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데스크
[시대데스크] 혁신의 발목 잡는 경영권 분쟁
"혁신기업은 기술로 경쟁하지 경영권으로 싸우지 않습니다."최근 만난 한 신생 바이오업체 대표의 말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떠올리면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구글과 엔비디아, 애플, 메타(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창업자와 경영진이 경영권 다툼이 아니라 기술 혁신과 시장 확장에 집중하며 성장해 왔다. 경쟁력이 지배권 방어가 아니라 기술과 시장에서 나온다.실리콘밸리에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도전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VC)과 인큐베이터(창업지원기관), 기술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형성돼 있다. 기업이 성장한 뒤에도 핵심 경쟁력은 경영권 방어가 아니라 혁신이다. 장기적인 기술 개발과 시장 확대 전략이 기업가치의 중심축을 이룬다. 창업자와 투자자가 기술과 시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생태계가 혁신을 이끄는 힘이다.하지만 국내 혁신기업의 현실은 다르다. 제약·바이오 기업이 대표적이다. 창업자 간 갈등이나 경영 승계 과정의 가족 분쟁, 대주주 간 이해 충돌, 소액주주와 경영진 사이의 대립 등 다양한 형태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구조적 이유도 있다. 대기업은 계열사 지분이나 순환출자 등을 통해 오너 일가가 비교적 안정적인 지배력을 유지한다. 반면 중견·중소 혁신기업은 창업자 개인 지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경영권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기업 성장 과정에서 외부 투자를 반복적으로 유치해야 하는 구조 역시 지배력 약화를 부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제약·바이오 산업은 더 취약하다. 신약 개발에는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고 막대한 R&D(연구개발) 자금이 투입된다. 임상과 기술개발을 이어가기 위해 여러차례 외부 자금을 수혈 받아 창업자 지분이 희석되는 경우가 많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10~30% 수준에 머무는 기업도 적지 않다. 지배력이 약해질수록 경영권 분쟁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이달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표 등 사내이사 선임이나 정관 변경 등을 둘러싼 의견 충돌이 잦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은 자금력이 취약한 데다 최대주주의 상속세·증여세 부담으로 지분 매각이 이어지면서 지배구조가 더 약해지는 경우도 많다.이런 경영권 분쟁은 단순한 지분 다툼에 그치지 않는다. 갈길 바쁜 혁신의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제약·바이오기업 한 임원은 "잦은 경영권 불안에 창업주나 전문경영인이 제때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 이미지 하락까지 겹쳐 주가 변동성을 키우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기업 이미지가 흔들리면 투자자 신뢰가 약해지면서 대규모 자금 조달에도 부담이 된다. 사람이 기술로 불리는 업계 특성상 인재 이탈로 이어져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그래서 혁신기업만큼은 최소한의 경영권 안정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3년 도입된 비상장 벤처기업 복수의결권 제도도 이런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에서는 활용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다만 제도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경영권 안정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방패일 뿐이다. 기업 스스로 시장의 신뢰를 쌓는 노력도 필요하다.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경영진을 견제하거나 소액주주와 설명회 정례화, 전담창구 마련 등 소통 방안이 거론된다. 혁신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데서 시작된다. 누구든 피땀 흘려 만든 기업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그 험난한 창업에 나설수 있을까.AI(인공지능) 패권 경쟁 시대다.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 도약'과 '창업중심 사회'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어도 법과 원칙을 지키는 혁신기업은 기술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혁신을 키우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시대데스크] 반도체 슈퍼사이클 덮친 삼성전자 파업 리스크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고 AI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기업들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대내외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전자마저 내부 암초에 부딪혔다. 조합원 약 8만 9000명을 거느린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쟁의 행위 투표를 거쳐 오는 5월 21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조합원 상당수가 반도체 생산 핵심 인력으로 알려져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하는 삼성전자의 경영 환경은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밖으로는 중동 전쟁 장기화 조짐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고 안으로는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 등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변수가 산적해 있다.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역시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지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생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복합 위기 속에서 1인당 평균 연봉이 1억 5000만 원을 넘는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예고는 씁쓸함과 우려를 동시에 안겨준다.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를 내걸며 파업에 불참하는 동료는 향후 구조조정 시 우선 해고나 강제 전보 대상이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라는 본질을 벗어나 동료를 볼모로 삼는 부당행위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AI 및 데이터센터 투자 급증으로 다시 호황기를 맞았다. 내년까지도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앞설 것으로 전망되며 회사 실적과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경쟁사의 파격적인 성과급 지급에 노조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겠지만 동료를 방패 삼아 투쟁에 나서는 방식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삼성전자 노조의 출범은 한국 노동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20년 이재용 회장이 수십 년간 고수해 온 '무노조 경영' 원칙을 폐기하면서 여러 노조가 출범했다. 회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근로 환경을 개선하는 소통 창구가 마련됐고 수평적 기업 문화를 조성하는 긍정적인 변화도 끌어냈다. 최근 노조의 행보는 과거의 이 같은 모습을 무색하게 만든다. 미래를 준비해야 할 상황과 글로벌 경쟁을 도외시한 채 눈앞의 이익과 무리한 보상만 요구하는 것은 위화감을 조성한다. 노동자의 연대를 외치면서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태도는 참담함마저 느끼게 한다. 성과급은 회사가 이익을 창출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다. 현재의 성과급이 적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글로벌 한파 속에서 생존을 다투는 시점에 동료를 위협하며 상한 폐지를 외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과거 국내 조선업계도 모처럼 수주 호황기인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으나 노조의 연쇄 파업으로 공정이 지연되고 막대한 지체보상금 우려와 신뢰도 하락이라는 뼈아픈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사측과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무리한 투쟁과 이기주의를 고집한다면 결국 조합원 개개인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파업으로 제품 납기가 지연되고 신뢰를 잃으면 기업 경쟁력은 추락한다. 어렵게 찾아온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기업의 존립 없이 노조도 존재할 수 없다.
[시대데스크]칼, 글, 그리고 규제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 편에는 소를 잡는 전설적인 백정인 포정(庖丁)의 얘기가 나온다. 포정의 칼놀림은 신기에 가까웠다. 뼈와 살이 맞닿는 미세한 틈새와 고기의 결을 정확히 파악하고 무리한 힘을 들이지 않고도 깔끔하게 뼈와 살을 분리해 냈다. 반면 어설픈 백정은 결을 무시한 채 억지로 뼈를 내리친다. 사방에 피와 살점이 튀는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칼날은 금세 무뎌진다.기자들이 매일 업으로 삼는 글도 그렇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글은 때로 날선 칼보다 더 깊고 쓰라린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제도의 맹점을 찌르는 글을 쓸 때 철저히 팩트를 체크하고 펜 끝을 조심하고 또 벼려야 한다. 칼놀림만큼이나 글도 깔끔해야 한다.하물며 '규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법령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 조사 하나에 많은 기업의 성쇠가 갈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밥줄이 좌우된다.최근 금융당국이 쥐고 있는 규제의 칼날은 '생산적 금융'을 향해 있다. 부동산 등 자산의 가치가 무한대로 자가 증식하며 거품을 만드는 기형적인 구조를 바꾸겠다는 취지다. 그 막대한 자금줄의 방향을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기업과 생산적인 곳으로 돌리겠다는 큰 방향성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수십 년간 고착화된 낡은 자금 흐름을 바꾸는 것은 우리 경제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문제는 그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과정과 디테일이다. 지금 시장이 느끼는 당국의 규제는 뼈와 살의 결을 살피는 포정의 예리한 칼이 아니라, 굵은 뼈를 뭉툭하게 내려치는 날이 무딘 도끼에 가깝다는 아우성이 시장 안팎에서 터져나온다.가계부채 억제와 건전성 관리라는 큰 뼈를 자르는 데 집중하느라, 그 안을 촘촘히 흐르는 핏줄이나 살이 잘리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시장은 이미 출렁이고 있다. 1금융권의 대출 문턱을 단숨에 높이자, 당장 자금이 마른 사람들은 2금융권으로 내몰렸다는 통계가 있다. 투기적 임대사업자나 다주택자를 옥죄고자 한 규제가 1주택자나 무주택자에게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포정처럼 피를 튀기지 않고 완벽한 실력을 발휘하려면, 칼을 쥔 당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나쁜 금융 관행을 혁파하고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대업은 흔들림 없이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그 거친 물살에 쓸려나가는 이들의 희생은 최소화해야 한다.지금 정부는 이제 출범한지 1년이 채 안 됐다. 65%에 이르는, 취임 후 최고치 지지율이라는 든든한 동력도 있다. 쫓기듯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뭉툭한 도끼를 성급하게 휘두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낡고 나쁜 금융을 오래 존치시키자는 얘기가 아니다. 규제라는 메스를 들이댈 때,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보다 정교하게 정책을 설계하자는 것이다. 시장의 연착륙은 당국의 엄포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디테일에서 완성된다.심지어 그 고수인 포정마저도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다. 장자 양생주 편 포정 대목의 마지막에 나온 포정의 얘기다."매번 근육과 뼈가 뒤엉켜 있는 곳에 이르면 저는 그 어려움을 알고 바짝 긴장해서 시선은 고정되고 행동은 느려지며 칼의 움직임은 매우 미세해집니다. 소 잡는 일이 끝나면 저는 만족해하며 칼을 닦아 보관합니다."
[시대데스크] "AI 로봇 덕분에 연봉 오른다, OO년 뒤에"
#1. 정우성과 이정재, 브래드 피트와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 워런 버핏과 찰스 멍거, 괴테와 실러, 가우디와 구엘…남성 간의 깊은 우정, 브로맨스를 대표하는 커플들이다. 그러나 세계 역사를 바꾼 브로맨스를 딱 하나 꼽으라고 할 때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능가할 조합이 과연 있을까.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입부 가운데 하나다. 1917년 10월 이 사상에 뿌리를 둔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세계사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소련 등 공산국가의 출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냉전을 거쳐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중러 연대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우린 엥겔스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 엥겔스는 독일의 부유한 면직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른바 '금수저'였지만 영국 맨체스터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뒤 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요즘 한국으로 치면 '강남 좌파'쯤 되겠다.'소울메이트'인 마르크스를 만난 뒤인 1845년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라는 책을 펴낸다.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발전과 생산력 향상으로 영국 자본가들이 엄청난 부를 쌓고 있는 동안 노동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불균형' 현상을 날카롭게 기록한 저서다. 훗날 경제사학자인 로버트 알렌 뉴욕대 교수는 엥겔스가 기록한 1790~1840년 영국 산업계의 상황을 실제 데이터로 검증했다. 그 결과, 엥겔스의 주장대로 당시 영국에선 생산성의 비약적인 성장에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제자리에 머물렀음이 확인됐다. 알렌 교수는 생산성 향상과 실질임금 상승 사이엔 약 50년의 시차가 있다며 이를 '엥겔스의 휴지기'라고 이름 붙였다. 기술 혁신이 결국은 인류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긴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진 '죽음의 계곡'을 지나야 한다는 얘기다. 앞으로 AI(인공지능)와 로봇으로 인해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높아질 때 일반 근로자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3. "변화는 두 가지 방식으로 오지.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Gradually, then suddenly)."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대개 변화는 생각보다 늦게 시작되지만, 일단 시작되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빌 게이츠는 "우리는 보통 앞으로 2년 뒤에 일어날 변화는 과대평가하고, 10년 뒤에 일어날 변화는 과소평가한다"고 했다. AI는 이미 빠른 속도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다음은 로봇 차례다. 일론 머스크는 AI와 로봇이 몰고올 변화를 '초음속 쓰나미'(Supersonic Tsunami)라고 표현했다.IMF(국제통화기금)는 선진국 일자리의 약 60%가 AI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절반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보는 반면 나머지 절반은 AI로 대체돼 임금 감소나 해고를 겪을 것이란 분석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고학력 사무직이 많은 한국은 특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4. 낙관론도 있다. 생산성 혁명으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란 기대다. 19세기 영국에선 방직 기계에 일자리를 뺏길 것이란 공포에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났다. 기계 덕분에 옷감이 싸지면서 의류 수요가 폭발한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 혁신이 일자리 증가를 거쳐 실질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은 50년 간의 엄혹한 '엥겔스의 휴지기'를 견뎌내야 했다. AI 로봇의 쓰나미 앞에 선 21세기 인류는 과연 다를까.영국에서 '엥겔스의 휴지기'는 저절로 끝난 게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노동법이 제정되고 노동조합 활동이 본격화된 결과였다. 인류 스스로 정치적 토론과 투쟁을 통해 해법을 찾아낸 셈이다.일자리가 사라지고 비자발적으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된 인류는 무슨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할까. '보편적 기본소득'(UBI)을 준다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해야 할까. 로봇세를 신설하거나 AI가 활용하는 우리의 데이터에 대해 사용료를 받아야 할까.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사회적 숙의를 시작할 때다. 헤밍웨이가 말했듯 변화는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다.
[데스크칼럼] 국산 우유 위기, 자조금이 바뀌어야 한다
수입 유제품이 무관세를 앞세워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야 할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우유자조금)는 여전히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변화한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기는커녕 낙농가의 불안만 더 키우는 형국이다.FTA(자유무역협정) 일정에 따라 미국산 유제품은 올해 1월1일부터, EU산은 7월1일부터 관세가 0%가 된다. 국내 멸균우유 수입의 90%를 차지하는 폴란드 등 EU산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더 높아질 것이 명확하다. 시장 충격은 불가피하다.국산 우유는 비싸다는 인식이 고착돼 있다. 우유는 빵·커피·가공식품 등 식생활 전반의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기초 재료다. 먹거리 인플레이션 때마다 가격 인상 주범으로 지목받는 이유다. 부정적 인식이 쌓인 상태에서 소비 변화까지 더해졌지만 우유자조금의 홍보 전략은 여전히 백색 시유(흰 우유) 중심에 머무르고 있다.최근 3년 동안 우유자조금 지출의 약 35~36%를 차지한 소비홍보 예산은 대부분 흰 우유의 신선함과 효능을 알리는 데 쓰였다. 실적 역시 국산 우유의 우수성 주입에 초점이 맞춰졌다. 국민은 우유를 흰 우유만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가공유·치즈·버터·크림·분유 등 다양한 유제품이 식탁의 중심이 됐다. 외식·카페·디저트 산업은 사실상 유제품 기반으로 돌아간다. 원료 홍보만 반복해서는 국산 원유의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국내 유가공업체들도 원가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국산 원유 기반의 프리미엄 제품군을 키우고 그 가치를 소비자가 체감하도록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무관세가 적용된 수입 유제품이 대거 들어오는 상황에서 백색 시유 홍보에 머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해외수출 전략은 답보 상태다. 우유자조금 운영 예산에는 정부 보조금이 포함되는데 이 중 20억원이 수출 지원 명목이다. 매년 40억원 수준의 예산이 해외수출에 쓰이지만 내용은 박람회 참가·마케팅 지원 등 형식적 사업에 머문다.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해외 방문객에게 익숙한 '빙그레 바나나맛우유'가 정작 현지 시장에서는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냉장유통 한계를 넘어설 실온유통 기술 확보가 관건인데 이 부분에서 자조금의 R&D(연구개발)·기술지원 기능은 사실상 비어 있다. 만약 자조금이 기술 투자까지 뒷받침했다면 K밀크의 글로벌 확장은 지금보다 훨씬 빨랐을 것이다.소비촉진 대상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우유 소비 확대 정책의 중심은 여전히 어린이다. 우유자조금의 2025년 '찾아가는 우유교실'에는 어린이집 121곳, 1만5093명이 참여한 반면 노인복지관 프로그램은 14곳, 1492명에 그쳤다. 단백질·칼슘이 절실한 고령층에 대한 전략은 여전히 빈약하다.머지않아 우유도 콩처럼 국산과 수입의 가격 격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우유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가 생존과 국민 식품안보가 걸린 문제다.우유자조금 전략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거버넌스가 10년 가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은 급변하는데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사람은 그대로이니 전략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무관세 시대의 국산 우유 경쟁력은 백색 시유 홍보에서 나오지 않는다. 제품 중심의 고부가 전략, 실효성 있는 수출 전략, R&D 기반 경쟁력, 그리고 고령사회에 맞춘 소비 활성화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자조금의 방식이다.
[데스크 칼럼] 똑똑한 소액주주의 시대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워런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이 쓴 현명한 투자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투자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원금의 안전과 충분한 수익을 약속받는 행위다.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투기다"자본시장 종주국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여전히 모호하다. 특히 최근 확산하는 행동주의 투자 역시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내달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이사 자격 제한, 보수 삭감,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다양한 주주제안이 쏟아진다. 기업의 '주치의'를 자처하는 소액주주 활동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상법 개정으로 주주권이 강화되면서 이런 흐름에 더욱 힘이 실렸다.기업들도 선제 대응에 나섰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등 개정 상법 내용을 정관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른다. 행동주의의 경영 개입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경영 투명성을 높여 공격 빌미를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공격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 모두 전운이 감돈다.문제는 행동주의 이슈가 곧바로 단기 주가 재료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타깃이 된 상장사는 관련 소식만으로 급등락을 반복하며 변동성이 확대된다. 표대결에서 주주제안이 통과되거나 무산돼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주가는 다시 급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이쯤 되면 투자보다 테마주 장세에 가깝다. "행동주의가 찍으면 주가가 움직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장기 성장성보다 단기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 구조가 고착화되는 셈이다. 단기 이익에 급급한 특정 세력이 주주권을 명분으로 변동성을 키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소액주주 이해관계가 항상 전체 주주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단기 차익만 쫓는 경영 개입은 핵심 인력 이탈과 전략 혼선으로 이어져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기업에 방만 경영을 견제하고 제한된 자본(돈)의 운용 효율성을 높이는 행동주의 순기능도 분명하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중요한 것은 투기와 구분하는 기준이다.결국 투자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전문가들은 단기 매매를 경계하고 기업 본질가치에 근거한 장기투자 전략을 강조한다. 태생적 변동성은 장기 보유를 통해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는 논리다.가치투자의 창시자인 그레이엄은 "주식은 내가 왜 이 가격에 사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투자는 근거가 있어 버틸 수 있지만 투기는 기대감에 편승해 단기 수익에 의존한다. 더욱 흥미로운 건 그레이엄 역시 적극적인 주주 활동가였다는 점이다.그는 경영진이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말고 재투자, 자사주 매입, 배당 등을 통해 주주가치를 실현하라는 주문이었다. 단기 차익이 아니라 장기 가치에 초점을 맞춘 책임 있는 행동주의다.주식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주주환원과 주주권 행사는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도 100년이 넘는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제도를 만들었다. 행동주의 시대에 필요한 건 합리적 의결권과 분별 있는 투자다. 묻지마 투자나 군중 심리에 휩쓸린 표대결이 아니라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투자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짜 똑똑한 소액주주의 시대가 열린다.
[데스크 칼럼] '눈길' 막으려다 '숨길' 막는다
'염화칼슘'은 수분과 만나 열을 내고 물의 어는점을 낮춰 눈을 녹이는 '제설제'다. 발열 작용을 통해 결빙된 표면을 풀어주게 되고, 이 과정에서 생긴 염수는 다시 얼어붙는 것을 방지한다. 하얀 알갱이를 도로에 뿌리는 것만으로도 빠르고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어서 겨울철 필수품처럼 여겨진다.하지만 그 효과만큼 부작용도 크다. 겨울철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염화칼슘은 분명 유용한 수단이지만 사용이 과도해질수록 해마다 반복되는 도로의 포트홀과 균열을 피할 수 없다. 눈이 다 녹은 뒤엔 오히려 미끄러짐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남은 가루는 공기 중에 떠다니며 사람들의 호흡기 안전을 위협한다. 당장의 눈길 사고를 막기 위해 뿌린 염화칼슘이 장기적으로 더 큰 유지·보수 비용으로 되돌아오는 셈이다.최근 가상자산을 둘러싼 규제 논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관련업계에서 사고와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핀셋 규제'라는 모호한 대책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특정 부분에 집중하며 문제 재발을 막자는 취지지만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차는 생각보다 크다.가상자산거래소(ATS)의 대주주 지분 제한이 대표적이다. 거래소가 공공 성격을 지닌 만큼 대주주 영향력이 시세 조종이나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그 규제 방식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지분을 많이 보유한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지분을 이용해 어떤 행위를 했느냐 핵심이다. 그런데도 규제는 행위보다 소유 구조를 먼저 제한한다.최근 발생한 빗썸의 이른바 '유령코인' 사태로 불리는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는 이런 논쟁에 불을 지폈다. 해당 사고 자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한 문제다. 다만 이 사건은 '규제를 얼마나 더 강화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현재의 규제가 사고 원인을 정확히 겨냥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남긴 점이 중요하다.가상자산 업계는 대주주 지분 제한을 두고 위헌을 주장한다. 기업인들은 높은 실패 확률을 감수하고 자본과 시간을 투입해 회사를 키우며 기업 가치와 지분 가치로 돌아온 보상을 받는다. 정책이 성장의 상한선을 정해버리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줄어든다. 혁신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보상 구조'가 흔들리면 그 기반을 굳이 국내에 둘 이유가 없어진다. 게다가 형평성 문제도 거론된다. 은행, 증권, 보험 등 전통 금융산업에서도 대주주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은 데다 플랫폼, 바이오, 게임 등의 업권도 초기 성장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 집중은 흔한 일이었다.최근 가상자산업계를 향한 규제는 단기적으로는 안도감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기반을 약화하고 시장을 더 관리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밀어낼 가능성도 존재한다. 염화칼슘이 도로를 망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세한 가루가 되어 사람들의 호흡기까지 위협하듯 과도한 규제는 산업의 표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태계까지 손상시킬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규제는 그 강도보다 설계 구조가 중요한 만큼 행위 규제를 명확히 하고 사후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시장 성숙도와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의무를 부과하고 규제가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점검하는 사후 평가 시스템도 필요하다. 염화칼슘 사용량을 관리하고 대체 수단을 고민하듯 규제 역시 기술적으로 다뤄져야 한다.신산업은 낮은 위험성보다 예측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눈 예보에 무턱대고 염화칼슘을 뿌려댈 게 아니라 어디에, 언제, 왜 뿌릴 것인가를 살펴야 하는 것처럼 가상자산 규제도 같은 고민에서 출발해야 할 때다. 규제는 미끄럼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한 장치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도입하는 규제가 기업 혁신의 숨통까지 조여버리는 역설이 발생해선 안 된다.
[데스크 칼럼] 10조 상조시장, 성장에 걸맞는 소비자보호가 필요하다
"상조 소비자들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할부거래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합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상조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 상조업계가 이제 소비자에게도 신뢰받는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완성도 높은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996년 대형 상조업체에 입사한 이후 30년 동안 영업·장례사업·경영기획 등을 두루 거쳤다는 그는 "상조업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 상조업체 임원들이나 한국 정부 관계자들을 요즘 만나면 한국 상조 시장 규모나 서비스 경쟁력은 다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이제는 소비자 보호에 좀 더 공들여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3조5200억원이었던 상조 선수금은 2022년 7조4761억원으로 2.1배 증가한 데 이어 2025년엔 10조1878억원으로 3배 가까이 커졌다. 업계에선 현 추세대로 갈 경우 올해 상조시장은 11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선수금은 소비자가 장례·웨딩 등 미래 서비스를 위해 미리 납입 하는 돈이다. 통상 선수금은 상조업체의 점유율과 성장성·재무건전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선수금은 최소 10년(120회)에 걸쳐 장기간 나눠서 낸다. 이 때문에 상조업계에서 선수금 관리는 소비자 신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소비자는 상조업체를 믿고 돈을 맡기는데 선수금 관리가 제대로 안된다면 상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라며 "상조시장이 커지면서 선수금을 지킬수 있는 더 확실한 법적 안전장치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상조업체는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로 분류된다.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는 소비자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기 전 그 대금을 일정 기간 나눠서 받는 업체를 의미한다. 문제는 상조업체가 관리하는 선수금에 대한 법적 안전장치가 약하다는 점이다. 현행 할부거래법에 따라 상조업체들은 소비자로부터 받은 선수금의 50%를 은행이나 공제조합 등에 예치하는 것 외에 자금 운용과 관련한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상조업체가 부도나거나 폐업하면 소비자들이 낸 선수금 중 50%가 사라질 수 있다. 이에 정부기관 한 관계자는 "현행 법만으로는 소비자 피해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의 소비자보호 법안 마련도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할부거래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김포시을)이 대표 발의 한지 4개월이 지났지만 처리법안 우선순위에서 계속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이번 개정안은 상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상조업체 선수금 관리를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오너 등 지배주주가 선수금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대여 한도를 자본금의 50%로 제한하고 업체 임원이 소비자 손해에 연대 책임을 갖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일각에선 개정안이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반발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업계 관계자는 "당근을 같이 주는 게 아닌 채찍만 있어 상조업체들 입장에서는 사업을 펼치기 쉽지 않은 상황이 펼쳐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물론 선수금 10조원 시대에 진입하며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려는 상조업체들. 이들이 개정안에 대해 부담을 갖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소비자 신뢰를 잃은 상조는 '모래 위의 성'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2015년부터 10년 동안 단 한해도 꺾이지 않고 성장해온 상조시장이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이젠 정부와 국회, 상조업계가 힘을 모아 외형 성장보다는 소비자보호를 위한 내실 성장을 위해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데스크칼럼] 자사주 소각의 명암
'문왕께서 영대(靈臺)라는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우시고(經始靈臺) 이를 설계하고 실행하시니(經之營之)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도왔다.'옛 문헌에 등장하는 '경영(經營)'의 어원이다. 치밀한 설계와 역동적인 실행이 결합할 때 비로소 민초들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기업들은 치밀한 설계 대신 '사법적 방어'에 골몰하고 역동적인 실행 대신 '소송의 굴레'에 갇혀 있다. 성장을 위한 에너지를 경영권 방어에 소진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우리 기업들은 ESG 경영과 주주 환원을 실천하며 '코스피 5000 시대' 안착을 위한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더 빠른 속도를 주문한다. 새 정부 들어 세 번째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까지 논의되는 이유다.본래 기업은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거나 긴급한 자금 조달, 임직원 스톡옵션 부여 등 '전략적 경영 판단'을 위해 자사주를 보유한다. 물론 일부 기업 최대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활용해 온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른 기업들에 자사주 소각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에게서 최소한의 보호 장구인 방패를 빼앗는 것과 같다. 자사주 소각이 단기적으로 주식시장을 부양할 수는 있겠으나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 기반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세계 주요국들이 자국 기업의 글로벌 주도권 확보를 위해 거액의 보조금을 투입하며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에만 '이중 족쇄'를 채워서는 안 된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당장의 주주 환원 압박에 밀려 장기적인 기업 가치가 훼손될까 우려스럽다.자사주 소각 강제화는 기업이 보유해야 할 유동성을 소진시켜 연구개발(R&D)과 신산업 진출을 가로막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단기 주주들의 요구에 밀려 곳간을 비운 기업이 글로벌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다를 바 없다.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정부 역시 경영자가 '주가 관리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기업의 자율적 경영 판단을 존중하고 경영의 영역을 과도하게 사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기업은 주주, 고객, 근로자가 함께하는 사회적 공동체다. 경영이란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고 구성원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기업이 규제의 숲을 헤매느라 성장의 타이밍을 놓친다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국가 경제의 몫이다.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 한국 경제에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이 절실하다. 경영자가 형법전과 상법 조문을 뒤지는 대신 미래 기술을 연마하고 초일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최후의 경영권 방어 수단마저 빼앗긴 채 기업을 사지로 떠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정부와 국회는 규제의 칼날을 들이밀기에 앞서 기업이 왜 자사주라는 방패를 들 수밖에 없는지 살펴야 한다. 기업 또한 투명한 경영과 혁신으로 사회적 기대에 응답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 들불처럼 일어날 때 대한민국 경제에 새로운 영대(靈臺)를 세울 수 있다.
[데스크칼럼] 2부 리그 코스닥, '체질 개선' 기회가 왔다
"한국거래소는 일종의 백화점인데 상품 가치가 없는 가짜·썩은 상품이 많으면 누가 가겠는가. 상품 정리부터 확실히 하고 좋은 신상품을 신속 도입해 고객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쏟아낸 다소 강경한 발언이다. 코스피 5000포인트 시대와 함께 코스닥도 4년 만에 1000포인트를 찍으며 상승세가 가파르지만 아직 내실이 부족해 시장 신뢰도가 떨어지고 불공정거래가 난무해 스스로 발전을 저해한다는 시각으로 해석된다.이 대통령의 글은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코스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세제 개편, 부실기업 퇴출 방침을 밝힌 발언과도 맥락이 같다. 구 부총리는 지난달 29일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며 "코스닥 벤처펀드 소득공제 대상 한도 확대 등 세법 개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추진하고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을 통해 투자자 신뢰를 제고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정부가 코스닥 신뢰도 제고를 통한 내실 다지기에 들어가면서 부실한 재무구조에도 상장사 타이틀을 달고 연명해온 이른바 '좀비기업'들이 떨고 있다. 한국거래소도 오랜 기간 이어진 국내 증시 저평가 키워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고 코스닥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조치에 나선다. 이달 안에 코스닥 시장본부의 상장관리부에 상장폐지 심사팀도 별도로 만들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인력 수급과 조직 현황 등을 고려해 관련 팀을 부서로 확대할 계획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도 상장사를 유지하기 위한 매출·시가총액 요건을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올해 코스피 상장 유지 요건은 시가총액 200억원, 매출 50억원 이상이고 코스닥의 상장사 유지 기준은 시총 150억원, 매출 50억원 이상이다.최근 코스닥에서 23개 기업이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기술특례 상장 과정서 '매출 뻥튀기' 논란이 불거졌던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설계(팹리스) 전문 기업 파두는 거래소로부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받아 지난해 12월19일 이후 30거래일 만인 이달 3일 거래정지가 풀려 기사회생했다. 이 대통령의 자본시장 활성화 의지와 맞물린 거래소의 부실기업 퇴출 속도전은 시장 가치가 풍부한 기업에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 마련이 기대된다. 부실기업 퇴출을 통해 혁신에 속도를 높인다면 코스닥 본연의 체질도 동반 상향될 것이 자명하다.1년 전만 해도 지수 2000포인트대였던 코스피는 어느덧 5300을 넘었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상황이다. 지수 1000포인트를 넘어 '천스닥'으로 변모한 코스닥의 다음 목표는 3000포인트에 이름을 올리는 '삼천스닥'이다.코스닥엔 짧은 기간에 치고 빠지는 개인투자자 비율이 약 65%인 만큼 변동성이 심한 데다 특정 기업에 대한 상장 폐지 시그널이 자칫 지수 전체 상승의 발목을 잡을 우려도 있지만 혁신을 위한 출발은 단호해야 한다. 건강한 상장기업이 모여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면 코스닥의 대도약은 물론 국내 증시의 가치 상승도 기대된다.코스닥은 언제까지 코스피의 2부 리그 취급을 받을 순 없다. 대장주가 되면 호시 탐탐 코스피 이전 상장을 노리는 지렛대 역할에만 국한 돼선 안 된다. 코스닥 그 자체로 투자자를 유입시킬 매력을 발산시켜야 한다. 가파른 상승 탄력받은 코스피처럼 코스닥에도 지금이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부실기업 퇴출 속 위기론에 불을 지피기보단 예방주사의 따끔함이 시장 전체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음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데스크칼럼] '기술유출=패가망신' 처벌 강화해야
주요 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술유출 범죄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특허 기밀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고 전직 삼성전자 직원 A씨와 이를 활용해 거액의 특허 계약을 체결한 특허관리형법인(NPE) 대표 B씨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삼성전자의 기밀을 유출한 직원은 대가로 100만달러를 챙겼다고 한다. B씨는 이 자료를 활용해 삼성전자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했고 30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지난해 말에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10나노급 D램 국가핵심기술을 중국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에 유출한 삼성전자 전직 임직원 10명이 기소됐다. CXMT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D램 양산에 성공했다. 검찰 수사에서 CXMT가 삼성전자 외에도 SK하이닉스의 D램 공정정보를 빼돌린 사실도 추가 적발됐다. 검찰은 해당 기술 유출로 우리 기업이 입은 피해가 수십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기술유출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국가경제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하는 중대 범죄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반도체를 비롯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의 기술을 빼돌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해외 기술 유출 범죄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도 2021년 9건, 2022년 12건, 2023년 22건, 2024년 27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범죄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 핵심기술을 유출하면 3년 이상의 징역과 65억원 이하의 벌금을, 산업기술을 유출한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처벌은 규정에도 미치지 못한다.한국지식재산연구원은 기술유출 범죄에서 징역이 선고될 경우 통상 1년2개월~1년6개월에 그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진지한 반성, 초범 등을 감경사유로 인정해 처벌 수위를 낮추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4년 3월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은 징역 9년에서 15년, 국내 유출은 최대 징역 6년에서 9년으로 상향했지만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기술유출 범죄자들에 대한 실제 처벌이 어떻게 내려질지는 지켜봐야할 일이다. 첨단산업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국가 경제안보를 해치는 기술 유출범죄에 온정을 베풀어선 안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자본시장을 어지럽히는 주가조직 행위에 대해 '패가망신' 수준의 단호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한국 산업과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기술유출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유출=패가망신'이라는 경종을 울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데스크 칼럼] '강북 지하고속도로' 기대보다 우려
재선을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북횡단 지하도시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한다. 강남·북 균형발전을 이루고 강북 주민의 표심도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재정 문제가 난관이다.강남·북 균형발전은 여야가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온 어젠다다. 정책의 연속성 면에선 리스크가 작지만 중앙정부와 민간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오 시장은 시 예산 3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강북횡단 지하도시 고속도로는 성산-신내 나들목(IC) 내부순환로와 북부간선도로 약 22.5㎞ 구간의 고가를 철거하고 왕복 6차로 지하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지상에는 녹지 공간을 조성한다.서울시가 추정한 1단계 사업비는 3조4000억원. 내부순환로 하월곡-성동 분기점(JCT)을 동일한 방식으로 사업 진행시 추가로 1조2000억원가량이 필요할 전망이다.오 시장은 "서울시 예산이 연 51조원을 넘기 때문에 사업 기간을 10년으로 가정해도 연 3000억원 수준"이라며 "전체 예산의 0.6%여서 부담이 어려운 규모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그러나 이는 추가 사업비를 제외한 추정 기준일 뿐인 데다, 교통 수요를 반영해 세부 사업계획을 세우고 향후 공사비 상승분도 감안할 경우 예산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서울시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받지 않기 위해 정부 지원을 포기했다. 여러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말을 아낀다. 시는 민간 투자 유치에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예산 논란을 의식한듯 서울시는 해당 정책의 공개 전날인 지난 12월17일 '균형발전과 국가재정 효율화를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제도 개선 대토론회'를 열어 2019년 발표한 강북횡단선의 예타 심사 문제도 지적했다. 시는 현재 예타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사업비 40억원)을 진행하고 있다.국토교통 전문가들은 강남·북 균형발전과 지하고속도로 건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등 인프라 과잉 개발은 국토 전체의 불균형을 부추기고 '유인 수요' 효과에 따라 도로의 양적 증가는 교통 혼잡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하다.새로운 병목현상에 의한 정체 가능성, 그리고 화재·사고에 대비한 안전대책과 법 제도 마련이 철저히 준비돼야 하는데 긴 시간 동안 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이 논의만을 반복하고 진전을 이루지 못한 데는 이러한 문제들이 있다. 해외 선진도시와 국내에 일부의 성공 사례가 있음에도 경부고속도로와 인천·대전 등의 지하고속도로 사업을 추진해온 중앙·지방정부는 번번이 현실화의 벽을 넘지 못했다.도시 인프라 정책은 정치 공약이 아닌 행정가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지하고속도로 사업을 공약한 바 있고 서울시장 후보로 예상되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강북 지하고속도로 사업계획에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는 "강남·북 불균형이 불필요한 통행량과 가계비용을 늘려 도시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면서 "영동대교 개발에 강북의 세금을 투자했듯 강북 지하고속도로 건설은 '공간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당위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의 고민이다. 교통보다 교육·의료·문화 인프라와 기업 인재 육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서울시 계획에 따라 강북 지하고속도로는 2030년 착공해 2037년 완공이 목표다. 다음 서울시장이 누가 돼도 임기 말에 이르러 가까스로 착공할 수 있는 일정이다. 인프라 사업의 특성상 지연 리스크도 예상해야 한다. 2009년 기본계획이 공개됐던 정책사업의 로드맵을 선거 6개월 남겨놓은 시점에 다시 추진하는 부분은 너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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