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기자노트]국민성장펀드, 취지는 좋지만…관건은 납득 가능한 '성과'
"취지 자체는 좋지만 성과가 관건이죠. 어쨌든 리스크가 있는 투자 상품이잖아요."최근 만난 금융투자업계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에 대해 설명하며 이 점을 강조했다. 국민성장펀드의 본질은 예금이 아닌 '금융투자상품'이라는 것이다.국민성장펀드가 5월22일부터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판매를 앞두고 있다. AI( 인공지능)와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에 국민자금을 공급해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은행 예금과 부동산에 머물던 돈을 생산적 금융에 돌려 그 성과를 국민과 나누겠다는 취지다.관건은 성과다. 좋은 취지가 좋은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국민성장펀드는 원금보장 상품도 아니고 확정수익률을 제시하는 상품도 아니다. 정부가 손실을 20% 우선 부담하는 구조이긴 하지만 손실 가능성이 완전히 없지 않다.투자처에 대한 리스크도 있다. AI와 반도체, 바이오, 2차전지 등은 성장성이 크지만 그만큼 변동성도 큰 산업이다.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정보 비대칭과 주가 변동성, 불공정거래 리스크까지 관리해야한다. 코스닥 기업과 벤처 기업, 비상장사에 투자한다면 유망 기업을 선별하는 기준과 사후관리 장치도 명확해야한다. 국민성장펀드의 분명한 장점도 있다. 절세혜택은 국민성장펀드가 가진 막강한 장점이다. 장기투자관점에서 일반투자자가 벤처기업과 첨단산업에게 투자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투자자는 이러한 단점과 장점을 명확하게 알고 국민성장펀드에 투자해야한다. 소득공제 요건과 환매 제한, 손실 가능성, 투자 대상의 변동성 등도 충분히 알아야한다. 우리는 과거 정책펀드의 사례에서 아쉬운 기억이 있다. 녹색성장펀드, 통일펀드, 뉴딜펀드 모두 출범 당시에는 국가 성장 전략과 맞물려 기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책 동력이 약해졌고 일부 상품은 시장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했다.국민성장펀드가 과거 정책펀드의 반복이라는 우려를 피하려면 실제로 다른 운용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정부와 운용사는 국민의 돈이 어디에 투자되고 어떤 위험을 부담하며 어떤 성과로 돌아오는지 끝까지 책임감 있게 설명해야한다.투자자도 자신이 투자하는 상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책임이 필요하다. 국민성장펀드의 성패는 모집 흥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5년 만기 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성과와 신뢰에 달려 있다.
[기자노트]잊을만 하면 시멘트 운송료 갈등…정부는 뭐하나
"협상의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서 매번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데도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좀더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일 때 입니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시멘트 전문가는 운송료(운임) 협상 갈등과 관련해 이같이 언급했다. 시멘트업계와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운전자(노동자) 간 해묵은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업계는 글로벌 업황과 중동 사태 등을 감안한 적정 운송료를, 노동자는 유가 상승에 따른 차량 유지비 증가, 과적에 따른 단속 및 안전 리스크 등을 이유로 운송료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수도권은 물론 일부 지역 BCT 분회에서도 운송료 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건설경기 회복 기대가 커지는 시점에 이 같은 갈등이 반복될 경우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BCT는 전국 건설 현장에 시멘트를 공급하는 핵심 물류다. 운송료 갈등 등으로 일정 기간만 차질이 빚어져도 관련 여러 공사가 지연되는 등 건설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중소 건설사의 경우 공기 지연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아파트 등 수요자 측면에서도 영향은 이어진다. 공사 일정이 늦어질 경우 입주 시기 지연 등으로 소비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고 원가 부담이 누적되면 분양가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멘트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설때마다 협상 기조에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소극적인 자세로 업계의 혼선이 적지 않고 업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일각에선 BCT 운전자들의 지위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진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형태 탓에 자영업자와 노동자 성격이 뒤섞여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상황에 따라 권리와 책임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BCT 차주들은 차량을 직접 구매·운영하고 사업소득을 신고하는 개인사업자로 유류비 등 비용도 스스로 부담한다. 동시에 운송료 협상 과정에서는 노동자로 단체 행동을 통해 권리를 주장한다. 건설 운송 등 물류는 국가 기간산업과 직결된 만큼 안정적인 제도 기반이 중요하다. 정부가 일관되고 적극적인 운송료 협상의 해결 의지를 갖고 관련 조치, 제도 보완 등 후속조치를 취할 때 현장의 소모적 갈등과 불확실성도 줄일 수 있다. 협상이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경기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속시원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노트]논란의 삼천당제약…제약·바이오 '자정능력' 시험대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회사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제약·바이오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 있어요." 최근 만난 국내 주요 제약사 고위 관계자는 삼천당제약 논란을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 22일 코스피, 코스닥 지수(이하 종가 기준)가 연초(1월2일) 대비 각각 48.9%, 24.9% 오른 반면 KRX 헬스케어 지수는 3.6%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평가는 단순한 기우가 아닌 듯하다. KRX 헬스케어 지수는 코스피·코스닥 종목 중 제약·바이오 산업에 속하는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로 구성됐다.유독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배경에는 삼천당제약이 자리한다. 주가가 단기간 급락하자 섹터 전반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천당제약 주가는 연초 24만4500원에서 지난달 30일 118만4000원까지 올랐으나 약 3주 만인 지난 22일 40만3000원까지 하락했다. 한때 1위였던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는 단숨에 5위까지 내려왔다.삼천당제약의 주가를 빠르게 끌어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업계는 계약 부풀리기 의혹과 미숙한 시장 소통 등을 꼽는다. 이 회사는 지난달 체결한 경구용 위고비 제네릭(복제약) 등의 미국 라이선스 계약 규모가 15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공시된 계약 규모(1억달러·1508억원)의 100배 수준이다. 삼천당제약은 상업화 후 10년간 매출이 계약 규모 15조원의 근거라고 주장했으나 불분명한 사업 전망치를 계약 규모에 포함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논란이 가중되자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시장과 소통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행인 점은 삼천당제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인석 대표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계약 부풀리기 논란에 대해 "미국 계약 규모를 15조원이라고 공시하지 못한 건 혹시 모를 투자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한국거래소의 보수적인 공시 가이드라인 때문"이라며 "계약의 실체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시장과 소통 미숙을 사과하며 IR(기업설명회)·PR(대외홍보) 조직 신설도 약속했다. 이후 과거와 달리 보도자료 등 외부 경로를 통한 시장 소통을 본격화했다. 업계 전반의 변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투자자가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출범한 금융감독원 제약·바이오공시 개선 TF(태스크포스)에 업계는 대체로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공시 부담이 늘어나긴 하겠으나 정확한 정보 제공을 바탕으로 기업가치를 투명하게 평가받는 것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아직 미숙한 게 사실이다. 앞서간 미국·유럽 등과 달리 이제 막 신약개발 성과를 축적하기 시작한 수준이다. 성과를 과장하기보다 문제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개선할 때 비로소 산업도 함께 성숙할 수 있다. 안정적인 투자 유치는 덤이다. "평판을 쌓는 데 20년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는 워런 버핏의 격언을 새길 필요가 있다.
[기자노트]미토스발 AI 해킹 충격…절실한 자성의 목소리
앤트로픽이 개발한 보안 특화 인공지능(AI) 모델 '미토스'가 스스로 시스템 취약점을 탐색하고 논리적 허점을 분석해 실제 공격까지 수행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자율형 AI'가 해킹 작업에 나서자 베테랑 보안 전문가들이 수개월간 설계한 방화벽이 수초 만에 무너졌다.전 세계가 미토스 위력에 충격을 받아 혼란이 우려되자 앤트로픽은 미토스를 당분간 일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클릭 한 번으로 국가 보안 체계를 삽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IT 선진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상황도 우려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미토스 공개 직후 통신 3사 및 네이버 카카오 정보보호 최고책임자(CISO)와 긴급 현안점검회의를 개최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AI전략위)도 보안특별위원회 정례회의를 통해 과기정통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머리를 맞댔다.미토스의 파괴력은 우리 사회를 순식간에 마비시킬 수 있는 상황이지만 국내에선 보안 유출 사고 수습이 미흡하다는 시각이 많다. 국내 통신사들도 사이버 침해 사고에 제대로 된 반성과 재발방지책이 부족하다. SK텔레콤 유심 해킹 이후 통신업계를 휩쓴 통신 보안 논란은 1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경찰은 과기정통부 자료 보전 명령에도 서버 2대를 포렌식이 불가능한 상태로 임의 조치한 SK텔레콤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고 KT는 해킹 당한 서버의 폐기 시점을 정부에 허위로 보고하고 폐기 서버의 로그를 백업했음에도 늑장 보고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LG유플러스는 해킹 정황을 고의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해당 은폐 의혹 수사는 경찰로 넘어갔지만 4개월 넘는 기간 동안 지지부진하다. 지우고 감추는 은폐 관행이 확실히 매듭지어지지 않으면 미토스의 공격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공격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기존 보안 패러다임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개월간 설계한 방화벽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첨단 AI 방어 시스템만이 아니다. 보안 사고를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습관을 발본색원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문제를 발견해도 이를 제대로 알리고 밝히지 않으면 보안 취약점이 구조적으로 방치되는 것인데 미토스와 같은 AI에게는 이러한 부분이 좋은 먹잇감이다. 사고를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은폐한 의혹은 미토스보다 더 위험한 '내부의 적'이다. 아무리 강력한 방화벽을 구축해도 이를 관리하는 주체가 외면하는 데 급급하다면 무용지물이다.SK텔레콤이 역대 최대 과징금 1347억원을 부과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KT와 LG유플러스에 대해서도 경미한 처벌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출 규모와 피해 양상이 다른 점을 감안하더라도 위약금 면제, 영업정지 등과 같은 부분에서 제재 수위가 다르다면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받게 된다.미토스의 공개가 잠정 보류됐지만 언젠가는 미토스 수준의 AI 해킹 도구가 등장할 것이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강력하고 빠를 것이다. 미토스발 AI 해킹 시대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성과 반성 없이는 AI 보안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마지막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말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은폐 관행을 뿌리 뽑고 엄격한 처벌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기자노트]헝가리산 차체 중국산 심장, BMW '눈 가리고 아웅'
"글쎄요, 정확한 건 나와봐야 알겠지만… 우선은 일본 회사 제품일 확률이 가장 높긴 합니다. 그런데 EVE에너지라고 중국 회사도 같이 들어와서 개발을 하긴 했거든요. 최종적으로 어떤 배터리가 탑재될지는 아직 저희도 모릅니다."최근 서울 시내의 한 BMW 전시장에서 신형 iX3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1억원에 가까운 프리미엄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에게, 판매 일선의 딜러조차 '심장'인 배터리의 제조사를 확답하지 못한다. 세 개의 후보군이 있다는 둥, 일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둥 모호한 답변만 늘어놓았다. BMW는 신형 iX3를 홍보하며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 생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른바 '메이드 인 유럽' 마케팅이다. 유럽산 전기차라는 타이틀은 소비자들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세심한 조립 품질, 엄격한 유럽의 환경 및 안전 기준,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산'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하지만 이 지점에서 BMW의 마케팅은 교묘한 정보의 왜곡을 일으킨다. 조립 국가인 헝가리를 강조함으로써 정작 차 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배터리 국적은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배터리 정보를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공식 홈페이지의 온라인 사전 예약 페이지를 들어가 봐도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확인하려면 스크롤을 맨 하단까지 내려야 겨우 발견할 수 있다. 회사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배터리의 밀도를 높였다는 말 뿐 제조사를 언급한 적은 없다.이러한 행태는 과거 iX3가 겪었던 '학습효과'에서 기인한 우회 전략으로 풀이된다. 앞서 BMW는 iX3 모델을 유럽에서 생산하면서도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당시 '무늬만 유럽차'라는 오명을 썼던 BMW 입장에서는 이번 신형 모델에서도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취재 과정에서 만난 딜러들은 "헝가리에서 생산되니 걱정 마시라"는 말로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확답을 피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일본산 배터리 탑재설'을 흘리며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영업 현장의 숙지 미달로 치부하기엔 부족하다. 본사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전달되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오는 3분기 국내 출시되는 신형 iX3에는 중국 EVE에너지의 배터리가 탑재된다. EVE에너지는 BMW의 신규 파트너사로, 헝가리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BMW의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노이어 클라쎄'에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메이드 인 유럽'이라는 이름표 안에는 결국 중국 자본과 기술로 만들어진 배터리가 들어간다. 중국산 배터리의 기술력이 과거보다 진보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소비자가 내가 사는 물건의 핵심 부품이 어디 제품인지 정확히 알고 구매할 권리'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해 배터리 안정성에 대한 민감도가 극에 달해 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브랜드 네임밸류나 조립 국가만을 보지 않는다. 어떤 셀이 들어갔는지, 에너지 밀도와 화재 안전성은 어떠한지를 직접 따져보고 선택하고자 한다.BMW가 진정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한다면 생산지의 후광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배터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품질을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헝가리산'이라는 수식어가 배터리 제조사를 가리는 가림막이 돼서는 안 된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마케팅은 일시적으로 소비자의 눈을 속일 순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독이다.전기차 1억원 시대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정보의 약자가 아니다. 제조사가 정보를 파편화하고 은폐할수록 시장의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에 공개하고, 왜 그 배터리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배터리가 헝가리산 차체와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기자노트]황금거위 배 가르자는 삼성전자 노조 '성과급 몽니'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도를 넘어섰다. 당초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0%를 달라던 노조가 이제는 영업이익의 15%를 조건으로 내놓았다. 최근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원을 돌파해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한 데 이어 올해 연간 기준으로도 신기록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자 더 많은 성과급을 받아야겠다며 사측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가 가정한 올해 연간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 전망치는 270조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15%를 지급하면 40조5000억원을 보상 재원으로 편성해야한다. 증권가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연간 반도체 영업이익이 30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이 경우 45조원 이상을 성과급으로 줘야하는 셈이다.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무시한 것도 아니다. 사측은 메모리사업부가 국내 1위를 달성할 경우 OPI(초과이익성과급) 상한(연봉 50%)을 초과하는 특별 포상을 지급하고 영업이익의 13%를 성과급 재원으로 편성하겠다고 제안했었다. 사실상 노조의 최초 요구안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보상안이다. 그럼에도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일방적인 주장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요구는 기업 가치에 부정적이다. 현재 노조가 요구하는 40조~45조원의 성과급은 지난해 삼성전자의 연간 연구개발비 37조7000억원을 넘어선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다툼 심화로 추가적인 투자가 절실한 상황에서 회사 재원의 상당 부분을 미래를 위한 재투자가 아닌 보상으로 투입해야 한다.노조의 요구가 반도체 부문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 가운데 95%가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가전·TV·스마트폰 사업을 맡고 있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의 목소리를 사실상 소외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DX부문 직원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실적만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주게되면 사업부간 보상 격차가 벌어지고 DX 부문의 박탈감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번진다.현재 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이달 23일 평택캠퍼스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이후에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5월21일부터 6월7일까지 18일 간 총파업을 실행할 계획이다. 노조가 파업을 강행해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납기 지연, 고객 신뢰 하락 등 연쇄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파업 리스크가 부각될 경우 투자심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최대 반도체 기업의 노조가 자신들의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장을 멈춰 세우겠다고 위협하는 행위는 한국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회사는 이미 파격적인 보상 조건을 제시했다. 노조 역시 미래 경쟁력을 다지는 관점에서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할 때다.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것인가.
[기자노트]K뷰티 짝퉁 1.1조원…정품 마크로는 부족하다
K뷰티 짝퉁 피해가 1조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진품임을 증명하는 '정품 인증 마크' 도입을 해법으로 내놨지만 이것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진화하는 위조 화장품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K뷰티는 제품이 아니라 신뢰와 이미지를 파는 산업이 됐고 그 신뢰를 겨냥한 짝퉁은 마크 하나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이 같은 문제의식은 이미 현장에서 생생하게 확인되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한국어가 어색하게 적힌 이른바 'K짝퉁' 화장품을 들고 당혹스러워하는 해외 유튜버들의 영상이 잇따라 확산하는 장면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신호다.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공들여 쌓아온 K브랜드의 근간이 훼손되고 있다는 경고음이어서다.수치가 보여주는 위기의 규모는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 지난해 단속에 적발된 K브랜드 위조 물품은 6361건에 달한다. 품목별로는 화장품이 5096건으로 전체의 80.1%를 차지해 단연 1위였다. 패션이나 식품이 주요 피해 분야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화장품이 짝퉁 시장의 가장 큰 먹잇감이 된 셈이다. 적발 물품의 97.7%가 중국과 홍콩에서 발송됐고 지식재산처는 뷰티 분야 피해액만 1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정부는 뒤늦게나마 방패를 들었다. 특허청 등 관계 부처는 올해 하반기부터 수출용 제품에 진품임을 보증하는 인증 마크를 부착하는 'K브랜드 정부 인증제'를 도입한다. 개별 기업이 각자도생식으로 대응해 오던 상표권 침해 문제에 국가의 공신력을 더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짝퉁의 진화 속도가 정부 대책보다 훨씬 빠르고 교묘하다는 점이다. 과거 위조품이 로고를 그대로 베끼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새로운 브랜드인 것처럼 위장하며 한국산 이미지만 차용하는 '미투 브랜드' 전략이 확산하고 있다. 한글을 단순한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거나 'Made in Korea'를 연상시키는 문구를 교묘히 끼워 넣어 법망을 피해 간다. 상표권을 정면으로 침해하지 않으면서 글로벌 소비자를 기만하는 방식이다. 이런 변칙 판매를 막기에는 정품 마크 부착이라는 처방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자칫 생색내기용 라벨링에 그칠 우려도 크다.정부 인증제는 정책의 종착점이 아니라 강력한 단속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마크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해외 이커머스 플랫폼과 실시간으로 공조해 위조품 판매 페이지를 즉각 차단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추진 중인 위조 화장품 판매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회수·폐기 근거 마련도 더 늦춰선 안 된다.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어렵게 쌓아 올린 K뷰티의 품격이 껍데기만 빌려 쓴 가짜들에 의해 잠식되는 일이다. 이번 정부 대책이 일회성 처방에 그치지 않고 우리 기업의 땀방울과 K브랜드 가치를 지켜내는 수호자가 되길 기대한다.
[기자노트]방산 수주전에도 '은메달'을 수여하자
스포츠에서 2등은 '값진 은메달'의 주인공이지만 방산 수주전의 2등은 패자다. 승자독식 구조 속에서 막대한 개발비와 시간을 쏟은 탈락 기업의 노력은 소수점 차이로 물거품이 된다. 결과에 대한 승복 대신 이의제기와 소송이 반복되는 이유다.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 K방산은 유례없는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선 수주를 둘러싼 '집안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경쟁 기업 간 갈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한 소송전이 잇따라 사업 지연은 부지기수가 됐다.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이 대표적이다. HD현대와 한화오션 간 갈등으로 2년 넘게 지연된 데 이어 최근 HD현대가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면서 추가 소송전으로 확대됐다.육군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도 평가 방식을 둘러싸고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대립하며 2년여간 표류했다.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 역시 경쟁에서 탈락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면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 같은 갈등을 특정 기업의 '몽니'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방산 수주전은 대개 소수점 단위의 미세한 점수 차로 당락이 갈리는데 결과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다.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임에도 보상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승자독식 구조가 업체 간 갈등을 부르는 핵심이다.방산 기업들은 일 년에 몇 안 되는 수주에 막대한 개발비와 인력을 투입한다. 수주 실패는 곧 생산 공백과 숙련 인력 유휴화로 이어지고 투자 비용은 매몰 비용으로 남는다. 국내 운용 실적이 없으면 수출도 쉽지 않다. 수주 승패가 기업의 장기 생존을 좌우하면서 결과를 뒤집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실정이다. 반복되는 출혈 경쟁을 끊기 위한 해법은 복수낙찰제다. 복수낙찰제는 경쟁 입찰에서 둘 이상의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2024년 3월 국가계약법 제10조 제4항에 도입되며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방위산업 분야에서는 아직 활용된 사례가 없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도 지난해 1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복수낙찰제 도입을 건의한 바 있다. 이 청장은 "무기 체계별로 대체로 2개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성능이나 국익 측면에서 과당 경쟁의 폐해가 많다"며 "복수 낙찰을 통해 서로 조정해가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복수낙찰제를 도입하면 단일 업체 선정에 따른 공급망 불안, 일정 차질 등의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 수주를 위해 연구개발을 지속해온 기업들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기술 개발의 연속성도 확보된다. 특정 기업으로 역량이 쏠리는 구조를 완화하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방위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제도 도입에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맞섰다. 책임 소재 등 후속 부작용을 경계하는 지적도 일리가 있지만 사업 지연이 일상화된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더 큰 손실이다. 현상 유지는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수조원대 해외 수주전에서 K방산이 '원팀'으로 결집하기 위해서라도 소모적인 내부 갈등은 멈춰야 한다. 승자독식을 넘어 실력을 갖춘 2등에게도 은메달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2등도 언젠가는 1등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기자노트]수입산 공세에도 우유자조금은 여전히 옛 문법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적인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되는 이 격언은 오늘날 유업계가 직면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경고로 다가온다. 유통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소비 촉진의 최전선에 서야 할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의 대응은 여전히 과거 문법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수입산 멸균우유의 공세가 자리한다. 2019년 처음으로 1만톤을 넘긴 멸균우유 수입량은 지난해 5만1000톤까지 늘어났다. 수입 멸균우유는 국산 신선 우유 대비 가격이 60% 수준에 불과한 데다 유통기한도 비교적 긴 편이다. 지난 1월 미국산 유제품에 이어 오는 7월부터 EU산에도 관세율 0%가 적용될 예정이라 낙농업계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저출생 등으로 인해 핵심 소비층이 줄어들고 두유나 아몬드유 등 대체음료가 확산하면서 시장은 축소되는 흐름이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2.9kg를 기록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역대 최저치다. 국내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은 2021년 26.6kg, 2024년 25.3kg 등으로 가파른 하락세를 보인다.이처럼 각종 지표가 위기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소비 촉진을 담당하는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의 시계는 여전히 과거에 멈춰 있다. 유통 구조나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하기보다는 광고·전시 등 소비 촉진 사업에 예산의 상당 부분을 투입하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물가 속에서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중시하는 흐름이 뚜렷해졌지만, 자조금은 여전히 '국산의 신선함'을 강조하는 홍보에 머물러 있다.이러한 문제는 일시적인 판단의 착오가 아니라 조직이 지닌 구조적 한계와 맞닿아 있다. 자조금은 생산자(농가)들이 납부한 재원을 기반으로 운영되지만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에서 견제와 책임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 구조다. 예산을 편성하는 자조금관리위원회와 생산자들의 이익단체인 협회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균형을 잃은 결과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기존의 관성을 답습하고 있다.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이 살아남지 못하듯, 이대로라면 자조금은 역시 도태를 피하기 어렵다. 수입산이 주도하는 가격 경쟁이 일상이 된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장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산업의 자생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복되는 화려한 광고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뿐이다.자조금이 본래의 목적대로 산업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외부 주도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환경 변화에 맞춰 역할을 재정립하고 정기적인 외부 감사를 통해 사업 방향과 운영방식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 자조금관리위원회는 내부의 관성에 기대어서는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낙농가에서 피땀 흘려 모은 재원이 변화에 뒤처진 대가로 소진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노트]카드사 인프라, 이제는 '버리는 카드'?
한 나라가 가장 가파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보편화된 결제수단은 이후에도 그 국가의 핵심 결제 인프라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전후 경제 부흥기에 신용카드를, 중국은 2010년대 모바일 혁명기에 QR 기반의 빅테크 간편결제를 중심으로 국가 전체의 결제 기반을 놨다.한국도 그렇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고도성장기에 우리 국민의 손에 들린 것은 신용카드였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내수 진작과 과세 투명성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파격적으로 장려하면서 지금의 카드 중심 결제 인프라가 뿌리를 내렸다.오늘날의 카드 결제망은 단순한 지급수단을 넘어 소비와 유통, 데이터를 잇는 국가 핵심 금융 인프라다. 수천만 명의 일상을 지탱하는 플랫폼이자 금융권에서 소비자와 가장 밀접한 접점을 가진 채널로서 그 위상은 공고하다.현재 카드업계가 마주한 현실은 이러한 위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가맹점 수수료는 지난 12년간 꾸준히 인하됐다. 그 결과 전체 가맹점의 약 96%에 달하는 영세·중소 사업자 구간에서는 수수료율이 원가(적격비용) 수준이거나 그 이하로 떨어지는 '역마진' 구조가 고착됐다. 결제 규모는 매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지만, 본업인 결제 부문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결제의 역설'이 이어지는 이유다.이러한 수익성 악화의 이면에는 겹겹이 쌓인 규제의 벽이 자리하고 있다. 3년마다 돌아오는 '가맹점 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는 도입 이후 사실상 단 한 번의 인상 없이 수수료를 낮추기만 하면서 업계의 활력을 앗아갔다. 여기에 가계부채 관리의 일환으로 카드론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결제 부문의 손실을 보전해주던 대출 사업마저 움츠러들었다.여기에 카드사는 은행과 달리 예금을 받을 수 있는 수신 기능이 없어 사업 자금의 대부분을 시장에서 여전채(카드채) 발행을 통해 조달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금리 상승기마다 조달 비용이 급증해 사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이를 타개할 신사업 진출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나 부수 업무 제한 등의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으면서, 데이터 비즈니스나 스테이블코인 접목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기보다 기존의 위축된 시장에 머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그럼에도 카드사의 유용성 때문에 각종 위기 상황에서는 카드사들이 빠짐없이 동원된다. 최근에도 미국-이란 전쟁으로 기름값이 급등하자 당국은 카드사에 주유비 할인 혜택 추가 또는 환급 확대 등의 조치를 요구했다. 지난해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이 실현됐을 때도 카드사들은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를 추가로 인하해야 했다. 가맹점과 기업, 소비자 모두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접점을 보유한 결제 인프라 기업이라는 이유에서 감당해야 했던 수난이었다.카드사들의 수난은 단지 카드업계의 위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카드사는 트래블카드와 같은 혁신 서비스의 형태로 소비자들의 금융 경험을 확장시켜왔다. 고유가나 재난 상황에서는 각종 할인이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민 지원 정책을 수행하는 '보이지 않는 축'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수익 기반이 계속 흔들리면 결국 '알짜카드'의 대거 단종, 부가서비스 축소 등 형태로 '비용의 소비자 전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금융 소비자 선택권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얘기다.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지난 20여 년간 카드사가 구축해온 방대한 결제 인프라와 데이터, 이용자 접점을 지금처럼 규제로만 묶어두는 것이 과연 국가 경제에 바람직할까. 빅테크 중심의 플랫폼 결제 환경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검증된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기보다 낡은 규제로 틀어막는 방식은 금융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우려가 크다.기술 환경이 변한 만큼 카드업계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변화를 스스로 도모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알아서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라'는 식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최근 논의되는 스테이블코인이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등 새로운 결제 생태계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견고한 카드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도 침체된 카드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다.카드업계의 고충을 그저 '그 회사들만의 사정'으로 치부하는 건 곤란하다. 이제는 수수료 인하와 규제 강화라는 단편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존 인프라를 살리고 이를 디지털 금융 혁신의 교두보로 확장하기 위한 정책적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기자노트]서울 시민의 선택, 부동산 공약의 치밀함
6·3 지방선거가 6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최대 승부처로 불리는 서울시장 선거는 부동산 민심이 어디로 향할지 초미의 관심이다. 여야가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총 6명을 확정한 가운데 주요 후보들은 저마다 부동산 공급을 강조한 공약을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여권 후보들은 공공성에 방점을 찍었다. 용산 등 주요 도심과 역세권의 부지에 공동주택을 건설하고 개인이 수십 년 간 임차했다가 미래 세대에 물려주는 '구독형 주택', 청년과 신혼부부, 무주택자가 20~30년간 분할 매입하는 '지분 적립형 주택 분양'(주택 리츠) 등 청년과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내놓은 공약이 눈길을 끈다. 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은 공공 중심의 주택공급을 강조했다. 서울시가 정비사업 준공부터 착공까지 책임지는 '착착 개발'을 필두로 전문가가 밀착 관리하는 매니저 제도를 도입한다. 500가구 미만 소규모 정비사업의 인허가 권한을 서울시에서 자치구로 이양해 병목 현상을 해소하는 게 핵심이다. 지방정부가 권한을 갖고 단기 효과를 낼 수 있으나 대형 프로젝트 등에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떨어질 우려는 있다. 국민의힘 유력 후보인 오세훈 현 서울시장은 민간 중심의 재건축·재개발에 속도를 낸다.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 비율)을 500%까지 올리고 민간이 주택을 공급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의 민간 주도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해 공급 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와 개발 중심의 특정 지역이 급등하는 양극화 현상은 리스크 요인이다. 서울 부동산 거래시장은 선거를 앞두고 혼란의 연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연일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서울 집값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한강 벨트를 중심으로 상승세가 꺾였고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외곽은 키 맞추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가 주택이 밀집한 동남권 아파트의 호가가 큰 폭 내렸지만 실거래가는 여전히 높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는 오는 5월 9일 이후 매물이 잠기고 집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권은 유한하고 부동산은 영원하다'는 인식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유권자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선거 결과를 정하는 '경제 투표'는 특히 서울에서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와 2021년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 투표율은 각각 59.9%, 58.2%로 1995년 민선 첫 선거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을 달성했다. 당시 서울 아파트의 연평균 상승률은 10~15%에 달했다.중동전쟁 장기화로 유가와 환율이 치솟으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향방마저 오리무중 상태다. 서울 부동산 안정을 위해선 금리 변동성 대응과 주택공급의 속도가 중요하다. 정당의 성과를 나타내기 위한 공급 수치와 공공·민간의 비중은 중요하지 않다. 표심이 목적인 공약은 단기 성과일 뿐이다. 930만 서울시민의 내 집 마련, 부동산 안정대책의 성패는 서울시정의 치밀한 부동산 공약에 달렸다.
[기자노트] 기초연금, 표퓰리즘 넘어 '숙의의 장'으로
우리나라에선 65세 이상 어르신의 소득 하위 70%(약 708만명)가 기초연금을 받는다. 매달 최대 34만9700원씩이다. 단독가구 기준으로 월 소득인정액이 247만원 이하면 수급 대상이 된다. 올해 1인 가구 중위소득 256만4000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70%'일까. 딱히 근거는 없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놓은 "모든 어르신에게 월 20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이 집권 후 예산의 벽에 부딪히자 궁여지책으로 나온 기준이다. 이후 노인들의 소득과 자산 수준이 오르면서 기초연금 선정 기준은 중위소득에 근접했다. 2015년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대비 59.6%였던 기초연금 수급 커트라인은 올해 96.3%로 상승했다. 소득이 한 푼도 없는 노인과 중위소득에 가까운 돈을 버는 노인 모두 기초연금을 받는단 얘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자살까지 유도하는 노인 빈곤을 줄이려면 기초연금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며 "지금까지 지급되는 것은 그냥 두고 향후 증액만 하후상박으로 하는 것도 방법일 듯한데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고 적은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보편 복지라는 기존의 기조를 틀어 '보편+선별 혼합형' 복지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반론도 없지 않다. 기초연금은 노후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보편적 수당' 성격의 연금인만큼 소득에 따른 차등 지급은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에 이미 저소득층의 수익비를 높이는 '소득 재분배' 기능이 탑재돼 있다. 기초연금까지 가난할수록 더 많이 주는 하후상박 구조로 뜯어고칠 경우 두 연금 간 정책 기능이 중복되며 연금 체계 전반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납세자와 면세자 간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현재 한국 근로자의 소득하위 30% 정도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다. 기초연금을 차등화할 경우 성실히 세금을 납부한 중산층보다 평생 소득세 한 푼 안 낸 저소득층이 더 많은 돈을 받게 될 수 있다.그럼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참담한 노인 빈곤율을 직시하면 기초연금 제도의 보완은 불가피하다. 2022년 기준 한국 은퇴 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7%로, 영국(14.9%), 일본(20%), 미국(23.1%) 등을 압도한다. 다만 개선안은 노인 빈곤 문제 뿐 아니라 다층적 연금 구조, 납세자와 면세자 간의 형평성, 국가 재정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해야 도출해야 한다. 이런 고차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정치권의 '표'퓰리즘적 접근이다. 대신 전문가들이 참여한 사회적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숙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게 하면 어떨까. 정치권이 주도하는 임기응변식 연금 개혁은 끝낼 때가 됐다.
[기자노트] 정치 스타트업에 거는 기대
지난 3월9일 개혁신당 대회의실. 이준석 대표가 가리키는 TV 화면에 취재진 시선이 쏠렸다. 화면에는 AI(인공지능)가 인간 사무장처럼 유세 일정과 동선을 관리해주는 내용이 펼쳐졌다. 선거비용 절감 효과를 강조하는 대목에선 이 대표의 제스처와 목소리가 커졌다. 우려 섞인 질의엔 신뢰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AI 사무장과 챗봇 등은 돈과 조직이 부족한 정치신인을 돕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실력만 있다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개혁신당 싱크탱크 개혁연구원은 최근 5년간 전국 지방의회 회의록 19만7000여건을 데이터베이스화했다. AI로 데이터를 학습시켜 지역의 중요현안을 파악한 뒤 지방선거 참여자에게 맞춤형 공약까지 제공한다는 계획이다.3석에 불과한 스타트업 정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틈새에서 불가피한 전략을 편다고 볼 수 있지만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거대 양당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영호남 등 거대 양당의 텃밭에선 공천이 곧 당선이다. 그만큼 공천받기가 어렵다. 당내 경선이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이나 다름 없다.자연스레 본선을 위한 정책 개발은 관심과 노력이 떨어진다. 실력 쌓기보다 권력 아래 줄 서거나 세력 형성에 관심을 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매일 발표하는 논평이나 브리핑은 상대방을 향한 비난 메시지가 8할이다. 상대가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적대적 공생 관계'인 셈이다.분열의 언어 대신 AI로 개발한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정치 스타트업의 포부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개혁신당의 정치 실험은 민주당 보다 국민의힘에 더 큰 잠재적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기성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 보수 유권자의 표를 두고 개혁신당과도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다.물론 개혁신당의 한계는 분명하다. 한국의 정치사를 돌아보면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를 확보한 제3당의 성공 사례는 1996년 자유민주연합과 2016년 국민의당 등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금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준석 정당이란 이미지를 넘어 유능한 정치 집단으로 인식을 넓혀야 하는 과제도 있다.소수 정당이 갈 길은 최근 일본 중의원 465석 가운데 11석을 가져간 신생정당 '팀 미라이'(未來·미래)가 상상력을 제공한다. 팀 미라이는 선거 당시 주요 정당들이 앞다퉈 '소비세 감세' 공약을 내걸 때 유일하게 '현행 10% 세율 유지'를 주장했다. 미래 세대에게 국가의 빚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로 자녀 수에 따른 양육세 감면 등도 약속했다.팀 미라이는 정치를 권력 투쟁이 아닌 시스템 설계의 관점으로 본다. 안노 다카히로 팀 미라이 대표가 "분열을 부추겨 표를 얻지 않겠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새로운 시스템을 위해 AI를 정책 설계와 유세 과정에서 적극 활용했다.개인 역량은 몰라도 조직 자본에선 거대 양당에 확연하게 밀리는 개혁신당이 AI 등의 전략으로 그 격차를 메우고 6월 지방선거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정치 스타트업들이 기성 정치권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한국의 정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길 기대해본다.
[기자노트] 그 많은 대기업은 정말 충주맨과 협업하려 했을까
"여기가 취업 박람회보다 기업이 더 많다."충주맨 김선태 전 주무관이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 3일 만에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100만 돌파 시점만큼이나 첫 영상 댓글창이 화제가 됐다.내로라하는 대기업 공식 채널들이 협업 제안 댓글을 앞다퉈 달며 댓글창은 순식간에 센스 각축장으로 변했다. 일주일 만에 5만8000개 이상의 댓글이 쏟아졌다."진로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진로 두꺼비" "딩동 김선태 고객님! 진심을 다하는 롯데택배입니다. 홍보맨의 새로운 채널 전국구 배송합니다" "선태님 유튜브도 식후경입니다. 오뚜기랑 밥 한끼 하시죠. 3분이면 됩니다" "에이블리도 선태 업고 튀러 왔습니다."누리꾼들은 "기업들 센스에 감탄했다"며 커뮤니티로 댓글을 퍼날랐고 이 소식이 공중파 뉴스에까지 진출했다. 취재 도중 만난 기업들에 물어보니 "진짜 협업을 제안했다기보다 트렌드에 올라타기 위한 대응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아코리아는 아예 "뭐라고 쓸지 고민하다가 다섯 명이 야근 중"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며칠 뒤늦게 등판한 기업들은 "본부장님 결재받고 오느라 지각했습니다" "회의하다가 이제야 왔습니다"라며 재치 있는 변명을 남겨 직장인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솔직함이 웃음을 자아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씁쓸한 현실이 있다.이러한 초단기 속도전은 단지 홍보·마케팅 부서만의 과제가 아니다. 소비자들의 끝없는 '도파민 갈증'은 유통·제조업의 본질인 상품 기획과 판매 지형도마저 바꿔 놓았다.트렌드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숏폼에 익숙해진 세대는 그만큼 트렌드에 민감하고 지루함도 빨리 느낀다. 하루에도 몇번씩 새로운 자극을 찾아 쉬지 않고 움직인다.유통업계가 체감하는 변화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2024년 온오프라인 유통채널 전체 매출에서 백화점과 편의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7.4%, 17.3%로 불과 0.1%포인트 차이로 집계됐다. 당시 유통가는 편의점이 백화점을 턱밑까지 추격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2025년 들어 백화점이 매출을 회복하며 격차를 벌리긴 했지만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편의점이 이토록 성장한 이유는 단순하다. 소비자 니즈에 실시간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짧은 주기로 트렌디한 신상품을 쏟아내며 '가까워서 가는 매장'이 아닌 '찾아가는 매장'이 됐다. 대기업 수장들도 이 흐름을 읽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수년째 VCM(사장단 회의)에서 강도 높은 쇄신과 함께 '민첩함'(Agile)을 강조해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한 발 앞서, 한 박자 빠르게 실행하라"고 주문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도 "빠르게 시도하고 신속하게 수정하는 기민한 실행 체계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선주 LG생활건강 대표가 신년사에서 요구한 것 역시 다름 아닌 '민첩한 조직'이었다.문제는 실행이다. 복잡한 보고 체계, 길고 자세한 결재 보고서, 돌다리를 여러번 두드리는 옛날식 의사결정으로는 뒷북만 치게 된다. 지난주에 '두쫀쿠'(두바이 초콜릿+쫀득 쿠키) 유행이 지나 백화점 재고가 남아돌고 급기야 매장이 철수되는 것까지 봤는데 한쪽에서는 두쫀쿠 관련 신제품 보도자료를 보내오기도 한다. 과연 시장에서도 "결재받느라" "회의하다가" 늦었다는 변명이 통할까. 뒤늦은 출시는 애교나 읍소로 무마할 수 없다. 공들인 연구개발(R&D) 비용이 날아가고 공장 라인을 돌려 찍어낸 제품은 악성 재고가 될지 모른다.그렇다면 지금 소비자가 원하는 건 뭐일까. 정답을 찾겠다며 회의를 소집하고 보고서를 만들 생각부터 했다면 이미 늦었다. 소비자의 마음은 두쫀쿠와 봄동을 지나 이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장고 끝에 '악수'가 아니라 '뒷북'인 시대다. 김선태 주무관이 충주맨이던 시절, "(이런 파격적인 내용으로) 시장님 결재를 어떻게 받아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결재받기 전에 먼저 올렸습니다."이제는 속도가 생존을 결정한다. 그러니까 '민첩' 주문하신 회장님들은 결재 라인부터 줄여주시길.
[기자노트] 달러보험은 '단타투자용' 아닙니다
"솔직히 처음엔 안 믿었죠. 보험으로 돈을 번다고 하니 좀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친하게 지내던 설계사가 요즘처럼 고환율 시기엔 달러보험이 대세라고 하더군요. 속는 셈 치고 최근 20년 만기 상품에 가입했어요. 요즘 환율뉴스를 보면 괜히 마음이 뿌듯해져요.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드네요."최근 기자와 만난 지인의 이야기다. 개인·기업이 '보장'을 위해 가입하는 보험이 일종의 새로운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다. 달러보험은 보험료 납입과 수령이 모두 미국달러로 이뤄진다. 최근 혼잡한 중동정세 등과 맞물려 원/달러 환율이 큰 변동폭을 보이자 환차익을 노린 소비자는 달러보험으로 자산증식을 꾀하는 중이다.이같은 배경엔 '뉴노멀'이 된 고환율 시대가 자리잡고 있다. 환율이 1400원대에서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으나 '언젠간 계속 오를 것'이란 시장에서의 기대감이 개인자산을 움직이고 있다. 특히 안전화폐로 인정받는 달러 관련 상품이라면 소비자의 호기심을 끌기엔 더 쉽다.달러보험은 주로 은행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해 판매된다. 올해 1~2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취급된 달러보험 판매액은 3297억원으로 전년 동기(2262억원) 대비 64.3%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판매액은 1조73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보험사에서 직접 판매한 수치를 합치면 규모는 더 커진다.은퇴 후 인생 '제2막'을 꿈꾸는 이들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특히 달러보험 일시납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외화를 보유해야 해 자본을 갖춘 퇴직자 등을 중심으로 가입이 늘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교적 젋은층은 매달 보험료를 내는 월납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은 일시납을 위주로 가입률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여기까지만 보면 달러보험 매입은 정상적인 투자행위로 보인다. 조금이라도 달러가 저렴할 때 미리 사둬 수익을 올리려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판매현장에서 발생한다. 달러보험은 기본적으로 환테크 목적이 아닌 장기상품이다. 장기상품 특성상 중도 해지 시 해지환급금이 납입 원금보다 적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환차익에만 집중한 불완전판매가 최근 성행하고 있어 의가 필요하다."가입 10년 후 해지 시 124%의 수익이 날 수 있다는 말로 현혹했다." "연금·종신보험이란 상품 특성과 달리 환테크를 통한 수익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계약을 유도했다." "환율이 오르면 추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이라고 했으나 중도해지 시 해약환급금이 50%도 되지 않는 것을 가입 후에야 알았다."실제 금융당국에 접수된 달러보험 관련 민원들이다. 공통적인 건 상품의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환차익만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달러보험 취급 보험사 임원을 소집해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자체 점검을 당부했다. 금감원은 보험사에서 제출한 점검 결과를 분석한 뒤 향후 현장검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시장 논리에 따라 발 빠르게 움직이는 개인을 나무랄 순 없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올해 소비자보호를 재차 강조하고 있으나 무작정 이들을 지켜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금융당국이 '앞만 보고 뛰진 마세요'라는 경고문을 붙이면, 이를 잘 확인하고 천천히 뛸 때도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노트] '생산적 금융'도 번호표 순
"지난해에는 과 전체가 '국민성장펀드'에 매달렸습니다. 이제 추진단으로 넘겼지만 사실 다른 과제는 아직 구체화할 틈이 없었습니다."최근 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생산적 금융'이 핵심 정책 기조로 부상하며 당국의 역량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국민성장펀드 설계와 초기 세팅에 집중됐다. 지난해 12월 큰 틀을 잡아 추진단으로 넘긴 뒤에는 또 다른 과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정책도 번호표 순서대로 굴러가는 모양새다.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행정 효율을 위해 불가피할 수 있다. 제한된 인력과 자원 속에서 모든 토끼를 잡을 순 없어서다. 다만 새 현안이 연이어 쏟아지는 과정에서 정작 챙겨야 할 내실 있는 과제들이 손도 대지 못한 채 뒤로 밀리고 그 부담이 현장에 누적된다는 점이 문제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 만들어낸 짙은 그늘이다.이 같은 흐름은 기술금융(기술신용대출) 영역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술금융은 기술신용평가(TCB)를 기반으로 혁신·첨단기술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제도로 담보가 부족한 유망 기업에겐 생명줄과 같다. TCB 체계를 고도화하고 은행의 리스크 부담을 낮출 정교한 유인책을 마련하는 일은 생산적 금융을 굴러가게 하는 핵심 퍼즐이다.정부의 독려 덕에 지난해 기술금융 대출 잔액은 3년 만에 반등하며 외형상 성장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은행권에선 "숫자는 맞추고 있지만 리스크 분담 장치가 없어 적극적인 대출은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는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해 제도개선 과제를 점검하겠다는 구상이지만,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잇따른 정책 과제 속에서 제한된 인력으로 모든 것을 추진해야 하는 실무진의 물리적 한계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혁신 기업을 키우겠다는 생산적 금융을 전면에 내세운 상황에서 정작 그 핵심 엔진인 기업들에 대한 기술금융이 우선순위 밖에 밀려난 건 뼈아픈 대목이다.정책은 발표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다. 화려한 수식어를 담은 대책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제도 설계 이후의 세밀한 조정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보완 작업이 필수적이다. 거대 담론의 설계만큼이나 중요한 건 이미 가동 중인 제도가 멈춰 서지 않게 기름을 치고 부품을 가는 일이다.혁신 기업들이 당장 원하는 건 기술력 하나로 금융의 문턱을 넘게 해주는 '디테일의 완성'이다. 이제는 번호표 뒤에 가려진 현장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청사진은 이미 충분하다.
[기자노트] 부동산 정치와 정책 일관성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을 향해 연일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오는 5월9일 양도소득세 중과 적용 등 다주택자를 겨냥한 세제·대출 규제 기조도 한층 선명해졌다. 등록 주택임대사업자도 규제 영향권에 들어섰다.그러나 임대사업자를 둘러싼 정책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복잡한 질문이 남는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민간 임대 물량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 공공임대 공급에 따른 재정 부담을 덜고 세입자 주거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정부는 임대의무기간 준수와 임대료 인상률 제한이라는 규제를 전제로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세 중과 배제, 취득·재산세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정책 유인에 호응한 임대사업자는 2017년 말 26만여명에서 2019년 48만여명으로 급증했다. 당시 정부와 민간은 일정한 역할 분담을 한 '정책 파트너'로 기능했다.하지만 이 구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임대사업자 제도가 다주택자의 세금 회피나 갭투기(전세 낀 매수)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비판에 정책은 급선회했다. 2020년 7·10 대책을 통해 단기임대(4년)와 아파트 장기일반 매입임대(8년) 제도가 폐지됐다.이어 지난해 6·27 대출 규제와 10·15 대책을 거치며 규제지역 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0% 적용, 종부세 합산 배제 제외 등 정부 기조가 임대사업자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최근에는 대출 만기 연장과 대환 시 임대사업자가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지표를 나타낸 이자상환비율(RTI)을 강화하고 LTV 규제를 추가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임대사업자의 신규 차입이 사실상 차단된 상황에서 기존 금융거래까지 조이는 셈이다.한때 정책 인센티브를 통해 투자에 뛰어든 임대사업자들은 제도의 역풍을 맞게 됐다. 정책 수정은 정권 교체나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불가피할 수 있지만, 문제는 전환의 방식과 속도이다. 유인과 규제가 짧은 시간 안에 반복되면서 정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한 관계자는 "국가가 제시한 조건과 약속이 수년 만에 뒤집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부활한 단기임대 제도도 등록률이 매우 저조했다. 언제 다시 정책이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이 크다"고 말했다.전세사기 피해 확산과 고금리,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건설경기 침체 요인이 겹치면서 민간 임대사업자 수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임대사업자 수는 2020년 38만여명에서 2024년 23만여명으로 줄었다. 서울의 매입형 장기일반 민간임대주택은 80% 이상이 빌라·오피스텔 등 비아파트다. 이를 고려하면 주택임대시장의 공급 위축은 취약계층의 주거비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정책을 따랐던 이들이 위험 부담을 예측할 수 없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향후에도 민간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정부의 강한 메시지만큼 중요한 것은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다. 정책은 시험이 돼선 안된다.
[기자노트] 영풍 '환경투자 5400억' 산정 근거 제시해야
영풍이 꺼내든 석포제련소 '환경투자 5400억원' 카드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거액을 투자했다는 입장만 내세울 뿐 세부 집행 명세를 공개하지 않아 의구심을 키운다. 그동안의 주장과 주요 회계 지표 간 괴리까지 포착되며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영풍 주장이 사실과 다를 경우 시장 신뢰 훼손 등 파장이 커질 수 있다. 영풍은 2019년 환경개선 혁신계획을 발표한 이후 2020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약 5년간 5400억원의 환경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는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기간 환경 복구충당부채 사용액·유형자산 취득액·수선비를 합산한 약 77000억원 중 상당 금액을 환경투자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해당 회계 지표가 설비투자와 유지보수 관련 지출을 포함하고 있어 이 중 일부를 환경투자로 분류해 5400억원이라는 숫자를 제시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공개된 각 지표와 실제 주장 사이에 괴리가 감지된다는 문제다. 환경 리스크가 주목받지 않았던 2014~2019년까지의 6년과 환경개선 혁신계획 발표 이후인 2020~2025년 3분기까지 지출을 비교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영풍의 유형자산 취득액(각종 설비투자 금액)은 2014~2019년 2219억원, 2020~2025년 3분기까지 3414억원이다. 통상적인 제련사업을 영위하면서 과거와 같은 유형자산을 취득했다고 전제하면 환경리스크 부각 이후 늘어난 유형자산 취득액은 1195억원이다. 여기에 2020년 이후의 복구충당부채 사용액 1566억원까지 더하면 과거 6년 대비 최근 6년간 추가 지출된 금액은 '2761억원'이다. 영풍이 주장한 5400억원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외에 2020~2025년 9월까지의 '회계상 당기 비용'(내용연수 1년 이하)으로 인식한 지출액 중 상당 금액도 환경투자로 분류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대표적인 설비 관련 당기 비용인 수선비 중 1년 이하 성격을 지난 환경투자 지출액이 포함됐을 수 있다. 지난해 9월까지 최근 5개년 간 연평균 수선비는 451억원이다. 약 2700억원의 금액을 당기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업계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만큼 그 내용을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영풍이 2020~2025년 3분기까지의 총 유형자산 취득액 3414억원을 환경투자 비용으로 분류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본업 경쟁력을 소홀히 했다는 역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14~2019년(2219억원)보다 훨씬 적은 비용을 썼다는 건 공장설비·기계장치 교체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제련업은 대규모 장치 산업이라 설비 교체·보수 등의 지출이 상시 발생한다. 환경복구 의무 이행을 위해 마련한 복구충당부채가 상당액 남아있는 것도 의문을 키운다. 쌓아둔 충당부채 일부만 사용한 채 별도 추가 지출로 대규모 환경투자를 했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영풍의 환경 복구충당부채 잔액은 2128억원이지만 실제 사용액은 1566억원에 그친다. 환경 복구충당부채 사용액이 아닌 전입액을 환경투자 금액 산정에 포함했다면 이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입액은 실제 지출한 금액이 아닌 지출 가능성에 의해 회계상 부채로 인식한 금액이라 이를 실제 투자액에 포함하는 것은 무리다. 2020~2025년 3분기까지 영풍의 환경복구 충당부채 전입액은 총 3695억원이다. 종업원 급여·광고 선전비·지급수수료·무형자산 취득·기타비용 등 또 다른 항목들이 환경투자 비용으로 계상됐을 수 있으나 실제 환경개선을 위한 투자 비용으로 적절한지는 검증해야 한다. 영풍은 얼마 전에도 환경오염 비용 과소계상 문제로 금융위원회 산하 감리위원회로부터 제재 심의를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석포제련소 주민대책위원회는 앞서 영풍이 수조원대 환경복원 책임을 회계 장부에서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영풍과 장형진 고문 등을 자본시장법·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각종 구설에 휘말렸던 영풍은 '5400억원'이라는 숫자만 외치기보다 검증 가능한 데이터를 제시하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란다.
[기자노트] '코스닥' 수술은 이미 시작했는데 수혈은 언제 하나
지난 26일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6300선을 넘었다. 3차 상법개정(자사주 소각 의무화)까지 국회를 통과하며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향한 기대감이 달아올랐다.하지만 코스닥은 아직 1100선에 머물고 있다. 1996년 7월 기준지수 1000포인트로 출범해 한때 2834포인트까지 치솟았으나 지금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8.6배 올랐는데 지수는 1.6배 상승에 그쳤다. 몸집은 커졌는데 키는 그대로인 셈이다. 이 같은 역설의 답은 단순하다. 부실기업이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코스닥 신규 상장은 1353개사였지만 퇴출은 415개사에 불과했다. 진입은 넓고 퇴출은 좁은 '다산소사(多産少死)' 구조가 시장의 발목을 잡았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개인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기관은 없으며 증권사 분석 보고서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시장이라고 인정했다.현 정부는 이 구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 한다. 올해 1월 시총 상장폐지 기준을 4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올렸고 7월엔 200억원으로 추가 강화한다. 주가 1000원 미만 동전주 퇴출 요건도 7월부터 신설된다. 거래소 시뮬레이션 결과 올해 상장폐지 대상은 약 150개사 내외, 최대 220개사로 추산된다. 코스닥벤처펀드 세제 혜택을 평생 300만원 한도에서 연 200만원으로 확대하고, 연기금 기금운용평가 기준에 코스닥 지수를 반영해 기관 자금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5년간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도 AI·반도체·바이오 등 코스닥 주력 업종을 겨냥한다. 26일엔 재정모펀드 운용사 선정도 마쳤다. 방향은 맞다.문제는 체감이다. 정책의 방향은 옳지만 코스닥 투자자에게 먼저 도착한 건 '퇴출 명단'이었다. 150개사 상장폐지 예고는 코스닥 저가주 전반에 공포 매도로 번진 반면 국민성장펀드 자금이 실제로 기업 현장에 닿는 건 이르면 올 연말이다. 3차 상법개정도 마찬가지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주주 환원이 강화되고 지배구조 투명성이 높아지는 건 맞다. 하지만 혜택은 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 강제 소각 대상 자사주 규모는 코스피 약 20조원, 코스닥 약 1조7000억원으로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자사주를 수십 년간 경영권 방어막으로 쌓아온 건 코스피 대형주들이었다. 이번 개정으로 가장 크게 움직이는 것도 결국 그쪽이다. 코스닥 입장에서 이번 상법개정은 남의 집 잔치에 가깝다. 치료는 시작됐는데 진통제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다.이 공백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성장펀드 집행 일정을 앞당기는 것이 첫 번째다. 코스닥 우량주 중심 ETF를 확대해 개인에게 편중된 수급 구조를 바꾸는 것도 병행돼야 한다. 한국판 나스닥을 표방했던 코스닥이 나스닥과 달리 제자리걸음을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결국 기관 투자자의 부재였다. 부실을 걷어내는 작업과 살아남은 기업들을 키우는 작업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한쪽 페달만 밟으면 자전거는 기울어진다.코스닥이 코스피 6300의 봄을 함께 맞으려면 이 공백이 너무 길어서는 안 된다. 수술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는 수혈도 서둘러야 한다.
[기자노트] "절대선은 없다"…정교함 빠진 '메시지'에 흔들리는 시장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대출 만기 연장과 대환대출을 신규 대출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주택 임대사업자 대출 만기 연장과 대환까지 신규 대출과 같은 규제로 묶겠다는 취지다. 신규 대출은 막혀 있는데 기존 대출은 관행적으로 연장된다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형평'이라는 잣대가 언제나 '균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금융과 부동산 시장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영역에서는 더 그렇다.금융당국은 수도권·규제지역 내 아파트를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해 대출 만기 연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핀셋 대책'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규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LTV(담보인정비율) 0% 규제를 만기 연장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임대사업자 대출에 대해 RTI(임대소득 대비 이자상환비율) 기준을 재심사 때 엄격히 적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자본규제 강화까지 테이블에 오른 상황이다.문제는 연장의 성격이다. 신규 대출은 미래의 레버리지를 새로 일으키는 행위지만, 만기 연장은 기존 계약을 전제로 한 유동성 관리의 성격이 강하다. 가계 주담대의 경우 원리금 분할상환 비중이 높아 구조적으로 만기 일시상환 비중이 크지 않다. 은행권에서는 "다주택자에게 연장해야 할 가계 주담대 자체가 많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실질적으로 영향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영역은 2023년 이후 한시적 규제 완화로 취급된 주택임대사업자 사업자대출이다. 당시 LTV 30% 이내, RTI 요건 충족 등을 조건으로 일시상환 방식 대출이 허용됐다. 다만 은행권 설명을 종합하면 이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상당수가 아파트보다 빌라·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주거용 자산에 묶여 있다.여기서 또 다른 균형 문제가 발생한다. 서울 장기매입 임대주택의 상당 수가 비아파트다. 임대사업자는 원룸·오피스텔 등에서 전월세 공급의 한 축을 맡고 있다. 모두가 집을 소유할 수 없는 구조에서 누군가는 소유하고 누군가는 임차하는 시장이 형성된다. 임대사업자를 일괄적으로 '문제 집단'으로 보는 시각에 대한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연장이나 대환대출까지 신규 대출과 똑같이 묶어 제한하면, 그동안 성실하게 이자를 갚아온 차주들도 한꺼번에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갚을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장 현금을 마련하지 못해 연체가 발생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 늘어나면 결국 은행의 건전성에도 부담이 된다.집을 급하게 팔아야 하는 사례가 늘면 매물이 쏟아지고, 가격이 내려가며 담보 가치가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최근 서울 아파트 매물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일부 단지에서는 가격이 낮아진 거래도 나타나고 있다.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는 신호만으로도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물론 가계부채 관리의 필요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레버리지에 기대어 집값 상승을 추종하는 구조를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역시 타당하다. '신규는 막고 연장은 허용'하는 구조가 정책의 빈틈으로 작용해왔다는 지적도 일면 맞다.그러나 정책에는 언제나 속도와 강도의 문제가 따른다. 형평성 확보라는 대의가 현실의 균형을 깨뜨릴 정도로 급격하게 적용될 경우, 그 충격은 다주택자에 그치지 않는다. 전월세 시장, 금융회사 건전성, 나아가 무주택 세입자에게까지 파급될 수 있다.은행권 관계자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어떤 대상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 명확해져야 시장 충격을 가늠할 수 있다"며 "단계적·선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 정책에 '절대선'은 없다. 다만 충격을 최소화하는 설계는 가능하다.형평의 잣대가 시장을 바로 세우는 도구가 될지, 균형을 무너뜨리는 칼날이 될지는 세부 설계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한 메시지보다 정교한 기준이다.


![[시대포럼] AI 대전환의 시대, AI 풀스택 대한민국의 도약](https://i.ytimg.com/vi/VcbpSJtXg6o/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