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데스크
[시대데스크]"어색한 사투리 쓰면 안 되노?"
"어디 가노?" vs "어디 가나?"영남 방언에서 이 두 표현은 완전히 다른 질문이다. '어디 가노?'는 행선지를 묻는 반면 '어디 가나?'는 단순히 어딘가로 이동 또는 외출하는지 여부를 묻는다.이 고유한 언어 체계에서 의문형 어미 '노'와 '나'는 다른 용법을 지닌다. 대개 '노'는 어디, 언제, 왜, 뭐 등 의문사가 있는 의문문 끝에 붙는다. 의문사 없는 의문문에 '노'가 붙으면 어색하다. 예컨대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는 흔히 쓰이지만, '느그 아부지 하시노?'는 전통적 영남 방언으로 보기 어렵다.필자를 비롯한 영남 네이티브 스피커들 입장에선 의문사 없는 '가노?' '하시노?' 등의 표현은 가끔 불편함을 유발한다. 외국인이 뜨거운 된장찌개에 찬물을 붓는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피자에 파인애플을 올리거나 스파게티 면을 부러뜨리는 모습을 본 이탈리아인이 이런 기분일까.그러나 어쩌겠나. 위화감은 주지만 직접적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닌데. 그냥 듣고 넘길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오지랖을 부려 "가노는 일베식 표현"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은 정치적 의도 없이,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말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스위스 출신의 정치 사상가 뱅자맹 콩스탕은 "근대적 자유(liberty)의 핵심은 사생활을 국가와 다수의 시선으로부터 지켜내는 데 있다"고 했다. 콩스탕은 '고대인의 자유'와 '근대인의 자유'를 구분했다.그에 따르면 '고대인의 자유'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나 공화정 시대 로마에서처럼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말한다. 반면 '근대인의 자유'는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이는 훗날 영국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이 주창한 '타인의 간섭으로부터 내버려질 자유', 즉 '소극적 자유'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도 그 말을 쓰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 표현이 누군가에게 상처나 피해를 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끝난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역작 '자유론'에 남긴 이 문장은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까지 허용할 순 없다는 얘기다.차별과 혐오의 언어, 피해자와 소수자의 상처를 의도적으로 들쑤시는 행동을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으로 감싸주긴 어렵다. 지난 4일 미국 건국 250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백인우월주의 단체 '애국전선(Patriot Front)' 회원 400여 명이 복면을 쓴 채 남부연합기를 앞세우고 워싱턴 D.C. 한복판을 행진했다. 과거 흑인들을 폭행·살해한 KKK단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행동까지 표현의 자유라며 품어줄 수 있을까.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칼 포퍼는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관용의 역설(paradox of tolerance)'을 강조했다. 무제한의 관용은 결국 불관용한 세력이 사회를 통째로 차지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관용 그 자체를 파괴하고 만다는 경고다.자유와 관용의 경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걸 누군가 획일적으로 정하는 순간 독재가 된다. 그러나 간극을 좁힐 순 있다. 사회적 숙의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최근 걸그룹 리센느(RESCENE) 원이를 둘러싼 '무섭노' 논쟁과 배재고 등의 '스타벅스' 논란이 갈등만 증폭시키는 소모적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대신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시대데스크]"조금 더 두고보자"
남도 어느 집이든 사람이 임종을 맞으면 곧장 관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방 한쪽에 병풍을 두른 뒤 대나무로 엮은 칠성판을 펴고 그 위에 망자를 모신다.대나무의 성질은 차다. 살아 있는 체온의 흔적을 지우듯 서서히 식어가는 육신을 받아낸다. 바람이 통하고 습기가 빠지는 칠성판 위에서 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그 시간은 단순한 정리의 시간이 아니다. 남도에서는, 적어도 필자가 본 그 장면에서는, 그 시간을 확정된 죽음의 이후라고 부르지 않았다.누군가는 숨이 정말 끊어진 것인지 다시 살피고 누군가는 혼이 아직 떠나지 않은 건 아닐까를 말없이 가늠한다. 아무도 크게 입 밖에 내지는 않지만 그 묘한 침묵 속에는 하나의 공통된 태도가 흐른다."조금 더 두고보자."칠성판은 그래서 기묘한 자리다. 이미 끝난 것 같지만 아직 끝났다고 단정하지 않는 자리.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게 하는, 어쩌면 돌아올 가능성까지 완전히 닫지 않는 경계의 공간이다. 그 위에 놓인 존재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다.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채, 시간만이 조용히 판가름을 대신하는 상태로 머문다. 오래전 그 장면을 보며 죽음이란 단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둘러앉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배웠다.홈플러스 사태는 '치료'와 '연명'의 경계가 불분명해 보였다. 다시 살릴 의지인지 시간을 벌기 위한 버팀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업을 살리려는 노력보다 상태를 유지하는 데 더 가까워 보였다.칠성판 곁에는 끝까지 눈을 떼지 않는 사람이 있다.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 말이다. 홈플러스를 둘러싼 시간에는 그런 기척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마치 칠성판 위에 올려놓고는 끝까지 지켜보는 사람이 사라진 형국처럼 말이다. 기업의 실패에도 끝까지 감당해야 할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함께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이제는 그 긴 시간마저 끝을 향해 가는 듯하다.홈플러스가 보여주는 풍경은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다. 책임의 부재가 어떤 상태를 만들어내는지를 드러낸다. 아직 보내지도, 되살리지도 못한 채 그대로 놓여 있는 것. 그것이 지금 홈플러스가 올라앉아 있는 자리이며 MBK가 남긴 자리다.
[시대데스크]언더독, 아웃사이더, 파이터에게 열린 미래
2014년 업무차 세콰이어 캐피탈을 방문했다. 세콰이어는 유망 스타트업을 골라 초기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 중에서도 세계 최고로 꼽히는 회사다. 사무실은 독특했다.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골프장을 인수해 개조한 곳으로, 클럽하우스가 곧 일터였다. 압권은 로비였다. 로비의 가장 넓은 벽으로 그들이 투자한 회사 창업자들의 사진이 흘러갔다. 스티브 잡스(애플),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구글), 래리 엘리슨(오라클), 젠슨 황(엔비디아)…. 실리콘밸리의 역사가 벽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미팅 상대는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나왔다. 스위스에서 스키를 타다 다쳤다며, 대단히 재밌는 일이라도 겪은 듯 웃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 회사가 궁금해 찾아봤다. 성과는 분위기보다 더 남달랐다. 21세기 IT 산업이 세콰이어의 자본을 먹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바탕에 깔린 철학은 홈페이지에 걸린 '우리의 신조(Our Ethos)'라는 글에 담겨 있었다."창의적인 영혼들. 언더독들. 결연한 자들. 굳센 자들. 지치지 않는 자들. 아웃사이더들. 굴하지 않는 자들.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자들. 파이터들. 그리고 진정한 신봉자들."타임지 기자로 실리콘밸리를 취재하다 투자자가 된 마이클 모리츠가 쓴, 세콰이어가 '파트너로 삼고 싶은 창업자상'이다. 모리츠는 곧장 "이런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덧붙였다.드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날 세콰이어 로비를 장식했던 얼굴들은 기질만 남달랐던 게 아니다. 상당수가 코딩에 능통하거나, 그런 공동창업자를 곁에 둔 이들이었다. 의지와 아이디어만으로는 혁신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가장 '핫한' 새 프로그래밍 언어는 영어다." 요즘 AI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안드레이 카파시가 2023년 한 말이다. 오픈AI 공동창업자이자 테슬라의 자율주행을 이끈 그는 파이썬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라 사람의 말로 컴퓨터를 부리는 시대가 온다고 내다봤다. 3년이 지난 지금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카파시는 지난해 이 새로운 방식에 '바이브 코딩'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영국 콜린스 사전은 지난해 이 신조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카파시는 2025년 강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LLM은 기술이 확산하는 방향을 뒤집는다." 전기와 컴퓨터, 인터넷까지 거의 모든 기술은 정부와 대기업이 먼저 쥐었다가 한참 뒤에야 대중에게 흘러왔다. 반면 AI는 평범한 개인들이 먼저 썼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에게 먼저 도착한 기술'인 셈이다.세계 최고 개발자로 꼽히는 카파시조차 올해 "프로그래머로서 이렇게 뒤처졌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AI 도구가 그만큼 좋아져, 전문가의 우위마저 빠르게 무너진다는 뜻이다. 최고와 보통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 그것이 '기술 민주화'의 가장 선명한 증거다.'바이브 코딩' 덕에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임팩트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이스라엘의 한 개발자는 말로 설명하면 앱을 통째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혼자 개발해, 외부 투자 없이 6개월 만에 1000억원 넘는 금액에 매각했다. 예전 같으면 엔지니어 수십명이 매달렸을 일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Z세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 일기 앱 '셋로그'는 AI 시대 1인 창업의 산물이다. 입소문만으로 애플과 구글 앱마켓 SNS 부문 1위에 올랐고, 지금도 두 마켓 모두 1위다. 데이터 분석 업체 와이즈앱·리테일 집계로는 5월 월간활성이용자(MAU)가 778만명에 달했다. 이렇게 코드가 흔해질수록 귀해지는 건 '질문'이다. 와이어드를 공동창업한 기술사상가 케빈 켈리는 2016년 저서에서 AI가 발전할수록 "답은 값싸지고 질문은 값비싸진다"고 내다봤다. 답은 기계의 몫이 됐고, 질문은 인간의 몫으로 남았다. 무엇을, 왜 만들 것인가. 그 답은 현실의 문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2024년 아이들에게 코딩 대신 생물학과 제조업, 농업 같은 현장 전문성을 가르치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프로그래밍 언어는 인간의 언어"이고 "모두가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이다.12년 전 세콰이어 로비의 벽을 채웠던 얼굴들을 기억한다. 그들처럼 되는 데 기술은 더 이상 필요조건이 아니다. 더 절실해진 건 현실을 이해하는 깊이, 그리고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려는 의지다. 거창한 무대도 필요 없다. 변화는 각자의 일터에서, 눈앞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는 순간마다 일어난다. 혁신의 문은 이제 더 많은 언더독과 아웃사이더, 파이터들에게 열려 있다. 불합리·모순과 타협하지 않는 이단아들이여 그 문으로 들어서라.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시대데스크]바이오 데스밸리, 대출로는 못 건넌다
국민성장펀드의 첫 바이오 지분투자 소식을 듣고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의 한 창업지원시설.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 지원을 받는 이곳은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적지 않다. 현장에서 만난 바이오벤처 대표는 "입주 당시 기업 중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며 "정책자금이 바이오 스타트업(창업초기 기업)에도 숨통을 틔워주는 신호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다른 바이오벤처 한 연구원도 "연구보다 투자설명회(IR) 준비가 먼저인 현실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정부 주도의 국민성장펀드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5년간 150조원 규모로 추진되는 이 펀드는 AI,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백신 등 첨단전략산업에 재정을 마중물 삼아 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민관 합동 정책금융 프로그램이다. 바이오·백신 분야에도 11조6000억원이 배정됐다. 최근 금융위원회 기금운용심의회는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에 5000억원 규모의 직접 지분투자를 승인했다. 앞서 올해 비티젠에 850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에 3000억원 규모의 장기·저리 대출 지원도 이뤄졌다.첫 단추는 의미가 있다. 국민성장펀드가 대출뿐 아니라 직접 지분투자도 병행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첫 투자의 규모보다 다음 투자, 그다음 투자가 어디로 향하느냐가 국민성장펀드의 성격을 결정한다.물론 대출도 필요하다. 생산시설을 늘리거나 상업화 단계에 들어선 기업에는 저리 자금이 큰 힘이 된다. 비티젠의 생산시설 증설, SK바이오사이언스의 글로벌 임상과 상업화 준비가 그런 사례다. 그러나 대출은 결국 갚아야 할 돈이다. 담보와 현금흐름, 상환 능력이 있는 기업일수록 문턱을 넘기 쉽다. 매출도 담보도 부족한 초기 바이오벤처에겐 초저금리 대출조차 그림의 떡이다.초기 바이오벤처가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빚이 아니라 시간을 버틸 자본이다. 후보물질은 있지만 임상 1상에 들어갈 자금이 없어 연구 일정을 늦추는 기업은 적지 않다. 신약 개발은 흔히 '돈을 태워 시간을 사는 과학'이라고 한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1상, 2상, 3상으로 갈수록 필요한 자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기술보다 먼저 돈이 바닥나는 순간 혁신은 연구실 문턱을 넘지 못한다.정책금융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간 자본이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기업에만 정책자금이 반복적으로 집중된다면 정책금융의 의미는 반쪽에 그친다. 진짜 필요한 곳은 민간이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위험 구간이다. 비임상에서 임상 1상으로 넘어가는 초기 바이오벤처의 데스밸리를 메우는 일이야말로 국민성장펀드가 해야 할 역할이다.투자중심 지원도 만능은 아니다. 신약 개발은 상업화까지 10년 이상 걸리지만 정책 자펀드의 운용 기간은 대체로 5년 안팎이다. 펀드 만기 안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위탁운용사(GP) 입장에서는 초기 바이오벤처보다 회수가 쉬운 후기 임상 기업이나 상장사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결국 관건은 돈의 크기가 아니라 성격이다. 150조원이라는 펀드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자금이 가장 절실한 초기 바이오벤처까지 내려가느냐다. 국민성장펀드는 대형 기업 몇 곳의 성공 사례를 만드는 장식이 돼선 안 된다. 대출은 상업화를 앞둔 기업의 숨통을 틔울 수 있지만 데스밸리 한복판의 초기 바이오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바이오 생태계가 기다리는 것은 위험을 함께 견디는 인내자본이다.정부가 바이오를 미래 성장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겠다는 방향은 맞다. 이제 중요한 것은 돈을 얼마나 많이 빨리 집행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흘려보내느냐다. 국민성장펀드가 판교의 작은 연구실까지 활력을 불어넣을 때 K-바이오는 또 다른 신화를 쓸 수 있다. 바이오 데스밸리(창업 후 자금난)는 대출로만 건널 수 없다.
[시대데스크]반도체 공장 유치, 압박보다 명분을 만들어야
반도체 공장 유치에 사활(死活)이 걸렸다. 반도체 초격차 사수와 지역균형발전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들의 '인재와 영토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신공장의 호남권 유치를 둔 구애가 뜨겁다. 2026년 7월 예정된 광주전남특별시의 탄생이 맞물리며 관련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지자체와 정치권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해당 기업을 향해 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이 같은 행동을 구애보다 압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명분과 성과에 쫓겨 억지로 공장만 덩그러니 지어놓는다고 해서 지역 경제가 저절로 살아날 수는 없다. 첨단 산업의 기업 유치란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해당 기업의 경영 활동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그곳에서 땀 흘릴 인재들의 '삶'도 만족스러워야 한다.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논의는 없기에 반도체 업계가 호남행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현실적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가장 큰 장벽은 공장 가동에 필수적인 '공업용수'와 '전력'이다. 평택 캠퍼스 수준의 공장은 하루 수십만 톤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평택 P3 라인 기준 전력 수요만 약 1GW에 달하는데 광주광역시 전체 가정용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다.과거 극심한 가뭄으로 제한 급수 위기까지 몰렸던 호남의 수자원 인프라로는 감당하기 벅찬 규모다. 신재생에너지(RE100) 발전 비율이 높다지만 순간의 정전도 허용되지 않는 반도체 공장 특성상 안정적인 기저발전망 확보는 필수다.'인재 남방한계선'도 문제다. 수도권을 넘어선 지역으로 우수 연구 인력과 숙련된 엔지니어들은 떠나려 하지 않는다. 반도체 업계에선 대전 이남 발령은 사실상 퇴사 통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수도권 메가 클러스터와의 물리적 단절도 수백 개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들과의 실시간 대응 능력을 떨어뜨린다.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새로 출범하는 광주전남특별시가 전남의 자원과 광주의 인프라를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입지를 결정할 때 따지는 것은 감성적 구애가 아니라 경영 타당성이다. 용수·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국가가 책임지는 특별법적 근거, 소부장 협력사의 동반 입주를 유도하는 클러스터 조성, 인허가 원스톱 처리와 세제 혜택 패키지 등이 먼저 테이블에 올라야 한다.수도권 메가 클러스터와의 물리적 단절에 따른 조달 리드타임(부품·장비 확보부터 실제 투입까지 걸리는 시간) 증가와 수율 리스크는 기업이 호남행을 주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협력사 없는 공장은 고립된 섬에 불과하다.몇 년 전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대만 TSMC 공장 유치에 성공해 화제가 됐다. 일본은 막대한 보조금과 규제 철폐는 물론 소니반도체솔루션즈와 덴소 등을 합작 파트너로 끌어들여 안정적인 생태계를 제공했다. 구마모토현은 자부심 강한 대만 엔지니어들이 기꺼이 일본행을 택할 수 있도록 '정주(定住) 인프라'도 이식했다.TSMC 임직원 자녀를 위한 국제학교를 확충했고 인근 병원에는 전담 통역을 배치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직원 이직 없이 공장 가동률과 수율이 유지돼야 글로벌 경쟁력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을 압박해 공장을 짓게 한 것이 아니라 기업과 직원이 겪을 애로사항을 선제적으로 해결에 나섰다. 넓은 부지를 줄 테니 공장을 짓고 지역을 살리라는 식의 1차원적 접근으로는 글로벌 첨단 생태계를 품을 수 없다. 정치가 기업의 주소를 바꿔 공장을 세운다고 해서 초격차가 저절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호남을 진정한 반도체 거점으로 만들려면 압력보다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경영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 진정한 구애는 그렇게 시작된다.
[시대데스크]홈플러스 유감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가던 홈플러스 문화센터가 지난달 문을 닫았다. 환하게 웃으며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창구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문화센터로 발길을 돌리자 아이는 "거기 왜 없어졌어요? 망했어요?"라고 묻는다. 어디서부터 대답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PEF(사모펀드), 법인회생, DIP(긴급운영자금) 금융, 관계인 집회, 분식회계 등 어른들에게도 어려울 수 있는 얘기를 어떻게 설명할지가 막막했다.홈플러스 사태가 불거진 지 1년이 넘었다. 2025년 법인회생 절차를 신청한 뒤 홈플러스는 지금도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전국 37개 매장이 잠정 휴점에 들어갔다가 결국 폐점으로 확정됐다. 5년 연속 적자에 당기순손실만 1조 원. 직전 연도에 1조5000억원에 달했던 자본총계는 2391억원으로 줄었다. 납품업체 대금이 밀리자 매장 매대가 텅 빈 채로 고객을 맞았고, 직원들은 월급을 받지 못한 채 농성을 벌였다. 노동조합 지도부가 세 차례나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야 했던 이유다.이 사태의 뿌리는 오롯이 대주주의 실패에 있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대형마트 업황이 구조적으로 침체하는 동안 실질적인 체질 개선 없이 경영을 이어갔다는 지적을 받는다.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도 제때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았다. 검찰은 MBK가 1조 원대 분식회계로 재무제표를 조작한 뒤 회생 신청을 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이라면 채권자와 시장 전체를 기만한 행위다.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수만 명 직원의 생계와 수백 개 협력업체의 운명이 걸린 기업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은 무엇으로도 덮이지 않는다.위기가 터진 뒤 행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직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고, 납품업체가 물건을 공급하지 않았다. 매대가 비어가는 동안 MBK의 자구 노력은 법원과 여론의 압박이 정점에 달한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김병주 회장이 자택을 담보로 내놓고 1000억원을 투입했다고는 하지만 사태 초기에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이었다. 뒤늦은 결단을 책임의 이행으로 포장하는 모습 때문에 되레 질타를 받기도 했다.MBK는 메리츠를 탓한다. 메리츠의 DIP 자금 지원이 늦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메리츠는 채권자다. 담보가치 하락을 이유로 추가 지원에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은 채권자 본연의 역할 범위 안에 있다. 이번 사태를 만든 원인 제공자와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무리다. 경영 실패와 회계 조작 의혹을 안고 있는 대주주의 책임과 비교할 수 없다.7월 초 관계인집회를 앞두고 양측이 여론전을 벌이는 동안 정작 급여를 기다리는 직원들의 시간은 멈춰 있다. 지금 당장은 자금이 풀려야 한다. 메리츠와의 2000억원 협상이 속히 마무리되고,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 대금 1206억 원이 현장에 투입돼야 매대가 채워지고 급여가 지급된다. 7월3일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 안에 실질적 구조가 잡혀야 한다.책임을 지는 것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분식회계 의혹의 진상은 수사를 통해 낱낱이 밝혀져야 하고, 경영 실패의 몫은 경영진이 져야 한다. 노동자와 협력업체의 피해에 대한 실질적 보상도 빠짐없이 이뤄져야 한다.7월3일이면 회생계획안이 가결될지, 홈플러스를 청산할지, 가결 여부를 결정할 기한을 추가로 연장할지가 결정된다. 문화센터가 왜 문닫아야 하는지 묻는 아이에게 이렇게 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못한 사람들이 책임을 졌고, 피해 입은 사람들이 회복됐다"고. 아직은 이같은 답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MBK와 메리츠가 책임공방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홈플러스 직원들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발행인노트]더 많은 젊은 기자들이 필요합니다
두번째 발행인 노트입니다. 첫번째 발행인 노트에서 '공론의 장을 여는 숙의 미디어가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3개월간 나름의 노력을 해왔습니다.좋은 사람을 모으는 일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웠습니다. 공론의 장을 열기위해서는 논설위원이 필요했습니다. 석 달 전 정용관 주필을 포함해 3명이던 논설위원실이 지금은 6명으로 진용을 갖추었습니다.정치담당 논설위원으로 박창억 전 세계일보 논설실장이 합류했습니다. 경제담당으로 박중현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동참했습니다. 마지막 사회담당으로 김준술 전 Jtbc 보도국장이 함께 했습니다. 주요 언론사에서 남다른 역량을 축적해온 중진 기자들이 <동행미디어 시대>의 취지에 공감해 한 자리에 모인 셈입니다.사회부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사회부장은 동아일보 사건팀장 출신인 이재명 전 GS 상무보가 맡았습니다. 이재명 사회부장은 언론계를 떠나 다양한 경험을 하던 중 다시 기자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시대>는 기자들의 다양한 경력을 존중합니다. 이상언 제도혁신연구소장은 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신이지만 <시대>에 합류하기 직전 SPC 부사장이었습니다. 이상언 소장 역시 <시대>의 취지에 공감해 다시 언론인으로 돌아왔습니다.사회부 경력기자들도 외부에서 합류했습니다. 조선일보 자회사(조선NS) 출신, 통신사 뉴스1 출신 경력기자들입니다. 이들은 입사 하자마자 잠실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사태에 항의하는 2030 시위 현장이었습니다.여러 집단이 뒤섞여 복잡한 양상이었지만 <시대> 사회부 기자들은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당파성에 매몰될까 우려해 기성 정치권을 경계하면서, SNS를 이용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자신들의 참정권을 분명히 주장하는 모습은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예고하는 듯 했습니다.<시대>는 일차적으로 현장 2030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목소리를 전달했습니다. 나아가 이들 2030에게 '3가지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현상을 분석하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했습니다. 숙의미디어 <시대>의 노력은 시위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2030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무엇이고, 어떤 해법이 가능한지 따져보는 기획취재와 포럼 개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시대>는 조직을 확대하고 취재영역을 넓힐 뿐 아니라 우리의 뉴스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플랫폼 확장도 노력해 왔습니다. 몇가지 뉴스 동영상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는 이상복 미디어랩 소장이 현장 취재기자들과 함께 주요 뉴스를 짚어보는 '뉴스언팩'이 대표적입니다. 취재현장에서 돌아와 스튜디오에 앉은 젊은 기자들의 눈빛엔 활기가 돕니다.<시대>엔 더 많은 젊은 기자들이 필요합니다. 모토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갈 수습기자를 공모 중입니다. <시대>는 '언론의 공공성 회복 프로젝트'입니다. 언론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다하려는 시도입니다. 저널리스트의 꿈을 가진 젊은이라면 응당 도전해 볼만한 기회입니다.정치적 경제적 양극화로 사회적 갈등이 점증하는 상황이기에 언론 본연의 기능회복은 더 절실합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에 <시대>는 소신 있게 나가고자 합니다.
[시대데스크]당신의 '인생라면'은 무엇입니까
신라면이 마흔 살이 된다. 1986년 9월29일, '매운맛'을 전면에 내세우고 등장한 이 라면은 1991년 국내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뒤 35년 넘게 정상을 지켜왔다. 유행이 수없이 바뀌고 입맛이 변해도 한 제품이 이렇게 오래 기준 자리를 지킨 경우는 드물다.신라면은 음식이 아니라 기준이었다. 출시 당시를 들여다보면 그 답이 보인다. 1986년 9월29일자 신문 광고에는 '사나이 대장부가 울긴 왜 울어!'라는 문구와 함께 '우리나라 전통의 매운 입맛을 돋워주는 새로운 라면'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단순히 맵기만 한 제품이 아니라 한국적인 매운맛을 표방한 것이다. 같은 해 신문 기사에서는 표고버섯을 동결건조해 독특한 향을 냈다는 설명이 등장한다. 매운 맛과 향, 그리고 한국적 정체성이 처음부터 설계돼 있었던 셈이다.이후 벌어진 일은 누구나 안다. 신라면은 1등이 됐고 더 중요한 것은 '기준'이 됐다. 사람들은 '얼마나 맵냐'를 설명할 때 자연스럽게 신라면을 떠올렸다. 어떤 라면은 신라면보다 덜 맵고 어떤 라면은 더 맵다는 식으로 평가됐다. 특정 브랜드가 하나의 척도가 되는 순간, 그것은 상품을 넘어 문화가 된다.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초반, 닭고기 육수를 앞세운 '하얀 국물 라면'이 시장을 휩쓸었다. 매대가 뒤집히고 유통 현장에서는 "대세가 바뀌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당시 한 선배 기자는 단언했다. "신라면은 끝났다." 그때 이렇게 되물었다. "하얀 국물 라면만 일주일 먹을 수 있습니까? 신라면은 가능한데요."그 질문은 결국 시간을 향한 것이었다. 유행은 강하지만 짧고 기준은 조용하지만 오래 간다. 시간이 지나자 답은 명확해졌다. 하얀 국물은 '한 시기의 기억'으로 남은 반면 신라면은 여전히 '현재형'이다.신라면의 위상은 이제 음식의 영역을 넘는다. 빅맥지수, 라테지수처럼 물가를 체감하는 기준으로 '신라면지수'가 거론된다. 100개국 이상에서 팔리는 제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나라의 즉석식품이 글로벌 생활 기준이 되는 현상은 흔치 않다. 신라면은 그만큼 한국인의 입맛을 넘어 세계인의 감각 속으로 들어갔다.그럼에도 이 라면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방식은 결국 하나다. '기억.'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들렌 한 조각으로 잊고 있던 시간을 되살려낸다. 신라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이 서린 뚜껑을 열 때 올라오는 후추 향,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을 때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 그 순간에 묶여 있던 감정과 장면이 함께 돌아온다.누군가에겐 혹한 속 철책 근무를 마친 뒤 먹던 컵라면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밤새 회식 후 뒤집힌 속을 간신히 붙잡아주던 해장라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알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호호 불어먹던 그 한 그릇일지도 모른다.필자의 '인생라면'은 조금 더 적막한 장면에 있다. 해외 출장 중 히터도 시원치 않던 낯선 호텔 방이었다. 먼저 귀국한 선배가 남겨두고 간 신라면 컵라면 세 개. 늦은 밤,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 채 3분을 기다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뚜껑을 여는 순간 올라오던 익숙한 향.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 그제야 몸이 풀리듯 긴장이 내려앉았다. 그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버틸 수 있다'는 신호였다. 그날 이후 출장길이나 여행길 가방 한켠에는 늘 컵라면 세 개가 들어간다. 배를 채우기 위함이라기보다 언제든 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작은 장치다.40년이라는 시간은 길다. 한 제품이 살아남기에도 한 나라의 입맛을 바꾸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수없이 많은 개인의 기억이 쌓여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당신의 그 한 그릇은 언제였는가.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맛'은 무엇인가. 당신의 '인생라면'은 무엇입니까.
[시대데스크]전세는 이미 사라진 게 맞다
전세금을 안 올리는 집주인은 좋은 집주인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우스갯말이 아니라 실제 십수 년 동안 물가와 부동산 가격은 올랐는데 임대료만 제자리다 보니 퇴거 후 갈 데가 없어진 지인 사례들을 봤다.최근 서울 강동구의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입주자단체가 계약 연장과 분양전환을 요구한 사태를 지켜보며, 10년 전 1기신도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의 입주자로부터 메일 제보를 받아 인터뷰한 일이 다시 생각났다.이들의 공통점은 10~20년 거주 후 계약만기 시점에 이르러 분양가의 기준이 되는 감정가와 인근 아파트 시세가 예상 밖의 수준으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일부 계약자는 계약 이행을 거부하며 LH와 민간 건설회사를 상대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심지어 SH가 공급한 20년 공공임대는 계약 당시 재계약이나 분양전환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했다. 다음 세대의 신혼부부·청년을 대상으로 공급하도록 돼 있다.전세는 저성장 고금리 시대에 발달한 특수 사금융 시장이다. 입주자에게 경제적 기회비용에 따른 자산 축적의 시간을 보장했지만 현재는 높은 전세금과 대출 의존, 이자 지출로 인해 사실상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상태다. 설령 대출 없이 전세금을 마련한 세입자라고 해도 수억원의 투자 기회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법원의 판단을 떠나 이러한 기회비용을 통해 자산 축적의 시간을 보장받은 입주자들은 계약상 의무와 원칙을 위반해선 안 된다. 다만 분쟁의 원인을 '예측할 수 없는 집값 차이'에서도 찾을 수 있다.공공임대 갈등이 발생한 지역은 집값이 급등한 서울 송파·강동구와 경기 분당·판교신도시 등이다. 지난 10년 동안 전셋값이 4배 뛴 신도시도 있지만 같은 기간 일산 등은 50~60%의 안정된 상승률을 보였다.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설계된 공공임대제도가 경제 상황으로 인해 주거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호소에 사적인 공감, 그리고 자산 격차의 리스크를 계약 일방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약간의 의문이 든다. '어느 지역의 공공임대에 당첨됐는가'라는 운에 의해 누군가에게는 내 집 마련으로 가는 주거 사다리로, 반대의 경우는 이주 리스크를 더 미룬 결과만 됐다.그래서 집을 사지 그랬냐는 사회의 조롱과 질타는 현 사태의 논점을 흐릴 수밖에 없다. 단순 비판을 넘어 제도 개선을 고민해야 할 때다.입주자가 지분을 분할 취득하거나(지분적립형) 매각 차익을 공공과 나누는(이익공유형) 구조를 확대 적용할 수 있다. 분양전환이 불가한 SH 공공임대의 경우 퇴거 위기 가구에 대출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형평성 논란이 예상되지만 정부는 청년 세대에 생애최초 LTV(주택담보인정비율) 70~80%의 정책대출을 제공한 사례가 있다.분양전환가격 산정 기준이 되는 '감정평가 방식'도 조정해야 하는 대상이다. 10년 공공임대는 법적으로 '분양전환 시점의 감정평가 금액'에 의해 분양가가 책정된다. 감정가를 깎아달라는 무리한 요구 대신, 타협과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입주자들은 사회가 수용 불가한 큰 틀의 전제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공공 재원을 공급에 재투자해야 선순환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시대데스크]"한 아이의 눈물로 온 세상이 행복할 수 있다면"
"단 한 명의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눈물로 온 인류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아이를 울리는 데 동의하겠는가."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이 동생 알료샤에게 던진 질문이다. 알료샤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단 한 명의 인간도 다수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이 짧은 문답은 '공리주의'와 '권리론'의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재선거 논란 위에 이 철학적 논쟁이 오버랩된다. 제러미 벤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전체 구성원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당선자가 바뀌지 않는 한 재선거는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다. 수백억 원의 재선거 비용뿐 아니라 정치적 혼란과 행정 공백까지 수반된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재선거가 결정된다면 그는 4선 연속 도전자가 돼 출마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공리주의의 냉정함은 소수 피해자의 권리를 묵살한다는 데 있다. 공리주의자는 한 아이의 눈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선택에 동의한다. 공리주의에선 심지어 노예제도 정당화될 수 있다.임마누엘 칸트와 존 롤스의 권리론은 다르다. 단 한 명의 유권자라도 부당하게 참정권을 박탈당했다면 반드시 구제받아야 한다. 롤스가 저서 '정의론'에서 설파한 '최소 극대화 원칙'에 따르면 사회는 언제나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인 이를 최대한 배려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를 위해선 재선거라도 해야 하다는 얘기다. 당위적으론 맞는 얘기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현행 법상 재선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투표용지 부족은 재선거 사유가 아니다. 선거가 무효화되려면 선거 결과가 바뀔 정도의 중대한 결함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개인의 권리가 중요해도 법치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재선거를 하려면 국회가 법을 바꾸거나 특별법을 만들어 소급 적용해야 한다. 광장의 요구를 담아내는 것이 결국 제도권 정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2030세대가 주도한 잠실 시위에서 부실선거는 트리거였을 뿐이다. 집값 급등과 삼성전자 성과급 등에 따른 자산 격차, 미래 세대에 전가된 연금·재정 부담 등에 대한 분노가 터진 결과다. 기성 정치권이 자신들의 요구를 방기하는 데 따른 정치적 무력감도 한몫했다.만약 여의도 정치권이 앞으로도 청년들을 위한 실질적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2030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의 1968년 반(反)권위주의 혁명을 이끈 이른바 68세대는 지도자 다니엘 콩방디를 중심으로 정치세력화에 성공, 프랑스와 독일에서 녹색당을 창당했다. 한국에서도 비례대표 제도 등 청년 세대가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할 수단들이 있다. 다만 지역구의 경우 소선거구제 등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 독자적 세력화가 어렵다면 기성 정당 차원에서 청년에 대한 공천 확대 등 2030이 정치권에 들어올 문을 넓혀주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위기란,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런 권력 공백 상태에선 매우 다양한 병적 징후가 나타난다." 이탈리아의 좌파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파시스트 정권의 감옥에서 쓴 '옥중수고'의 한 대목이다.2030은 기성 세대 중심의 제도권 정치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대신 광장에서 비로소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다. 청년들이 현실의 모순을 감내하고 분노를 속으로 싶어 삼키는 세상은 끝났다. 거리로 나온 2030세대의 열망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기성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시대데스크]'초과이윤'이라는 신기루
'호미(homie)'라는 말이 있다. 한 골목에서 자라 총알도 대신 맞아줄 사이를 부르는 미국 흑인 은어다. 그 세계에는 글로 적히지 않은 규칙이 있다. 떠서 큰돈을 만지면 남은 호미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래퍼 MC 해머는 그 규칙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었다. 1990년 'U Can't Touch This'로 세계를 흔들고 이듬해에만 3300만달러를 벌어들인 그는, 고향의 '호미' 200여 명을 직원으로 들이고 매달 50만달러를 지급했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6년 그는 거액의 빚을 안고 파산했다. NBA 전설 앨런 아이버슨은 한때 50명에 이르는 식솔을 거두다 2억달러 가까운 돈을 날렸다. 학자들은 성공한 한 사람에게 공동체가 청구서를 내미는 문화에 블랙 택스(black tax)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에서는 반도체 '초과이윤'이라는 말이 블랙 택스의 유령을 불러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5월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하자며 '국민배당금'을 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도체를 두고 "공공재"라 했다. 김 장관은 최근 한발 더 나아갔다. 로이터 인터뷰에서 그 과실을 협력업체와 나누는 방법으로 '단가 조정'을 제시하며, 이를 "공산주의가 아닌 명백한 재투자"라 했다.문제는 그 밑에 깔린 생각이다. '국민배당금'이든 '공공재'든, 두 말이 딛고 선 전제는 같다. 기업이 거둔 이익의 일부는 애초에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두 사람은 그 몫을 '초과이윤'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산업을 지배하는 것은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위험'이다.메모리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이 극단을 오가는 세계다. 기업은 수십조원을 먼저 투자하고, 그 결실은 몇 해가 지나서야 거둔다.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불과 3년 전인 2023년만 해도 SK하이닉스는 7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1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지금의 이익은 그 위험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진 보상이다.경제학은 이 점을 일찍이 정리해뒀다. 훗날 시카고학파의 뿌리가 된 프랭크 나이트는 1921년 펴낸 '위험과 불확실성, 그리고 이윤'에서 오랜 수수께끼를 풀었다. 기업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배경에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몇 해 뒤의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그 위험은 끝내 누군가 떠안아야 한다. 이윤은 그 짐을 짊어진 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이다. 조지프 슘페터도 같은 결론에 닿았다. 이윤이란 남보다 먼저 새 길을 연 혁신가의 차지이며, 경쟁자가 뒤따르는 순간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메모리 기업이 받은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그러니 이를 '정상을 넘어선 초과'라 부르는 건 번지수가 틀렸다. 이윤은 본래 들쭉날쭉한 불확실성의 대가일 뿐, 따로 잘라낼 '초과분'은 없다.그렇다면 남은 몫은 누구의 것인가. 위험을 짊어진 투자자와 그 성과를 만들어낸 임직원의 것이다. 그것을 나누든 다시 투자하든 그들이 정할 일이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내놓은 5년간 5조원의 사회 환원 계획도 회사가 스스로 택한 것이다. 같은 환원이라도 기업이 정해 내놓는 것과 국가가 '모두의 몫'이라며 떼어 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정부의 몫은 따로 있다. 호황은 이미 법인세라는 이름으로 나라 곳간을 채운다. 정부가 들여다볼 것은 그렇게 늘어난 '초과세수'를 어떻게 쓰느냐이지, 기업의 이익을 전 국민이 나눠 갖는 일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취임 1주년 회견에서 초과세수와 초과이윤은 "완전히 다르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메모리의 왕좌는 세습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1980년대 D램을 호령하던 일본은 90년대 들어 한국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엘피다는 2012년 무너져 미국 마이크론의 품에 안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며 우리의 뒤를 바짝 쫓는다. 미국은 칩스법으로 5년간 527억달러를 자국 반도체에 쏟아붓는다. '초과이윤'을 거둬 나누자는 발상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는 1970~80년대 스웨덴이 보여줬다. 노조가 연대임금제로 산업 전체에 똑같은 임금을 매기자,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덜 치른 임금만큼 이윤이 쌓였다. 노조 경제학자 뤼돌프 메이드네르는 그 이윤을 초과이윤이라 불렀다. 1975년 그가 내놓은 안은 대기업이 해마다 이익의 20%를 새 주식으로 찍어 임노동자기금에 넘기는 것이었다. 1983년 반대 시민들이 스톡홀름 거리를 메웠고, 누더기가 된 기금은 이듬해 도입됐다가 7년 만에 폐지됐다. 하지만 기업들은 그 결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테트라팩은 1981년 본사를 스위스로 옮겼고, 이케아는 1982년 회사 지분 전부를 네덜란드 재단으로 넘겼다.해머는 돈이 영원히 넘쳐날 줄 알고 호미들에게 퍼주다 파산했고, 스웨덴은 존재하지 않는 '초과이윤'을 나눠 가지려다 나라의 간판 기업을 해외로 내몰았다. 둘 다 허상을 좇은 대가였다. 위험은 지지 않으면서 있지도 않은 몫을 나누려 들면 정작 있던 과실도, 그것을 만들 사람도 사라진다.
[시대데스크]코스피 1만 시대의 마지막 퍼즐
"회사의 본질 가치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솔직히 믿고 기다려 주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제약·바이오 기업 대표의 하소연이다.코스피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정작 바이오업계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공매도 거래가 급증하면서 일부 종목은 연일 롤러코스터 장세를 반복하고 있다.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사례가 잇따르고 기업들은 R&D(연구·개발)보다 주가 방어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공매도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제약·바이오 업종은 늘 중심에 서 있었다. 신약 개발과 기술수출, 임상 등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선반영되는 특성상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대가 커질수록 공매도 세력의 표적이 되기 쉽고 작은 악재에도 주가는 크게 흔들린다.실제 바이오업계를 이야기할 때 공매도를 빼놓기 어려울 정도다.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 한때 공매도에 맞서 "차라리 경영권을 내려놓겠다"고 한 발언은 상징적이다. 최근에도 알테오젠, 삼천당제약, 에이비엘바이오 등 시장의 관심을 받는 바이오 종목들은 공매도 확대 국면마다 투자심리 위축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한다.냉정히 말하면 문제는 공매도 자체가 아니다. 공매도를 바라보는 시장의 불신이다. 공매도는 시장경제가 만든 자정 장치다. 과도하게 오른 주가의 거품을 걷어내고 부실 기업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상당수 전문가들은 공매도를 시장의 청소부라고 부른다. 세계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공매도를 허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럼에도 한국에서 공매도는 늘 논란의 대상이다. 개인투자자들은 기관과 외국인에 비해 불리한 거래 환경에 놓여 있다고 느낀다. 기관과 외국인은 공매도를 위해 방대한 주식 대여시장을 활용할 수 있지만 개인이 빌릴 수 있는 주식 물량은 여전히 제한적이다.개인투자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공매도 자체보다 접근성의 차이다. 국내 증시 거래의 상당 부분을 개인이 차지하고 있지만 공매도 시장만 놓고 보면 기관과 외국인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개미가 거래의 70%를 떠받치는 나라에서 정작 공매도 시장에서는 기관과 외국인이 98% 이상을 독점하는 기형적 구조다. 공매도 거래가 특정 주체에 집중돼 있다는 인식은 시장의 뿌리 깊은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다. 과거 잊을 만하면 적발된 무차입 공매도 사건도 시장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이 규정을 위반해 적발됐음에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과연 같은 잣대가 적용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공매도 자체보다 규칙을 어긴 거래가 반복됐다는 사실이 개인투자자들의 반감을 키웠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공매도 재개 과정에서 상환기간 통일, 담보비율 조정, 중앙점검시스템(NSDS) 도입 등 개선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공매도 폐지가 아니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규칙과 엄정한 집행이다.역설적이게도 공매도의 순기능을 살리는 길 역시 신뢰 회복에서 시작된다. 신뢰를 잃은 제도는 시장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매도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는 일은 특정 투자자의 이해관계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출발점이다. 꿈의 코스피 1만 시대를 여는 마지막 퍼즐은 공매도 존폐 논쟁이 아니라 시장 신뢰 회복이다.
[시대데스크]시장은 '품격'에 반응한다
최근 자본시장은 실적보다 분위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한 모습이다. 코스피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며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자 시장의 민감도 역시 극단적으로 높아졌다. 기업들의 실적 발표는 물론 기업을 둘러싼 논란과 말 한마디, 조직 문화와 사회적 태도에도 즉각 반응한다.최근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이 불거진 날 모회사인 이마트 주가는 장중 6% 가량 하락했고 하루 만에 시가총액 수천억원이 증발했다. 결국 8일 만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후 주가는 반등했지만 증권가는 목표주가를 낮추며 이번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봤다.비슷한 상황은 또 있었다. 삼성전자는 성과급 지급을 둘러싼 창사 첫 총파업 국면에서 장중 2% 넘게 하락하며 약 10조원 안팎 시가총액이 출렁였다. 2026년 임단협 최종 타결 이후 앞으로 5년 동안 5조원 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이날 여러 호재와 맞물리며 주가는 급등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초과 이익 활용' 관련 발언 뒤 삼성전자 투자심리가 흔들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발언 자체보다 정책 방향성과 정부의 기업 인식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과거 한국 증시는 '실적' 중심의 시장이었다. 기업의 가치를 판단할 때 공장과 설비 등 유형자산이 핵심이었기에 공장 가동률과 수출, 영업이익과 점유율이 중요한 평가요소였다. 하지만 현재 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자 감수성, 노사 안정성, ESG 리스크, 사회적 신뢰까지 함께 평가받는다. 이런 이유로 "돈만 잘 벌면 된다"는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이처럼 시장 평가 기준이 달라진 건 SNS를 중심으로 한 정보 생태계 변화 때문이다. SNS로 인해 시장의 반응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라졌다. 과거에는 기업이 이슈를 일정부분 직접 관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논란이 실시간으로 퍼진다. 이는 단순 투자심리를 넘어 주가에도 빠르게 반영된다.기업 리더십에도 시장은 반응한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받는 압도적 프리미엄은 단순히 AI 반도체 기술력 때문만은 아니다. 젠슨 황 CEO는 장기 비전과 시장과의 소통 능력, 고객 신뢰와 엔지니어 중심 문화까지 함께 평가받는다. 엔비디아의 칩을 넘어 리더십의 안정성과 신뢰에도 프리미엄을 부여한 것이다.반대로 보면 정책 혼선과 돌발 발언,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은 기업을 넘어 국가의 '디스카운트' 요인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정책 일관성이 높은 국가에 자본이 유입되고 통화도 힘을 얻는다. 정보 반영 속도가 빨라진 만큼 군중심리와 감정적 과잉 반응도 커진 부작용도 있다. 실제적 영향보다 주가가 더 크게 흔들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온라인 여론이 기업 가치를 지나치게 좌우하는 현상 역시 경계해야 한다.글로벌 자금과 시장은 이제 기술력을 넘어 신뢰와 사회적 책임까지 함께 요구한다. 과거 시장이 공장과 숫자를 평가했다면 현재는 기업을 넘어 정부와 사회 전체의 신뢰 수준까지 함께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 트렌드 변화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성장, 선진국 시장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구조적 변화에 가깝다.결국 시장은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에 가장 높은 가격을 매긴다. 가장 비싼 가치는 '신뢰'며 시장은 품격에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시대데스크]성과급 전쟁, '소속'이 이기고 '기여'가 졌다
전란(錢亂)이다. 성과급을 둘러싼 대기업 노조의 투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영업이익 N%' 성과급 논란은 반도체를 넘어 자동차·통신·조선·플랫폼 기업 등 국가 주요 대기업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기존 성과급에 더해 '사업성과'를 반영한 특별경영성과급 10.5%를 추가 지급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노조는 영업이익 일부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연동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측이 인건비 부담 확대와 투자 재원 감소, 경영 자율성 축소를 이유로 거부해 사업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도체 부문에 속해 있으면 적자 사업부 직원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해 '성과 있는 곳에 보상한다'는 원칙은 빛을 잃었지만 급여 수준에 따라 'n분의 1' 형태로 나눠주는 성과급 체계는 공고해졌다. 보상 기준은 개인의 '기여' 대신 '소속'이다.탁월한 성과를 올린 개인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라 경기 사이클상 호황기를 맞은 사업 부문에 속해 있어야 성과급을 받는 구조다. 노사 모두 파국을 막기 위한 결단이었지만, 이 타협이 삼성이 자랑해온 '초격차'(경쟁자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 기술·조직·시스템의 우위)를 지속할 동력을 갉아먹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상한선 없는 특별경영성과급' 도입은 분명 파격적이다. 일반 임직원에게는 연봉의 수 배에 달하는 막대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어 동기부여 효과가 작지 않다. 하지만 분배 방식이 '개인 연봉 비례'라는 점은 핵심 인재들에게 딜레마를 안긴다. 차세대 공정이나 혁신적 청사진을 제시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 소수의 'S급 인재'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여가 'n분의 1'로 희석되는 현실이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속에 쌓이는 박탈감도 작지 않을 것이다.TSMC를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반도체 엔지니어 량멍쑹은 2009년 17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 대학교수의 길을 택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 량멍쑹을 시스템LSI사업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력 향상에 크게 기여한 그는 짧은 재직 기간에도 파운드리 사업의 기틀을 놓아 '삼성 파운드리의 갓파더'로 불렸다. 지금은 중국 SMIC로 자리를 옮겨 첨단 공정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 그의 행보로 대만, 한국, 중국 반도체 산업 지형이 바뀌었다.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은 2002년 사장단 워크숍에서 "21세기에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살린다"고 역설했다. 이른바 '천재경영론'이다. 이후 삼성은 S급 인재 확보에 전사적 역량을 쏟았고, 한국 기업 전반에 인재 경영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S급 인재를 붙들어 두어야 할 보상 체계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한국 대기업 특유의 연봉 비례 성과급 구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변화의 출발점은 현금 중심 보상에서 주식 연계 보상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보상 기준을 단기 실적이 아닌 기업가치 상승분과 연동해야 인재와 회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장기적인 헌신을 끌어낼 수 있다. 직원 평가의 정밀한 등급화와 투명한 기준 공개도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모호함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결국 핵심 인재의 이탈로 이어진다. 소속 부서가 아닌 '개인의 기여도'를 철저히 객관화하고 회사의 명운을 바꾼 인재에게는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보상을 안길 수 있어야 한다. 기여가 아닌 소속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기업에 남을 S급 인재는 없다.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초격차도 무너진다.
[시대데스크]'포용'의 대가
'포용'이라는 단어만큼 정치적으로 따뜻하고 매력적인 수사가 있을까. 최근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내놓는 일련의 민생 금융 정책들에서는 '포용' 분위기가 물씬 배어 있다. 취약층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책 목표에 이견을 제기할 이는 드물다. 그러나 정책이 발표되는 무대의 뒷편, 비용을 조달하고 실행하는 구조를 들여다보면 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과 상충하는 지점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정부의 재정 투입이나 제도적 지원보다 민간 금융사의 재무적 부담을 지렛대 삼아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21일 발표된 호르무즈 해협 사태 관련 중소 선사 지원책도 그랬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10개 손해보험사가 자체적으로 10척의 중소 선박에 대해 '전쟁보험'을 공동으로 인수해 최저요율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정학적 분쟁 리스크는 글로벌 대형 재보험사들조차 인수를 기피하는 영역이다. 충분한 글로벌 커버리지 없이 국내 민간 보험사들이 이를 자체적으로 떠안는 것은, 개별 기업의 리스크 허용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이달부터 도입된 자동차보험 차량 5부제 할인 특약도 가격 결정 메커니즘의 왜곡을 보여준다. 고유가 부담 완화라는 명분 아래 약 1700만대 차량에 연 2% 수준의 보험료를 환급해 주겠다는 것이다. 손보사들은 지난해 자동차보험 부문에서만 708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구조적 적자 사업부문에 추가적인 부담이 가해진 만큼 자동차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커진다.카드사들 역시 2007년 이후 14차례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거치며 본업인 신용판매 부문의 수익성이 한계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연내 또 한 번의 수수료 추가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주유비 할인카드 수수료의 추가할인 요구 등은 수년간 감익 흐름을 이어왔던 카드업계를 시름에 잠기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새로운 혁신 모델로 자리 잡은 인터넷전문은행과 빅테크도 예외는 아니다. 고금리로 연체율이 급등하는 거시경제 환경 속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인가 조건이라는 이유로 '중저신용자 대출 의무 비율'을 무조건적으로 맞춰야 한다.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수반되는 빅테크 결제망 역시 원가 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인 수수료 공시 및 인하 압박에 직면했다.모든 정책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경제·금융 정책은 더 그렇다. 위기 상황에서 금융업권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겠지만 그 실행 방식이 기업의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이어서는 안된다. 본업의 수익 구조가 악화된 상태에서 포용 명분의 자금 출연이나 금리·수수료 인하 요구가 누적되면 금융사들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결국 중·저신용자 대상의 신용 공급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포용금융 정책이 되레 취약계층의 제도권 자금 접근성을 제약하는 '풍선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금융회사의 자본 건전성이 약화된다는 것은 위기 발생 시 거시경제의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Buffer)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지속 가능한 포용금융은 시장의 자율성과 가격 결정 기능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 정교한 재정 정책과 규제 유인 체계가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포용 금융의 구조적 비용과 편익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대데스크]마이클 잭슨의 추억, 도시를 무너뜨린 시장
#1. 최근 개봉한 영화 '마이클'의 실제 모델인 마이클 잭슨. 그 전설의 시작은 미국 디트로이트 기반의 모타운(Motown) 레코드였다. 1969년 5인조 보이그룹 '잭슨5'를 발굴한 모타운은 막내 보컬 마이클을 슈퍼스타로 키워냈다.'팝의 황제' 마이클은 훗날 모타운을 떠났지만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1983년 모타운 25주년 기념 TV 방송에 출연한다. 마이클이 '빌리 진'을 부르며 그의 시그니처 댄스인 '문워크'를 처음 선보인 전설적인 무대가 바로 그때다. 마이클 외에도 스티비 원더, 슈프림스, 마빈 게이 등의 흑인 스타 뮤지션들이 모타운의 손에서 탄생했다.모타운이란 이름은 자동차 도시였던 디트로이트의 별명 '모터타운'(Motor Town)에서 따왔다. 과거 GM(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의 본사와 주요 공장이 모두 디트로이트 주변에 있었다. 자동차 산업 덕분에 디트로이트는 한때 미국 내 인구 순위 4위에 올랐다.그러나 디트로이트는 20세기 중반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 2010년을 전후해서는 '유령도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추락의 중심에 한 남자가 있었다. #2. 콜먼 영은 무려 20년(1974~1993년) 동안 디트로이트 시장을 지냈다. 그는 연임을 위해 야심찬 대형 프로젝트들을 펼쳤다.73층짜리 빌딩을 중심으로 한 복합단지 '르네상스 센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거대한 유리 건물만으로 쇠락하는 도시를 되살릴 수 없었다. 남겨진 건 텅 빈 사무실들뿐이었다. 1970년대 3억5000만 달러를 쏟아부어 지은 이 건물은 1996년 1억 달러에 팔렸다. 2억 달러를 들여 모노레일도 깔았지만 좌석이 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새로운 아이스하키 구장을 짓는 데에도 시 예산이 들어갔다.영은 도시를 건물로 채우면서도 사람은 몰아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영은 흑인과 백인을 갈라쳤다. 시장이 욕설까지 동원하며 백인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자 이들은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흑인 사회에서의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연임을 노리던 영의 입장에선 그게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영은 5연임에 성공했다. 이 기간 디트로이트의 백인 비중은 약 55%에서 15% 이하로 급감했다.그가 시장으로 재직한 20년 동안 도시 인구는 150만 명에서 10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백인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이 사라졌고 기업도 떠났다. 시 재정은 바닥이 났다. 이때부터 무너진 재정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 디트로이트는 2013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방정부 파산을 신청했다. 2026년 현재 디트로이트 인구는 약 63만 명에 그친다.연임을 위해 반대쪽 주민을 도시 밖으로 밀어낸 시장은 보스턴의 제임스 컬리가 먼저다. 그는 1914년과 1950년 사이에 4차례 보스턴 시장을 지냈다. 아일랜드계인 컬리는 잉글랜드계 주민들을 '멍청한 종(種)'이라고 비하하며 몰아세웠다.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6년 영국 징병관이 보스턴에서 영국 출신 주민들을 징집해가도 되느냐고 묻자 컬리는 "마음대로 하시오. 아무나 잡아가도 좋소"라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잉글랜드계 주민들이 떠나자 컬리는 선거에서 유리해졌지만 도시는 더 가난해졌다.#3.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영과 컬리를 도시를 망가뜨린 시장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둘 다 사람을 버렸고 영은 그 대신 건물을 올렸다. 그 결과는 도시의 몰락이었다.글레이저는 "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고 강조했다. 건물이 많은 도시는 무너질 수 있지만 인재가 많은 도시는 망하지 않는다. 사람이 빠져나가는 도시가 아닌 인재를 끌어들이는 도시를 만드는 게 시장이 할 일이다.실리콘밸리와 암스테르담 등에서 보듯 포용력 높은 도시가 성장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다양성이 높을수록 갈등이 많을 수도 있지만 그건 번영의 대가일지 모른다. 득표를 위해 편을 가르고 적을 만드는 시장이 도시를 키울 가능성은 희박하다.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개발 공약들이 쏟아진다. 물론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도 없지 않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표를 얻기 위해 기대감만 부추기는 비효율적 사업은 과연 없을까.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면 건물보다 사람에 투자하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던져보면 어떨까.
[시대데스크]노란봉투법 선의보다 연대가 필요한 시점
올해 1월 '동행미디어 시대'는 제호를 바꾸고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을 기치로 내걸었다. 경제활동 주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미디어의 역할을 다시 정립했다.사회 각 구성원의 권리 요구와 공익의 가치 사이에서 기준을 정하는 것은 갈수록 더 복잡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노조 활동을 보호해야 하는 제도와 규제, 그리고 기업 경영의 균형점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는 때다.규제는 공정한 경쟁과 지속가능한 경영 활동을 전제해야 한다. 약자로서 보호되는 하도급사와 노동자의 권익만큼 중요한 것은 기업 경쟁력이라는 시대의 과제를 부정할 수도 없다.최근 건설업계의 최대 이슈로 부상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은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이어 기업들을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지방노동위원회는 건설 하도급사를 상대로 한 원도급사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를 놓고 여러 해석을 하고 있어 빠른 제도 수정이 요구된다. 사용자성 판단은 원도급사가 하도급 노조와 단체교섭 의무를 갖는지 결정하는 문제인데, 노동자의 근로계약 조건에 실질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전국건설노동조합이 포스코이앤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에서 노동위는 노조의 손을 들어 포스코이앤씨가 하도급 노동자의 임금 지급, 안전 관리, 작업 공정을 결정하는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포스코이앤씨는 노동위의 결정을 존중하며 교섭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유사한 취지로 진행된 중흥건설의 사용자성 심사에서 노동위는 노동자의 인사, 채용, 징계 등에 원도급사가 관여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원·하도급사의 '직접 사용자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노조의 교섭 신청을 기각했다.과거 현대건설도 하도급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았다가, 당시 노동위와 법원은 노사 관계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원도급사의 지배력을 폭넓게 인정한 사례가 건설업계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사회 발전의 관점에서 볼 때 환영할 만한 변화다. 다만 건설업은 중층 하도급 구조가 광범위하고 가장 약한 고리인 하도급사가 실제 보호 조치에서 배제될 수 있는 허점이 존재한다.건설노조와 단체교섭을 수용했던 포스코이앤씨가 한국·민주노총 산하 각 플랜트노조의 교섭 분리 요구로 기존 절차를 중단한 사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정한 노동환경 구축이라는 법 취지가 최선의 결과만을 낳지 않는 점을 보여준다.현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규제'의 대가다. 쟁의 행위의 대상이 사법 판단의 영역으로 넓혀지면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결단하지 못한다.노동자의 권익과 기업 경영권을 보호하는 길이 반드시 평행선이어야만 할까. 진정한 의미의 동행은 희생이 아니라 서로가 인정하는 '룰'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노동자의 삶을 보듬는 정서만큼 중요한 것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정책의 디테일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법 시행의 보완 방안을 만드는 정책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대데스크]CU 사태, 남겨진 숙제
파업이 끝났다. BGF로지스와 화물연대 CU 지부가 합의에 도달했고, 막혔던 물류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나온 도시락과 김밥이 물류센터를 거쳐 점포로 들어오며 비어 있던 매대를 채운다. 평소 모습을 되찾고 있지만 남은 숙제도 적지 않아 보인다.BGF리테일의 대응은 빨랐다. 결품으로 팔지 못한 몫과 폐기된 상품 비용을 계산해 지원금을 지급하고 위로금을 별도로 더한다. 점포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겉으로 보면 상황은 정리된 듯하다.현장은 다르다. CU 점주협의회는 화물연대를 상대로 손해배상 절차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보상 지원에도 갈등은 남아 있다.파업이 끝난 뒤에 긴장이 이어지는 흐름은 단순한 노사 갈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협상은 위에서 마무리됐고 보상은 별도로 이뤄졌다. 정리는 됐지만 현장의 불만과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주체를 나란히 놓고 보면 더 분명해진다. BGF리테일, BGF로지스, 화물연대 CU 지부, 점주협의회. 협상은 물류와 노조가 맡았고 본사는 수습과 보상을 담당했다. 매장은 결과를 받아야 했다. 모두 연결돼 있지만 역할은 다르다.문제는 이 연결이 끊기는 순간 드러난다. 물류센터가 막히자 점포로 이어지던 상품 흐름이 멈췄다. 삼각김밥과 도시락이 빠지고 간편식 매대가 비었다. 매출은 곧바로 흔들렸다. 더 큰 변화는 고객의 이동이었다. 비어 있는 매대를 경험한 손님은 다른 매장을 찾는다.점주들은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 협상 테이블에도 없었고 물류를 조정할 권한도 없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가장 먼저 받아야 했다. 유통의 구조가 이렇게 작동한다. 위에서 내려온 결정은 결국 매장에서 현실이 된다.BGF리테일은 손실을 빠르게 메웠다. 결품과 폐기 비용을 보전하고 위로금을 더했다. 기업의 역할로 보면 충분한 대응이다. 다만 그 보상은 이미 발생한 손실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문다. 손실이 왜 특정 지점에 집중됐는지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점주협의회가 소송을 이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협상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로 발생한 약 140억원의 부담이 누구에게 쌓였는지 묻고 있다. 보상은 받되 책임은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상이 어디서 이뤄졌는지가 아니라 그 결과의 비용을 누가 감당했느냐가 초점으로 남았다.유통은 본사, 물류, 운송, 매장이 이어져 작동하는 구조다. 평소에는 계약으로 움직인다. 문제가 생기면 계약보다 책임이 먼저 드러난다. 그리고 그 부담은 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래로 내려온다. 싸움은 끝나도 그 비용이 남는 자리는 따로 있다.필요한 것은 복잡한 해법이 아니다. 손실과 책임의 기준을 정하는 일이다. 물류 차질이 발생했을 때 손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협상 밖에 있는 점주 같은 현장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최소한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 기준이 없다면 같은 상황은 반복된다.
[시대데스크]코드와 데시벨: 목청 전쟁에 묻히는 AI
"새로운 정부 모델이 출범합니다. 2년 내 정부 서비스, 운영의 50%가 AI 에이전트로 대체됩니다. 세계 최초의 자율 시스템 정부로 만들 것입니다." 2026년 4월 23일,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셰이크 무함마드가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선언했다. 이어진 문장은 더 단호했다. "2년 뒤부터 정부의 성과는 AI 도입 속도, 실행의 질, 업무 재설계 역량으로 측정합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시한과 측정 지표가 박힌, 국가 운영체제를 통째로 갈아 끼우겠다는 비전 발표였다. 15년 전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투자자 마크 안드리센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애플·구글·아마존이 산업의 지형을 다시 그렸다. 2017년 젠슨 황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이제는 AI가 소프트웨어를 먹어 치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다. '코드(Code)' 한 줄이 공장 하나를, 알고리즘 한 묶음이 부처 하나를 대체할 수 있다. UAE 총리의 선언은 그 흐름의 한 변곡점일 뿐이다. 미국은 2026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사상 처음 1조 달러(약 1400조원)까지 끌어올렸고, 2027년에는 1.5조 달러를 제안했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이 무인기와 AI, 자율 시스템으로 흘러간다. 세상의 중심이 빠르게 '코드'로 옮겨가는 중이다. "어우 정말 난장판이다. 정말 난장판이야 …." 한 특위위원장의 자조 섞인 독백이 마이크를 타고 흐른다. 삿대질을 이어가는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 사이에서 카메라는 누구의 얼굴도 잡지 못한 채 회의장 전경을 비춘다. 4월 30일 한국 국회의 풍경이다. 고성이 30분 넘게 이어지고 나서야 회의가 다시 시작됐다.AI·과학·통신을 다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도 난장 같은 모습이 자주 펼쳐진다. 과방위는 22대 국회 출범 직후부터 방송4법을 둘러싼 극한 정쟁의 장이 됐다. AI 기본법은 가까스로 통과시켰지만, 그 외 과학·AI 분야 법안은 줄줄이 밀려 표류 중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84시간에 걸친 과방위 속기록을 분석해봤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쿠팡 혼내기'였다(38%, 30시간). 최대 현안이자 미래 먹거리인 AI(20%), 우주항공(5%) 분야의 시간 점유율은 초라하다. 한국 정치의 핵심은 '코드'가 아니라 '데시벨'이다.이런 시간 속에서 한국이 키운 AI 인재들은 짐을 싼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에 발간한 보고서 'AI 전문인력 현황과 수급 불균형'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AI 전문인력 5만7000명 가운데 약 1만1000명이 해외에서 일한다. 한국의 AI 전문인력은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한국을 빠져나가고 있다. 올해 4월 발간된 스탠퍼드대 'AI 인덱스 2026'도 한국을 AI 인재 순유출국으로 분류한다. 인재 유출 속도는 조사 대상 50개국 중 8위다. 정치권의 요란한 목청 싸움 속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떠난다. 일찍이 쇼펜하우어는 '소음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한 인간이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소음의 양은, 그의 지적 능력과 반비례한다."UAE의 'AI 정부 선언'은 50%라는 자동화 목표 뿐 아니라 '2년'이라는 시한, 그리고 '도입 속도·실행의 질·재설계 역량'이라는 측정 지표도 명시했다. 한국 정치가 같은 2년 뒤 무엇으로 측정될지는 누구도 답하지 못한다. 중국 AI 모델은 지난 2월 세계 최대 AI개발자 플랫폼 허깅페이스 다운로드의 41%를 가져가며 미국(36.5%)을 처음 추월했다. '코드'는 전에 없이 맹렬한 기세로 세상을 뒤바꾸는데, 국회의 소음은 조용히 한국의 잠재력을 집어삼킨다. AI 골든타임은 이렇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소진되고 있다.
[시대데스크]수천조 바이오 신대륙 가로막는 관료주의
"정부가 경제를 보는 시각은 세 마디로 요약된다. 그것(경제)이 움직이면 세금을 매기고, 계속 움직이면 규제하고, 멈추면 보조금을 줘라."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80년대 재임 당시 자주 인용한 말이다. 불필요한 규제로 혁신의 발을 묶는 관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이 경고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 기자가 만나는 업계 관계자들은 모두 정부 눈치를 보면서 "관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전격적인 약가 인하 규제가 그 단면이다.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지난 3월 제네릭(합성복제약) 가격을 오리지널의 45%(현행 53.55%)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11월 복지부가 건정심에서 인하 방침을 처음 공식화한 지 4개월 만이다. 하반기 시행을 앞둔 이 전격적인 조치를 두고 현장의 불신은 팽배하다. 일각에선 "복지부 관료들이 약가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약가 제도라면 거쳐야 할 협의와 공청회, 유예기간 등 공론화 과정이 생략되거나 축소돼 속전속결로 진행됐다는 게 이유다. 결국 건보 재정 효율화라는 명분 뒤에 관료의 편의주의적 행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약가 재편과 관련한 명확한 법적 근거나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부가 안전한 규제를 선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호한 법 규정을 들어 가장 손쉬운 방식인 약가 통제로 기업에 비용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며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 결국 신약개발이라는 혁신의 싹이 잘릴 것"이라고 토로한다. 특정 정책을 넘어 보건의료 정책 전반의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사례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규제 완화론자였던 레이건은 재임 당시 시장 경쟁을 통해 약가를 낮추는 해치·왁스먼법을 제정했다. 제네릭 승인 절차는 간소화하되 신약 개발에 소요된 기간만큼 특허를 연장해 주는 당근을 병행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가격을 직접 억누르는 대신 진입 장벽을 낮춰 자율 경쟁을 유도하고 기업 손실은 제도적으로 보전해 준 것이다. 정부 규제 완화 철학과 약가 안정이라는 공공성이 결합해 미국의 호황을 견인한 혁신의 서막이었다. 최근엔 미국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 주요국들도 바이오 규제 완화에 열을 올린다. 현 정부 역시 제약·바이오헬스 강국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 엔진은 가동되는데 브레이크가 발목을 잡는 구조로는 어떤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규제 완화 구호가 이번에도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글로벌 AI(인공지능) 패권 경쟁 속에서 바이오는 미래 최대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AI와 생명공학의 만남으로 제약·바이오 생태계는 10년 내 최소 수천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현재 반도체와 자동차 시장을 합친 규모마저 추월하는 거대한 신대륙이다. 한국이 황금알을 낳는 바이오시장 주도권을 잡으려면 관료사회부터 달라져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장과 협력하는 파트너로 전환해야 한다. 규제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한국의 관료주의가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천문학적인 기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시대포럼] AI 대전환의 시대, AI 풀스택 대한민국의 도약](https://i.ytimg.com/vi/VcbpSJtXg6o/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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