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기자수첩] 가격 인상 자제, 압박만이 능사인가
"해외에서는 식품류 가격 인상에 우리만큼 저항이 세지 않다. 우리는 라면값 50원만 올라도 정부와 소비자로부터 '물가 인상의 주범'으로 비판받는다. 이러한 반발을 모두 감안하고서라도 가격 인상을 결정하는 건 '최후의 수단'이라는 뜻이다. 기업은 환율과 원부자재 가격, 인건비 등을 모두 계산해 최소 인상 폭을 설정한다."식품 가격 인상 이슈가 한창일 때 한 식품업계 관계자가 했던 말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탄핵 사태에 따른 국정 공백 기간에 가격 인상이 이어졌을 때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이달 초만 해도 라면(오뚜기·팔도), 맥주(오비맥주), 햄버거(롯데리아·노브랜드 버거·KFC) 가격이 올랐다. 정부의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식품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자 '하필이면 이때냐' '기습 인상이다' 등 비판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탄핵 정국으로 혼란한 틈을 타 그동안 정부에서 진정시켜 온 가격을 기습 인상했다는 지적이다.식품 업계는 원재료 가격과 환율 등 불리해진 대내외적 환경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가격 인상 도미노 현상을 두고 '터질 게 터졌다'고 한다.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인하했던 가격을 원래대로 되돌린 기업도 있다.환율과 원재료 가격 상승은 기업들을 지속해 압박해왔다. 2023년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305.4원, 지난해엔 1365.1원 수준이었으나 최근 국내외 정세 불안과 관세 전쟁 등 영향으로 1470원대를 찍었다. 원재료 가격이 동일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선 2023년보다 원료 수입 가격이 12.6% 오르는 셈이다.일부 주요 원재료 가격은 지구 온난화와 병충해 등 영향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이달 들어 커피(아라비카)의 톤당 평균 가격은 8426.2달러로 전년 동기(4866.4달러) 대비 73.2% 높아졌다. 최근 아메리카노 가격 인상폭은 ▲스타벅스 4.4% ▲투썸플레이스 4.4% ▲메가커피 13.3% ▲컴포즈커피 20.0% 등이다. 원두 가격 증가 폭에 비해 가격 인상 폭은 낮은 수준이다.정부는 국정 공백에도 기업에게 물가 안정 협조를 구해 왔다. 농식품부 송미령 장관과 박범수 차관이 식품기업 간담회를 열고 물가안정 노력에 동참해달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 정부는 주요 원재료 할당관세 적용, 수입 부가가치세 면제, 원료구입 자금 지원 등을 다각적으로 돕고 있다는 입장이나 기업들 입장에서는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본질적으로 물가 안정화를 위해서는 환율, 원재료 가격, 관세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그저 기업에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고 압박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기업들도 가격 인상에 따른 후폭풍을 감안하고서라도 가격을 올리는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지 않을까. 조기 대선 이후 컨트롤타워가 생기면 물가 안정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책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자수첩] 못다 핀 국가대표 걸그룹의 골든타임
차세대 블랙핑크를 꿈꾸던 다국적 걸그룹 '뉴진스'가 1년째 별다른 활동 없이 공회전하고 있다. 2022년 데뷔 직후 돌풍을 일으키며 K-팝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했지만 현재는 송사로 얼룩진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음악적 성과보다 이슈로 점철된 이들의 현주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이들은 출구 없는 미로에 빠지며 재도약을 위한 골든타임을 속절없이 날리고 있다. 뉴진스는 1년 가까이 광고를 비롯한 일부 스케줄만 소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의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현 상황을 보면 경영진의 싸움이 아니라 뉴진스가 스스로 전면에 나서 총대를 멘 모습이다. 민희진 전 대표는 사실상 언론 노출을 피하고 있는데 뉴진스가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법적 다툼의 중심에 섰다. 독단적인 행보를 보이며 사실상 '계약 파업' 상태다. 가처분에서 소속사 어도어의 지위가 인정됐음에도 본안 소송에서 다시 시비를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라는 시각이 많다. 최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더 큰 논란을 자초했다. 뉴진스는 최근 BBC 코리아 및 타임지를 통해 "한국 법원 판단이 실망스럽다"며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여기에 "K-팝 산업 문제가 하룻밤 사이에 바뀔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며 K팝 산업 전반을 싸잡아 비판했다. 국내 여론은 악화일로다. K-팝을 대표하는 그룹으로서 성숙하지 못한 태도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지난해 민희진 전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잠시 뉴진스를 향해 기울었던 동정론도 사라지고 있다. 뉴진스 사태는 K-팝 산업에서 이례적이다. 아이돌 그룹은 기본적으로 소속사 기획력과 지원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시스템에 놓여 있는데 일방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법적 공방에 집중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무엇보다 걸그룹은 수명이 짧다는 특성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 아티스트가 등장하고 팬들의 관심이 빠르게 이동하는 환경에서 1년 이상 공백은 치명적이다. 이미 가처분에서 한번 진 뉴진스가 본안에서 이를 만회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시선이지만 유리하게 판결이 나온다 해도 뉴진스가 예전과 같은 인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어도어 대신 다른 소속사를 찾기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신뢰 관계를 일방적으로 깨버린 전례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나빠져 버린 여론도 활동 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이브는 뉴진스 사태로 말미암아 자사의 핵심 기조인 레이블 체제를 지키기 어렵게 됐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극대화할 줄 알았던 하이브의 전매특허 경영 전략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다. 전속계약의 무게마저 흔들리면서 다른 엔터사들 역시 고민이 깊다. 뉴진스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한다면 법적 공방이 아니라 음악과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K-팝 산업도 지적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뉴진스가 보여주고 있는 방식이 최선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팬들조차도 그들에게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뉴진스는 단기간에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며 K-팝 걸그룹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한국의 자랑으로 거듭나는 와중에 암초를 만났다. 어도어는 절대 소송전을 포기할 수 없다. 소속사로서 이러한 선례를 남기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뉴진스는 원만한 합의를 통해 본업으로 복귀하는 것이 남는 장사다. 끝없는 법적 줄다리기는 관련자 모두에게 피해만 남을 수밖에 없다.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선 더 늦기 전에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기자수첩] 리더십 잃은 방사청에 멍드는 KDDX
서기 9년, 로마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겪었다. 당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마니아 정복을 위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지만 명확한 전략을 세우지 못한 채 결정을 미뤘다. 지시가 모호하자 로마군은 방어와 진격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그 빈틈을 놓치지 않은 게르만족이 기습을 감행했다. 방어진조차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로마군은 사흘간 포위당해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다. 3만5000명의 병력은 몰살당했고 포로로 잡힌 이들도 끝내 살해됐다. 이 비극은 결단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역사적 교훈으로 남아 있다.20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이 그 전철을 밟고 있다.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사이에서 최선의 선택을 기다리며 결정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25일 방사청은 정례회의에서 오는 27일 예정된 방위사업기획 관리분과위원회에서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관련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초 방사청은 이달 17일 사업 방식을 확정할 계획이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이례적으로 27일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개발 중 사업 방식이 결정될 전망이었으나 논의 자체가 무산됐다.결과를 기다리던 방산업계에선 사업이 또 미뤄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번 분과위 논의 결과에 따라 수주 기업을 가늠할 수 있기에 수년째 지속되는 갈등에 마침표가 찍힐 것이란 기대가 컸다. 방사청이 관례대로 수의계약을 진행한다면 기본설계를 진행한 HD현대중공업이, 경쟁입찰에 나선다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경쟁한다. 경쟁입찰에 나설 경우 보안감점을 적용받는 HD현대중공업이 불리하다.하염없이 방사청의 결정을 기다리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는 로마군과 비슷한 처지다. 이들은 방사청의 결정에 따라 다음 사업 계획을 논의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데 KDDX 기본설계가 끝난 지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에 대해선 정해진 바가 없다. 사업이 미뤄지는 사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도 깊어졌다. 두 회사는 지난해 고소·고발전을 벌이며 감정의 골을 키웠다. 결국 양쪽 모두 지난해 11월 10조원 규모의 호주 호위함 입찰 과정에서 동반 탈락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코리아 원팀'을 구성하지 않고 각각 사업에 뛰어들어 경쟁국에 밀리고 말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비판이 커지자 양측은 마지못해 고소·고발을 취하하며 화해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근본적인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이 모든 혼란의 근본 원인은 방사청에 있다. 왕정홍 전 방사청장이 수사받는 동안 KDDX 사업은 사실상 멈춰섰고 방사청은 문제의 책임을 양사 갈등 탓으로 돌리고 있다.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은 지난해 양사에 서한을 보내 "적기 전력화는 국가 안보와 번영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핵심 전력이 제때 확보될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양측 갈등으로 인해 KDDX 사업이 지연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더 이상 결정을 미룰 시간은 없다. KDDX 선도함은 2030년 10월 투입될 예정이며 이를 위해서는 늦어도 2029년까지 함정이 인도돼야 한다. 건조 기간을 고려하면 상반기 내에 선도함 건조 업체를 선정해야 전력화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다.완벽한 결정을 기다리다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우유부단한 결정이 초래한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의 비극이 2025년 대한민국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방사청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기자수첩] 김빠진 '토큰증권' 제도화
최근 열린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STO(토큰증권) 법안이 논의되지 않았다. 여야 간 큰 이견이 없음에도 STO 법안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지연됐다. 이번 422회 임시국회 내 처리가 어려울 전망이다. STO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 토큰화된 분산원장에서 발행 및 유통이 가능한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의미한다.업계에선 STO 논의 불발 소식에 실망감이 커진 상태다. 증권사들은 이미 시스템 구축을 마치고 제도 인가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23년에 이미 시스템 구축을 끝냈으며 카카오뱅크·토스뱅크·카카오엔터프라이즈·오픈에셋 등이 참여한 STO 협의체인 '한국투자ST프렌즈'를 구성했다. KB증권은 신한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과 손잡고 'STO 증권사 컨소시엄'을 통해 공동 인프라 구축을 넘어 전략적 사업모델을 발굴할 예정이었다.한 증권사의 블록체인 전문가는 "증권사들이 관심을 기울였던 상황 속 예상외로 법안 통과가 늦춰져 김빠지는 상황"이라며 "시장 관심이 사그라지면 다시 활성화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TO 제도화 타이밍을 놓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조각투자 사업자들 역시 혁신금융투자 서비스 계약 만료를 올해 앞두고 있어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이다.자본시장연구원 등 전문가들도 개정안 불발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실 선임연구위원은 "매우 아쉽다"며 "분산원장을 활용한 지급결제가 국제적으로 확산하고 있고 자산의 토큰화라는 RWA(리얼월드에셋) 상황 속 우리도 어서 법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WA는 부동산·예술품·귀금속·주식·채권 등 실제 존재하는 자산을 블록체인상에 토큰화해 소유권을 증명하는 디지털 자산을 뜻한다. 블록체인은 불변성의 특징이 있어 모든 거래 내역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공개된다는 점에서 투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STO 제도화는 금융시장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기본적 입법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자산의 토큰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올해 미국 증권형 토큰 시장은 500억달러(약 73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선 주식이나 채권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RWA 토큰이 출시됐다. 글로벌시장에선 세계적 투자은행 제이피모건의 Onyx(오닉스) 플랫폼과 세계적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BUIDL(비들) 플랫폼이 기존 금융투자상품과 지급수단을 토큰화해 분산원장 기술에 기반한 금융혁신을 이루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20년 STO 제도를 갖춰 부동산·영화 프로젝트·그린본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STO를 활용 중이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에 따르면 STO 시장의 국내 시가총액은 지난해 34조원에서 2028년 233조원, 2030년에는 367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다수의 금융사와 조각 투자사들이 금융당국의 정책 추진을 믿고 STO 사업을 준비해왔다. 금융당국은 업계와의 신뢰를 회복하고,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STO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에서 통과하게 되면 해당 개정법안 입법화와 함께 관련 하위 규정 역시 정비가 필요하다.
[기자수첩] 미래운용 분배금 축소지급 논란… 신뢰 회복 가능할까
"단순히 배당금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죠. 분배금으로 장난치는 운용사를 어떻게 믿고 투자를 하겠어요?""TIGER(타이거) 주주들의 뒷통수를 때린 거죠. 신뢰를 잃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미래에셋자산운용 ETF(상장지수펀드) 투자자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최근 미국 대표지수인 S&P500과 나스닥100지수를추종하는 'TIGER미국S&P500'과 'TIGER나스닥100'의 올해 1월 분배금을 축소 지급해 논란이 일었다. 1월 말 기준 'TIGER미국S&P500'의 발생 분배금은 65원이었지만 이 중 20원만 분배했다. TIGER 미국나스닥100'은 243원의 분배금이 발생했지만 이 중 70원만 분배됐다. 각각 30%, 70%에 달하는 금액을 펀드가 현금으로 보유한 것이다.이에 대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펀드 외국납부세액 과세 방법 개편 사항을 반영하고 절세 계좌 내 이중과세 이슈를 감안하는 과정에서 배당금이 보수적으로 책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다른 운용사들은 모두 전 분기와 동일한 분배금을 지급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해명에 의문이 들게 했다.미래에셋자산운용은 투자자들에게 불이익은 없다고 했다. 분배금은 소득세법 상 유보 가능한 이익을 제외하고 해당 년도 내 투자자에게 모두 분배하도록 되어있다. 또 1분기 잔여 분배금은 순자산가치(NAV)에 반영돼있기 때문에 ETF를 선매도했더라도 투자자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은 없다는 설명이다.설령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판단이 타당했다고 하더라도, 투자자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이 없다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분배금을 축소 지급했다는 것이 문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분배급 지급 전 투자자에게 아무런 사전 안내를 하지 않았다. 분배금이 지급된 후 논란이 생기자 뒤늦게 축소 지급 사실을 인정하고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사후 조치도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월 미지급 배당분을 4월 말 기준 배당분에 더해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미지급된 투자금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투자자들은 당초 받았어야 할 분배금을 3개월이나 밀려 받게 된 셈이다. 한 투자자는 "고객이 받았어야할 돈을 늦게 주는 동안 발생하는 금전적 손해도 고려해야 한다"며 "돌려주기만 하면 끝이냐"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투자자와 소통 부족'이다. 당초 분배금을 축소 지급하기 전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사전 고지를 하지 않았고 사후 조치에 대해서도 투자자와 소통이 아쉬웠다는 지적이다.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내 ETF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초대형 운용사다.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투자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투자자들은 더 큰 실망을 표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안의 본질은 투자자들에 대한 배려"라며 "규정상 문제 없다하더라도 기존과 사정의 변경이 있다면 투자자들에게 선제적으로 알리는 노력도 병행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깨진 유리컵을 완벽하게 다시 붙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한번 깨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이보다 더 어렵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기에 상당히 오랜 시간과 큰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수첩] 대국민 투자교육 플랫폼 없앤 금투협회장
금융투자협회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제공했던 금융투자 교육 플랫폼 '알투플러스'가 조용히 종료됐다. 금융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이러한 결정은 아쉬움을 남긴다.알투플러스는 2021년 나재철 전 협회장 시절에 출시된 플랫폼으로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 원칙과 방법을 정립할 수 있도록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해왔다. 개인투자자의 금융지식 향상과 투자자 보호, 건전한 투자 문화 정착을 목표로 했던 이 프로그램은 금융교육이 부족한 시장에서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도입 초기 협회는 알투플러스의 보급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계획했다. '알투플러스 서포터즈'를 발족하고 대학생, 중·고교와 업무 협약을 통해 교육 현장으로 저변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고령층 맞춤형 콘텐츠를 추가해 전 연령대가 고루 향유할 수 있는 종합 교육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힌 바 있다.그러나 서유석 협회장 취임 이후 이러한 계획은 차츰 동력을 잃고 결국 지난해 사업 종료로 이어졌다. 협회 관계자는 사업 효과와 유지 관리의 어려움, 비용 등을 이유로 종료를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협회장 교체로 인한 사업의 일관성 부족을 가리기에는 충분치 않다.금융투자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투자자 보호와 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서 회장은 취임 이후 국민 자산 형성을 위한 환경 조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최근 열린 출입처 기자간담회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에도 퇴직연금의 90%에 육박하는 비중이 여전히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며 안정적 운용과 수익률 제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연금자산은 장기적인 투자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금융교육은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을 관리하고 시장 변동성을 이해하며 적절한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 필수적이다.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연금자산은 리스크 관리도 중요하다. 금융교육을 통해 투자자들은 다양한 투자 상품의 리스크와 수익률을 이해하고, 자신의 위험 수용 능력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어서다.이처럼 연금자산 투자와 금융교육의 필요성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알투플러스를 통해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재정비했다면 어땠을까. 협회가 보다 효과적이고 포괄적인 교육 지원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기자수첩] '바이오=제2반도체' 외친 정부… 지원 속도 높여야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과 맞물린 자국 산업 보호주의 강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조 심화 등 국제 통상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저성장 기조와 투자심리 위축 등 경제 지표와 산업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을 느끼게 하죠. 안정적인 연구개발 및 투자 유인을 위한 예측 가능한 정책이 필요합니다."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국내외 제약·바이오산업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최근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말 그대로 '시계 제로' 상황에 놓였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각)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 중심의 탈중국 정책은 중국이 장악한 원료의약품 분야에서 공급망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원/달러 환율 1400원을 웃도는 고환율 상황은 해외 임상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한국바이오협회는 대한상공회의소의 '고환율 기조가 주요 산업에 미치는 영향' 조사에서 "국내 기업 대부분은 원료의약품 및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입 의존도가 높다"며 "(고환율로) 해외 임상 비용 상승 등 R&D(연구·개발) 투자비용이 증가하고 있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정부는 지난해 바이오를 제2 반도체 산업으로 꼽고 집중 지원을 약속했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 등을 거치며 지원 속도가 느려졌다. 지난해 12월 출범 예정이었던 국가바이오위원회가 한 달가량 늦은 올 1월 닻을 올린 게 대표 사례다. 이마저도 윤석열 대통령이 아닌 최상목 권한대행이 위원장 자리를 잠시 맡게 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국가바이오위원회는 바이오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며 정작 대통령은 위원회에 관여할 수 없게 됐다. 최 대행이 위원회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 바이오의 대전환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상 유지에 집중해야 하는 권한대행 체제 특성상 급진적인 지원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불행 중 다행은 어찌 됐든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출범했다는 사실이다. 비상계엄 사태 초반이었던 지난해 말, 올해 초 위원회 출범 자체가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던 시기보다는 상황이 낫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범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위원회에 힘을 실어줘야 국내 기업들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위원회 출범 당시 정부는 ▲한국형 바이오클러스터 구축 ▲바이오 규제혁신 및 바이오 안보 강화 ▲데이터 기반 R&D 패러다임 전환 등의 목표를 내세웠다. 탄핵 정국이 지속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 차기 대선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지만 위원회는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빠르게 역량을 모아 목표 달성을 이뤄야 한다.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가바이오위원회 출범 연기 같은 정책에 차질을 빚는 선례가 반복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자수첩] '중국티' 벗은 중국차 공습에서 살아 남기
"우리는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목표 판매량이 없는 이유입니다" 지난 16일 한국 시장 본격 공략에 나선 류쉐량 BYD 아시아태평양 자동차 영업사업부 총경리가 선전포고 했다. 파격적인 BYD 선언 이면에는 비용과 시간에 상관없이 자본을 직접 투자해 국내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자신감이 담겨있다. 한국 시장을 테스트베드 삼아 글로벌 시장 점유율 높이겠다는 중국 자동차 업계의 야망도 있었다. 지난해 중국 토종 자동차 업체의 수출량은 전년 대비 19.3% 늘어난 586만대다. 2023년에는 일본과 독일을 넘어선 자동차 수출 1위 국가가 됐다. 2019년 29만대에 불과했던 중국 자동차 수출은 2022년 100만대를 넘어선 후 2년 만에 200만대를 돌파했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으로 내수와 제 3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남은 건 주요 선진국 자동차 시장이다. 다소 투박했던 과거와 공격 방식도 다르다. 현대자동차가 독일 BMW의 고성능차 개발을 지휘하던 알버트 비어만과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전환기를 마련했다면 중국은 브랜드를 '통'으로 산다. 인수합병을 통해 해외 브랜드를 사고 현지기업과 협력해 촘촘한 유통채널을 구축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해외시장을 향해 뛰는 BYD 위에는 나는 상하이차와 지리차가 있다. 지리차는 볼보의 프레임, 벤츠와 합작해 만든 파워트레인을 통해 르노의 자동차를 만든다. 중국차 DNA가 드러나지 않는 브랜드 '택갈이'다. 브랜드 포식자 지리차는 2010년 스웨덴 볼보 자동차의 지분 인수를 시작으로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회사 다임러 AG, 르노코리아, 영국 스포츠카 로터스의 지분을 인수했다. 누적 해외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한 상하이자동차그룹(SAIC)은 영국 브랜드 MG(Morris Garage) 인지도를 앞세워 R&D-제조-마케팅-물류-금융을 총 망라하는 산업망을 구축했다. 해외에서 판매한 중국 자동차 3대 중 1대를 SAIC으로 만든 비결이다. 최근 금융업체도 설립해 현지 자동차 금융시장 진출도 노린다. '메이드인 아메리카'를 외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등장한 미국 시장도 사정권이다. 트럼프는 대중국 관세에는 일관적으로 강경한 입장이지만 중국 완성차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에 대해서는 환영하고 있다. 생산기지 건설로 현지 공략에 나서는 중국차에게는 나쁘지 않다. BYD는 유럽연합이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47.6%의 고율 관세를 적용한지 불과 사흘 만에 튀르키예 정부와 공장건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인물 일론 머스크도 변수다. 그의 회사 테슬라는 생산·판매의 50%, 배터리 공급망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보급형 차량, 버스, 단거리 화물트럭, 단거리 선박 등에 LFP 배터리를 대량 탑재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밝힌만큼 일론 머스크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대미 진출을 도울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 속에 BYD의 한국 진출은 글로벌 TOP3 완성차 기업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다. 후발주자들이 그렇듯 중국차의 해외시장 공략은 과거 현대차그룹의 서구시장 개척과 닮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이상 '가성비 차'로 승부를 보기에는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중국차 공습에 맞설 현대차 전략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수소다. 1998년부터 수소 관련 기술을 개발해온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3년까지 연평균 12조원을 투입해 수소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중국 또한 국가 주도로 수소차 보급 확대, 충전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이다. 한국 수소차 기업은 현대차가 유일한데 중국은 SAIC, 둥펑자동차, 이치그룹 등 10곳이 넘는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기술'뿐이다. 현대차가 앞으로 보여줄 연구·개발 투자와 전략적 파트너십이 주목된다. 적과의 상생도 마다 않는 현대차 전략이 주목되는 배경이다. 현대차가 수소 사회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자수첩] K패션, '정직'해야 산다
패션업계가 '패딩 충전재 허위 표기' 논란으로 시끄럽다. 이번 논란으로 국내 소비자의 신뢰를 잃을 뿐만 아니라 갓 탄력을 받고 있던 K패션에도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된다. 소비자들은 업계의 개선책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한번 잃은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는 사실만 재확인할 뿐이다.이번 논란이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은 한 소비자가 무신사에 입점한 브랜드 라퍼지스토어 상품을 시험기관에 조사·의뢰하면서다. 라퍼지스토어는 한 패딩 상품 충전재의 80%가 오리 솜털로 이뤄져 있다고 기재했다. 조사 결과 오리 솜털은 3%에 불과했다.중소 브랜드뿐이 아니다. 유통 대기업인 이랜드월드의 후아유가 판매한 한 구스다운은 '거위털 80%'라고 표기했지만 실제 거위털은 30%였다. 이 사례 역시 소비자가 충전재 혼용률에 관해 문의를 남긴 후에야 이랜드 측에서 충전재 재검사에 나서면서 알려지게 됐다.해당 브랜드들은 "생산업체만을 믿고 확인을 소홀히 했다"고 해명했다. 제조는 다른 업체에 맡겼고 상품 하나하나를 다 뜯어볼 수 없었다는 변명이다. 복잡한 유통구조로 확인이 어려웠다는 점은 궁색한 핑계일 뿐이다.업계에서는 패션업계가 원가 절감 차원에서 소재를 속여오던 병폐가 드러났다고 본다. 소비자가 패딩을 직접 조사기관에 맡겨 확인해보지 않는 이상 혼용률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제조업체는 다른 소재 비율을 높여 사용했고 중저가 브랜드들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브랜드들도 소비자들이 먼저 패딩 혼용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문제가 밝혀졌다. 여태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안 걸리고 어물쩍 넘어간 브랜드도 있을 것이다.한 패션뷰티산업 관련 교수는 "패션뷰티는 '이미지 사업'"이라며 "브랜드 이미지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도 패션뷰티 산업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패딩을 직접 뜯어 보고 혼용률을 확인한 후에 구매할 수는 없다. 브랜드 신뢰도와 이미지가 중요한 이유다.국내 패션 브랜드 신뢰도 하락으로 수출에도 제동이 걸릴지 걱정이다. 이번에 논란에 휩싸인 이랜드는 중국을, 무신사는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중소 패션 브랜드부터 대기업까지 해외로 손을 뻗고 있다.K패션이 해외에서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박히면 이미지와 신뢰도를 되돌리기 쉽지 않다. 내수 부진에 따라 해외에서 살길을 찾은 우리 패션 기업들에게 치명적이다. 한국 패션 기업들이 해외에서 발목이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업계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해당 브랜드들은 공식 사과하면서 개선책을 제시했다. 무신사는 혼용률이 민감한 제품에 대해 외부기관 시험성적서를 필수로 받는 등 엄격하게 심사하겠다고 했다. 조동주 이랜드월드 대표는 원자재 수급부터 최종 제품 출하까지 전 과정에 걸쳐 품질 검증을 강화하고 반복적인 검수 절차를 추가해 보다 엄격한 품질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약속했다.다른 패션 플랫폼들도 선제적으로 관련 대책을 내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번 사태가 건강한 K패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기자수첩] 나무 아닌 숲을 봐야… 안타까운 정치권의 성과주의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를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소비자 후생 강화를 목표로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세부 조항들을 들여다보면 정책 방향성이 의문스럽다. 특히 제조사 판매장려금 자료 제출 의무화 조항은 삼성전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애플에는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모양새로 귀결될 수 있어 역차별이 우려된다. 이용자에 도움되는 실질적 변화보다 정치적 과실을 위한 근시안적 행태가 아쉽다. 단통법 폐지 논의 과정에서 포함된 판매장려금 자료 제출 의무화 규정은 제조사 지원금 축소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제조사가 정부에 제출한 판매장려금 정보가 외부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조업체가 판매장려금을 적극적으로 쓰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국내 단말기 제조 시장은 10년 전 단통법 시행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 LG전자가 몇 년 전 짐을 싸면서 삼성전자와 애플 과점 체제로 바뀐 상황이다. 애플은 한국 정부 규제에 무신경하다. 별다른 제재가 먹히지 않아 안하무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차례 국감장에 선 애플코리아는 항상 '쇠귀에 경 읽기'였다. 통신 3사에 지급하는 판매장려금 자료를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기업은 사실상 삼성전자뿐이다. 시장에선 판매장려금 경쟁이 전무한 형국인데 그나마 판매장려금에 힘쓰는 삼성전자의 의욕만 떨어뜨릴 수 있다. 정부가 아무리 기밀을 요한다고 해도 기업 입장에선 머리 위에 언제 떨어질지 모를 돌덩어리를 이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 이는 단통법 폐지 취지를 퇴색시켜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보조금 경쟁을 활성화해 생활의 필수품인 단말기 가격을 낮추자는 의도지만 판매장려금 공개는 엇박자를 내게 만들 것이다. 만일 판매장려금 내역이 유출되면 삼성전자가 해외 시장에 선보이는 단말기 가격 책정도 순탄치 않다. 가뜩이나 고가의 프리미엄 라인업에 힘을 쏟고 있어 판매장려금을 통한 가격 인하에 주저하고 있는데 이번 일로 일말의 여지마저 사라질까 걱정이 앞선다. 이벤트성 성과주의가 만든 규제의 함정이 문제다. 정치권이 가시적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정책의 본질적 효과를 놓쳤다고 본다. 정책은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시기를 놓쳤다는 단통법 폐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부차 조항과의 연결성을 긴밀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시장 환경을 면밀하게 살펴 정책을 입안해야 규제 리스크를 넘어설 수 있다. 개정안은 규제를 덜어주는 척하면서 새로운 부담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설왕설래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 이후 정치권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각자 수권정당이 될 욕심에 '반대를 위한 반대'가 난무하고 생산성 있는 논의는 힘을 쓰지 못한다. 정치권은 숲이 아닌 나무만 보는 조급함에 갇혔다. 단발성 성과주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진정한 소비자 후생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이 절실하다.
[기자수첩] '국익과 실용' 되찾아야
국익과 실용.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국정운영의 원칙으로 제시한 목표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자세로 모든 공직자는 대안을 모색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재계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기업 중심 성장' 가능성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첨단산업 육성과 경제 활성화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재계 단체들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적극 공감한다"며 반겼다.기대가 무색하게 윤 정부 출범 2년 7개월이 지난 현재 한국 경제는 과거보다 더 큰 위기에 놓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개월 전보다 0.2%포인트 하향한 2.3%로 조정했다. 지난 9월에도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기존보다 0.1%포인트 내렸다. 불과 2개월 만에 더 낮춘 것이다. 올해 한국의 누적 수출액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지만 증가세가 점차 둔화하고 있다. 이마저도 반도체를 제외한 업종은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지난 11월 기준 누적 총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3% 늘었으나 반도체를 제외하면 1.6% 증가에 그친다. 반도체 수출이 지난해보다 30.8% 증가하며 타 업종의 감소세를 상쇄했다.OECD는 수출 부진을 이유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1%로 내렸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3.3%) 대비 1.2%포인트 낮다.한국 경제를 견인할 주요 산업은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특히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한국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집중하자 중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기술 난도가 낮은 레거시(범용) D램을 쏟아내며 가격 하락을 주도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 거래가격은 지난 7월 2.1달러에서 지난달 1.35달러로 4개월 만에 35.7% 하락했다.석유화학업계도 중국산 저가 제품 유입으로 고전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부터 자국의 범용제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증설을 추진해 왔다. 국내 기업들은 공급 과잉에 고환율 부담이 가중돼 실적이 악화했다. 올해 3분기 기준 국내 4대 석유화학 기업 중 금호석유화학을 제외한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3사는 적자 전환했다.철강업계는 정부에 중국산 반덤핑 관세 부과를 요청했다. 중국에서 과잉 생산된 철강재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시장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사들은 원가 절감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정부의 지원 없이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호소한다.한국 경제는 탄핵 정국에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12·3 비상계엄 여파로 환율은 고공행진 중이고 위기에 대응할 리더는 직무가 정지됐다.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더라도 새로운 수장을 뽑기 전까지 시간이 필요하다.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지만 한국은 위기마다 특유의 저력으로 돌파구를 찾아냈다. 어려운 상황을 반전시켜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삼았다. 이번 사태도 모두가 힘을 모으면 위기는 극복될 것이고 새로운 동력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국익과 실용'을 되찾자.
[기자수첩] 정쟁의 겨울… 민생 법안도 꽁꽁 얼었다
언제부턴가 인간성의 권장 덕목이 '이성'이 됐다. 거기에 덧붙여 '인간은 늘 냉철한 논리와 이성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동물'이 돼야만 했다. 가장 신경쓰이는 핀잔은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느냐"다. 나부터도 그 질책을 피하려고 때로는 좋아서, 때로는 성질이 나서 한 행동들에 감정과는 무관했다며 이유를 찾으려 들었다. 시간이 흐른 뒤 힘든 일이나 불행한 일의 뒤를 살피면 그 이면에는 늘 오만함이 존재했다. 저들보다는 낫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이기심과 독선을 합리화했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니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이성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대부분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다. 문제를 비판하며 대안을 찾겠다던 이들도 부정하게 특권을 추구하거나 비윤리적인 일을 한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난데없는 비상계엄 사태와 극단적 정쟁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도덕적 우월감을 뽐내며 위선을 이성으로 감추는 정치권에 서민들의 삶은 더 춥고 힘들다. 12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날씨만큼이나 국민들의 삶도 얼어붙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민생을 살피는 데 집중해야 할 시기지만 비상계엄 여파로 정부와 국회가 마비됐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정쟁에만 쏠려 있다. 여당은 권력 이양을 위해 위헌적 발상을 이어가고 야당은 정부를 무력화해 조기 대선을 치르는 데만 관심이 있다. 민생과 예산은 정쟁의 무기로 전락했다.그들의 행동 원천에도 도덕적 우월감이 있다. 상대가 얼마나 끔찍한 지에 초점을 맞추고 나는 다르다고 뽐낸다.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도덕적 비교우위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이슈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 같은 여야 대립 속에 양측이 강조한던 민생 관련 예산은 증액 없이 통과됐다.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부와 여당이 반대한 야당 주도 '감액(減額) 예산'이다. 극단적 정치 대립이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마저 합의하지 못한 채 일방 처리된 것이다. 물가 폭등 등으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체감 물가와 직결되는 가계 통신비 인하도 요원해졌다. 정부는 올해 1월 '민생 살리기' 일환으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를 약속했다. 3차례 요금제 개편을 추진하고 단말기 가격 인하를 주문했다. 하지만 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으로 국회 일정이 올스톱 되면서 정부가 추진해온 '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에도 제동이 걸렸다. 민생 법안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 기본법도 표류하고 있다. 연내 제정이 유력시됐으나 탄핵 정국 속 여야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AI 기본법 통과 시기가 내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회 본회의에선 AI기본법 심의·의결을 지난 10일 처리하려고 했으나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이날 내란 혐의 규명을 위한 상설특검 수사요구안만 의결됐다. AI 업계와 학계는 해외 빅테크와 정부가 촌각을 다투며 AI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관련 제도와 투자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한다. AI 관련 제도 미비로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 강화에 선뜻 나서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탄핵 정국으로 한국 경제는 심각한 혼란에 빠져있다.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고물가와 고금리, 환율 변동에 의한 내수 침체가 현실화하고 있다. 민생의 겨울이 길어지지 않기 위해선 "서로를 파괴하려는 의제보다 우리 문제에 집중해달라"는 서민들의 외침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한국계 최초로 미국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은 "우리 정치에는 너무 많은 오만이 있다"며 "우리가 모든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가서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당들도 실천하길 원하는 것은 나의 바람뿐일까.
[기자수첩] HUG 부채 감축 위한 보증 규제는 '정부의 모순'
수년째 수면 아래 숨어있던 전세사기 사건이 2년여 전 이른바 '빌라왕 사태'로 부상했다. 전세보증보험을 운영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HUG는 전세 피해자들에게 집주인 대신 전세금을 반환하며 재정 사정이 급격히 악화했다. 지난해 전세보증사고 피해금을 변제하는 과정에서 당기순손실이 3조8758억원에 달해 역대 최대 적자가 발생했다. 올해도 상반기 기준 1조806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HUG는 연말까지 4조원에 육박하는 손실이 예상된다.이에 HUG는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7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금을 확충한 것은 이 같은 배경이 원인이다. 현재는 '112% 룰'로 불리는 보증 한도 축소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12% 룰은 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12%(공시가격 140%X전세가율 80%) 이내여야 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규제다. 현행 공시가격의 126%(공시가격 140%X전세가율 90%) 이내로 보증 가입 한도를 정하고 있는데 규제를 더 강화하는 것이다.HUG 보증 가입이 허가되는 전세금 기준을 낮추는 것으로 집주인에게는 전세가격 하락 효과를, 세입자에게는 보증 제한 효과를 가져온다. HUG는 대위변제액 중 집주인으로부터 회수한 금액이 올해 8월 기준 8%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보증 문턱을 높이는 명분이 된 것이다. 보증 규모가 축소되면 신규 세입자를 구하기가 힘든 역전세를 피할 수 없다. 이는 다시 전세금 미반환의 리스크를 키우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부동산 플랫폼 집토스 분석에 따르면 112% 룰이 시행될 경우 기존 전세계약 10건 중 7건은 동일 조건으로 보증에 가입하지 못하게 된다.이 같은 우려에도 HUG가 보증 한도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부의 경영평가가 지목된다. 기획재정부는 연례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통해 HUG가 부채비율을 줄이도록 압박했다. '2024-2028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에 따라 HUG는 부채비율을 지난해 116.9%에서 2028년 40.5%로 줄여야 한다. 부채비율을 낮추려면 전세보증 규모를 줄여야만 한다.전세사기 피해자가 잇따라 극단 선택을 하는 등 사회 문제로 확산되자 정부와 정치권은 HUG 전세보증 가입을 독려했다. 소비자들은 보증제도를 사회 안전장치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보증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재무건전성 관리 문제는 제도의 공공성 유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서민·중산층의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설립된 주택공기업이 보증사업을 영위하며 부채를 동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다. 국가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면서 사회 안전장치로서 보증사업을 운영하려는 것은 정부의 모순이다. 최근 HUG가 국회에 제출한 '2025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HUG에 대한 현물 출자가 '0원'이다. '2만4668명'. 지난달 22일 기준 정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 숫자다. 주택경기가 악화됨에 따라 앞으로 피해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추가 보증사고에 대비하는 정부 대책이 시급하다. 지속가능한 보증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을 멈추고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기고] 기업도 경영권 방어 수단 있어야, '한국형 포이즌필' 도입 절실
자본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사모펀드들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주주가치 제고를 기치로 기업을 인수하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외 대형 사모펀드들이 거대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적대적 M&A를 통해 투자자금 회수를 위한 단기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한 나머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비용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는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이 같은 적대적 M&A에 대항해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거나 실무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포이즌 필(Poison Pill)은 기존 주주들에게 싼 가격으로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옵션 권리를 부여해 인수자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방법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포이즌 필 이외에도 해외의 주요 국가에서는 주식의 종류에 따라 의결권 수를 차별적으로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지분율과 무관하게 거부권을 행사하는 황금주 등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할 뾰족한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결국 현 시점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가진 우량 기업이라도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자본의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자사주 취득과 처분 또는 백기사 확보 정도가 고작이며, 그 중 자사주를 통한 방어의 경우에는 법적 책임의 위험이나 재무적 부담 등으로 인해 실효성 있는 방어 수단으로 기능하기가 쉽지 않다.최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의 사례를 보더라도 국내에서는 적대적 M&A의 타겟이 된 순간 자사주 취득 이외에 활용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거의 없고 그마저도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을 등에 업은 대형 사모펀드의 공세에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현행 상법과 자본시장법은 적대적 M&A의 타겟이 될 수 있는 기업들의 손발을 묶어놓은 채 투기적 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고 있는 셈이다.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 내지 확대하기는커녕 정부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행법 하에서 사실상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는 자사주 처분마저 제3자 배정 신주 발행과 마찬가지로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만약 그러한 규제가 혹여라도 현실화된다면 고려아연 사례를 보면서 경영권 방어 수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상당수 기업들로서는 절망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무능하거나 부도덕한 경영진은 적대적 M&A를 통해서 교체됨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수한 경영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온 경영진에게는 다양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통해 적대적 M&A 시도에 대항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상식적인 '게임의 법칙'에 부합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때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재무적으로 부담이 적은 실효적인 수단이어야 한다. 자사주 취득과 같이 재무적으로 부담이 크고 법적 책임의 위험이 수반되는 방어 수단이라면 그러한 방어 수단을 써서 경영권 분쟁에서 이기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공산이 크다.이제 정부와 국회는 한국형 포이즌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1980년대 미국에서 포이즌필을 활용하여 무분별하고 약탈적인 M&A 문제에 대처했듯이, 우리나라도 이제 우량한 기업이 적대적 M&A의 공격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적절하고 실효적인 경영권 방어 제도 수립에 전향적으로 나설 때가 되었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상당수 우량기업들의 경영권이 해외 경쟁업체 또는 투기적 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에서 정치권과 정부는 만시지탄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경영권 방어 수단의 제도화 논의를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기자수첩] 지갑보다 마음을 공략, 다시 꿈꾸는 K-게임사들
국내 게임업계가 과금 모델(BM) 혁신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았던 적이 있다. 인터넷 하면 '공짜'를 생각하던 당시 유저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데 한국 게임사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지금은 전 세계 게임사들의 수익 공식이 된 '부분 유료화'도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이 개발했다.수익성이 검증된 부분 유료화에 더해 P2W(Pay-to-Win) 시스템 도입은 국내 게임사들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다. 게임사들이 큰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반감도 따라 커졌다. 과금이 아이템 강자를 만드는 게임 구조는 '돈이 곧 권력'인 현실 세계의 불평등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어서 유저들에게 차츰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다. "현질(부분 유료화 게임의 유료 아이템을 현금으로 사는 것)은 필수, 과금이 실력"이라는 조롱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국내 게임업계에서는 과금을 많이 유도할 수 있는 '돈 되는 게임'이 최우선 개발 과제로 꼽혔고, 창의성과 도전 정신은 저해됐다. 'K-게임 = 현질'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해외로 퍼져나가면서 대표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던 K-게임은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처지기 시작했다. 올해 3분기에도 글로벌 히트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넥슨과 크래프톤을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사가 실적 악화를 겪었던 배경이다. 유저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국내 게임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와 쇄신 필요성이 커졌다.이를 반영하듯 최근 국내 게임업계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반갑다. 불황 속에서도 '수작'으로 불릴 만한 다양한 장르의 게임 출시가 예고돼 재기의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4일 부산에서 열린 지스타 2024는 이런 변화를 눈으로 확인시켜 줬다.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일색이던 과거와 달리 '아크 레이더스' '퍼스트 버서커: 카잔' '인조이' 등 슈터,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시뮬레이션 등의 장르 게임이 공개됐다. 그뿐만 아니라 '퍼스트 버서커: 카잔' '붉은사막' '프로젝트S' 등 다양한 콘솔 게임 신작이 두드러지며 국내 게임사들의 콘솔 시장 진출 의지도 엿볼 수 있었다. 매출만 따지던 시대를 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정부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게임산업진흥 5개년 종합계획'을 통해 콘솔 게임 육성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선도기업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콘솔 게임의 평균 제작 기간과 비용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을 골자로 한다. 세계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이 44%, 콘솔 게임이 28%를 차지하는 가운데 국내 콘솔 게임 시장 점유율이 1.5%에 불과한 만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의 관심에도 불황으로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국내 게임사들은 실망한 눈치가 가득하다. 뒷받침하는 정부의 이해도와 지원 방식이 여전히 부족해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정책의 세부 내용은 선도기업 멘토링 프로그램 등 표면적인 지원에 그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소니, 닌텐도 등 주요 글로벌 콘솔 플랫폼사와 협력할 방침이라 설명했으나 이에 대해 각 사와 협의가 이뤄진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콘솔게임 제작 선도기업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 설명했으나 멘토링 프로그램에 누가 참여해 제작을 돕겠다는 것인지도 모호하다.관련 예산 편성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연평균 5%의 성장률을 통해 2028년까지 국내 게임 매출을 30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2025년에 편성된 콘솔 게임 관련 예산은 155억원에 그친다. 콘솔 게임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많은 인력, 자본 투입이 필요한 만큼 일본과 중국을 단기간에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게임사가 아직 콘솔 시장에서 걸음마 단계임을 고려하면 더욱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정책이 여론을 의식한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책 목표는 좋으나 실행력과 디테일이 부족해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K-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정교한 정책 개발과 과단성 있는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규제 중심의 접근 방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게임은 상용화되기까지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여러 번 넘어야 하는 고위험·고수익 산업이다. 많은 인력과 개발비가 투입된 게임이라도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다. 국내 게임업계가 초심으로 돌아가 다양한 장르에서 도전과 창의성으로 무장하려고 나선 것은 격려할 만하다. 과거 MMORPG와 모바일 게임의 성공으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던 K-게임이 콘솔, 인디, 그리고 인공지능(AI) 기반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지원과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기자수첩] HD현대重 노조 대의는 어디 있을까
지난달 30일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노사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노조가 물류거점 점거를 위한 천막 설치를 시도하고 사측 경비대가 이를 막는 과정에서 상호 폭력 행위가 있었다. 노조는 회사를 비방하지만, 폭력 행위가 있었떤 도로는 하루에도 수백 대의 물류 차량이 오간다. 이곳이 봉쇄되면 공정 차질이 불가피하고 손해도 막대하다. 노조가 이곳을 불법적으로라도 점거하고자 했던 것도 회사에 타격을 입혀 본인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다. 이같은 행동은 지난 7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HBM은 (사측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반도체"라며 HBM 장비를 멈추려고 했던 일과 오버랩된다. 당시에도 노조의 계획은 지지와 공감을 얻지 못했는데 이번도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이유를 막론하고 폭력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있고 쌍방 폭행이라지만 영상 속 사측 경비대 인원의 행위도 비난받는 까닭이다. 요구사항 관철을 위해 노조가 벌이는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곱씹어 봐야한다.노조는 현재 기본급 ▲19만48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정년 연장(65세) ▲승진거부권 등 총 50개가 넘는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사측이 지난 9월25일 동종업계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기본급 12만2500원 인상의 2차 제시안을 내놨지만 노조는 거절했다. 앞서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노조가 HD현대중공업 사측 제시안보다 못 미치는 수준에 합의한 것과 대비된다.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는 가운데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시설물 불법 점거 및 훼손, 스프레이 분사, 위험물 투척 행위 등을 서슴치 않는다. 중앙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지난 8월 28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21차례의 파업이 있었다. 불법행위는 늘고 형태는 과격해 졌다.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수년간 조선업 불황을 겪어온 직원들에게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도 '불법 행위' 때문이다. 조합원들의 불만도 커진다. 임단협이 타결이 늦으면 격려금 지급도 미뤄진다. 현재의 노사 대치가 투쟁만을 외치며 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현 집행부의 'No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HD현대중공업은 최근 사내 소식지를 통해 조합의 의견을 십분 반영해 지난 2차 제시안보다 상향된 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노조도 조합원들을 위한 실익과 명분을 챙길 수 있는 출구전략 마련에 나설 때다. 불법 파업은 조선업 미래, 조합원 권리, 노조 입지를 모두 잃게 할 수 있다.한국 조선업은 이제 막 불황의 터널을 지났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할 일은 산적하다. 불법 파업 장기화에 따른 손실은 고스란히 노조원들의 몫이다. 생산성이 악화되면 실적이 좋을리 없고 향후 성과금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외 경쟁사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자랑하는 국내 1위 조선소의 명성은 지켜질까.
[기자수첩] 한미 오너家의 경영권 분쟁, 11월에는 끝내야
자중지란(自中之亂). 같은 편끼리 하는 싸움이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현재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 모습을 설명하는 데 적절하다. 한미사이언스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 등 모녀 측과 임종윤 이사·임종훈 대표 등 형제 측은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경영권을 두고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그룹이 둘로 쪼개지고 있는 상황에 뒷맛이 씁쓸하다.모녀 측과 형제 측의 갈등은 지난 1월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통합 과정에서 촉발됐다. 모녀 측은 해당 통합으로 OCI그룹의 자금력을 활용해 R&D(연구·개발) 추진 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형제 측은 해당 통합을 '을사늑약'이라고 표현하며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경영권이 OCI에 넘어갈 것이라고 반발했다. 양측은 통합 추진 여부를 두고 법적 공방을 벌였고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형제 측이 승리하며 분쟁이 일단락됐다.양측의 갈등은 지난 7월 재점화됐다. 지난 3월 주총에서 형제 측 승리의 주역이었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모녀 편에 서기로 한 것.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로 주총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키 맨'(Key man)으로 꼽힌다. 신 회장은 모녀와 3자 연합을 구성하고 '선진 전문인 체제'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형제 측은 이에 대해 "선진 전문경영인 체제는 이미 한미사이언스를 중심으로 가동되고 있다"며 변화 필요성을 부인했다.형제 측과 모녀 측의 갈등이 10개월째 이어지면서 한미약품그룹은 둘로 쪼개졌다. 지주사이자 형제 측을 대변하는 한미사이언스와 핵심 계열사이자 모녀 측을 대변하는 한미약품으로 나뉘었다. 현재 한미사이언스는 형제 측이, 한미약품은 모녀 측이 이사회를 장악한 상태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 전문경영인인 박재현 대표를 향해 '대주주 꼭두각시'라고 비난했고 한미약품은 '지주사 독재 경영'이라고 날을 세웠다.오너 일가 갈등이 지속하고 있는 사이 회사 실적 악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올 3분기 실적부터 걱정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를 살펴보면 한미약품은 올 3분기 매출 3755억원, 영업이익 522억원을 거둘 전망이다. 전년도 3분기보다 매출은 3.0% 오르겠으나 영업이익은 9.2%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다. 전년도 영업이익을 밑도는 컨센서스가 나왔지만 실제 실적은 컨센서스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증권가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주가도 힘을 못 쓰는 중이다. "상반기부터 이어진 경영권 분쟁이 지속적인 (한미약품) 주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iM증권, 2024년 10월16일 리포트)는 게 증권가 시각이다. 실제로 한미약품 종가는 올해 초(1월2일) 35만8000원에서 지난 22일 33만3000원으로 7.0% 내렸다. 주요 제약사인 유한양행, GC녹십자, 대웅제약의 종가가 같은 기간 각각 127.1%(6만7800→ 15만4000원), 34.9%(12만5800→ 16만9700원), 34.1%(11만7400→ 15만7400원) 오른 것과 차이가 크다.이제는 경영권 분쟁을 끝내야 할 때다. 내부 갈등은 접어두고 흔들리고 있는 실적과 주가를 바로 잡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녀 측과 형제 측은 다음 달 28일 예정된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 표대결 결과에 승복하길 바란다. 임시 주총 결과는 결국 소액주주들이 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표 대결에 패배한 측은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말을 되새기며 추가 분쟁 없이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데 협조할 것을 기대해 본다.
[기자수첩] K방산 27조 수출 시대… '울타리'가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무기 수주액이 세계 10위권 밖을 돌던 한국은 이제 미국 다음으로 무기를 많이 수출하는 '방산강국'이 됐다. 방산 수출 200억달러(한화 27조원)를 향해 성장하는 지금 K방산의 약진이 한 철 특수에 그치지 않으려면 방위사업청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객이 늘어나니 요구는 다양해지고 계약도 복잡해져 잡음이 늘었다. 방산업계 대표주자 한화는 육·해·공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는 '싸움닭'이 됐다. 싸움의 한 가운데에는 국내 방위사업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방사청이 있다. 방사청은 군수품 조달 및 방위산업을 육성하는 콘트롤타워다. 한국 국방부가 주 거래처던 과거처럼 미온한 대처로는 방산 업체들은 각개전투에 나설 수 밖에 없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멀어진다. 최근 천궁-Ⅱ의 이라크 수출을 두고 벌어진 LIG넥스원과 한화 간의 갈등은 방사청의 조정 역할 부재를 보여준다. 지난 9월 LIG넥스원은 이라크 국방부와 3조7135억원 규모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부체계업체인 한화는 LIG넥스원이 합의된 사항 없이 독단적으로 계약을 맺었다며 반발했다. 방사청은 해당 계약 주관이 아니라며 방조했다. 방사청은 두 업체를 불러 조정의 장을 마련했지만 현재까지 합의점은 찾지 못하고 있다. 경쟁업체도 아닌 협력업체 간 갈등은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한국판 패트리엇 천궁-Ⅱ의 부체계업체인 한화의 생산비율은 40%에 달한다. 계약 당사자, 주체계업체인 LIG넥스원이 미사일과 통합 체계, 부체계업체인 한화시스템이 레이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대와 차량을 생산한다. 양 사 간의 소통부재도 문제지만 고객 이라크의 리스크에 대한 시선 차이도 크다. 한화의 반발을 단순하게 '몽니'로 볼 수 없고 방사청이 '업체의 일'이라 방조할 수 없는 이유다. 한화는 실적보다는 리스크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 이라크는 한국과 11억 달러 규모의 T-50 24대 수출계약을 맺었는데 수출업체였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분식회계 의혹 등을 핑계로 대금지급을 미뤄 곤혹을 치르게 했다. 이라크의 인민동원군(PMF)이 이란, 북한, 러시아와 사실상 동맹관계에 있어 안보 리스크도 있다.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방사청의 중재 부재는 KDDX 사업에서도 나타난다. 2036년까지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해 실전 배치하는 KDDX 사업자 선정을 방사청은 미루고 있다. 법정 공방 등 업체 간 과열경쟁이 가장 큰 문제지만 상황을 조정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방사청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연말까지 사업자 선정이 지연되면 손실액이 10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방사청은 방산 수출산업에서 핵심 중재자가 돼야한다. 수출이 증가하면서 수출 방식, 납품 단가와 납기 순서 등에서 업체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있다. 한화의 호주 '레드백' 처럼 특정 국가를 타깃으로 기획·설계·공급 체계를 최적화한 기획 수출 모델까지 구축된다면 앞으로 이러한 갈등상황은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방산사업을 총괄 관리하는 '아버지'답게 방사청은 기업이 일에만 신경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방산업체들은 계약이행 후 사후관리, 기술 유출 등 각국 정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효과적으로 중재할 자신이 없다면 '기업'에 관련 업무를 일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성장 가도에 올라탄 K방산이 잡은 호기를 스스로 걷어차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기자수첩] K뷰티, 물 들어올 때 노 잘 저으려면
K뷰티가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틱톡·인스타그램 등 뉴미디어의 발전으로 중소 뷰티 브랜드 상승세가 가파르다. 해외에서 K뷰티가 '거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소 K뷰티 브랜드도 품질 관리에 신경 써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국내 뷰티 브랜드의 수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의 화장품 수출 데이터(잠정치)에 따르면 지난달 화장품 수출액은 8억9176억달러로 전년 대비 11.7% 늘었다. 화장품 수출액은 지난 7월 8억839만달러와 8월 8억1725만달러로 각각 전년 동월 대비 27.9%, 20.4% 증가했다.특히 중소 브랜드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지난 5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4년도 상반기 및 2분기 중소기업 수출 동향'에서 최고 수출 품목은 화장품이었다.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30.8% 증가한 33억1000만달러였다. CJ올리브영에서 매출 상위 10개 브랜드에 이름을 올린 중소 브랜드는 2020년 4개에서 지난해 7개로 늘었다.중소 뷰티 브랜드들이 날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최근 일부 중소 브랜드가 저품질 논란에 휩싸였다. 화장품 용기가 분리되는 등 제품에 불량이 있어 반품·환불 처리하는 사례가 이어졌다.지난달 30일 뷰티 브랜드 투크 코스메틱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투크 수채화 꽃잎 파우더'에 대한 추가 발송·환불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당 일부 물량이 용기에서 내용물이 쉽게 떨어져 나오거나 흰색 파우더에 검은 점들이 보인다는 소비자 제보가 SNS에서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무신사 뷰티페스타에서 주목받았던 브랜드 누그레이도 품질 논란이 일었다. SNS에서 일부 '스웨이 치크 블러셔' 제품에 물기가 고이거나 부풀어 오르고 제품 용기를 닫으면 내용물이 거울에 묻는 현상이 생긴다는 사례였다. 이에 해당 제품에 대한 전액 환불을 결정했다. 누그레이는 네이버스마트 스토어 공지 등을 통해 "이번 상황을 통해 향후 출시될 제품들의 품질 관리를 엄격히 하고 더 나은 고객 대응으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해당 제품은 현재 판매를 중단했고 제품·제형 안정도를 개선해 재출시할 예정이다.국내 뷰티 브랜드들이 해외 진출에 유리한 환경을 갖춰가고 있다. 연말엔 중국 광군제,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등 쇼핑 행사가 예정돼 있다. 김명주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화장품 수출국 비중은 중국과 미국이 각각 26.9%, 20.1%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국내 중소 뷰티 브랜드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해외 시장 진출 기회를 폭넓게 잡은 만큼 제품 품질 유지에 집중해야 한다.
[기자수첩]가계통신비 인하의 씁쓸한 이면
1조3837억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가입자 1230만명이 선택약정할인제도(선택약정)를 모르고 지나쳐 날려버린 돈이다. 일정 기간 약정시 통신 기본요금 25%를 할인해주는 선택약정은 통신비 인하 노력에 따른 가장 큰 제도적 성과다.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노종면(인천 부평갑·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통신 3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말 기준 선택약정 미가입자는 1229만7811명이다. 전체 가입자의 26.2% 수준인데 이들이 놓친 할인 금액이 1조3837억원에 이른다. 선택약정은 단말기 구입시 공시지원금(단말기 구매 시 나오는 지원금)을 받지 않는 가입자에게 25%의 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로 2014년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 시행 후 탄생했다. 당초 할인율은 12%였지만 2015년 20%로 한 차례 올랐고 2017년 25%가 된 뒤 유지되고 있다. 공시지원금을 받았더라도 지원 기간이 끝났다면 가입이 가능하다. 약정 기간은12개월이나 24개월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약정을 하게 되면 변경할 수 없어 머뭇거리는 소비자를 제외하더라도 바쁜 일상에 이를 잊어버리거나 고령층은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워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2016년 감사원과 2020년 과방위에서 선택약정을 제대로 홍보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일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하는 사이 선택약정 미가입자 수는 2020년과 비교해 약 10만명 늘었고 이들이 할인받을 수 있었던 금액도 약 465억원 증가했다. 현재로선 선택약정이 공시지원금과 함께 통신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카드다. '통신비 인하'를 강조하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러한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문제다. 과기부는 최근까지 제4통신사를 추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좌초되고 말았다. 7전 8기 정신으로 이번엔 다를 것이란 관측도 있었으나 직접 제4이통사 후보로 꼽은 스테이지엑스의 설립 인가까지 불허하면서 와해됐다. 정부의 통신비 인하 노력은 인정하지만 현실에 맞는 정책 판단이 필요하다. 통신비 절감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선택약정을 두고서 다른 방향을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갖춰진 제도를 활용해 통신비 절감 효과를 극대화하고 다음 수순으로 나아가는 게 순리다. 단순히 안내 문자를 더 돌리는 것을 넘어선 전향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요금제 수익이 절대적인 통신 3사에게 자율적인 변화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 만큼 정부의 역할이 막중하다. 문자에 국한된 홍보 방식도 전화처럼 적극적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는 할 건 다 했다'처럼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국민들이 제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기변경시 단말기 할부원금을 내는 것과 선택약정을 받는 것 사이 유리한 방법이 뭔지 강제적으로 고지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통신 3사가 대리점과 판매점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고 할 수 있는 까닭에 과기정통부가 국회의 협조를 얻어 법령이나 시행령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으레 있는 일로 치부한다면 현재의 난맥상은 이어질 것이다. 무엇이 당장 통신비 인하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인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자세가 절실한 때다. 애써 만든 제도적 성과를 퇴색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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