랫폼은 데이터와 멤버십으로 고객을 묶는다. 2025년 주요 유통사 통계에서도 온라인은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갔다.식료품이 방어선인 것은 맞다. 하지만 안전지대는 아니다. 대형마트의 '식료품 올인'이 막다른 골목이 되지 않으려면 조건이 있다. 먼저 식료품 운영의 산업화다. 매장별 감각에 맡기던 신선·델리를 네트워크 단위로 표준화해야 한다. 폐기율과 회전율은 AI(인공지능) 수요예측과 연동돼야 한다. '잘 파는 식료품'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식료품'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점포의 물류화와 콘텐츠도 중요하다. 점포는 더 이상 진열 공간에 머물 수 없다. 피킹 동선을 전제로 설계하고 마감 시간을 다층화해야 한다. 예약 픽업과 단시간 배송은 기본값이 돼야 한다. 매장은 팔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물류 거점이어야 한다. 가격과 물량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건강·친환경 기준의 결합이나 조리와 레시피, 영양 정보가 연결된 식문화 경험 등 '이 마트에서 사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체류 시간을 만들고 신뢰를 쌓는다.소비가 양극화될수록 '합리적 프리미엄'과 '생활형 초저가' 두 레일이 함께 달린다. 정부 통계가 보여주는 큰 흐름은 온라인 고성장, 오프라인 정체다. 그 안에서도 식료품은 여전히 고객 발길을 끌어당기는 자성을 갖는다.유통에서도 보약은 밥이 아니라 트래픽이다. 대형마트는 물건을 파는 공간에서 생활을 지탱하는 인프라로 변신 중이다. 식료품 올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먹는 것을 장악하는 자가 결국 일상을 거머쥔다. 그 일상은 더 신선하고, 더 투명하며, 더 똑똑한 운영을 요구한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누가 식료품을 가장 데이터 친화적으로 운영해 신뢰를 증명하느냐다. 그 답을 먼저 내놓는 곳이 다음 유통의 주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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