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기자노트]억대 성과급과 최저임금 사이…초과이윤, 상생 위해 숙의하자
최근 삼성전자 노사 갈등에서 촉발된 대기업 초과이윤 재분배 논란이 정치권과 산업계 전반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AI(인공지능) 시대에 기업에 집중될 초과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묻는 '한국형 사회연대임금' 논의를 제안하자 산업계와 야권은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마저 "반도체 이윤은 미래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로 연결해야 한다"고 선을 그으면서 정부 부처 간 엇박자 논란까지 불거졌다.그러나 이번 논란을 '기업의 이윤을 빼앗자는 낡은 주장'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문제의 뿌리에는 한국 노동시장의 오래된 이중구조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반도체 라인, 같은 공장 생태계에서 일하지만 일부 원청 정규직에게는 억단위의 성과급이 논의되는 동안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과 일자리를 걱정한다. 대기업의 초과이윤도 특정 기업 소속 임직원만의 노력으로 빚어진 결과라고만 보기 어렵다. 협력업체의 땀 어린 기술과 인력, 장기간 축적된 공급망의 역량이 함께 만들어낸 성과이기도 하다.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벌어진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는 한국 노동시장이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숙제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 대기업의 초과이윤 배분 비율을 직접 정하거나 강제하려 들 경우 부작용이 작지 않다. 배분 기준과 대상, 경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주가치 훼손, 경영 개입, 재투자 위축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자칫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고치자는 문제의식이 산업 경쟁력 훼손 논쟁으로 번질 수 있다.필요한 것은 파이를 억지로 빼앗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대기업이 거둬들인 초과이윤이 하청 생태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제도의 물꼬를 터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 초과이윤을 바탕으로 현재 원자재 가격 변동에 초점이 맞춰진 납품대금 연동제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은 어떨까. 협력업체의 임금 인상분, 안전 투자 비용, 숙련 인력 확보 비용을 원청이 함께 부담할 경우 초과세수를 활용한 세제 혜택과 정책금융 우대, 공공조달 평가 가점 등을 제공하는 방식 등이 가능하다.자본시장의 힘을 이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활용해 협력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행위를 핵심 ESG 지표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평가에 반영한다면 상생에 앞장서는 기업이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단순 기금 출연이 아니라 실제 하청 노동자의 임금 인상, 산업안전 투자, 복지 개선 등에 대한 데이터를 증빙한 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초과이윤은 승자가 독식할 전리품도, 억지로 뺏어 나눌 약탈품도 아니다.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재원으로 쓰일 때 대한민국 기업이라는 거위는 더 크고 건강한 황금알을 낳을 수 있다. 초과이익 배분을 논의하기 위한 '가칭 사회연대임금 모색 긴급토론회'는 연기됐지만 청와대도 성과 배분의 사회적 공론화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토론회 개최는 조만간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그 자리가 상생의 룰을 다시 설계하는 숙의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기자노트]사과도 똑소리 나는 무신사, 데카콘 자격 있다
"그래서 뭘 잘못했는데?"연인이나 부부 싸움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이 대사는 이제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상 콘텐츠에서 단골 밈(Meme)이 됐다. 이 대사에는 위기관리의 본질이 숨어있다. 사과의 기본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하고 수치스럽더라도 이를 가감 없이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그저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영혼 없이 "잘못했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곧 더 큰 난관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저명한 사회학자 샘 리처드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교수는 사과의 5가지 핵심 요소로 유감 표명, 책임 인정, 보상과 배상, 진심 어린 반성, 용서 구하기를 꼽았다.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이 불거지자 온라인에서는 7년 전 무신사의 비슷한 실수가 함께 소환됐다. 2019년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케 하는 문구를 SNS 마케팅에 쓴 일이다. 이미 여러 번 사과하고 수습이 끝난 사건이기에 자칫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신사는 두말하지 않았다. 지난 5월20일 발표한 공식 사과문에는 리처드 교수가 말한 핵심 요소들이 분명하게 담겼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후 어떤 조처를 했는지, 반성의 목소리와 함께 재차 사과했다. 이튿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창업자인 조만호 의장과 조남성 대표이사가 박종철센터를 직접 찾아가 고개 숙이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조 의장이 사건 직후부터 7년간 박종철기념사업회 회원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조용히, 그리고 오래. 보여주기식 사과가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진정성 있는 행보에 여론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옛말은 이럴 때 쓰인다. 위기관리 능력만큼 돋보이는 것은 차근차근 다져가는 기업의 내실과 상생 행보다. 무신사가 서울 성동구와 손잡고 추진하는 서울숲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2023년부터 임차인을 찾지 못해 3년 이상 방치됐던 성수동 유휴 공간에 패션 셀렉트숍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연내 20여개 디자이너 브랜드가 집결하는 K패션·라이프스타일 특화 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민관 협력 기반의 지속 가능한 상권 모델을 구축하며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공시를 통해 드러난 데이터는 이들의 상생 기조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브랜드 인큐베이팅과 상생을 앞세우는 유통 대기업의 인디 브랜드 투자 금액은 최근 수년간 매출 대비 0.2~0.7%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같은 기간 무신사는 동반성장펀드 등 직접 지원 자금 편성을 통해 매출 대비 4~5% 수준의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매출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상생 투자 규모도 매년 확대하는 추세다.과거 무신사가 유니콘을 넘어 기업가치 10조원 이상인 데카콘 기업을 노린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시장의 평가는 회의적이었다. 고성장 스타트업 특성상 기업가치 산정 시 최대 영업이익의 30~40배까지 평가하는 관행을 고려해도 과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무신사는 2023년 하반기 거래액 4조원을 기록할 당시 기업가치 3조5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2025년 연결 기준 무신사의 거래액은 5조원을 넘어섰고 매출 1조4679억원, 영업이익 1405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올해 이 기록을 다시 쓸 전망이다. 돈도 잘 벌고 리스크 관리도 잘하고 ESG까지 잘 챙긴다. 비상장 기업인데 웬만한 대기업보다 낫다. 재무제표에 찍히는 숫자도 매력적이지만 무신사는 시장과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데카콘 그 이상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기자노트]서울 떠나는 금융, 표심보단 숙의가 먼저
'포퓰리즘'. 정책의 실효성보단 대중으로부터의 지지와 인기를 우선하는 정치 행태를 일컫는다. 어원은 19세기 미국에서 결성된 포퓰리스트당에서 유래했다. 충분한 검토와 준비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늘 논쟁의 중심에 선다.선거철만 되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금융권 단골 이슈가 있다. 금융기관 지방이전이다. 다음달 있을 6·3 지방선거를 앞둔 올해도 관련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범위도 넓어졌다. 금융당국을 비롯해 국책은행 및 농협·수협중앙회까지 거론되며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명분은 확실하다. 서울·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발전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지방으로 분산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정치권에선 '금융의 재배치'에 대한 논의를 다룬 다양한 시나리오가 과거부터 꾸준히 언급돼 왔다.문제는 현실이다. 금융은 일반 제조업 공장처럼 건물을 옮긴다고 기능까지 고스란히 옮겨지는 업권이 아니다.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정책금융기관, 민간 금융사, 증권사, 법무·회계법인, 정보기술(IT) 기업 등이 촘촘히 연결된 생태계 안에서 서로 호흡한다.현재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금융 인프라를 감안한다면 단순한 물리적 이전만으로는 기대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노동조합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선을 앞두고 나온 선거용 포퓰리즘'이라고 반발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특히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라면 고민할 지점은 더 많아진다. 최근 중동전쟁에 따른 리스크 및 글로벌 변동성 확대 등 시장 불안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금융 생태계는 수시로 머리를 맞댄다. 급박하게 흘러가는 위기 상황일수록 시장 안정을 위해선 속도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위기에 맞서야 하는 유관기관 간 협업 체계가 흔들린다면 효율성 저하로 이어진다. 단순히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다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과연 정치권에서 이러한 우려를 염두에 두고 공약을 내거는지가 궁금하다.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 지방이전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던 올해 초와 달리 지금은 다소 수그러든 것 같다"면서도 "지선이 끝난 이후 지역별 선거공약 및 요구에 따라 관련 논의가 다시 재점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여건은 갖춰져 있다.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을 지방으로 옮기는 법안은 이미 정치권에서 발의된 상태다. 최근 들어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이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지방이전이 무조건 틀렸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선거철마다 금융의 이름을 빌린 '표심잡기'가 반복된다면 대중의 신뢰마저도 잃을 수 있다. 단순히 어느 금융기관을 '어디로 보내겠다'가 아니라 금융기관을 어떻게 바꾸고 이를 통해 무엇을 달성하려 하는지 등 내용을 담은 전략이 필요하다.숙의를 위한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 대부분 금융기관의 본점 소재지는 관련 법에 '서울'로 명시돼 있다. 지방 이전을 추진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행정·입법부의 협의가 필요한 만큼 빠른 개정이 진행되기는 다소 어렵다. 지방 이전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논의하는 그러한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
[기자노트]안전 사라지고 정쟁만 남은 GTX 부실시공 사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삼성역 공사 구간의 철근 누락 사태가 정치권 공방으로 확산되며 건설업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사 현장에서 크고 작은 오류는 발생할 수 있지만 국내 최상위 시공사와 다중 감시 체계가 투입된 국가 핵심 인프라 사업에서 치명적인 시공 오류가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해당 구간 지하 5층 기둥 80본 중 50본은 준공 구조물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시공사 현대건설은 구간 도면을 오독해 지하 5층 기둥 80곳에서 2개씩 들어가야 할 주철근을 1개씩만 시공했다. 누락된 철근은 총 178t(톤)에 달한다.서울시는 시공사로부터 관련 사실을 보고받은 뒤 약 5개월이 지나서 국토부에 공식 보고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구간은 국토부 산하 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이 서울시에 위탁해 사업이 진행 중이다.이번 사태는 지난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로 이어졌다. 하지만 회의장은 예상과는 다른 내용으로 전개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점검보다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는 진실게임으로 채워졌다.국토부와 국가철도공단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고 서울시는 "수차례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고 맞섰다. 두 기관은 지난 25일에도 서로의 입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각각 발표했다.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전불감증" "정치 감사" 같은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양측의 책임 공방이 여야 서울시장 후보 간 선거 대리전으로 번지면서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는 모양새다. 사고 책임을 규명하는 일은 필요하다. 삼성역 지하공간은 서울 동남권 핵심 교통축으로 GTX-A·C 노선과 지하철 2호선, 버스 환승센터 등이 집결하는 시설이다. 관리 책임 역시 무겁다. 지금처럼 책임자들이 "몰랐다" "보고했다"는 식으로만 떠넘기기 급급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사고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다중 감시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자체 점검에서 문제를 발견해 자진 신고했지만 이에 앞서 철근을 배치하고 콘크리트를 붓기까지 감리업체마저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발주청 서울시와 위탁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의 협력 대응도 뒤늦었다. 현장 작업자 한 명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여러 단계의 안전망이 동시에 무너졌다는 의미다.시민들이 궁금해하는 건 정치권의 공방이 아니다. GTX-A를 이용해도 안전한지,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답이다. 사고 발생 시 어느 기관이 더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보다 보고 시점,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국가 핵심 인프라의 안전 문제마저 정쟁 속에 묻혀선 안 된다.
[기자노트]23년 묵은 빚 청구서
2003년 카드대란은 오래전 일처럼 여겨졌다. 몇 년 전 드라마 소재로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상록수 논란은 그 과거가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실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상록수는 카드대란 당시 급증한 장기 연체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2003년 주요 은행과 카드사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유동화전문회사다. 금융사들이 직접 들고 있기 부담스러운 부실채권을 별도 법인으로 넘기고 이 법인이 채권을 보유·관리해온 구조다.금융사 입장에서는 부실채권을 분리한 것이지만 채무자 입장에서 빚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채권자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 채무는 20년 넘게 남아 있었다.이재명 대통령의 '약탈적 금융' 발언은 논란의 방아쇠가 됐다. 금융권은 곧바로 상록수 보유 채권 매각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장면은 씁쓸하다. 금융권은 포용금융을 말해왔고 당국은 새도약기금을 만들었다. 그런데 20년 넘은 카드대란 채권은 대통령의 질타가 있기 전까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남아 있었다.정부는 취약차주의 재기를 지원하기 위해 원금 5000만원 이하, 7년 이상 장기연체채권을 매입해 추심을 중단하고 채무조정이나 채권 소각 등을 지원하는 새도약기금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상록수 보유 채권은 민간 SPC(특수목적법인) 자산이라는 이유로 우선 정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제도는 생겼지만 카드대란의 잔재는 제도 바깥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그렇다고 상록수 논란을 곧바로 '약탈적 금융'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록수는 개별 금융회사가 지금 직접 채무자를 상대로 추심하는 구조라기보다 별도 SPC가 채권을 보유·관리하는 형태로 운영돼 왔다. 금융사들도 현재 자신들은 지분을 가진 주주 성격에 가깝다고 설명한다.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상록수를 만든 것은 금융권이고 지분을 보유한 것도 금융권이다. 채권 회수에 따른 경제적 이익 역시 금융권과 완전히 무관했다고 보기 어렵다. 직접 추심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책임의 구조를 말해줄 뿐 책임이 사라졌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금융당국도 비켜서기 어렵다. 취약차주 재기를 지원하겠다는 제도가 만들어졌는데 정작 20년 넘게 묵은 카드대란 채권이 남아 있었다면 제도의 빈틈으로 해석될 수 있다.물론 상록수 청산이 빚 탕감의 신호로 읽혀서는 안 된다. "빚 갚는 사람만 바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은 가볍지 않다. 금융은 약속 위에 선다. 빌린 돈은 갚아야 하고, 성실하게 상환해온 사람들의 박탈감도 고려해야 한다. 이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포용금융은 곧바로 특혜 논란에 갇힌다.그렇다고 이 원칙만으로 상록수 문제를 덮을 수도 없다. 상록수 채권은 최근 발생한 부실이 아니라 카드대란 이후 이어진 장기연체채권이다. 원금 1000만~2000만원 수준이던 채무가 연체이자와 시효 연장 등을 거치며 수억원대로 불어난 사례까지 알려졌다. 쟁점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지 않다.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채권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는 돈'으로 남겨둘 것인지에 있다.필요한 건 탕감의 확대가 아니라 책임의 정리다. 일괄 탕감도, 무조건적인 회수도 답이 될 수 없다. 상환 여력과 회생 가능성을 따져 책임을 물을 채무와 재기를 도울 채무를 가르는 선별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특히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오래된 채권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받아낼 수 있느냐보다 채무자가 다시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느냐를 우선 따져야 한다. 금융권과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오래된 빚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상록수 청산은 채권 처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랜 기간 미뤄온 책임의 청산이어야 한다. 카드대란은 금융사 장부에서 끝났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 청산이 단순한 채권 매각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자노트]"나만 못벌면 안 되는데"…코스피 8000 시대의 이면 '빚투'
최근 어딜 가나 주식 얘기 뿐이다.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수치에 도달하며 세계가 주목한 '코스피'가 화두다. 1년 전 오늘(2025년 5월19일) 코스피지수 종가는 전 거래일 보다 23.45포인트(-0.89%) 내린 2603.42였지만 지난 15일에는 장 중 한 때 사상 최고치인 8046.78포인트까지 찍었다. 1년 동안 5440포인트 넘게 뛰며 해외 투자자들도 주목하는 시장이 됐다.과거 코스피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저 그런 시장"에 불과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취임한 뒤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를 천명하며 "국장 복귀는 지능 순"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동안은 "국장 탈출은 지능 순"에 더 가까웠다.코스피가 투자자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오랜 시간 2000포인트 선에 머물며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투자 매력도가 떨어져서다. 이른바 '박스피'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현재 30만원에 육박한 코스피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10만 전자 후퇴', '또 6만 전자' 등 10만원 아래 장기간 갇혀 투자자들의 속을 태웠지만 올 1분기 영업이익만 57조원을 넘게 거두며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회사"라는 칭송을 듣게 됐고 주가도 크게 뛰었다.200만원에 육박하며 400만원까지 찍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시총 2위 SK하이닉스는 23년 전 상장 폐지를 걱정해야할 '동전주' 처지였다. 2011년 SK그룹에 인수된 뒤에도 적자에 허덕였지만 이제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때 미리 사둘걸"이라는 탄식을 쏟아내는 황제주 지위에 올라 있다.최근의 거침없는 코스피 상승세는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을 만난 두 회사의 기여도가 가장 크지만 정부와 여당의 세차례 상법 개정, 각 기업의 주주가치 재고 전략이 맞물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오명을 벗기는 데 함께 힘을 보탰다. 예기치 못했던 가파른 상승세의 코스피는 주식 투자 열풍을 몰고 왔지만 반대로 부작용도 양산했다. "여기저기서 주식 투자로 돈 벌었다는 소리가 가득한데 왜 나만 못 벌지?"라는 의문과 심리적 불안감이 무리한 '빚투'(빚내서 투자)로 이어져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흐트러트릴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이는 대중적 흐름이나 경향에서 나만 고립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일컫는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다. 무리한 신용대출로 주식에 투자하고 은행 예금을 빼 주식에 몽땅 쏟아 붓는 무리수까지 둔다. 청소년부터 사회초년생,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코스피에 빠져 "나만 소외될 수 없다"며 투자 성공을 다짐한다.국내 주요 10대 대형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삼성·KB·NH·신한·메리츠·키움·하나·대신)가 거둔 1분기 신용융자거래에 따른 이자 수익이 지난해 동기(3846억원) 대비 55.9% 늘어난 6000억원을 거둬들인 것도 주식 투자 열풍의 이면이다.국내외 주요 증권사와 애널리스트들도 코스피 낙관론을 내세우며 목표지수를 상향해 전망하지만 이런 분위기일수록 스스로를 통제해야 할 인내심과 자제력이 필요하다. 주식투자는 기본적으로 위험자산에 속한다. 주가지수는 가파르게 치솟다가도 언제든 다시 하향 곡선을 그릴 수 있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본 범위를 넘어선 무분별한 투자는 오히려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방해한다. 스스로 "술 덜 마시고, 담뱃값 아껴서 주식 투자해야지"라는 다짐과 "집 담보로 대출 받고 차 팔아서 주식 투자해야지"라는 다짐은 위험의 파고가 확연하다. 투자에 실패해도 내가 감당할 수준에서 움직여야 한다. 무리하게 주식투자해서 돈 벌었다는 주변 얘기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부당한 정보를 취득해 주식을 사고파는 불법행위에 대한 유혹도 마찬가지다. 그건 "나만 소외되고 있다"가 아니라 "저러면 패가망신 할 수 있다"라고 되새기는 계기여야 한다. 폭등을 노리고 큰 돈 들여 동전주를 산다고 갑자기 주가가 치솟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 오를 까봐 빚내서 무리하게 주도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주식 투자 성공 스토리를 쉽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공은 어렵게 찾아오지만 실패는 한순간이다. 수시로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는 주식투자는 더더욱 그렇다는 걸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기자노트]'좋은 금융' 기준의 변화…ESG금융이 중요한 이유
지난 13일 동행미디어 시대 주최로 열린 ESG 어워드는 단순한 시상식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수상 결과보다 인상적인 건 '좋은 금융'의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과거 금융의 역할은 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리스크를 관리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명확했다. 기후위기와 양극화, 산업 전환이라는 구조적 변화 앞에서 이 기준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이제 금융은 '어디에 투자하지 말아야 하는가'에서 '어디에 왜 투자해야 하는가'를 묻는 단계로 넘어왔다.이번 어워드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넘어 '생산·상생 포용·신뢰'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ESG가 한때 친환경 투자 중심의 개념으로 소비됐다면 이제는 산업 구조와 경제 체질을 바꾸는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이 변화는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공식화하며 금융을 통해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머물던 자금을 혁신 산업과 벤처, 지역경제로 돌리고 있다.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조성과 자본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여력 확대, 자본시장 기능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의 진단처럼 금융은 더 이상 실물경제를 뒤따르지 않는다. 대출과 투자, 기업가치 평가를 통해 산업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 어떤 기업에 돈이 흘러가고 배제되는지가 미래 경제의 윤곽이 된다.문제는 기업만으로는 ESG 전환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ESG 경영은 단기 수익을 일부 희생하고 장기 가치를 추구해야 하지만 현실의 기업 의사결정은 단기 실적과 주주가치에 묶여 있다.이 지점에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ESG는 좋은 일이 아니라 돈이 되는 구조로 설계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에 낮은 금리를 적용하거나 ESG 채권을 통해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ESG 리스크가 큰 기업에는 더 높은 자본 비용이 부과된다. 금융이 가격 신호를 통해 기업의 선택을 바꾸는 구조다.ESG 금융의 본질은 도덕이 아니라 인센티브다. 기업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이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금융은 그 이유를 만들어주는 장치다.이날 시상식이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시장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 어떤 금융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지, 어떤 자금 흐름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신호를 던졌다.저성장과 양극화가 굳어진 지금 경제 문제를 정치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해법은 시장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는 금융이 큰 역할을 한다.좋은 금융은 얼마나 벌었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흘렀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로 평가받는다. ESG 금융이 중요한 이유다.
[기자노트]실적 모멘텀에도 주가 박스권 갇힌 제약사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고 연구개발(R&D) 성과도 나쁘지 않은데 주가가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최근 만난 제약사 임직원들의 하소연은 코스피 7800 시대에 더욱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경기 불황 속에 본업의 경쟁력인 신약 개발을 위해 재투자를 이어간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일까.국내 최대 제약사 유한양행은 지난해 매출 2조1866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함께 5대 제약사로 꼽히는 GC녹십자(1조9913억원)와 종근당(1조6924억원) 대웅제약(1조5709억원) 한미약품(1조5475억원) 등도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주가는 저평가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8.27~47.57배로 동종업계 평균(56.39배)을 한참 밑돈다. 견고한 재무제표가 오히려 '무거운 주식'이라는 낙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바이오·테크 분야의 제조·개발을 위탁 수행하는 바이오텍 기업들은 매출이 전무해도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조단위 기술 수출 임박' 같은 청사진 또는 루머에 현혹된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은 결과다. 이러한 투기에 가까운 투자는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개인 투자자들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제약·바이오 섹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다. 신약 하나가 개발돼 상용화가 되기까지 10년 이상의 기다림과 천문학적 비용이 투자된다.시장에서 자리잡은 제품들은 안정된 매출로 R&D 비용을 확보할 수 있지만 투자시장은 실적의 견고함보다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기회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주가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투자자뿐 아니라 기업도 변화해야 한다. 제약사는 데이터 중심의 IR을 고도화하고 소통을 늘려야 한다. 주주 환원을 강화해 투자할 만한 우량주로서의 입지도 다져야 한다. 그리고 투자자는 실체 없는 대박을 쫓기보다 재무 건전성과 R&D의 지속 가능성을 분석하는 기본을 다시 정립해야 할 때다. 실적이 모멘텀이 되지 않는 국내 제약·바이오주는 변동성 심한 테마주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숫자가 시장의 신뢰 지표가 될 수 있도록 기업과 투자자의 냉정한 자성이 필요하다.
[기자노트]국민성장펀드, 취지는 좋지만…관건은 납득 가능한 '성과'
"취지 자체는 좋지만 성과가 관건이죠. 어쨌든 리스크가 있는 투자 상품이잖아요."최근 만난 금융투자업계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에 대해 설명하며 이 점을 강조했다. 국민성장펀드의 본질은 예금이 아닌 '금융투자상품'이라는 것이다.국민성장펀드가 5월22일부터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판매를 앞두고 있다. AI( 인공지능)와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에 국민자금을 공급해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은행 예금과 부동산에 머물던 돈을 생산적 금융에 돌려 그 성과를 국민과 나누겠다는 취지다.관건은 성과다. 좋은 취지가 좋은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국민성장펀드는 원금보장 상품도 아니고 확정수익률을 제시하는 상품도 아니다. 정부가 손실을 20% 우선 부담하는 구조이긴 하지만 손실 가능성이 완전히 없지 않다.투자처에 대한 리스크도 있다. AI와 반도체, 바이오, 2차전지 등은 성장성이 크지만 그만큼 변동성도 큰 산업이다.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정보 비대칭과 주가 변동성, 불공정거래 리스크까지 관리해야한다. 코스닥 기업과 벤처 기업, 비상장사에 투자한다면 유망 기업을 선별하는 기준과 사후관리 장치도 명확해야한다. 국민성장펀드의 분명한 장점도 있다. 절세혜택은 국민성장펀드가 가진 막강한 장점이다. 장기투자관점에서 일반투자자가 벤처기업과 첨단산업에게 투자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투자자는 이러한 단점과 장점을 명확하게 알고 국민성장펀드에 투자해야한다. 소득공제 요건과 환매 제한, 손실 가능성, 투자 대상의 변동성 등도 충분히 알아야한다. 우리는 과거 정책펀드의 사례에서 아쉬운 기억이 있다. 녹색성장펀드, 통일펀드, 뉴딜펀드 모두 출범 당시에는 국가 성장 전략과 맞물려 기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책 동력이 약해졌고 일부 상품은 시장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했다.국민성장펀드가 과거 정책펀드의 반복이라는 우려를 피하려면 실제로 다른 운용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정부와 운용사는 국민의 돈이 어디에 투자되고 어떤 위험을 부담하며 어떤 성과로 돌아오는지 끝까지 책임감 있게 설명해야한다.투자자도 자신이 투자하는 상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책임이 필요하다. 국민성장펀드의 성패는 모집 흥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5년 만기 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성과와 신뢰에 달려 있다.
[기자노트]잊을만 하면 시멘트 운송료 갈등…정부는 뭐하나
"협상의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서 매번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데도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좀더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일 때 입니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시멘트 전문가는 운송료(운임) 협상 갈등과 관련해 이같이 언급했다. 시멘트업계와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운전자(노동자) 간 해묵은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업계는 글로벌 업황과 중동 사태 등을 감안한 적정 운송료를, 노동자는 유가 상승에 따른 차량 유지비 증가, 과적에 따른 단속 및 안전 리스크 등을 이유로 운송료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수도권은 물론 일부 지역 BCT 분회에서도 운송료 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건설경기 회복 기대가 커지는 시점에 이 같은 갈등이 반복될 경우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BCT는 전국 건설 현장에 시멘트를 공급하는 핵심 물류다. 운송료 갈등 등으로 일정 기간만 차질이 빚어져도 관련 여러 공사가 지연되는 등 건설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중소 건설사의 경우 공기 지연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아파트 등 수요자 측면에서도 영향은 이어진다. 공사 일정이 늦어질 경우 입주 시기 지연 등으로 소비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고 원가 부담이 누적되면 분양가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멘트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설때마다 협상 기조에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소극적인 자세로 업계의 혼선이 적지 않고 업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일각에선 BCT 운전자들의 지위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진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형태 탓에 자영업자와 노동자 성격이 뒤섞여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상황에 따라 권리와 책임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BCT 차주들은 차량을 직접 구매·운영하고 사업소득을 신고하는 개인사업자로 유류비 등 비용도 스스로 부담한다. 동시에 운송료 협상 과정에서는 노동자로 단체 행동을 통해 권리를 주장한다. 건설 운송 등 물류는 국가 기간산업과 직결된 만큼 안정적인 제도 기반이 중요하다. 정부가 일관되고 적극적인 운송료 협상의 해결 의지를 갖고 관련 조치, 제도 보완 등 후속조치를 취할 때 현장의 소모적 갈등과 불확실성도 줄일 수 있다. 협상이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경기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속시원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노트]논란의 삼천당제약…제약·바이오 '자정능력' 시험대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회사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제약·바이오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 있어요." 최근 만난 국내 주요 제약사 고위 관계자는 삼천당제약 논란을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 22일 코스피, 코스닥 지수(이하 종가 기준)가 연초(1월2일) 대비 각각 48.9%, 24.9% 오른 반면 KRX 헬스케어 지수는 3.6%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평가는 단순한 기우가 아닌 듯하다. KRX 헬스케어 지수는 코스피·코스닥 종목 중 제약·바이오 산업에 속하는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로 구성됐다.유독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배경에는 삼천당제약이 자리한다. 주가가 단기간 급락하자 섹터 전반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천당제약 주가는 연초 24만4500원에서 지난달 30일 118만4000원까지 올랐으나 약 3주 만인 지난 22일 40만3000원까지 하락했다. 한때 1위였던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는 단숨에 5위까지 내려왔다.삼천당제약의 주가를 빠르게 끌어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업계는 계약 부풀리기 의혹과 미숙한 시장 소통 등을 꼽는다. 이 회사는 지난달 체결한 경구용 위고비 제네릭(복제약) 등의 미국 라이선스 계약 규모가 15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공시된 계약 규모(1억달러·1508억원)의 100배 수준이다. 삼천당제약은 상업화 후 10년간 매출이 계약 규모 15조원의 근거라고 주장했으나 불분명한 사업 전망치를 계약 규모에 포함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논란이 가중되자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시장과 소통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행인 점은 삼천당제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인석 대표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계약 부풀리기 논란에 대해 "미국 계약 규모를 15조원이라고 공시하지 못한 건 혹시 모를 투자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한국거래소의 보수적인 공시 가이드라인 때문"이라며 "계약의 실체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시장과 소통 미숙을 사과하며 IR(기업설명회)·PR(대외홍보) 조직 신설도 약속했다. 이후 과거와 달리 보도자료 등 외부 경로를 통한 시장 소통을 본격화했다. 업계 전반의 변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투자자가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출범한 금융감독원 제약·바이오공시 개선 TF(태스크포스)에 업계는 대체로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공시 부담이 늘어나긴 하겠으나 정확한 정보 제공을 바탕으로 기업가치를 투명하게 평가받는 것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아직 미숙한 게 사실이다. 앞서간 미국·유럽 등과 달리 이제 막 신약개발 성과를 축적하기 시작한 수준이다. 성과를 과장하기보다 문제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개선할 때 비로소 산업도 함께 성숙할 수 있다. 안정적인 투자 유치는 덤이다. "평판을 쌓는 데 20년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는 워런 버핏의 격언을 새길 필요가 있다.
[기자노트]미토스발 AI 해킹 충격…절실한 자성의 목소리
앤트로픽이 개발한 보안 특화 인공지능(AI) 모델 '미토스'가 스스로 시스템 취약점을 탐색하고 논리적 허점을 분석해 실제 공격까지 수행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자율형 AI'가 해킹 작업에 나서자 베테랑 보안 전문가들이 수개월간 설계한 방화벽이 수초 만에 무너졌다.전 세계가 미토스 위력에 충격을 받아 혼란이 우려되자 앤트로픽은 미토스를 당분간 일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클릭 한 번으로 국가 보안 체계를 삽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IT 선진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상황도 우려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미토스 공개 직후 통신 3사 및 네이버 카카오 정보보호 최고책임자(CISO)와 긴급 현안점검회의를 개최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AI전략위)도 보안특별위원회 정례회의를 통해 과기정통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머리를 맞댔다.미토스의 파괴력은 우리 사회를 순식간에 마비시킬 수 있는 상황이지만 국내에선 보안 유출 사고 수습이 미흡하다는 시각이 많다. 국내 통신사들도 사이버 침해 사고에 제대로 된 반성과 재발방지책이 부족하다. SK텔레콤 유심 해킹 이후 통신업계를 휩쓴 통신 보안 논란은 1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경찰은 과기정통부 자료 보전 명령에도 서버 2대를 포렌식이 불가능한 상태로 임의 조치한 SK텔레콤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고 KT는 해킹 당한 서버의 폐기 시점을 정부에 허위로 보고하고 폐기 서버의 로그를 백업했음에도 늑장 보고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LG유플러스는 해킹 정황을 고의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해당 은폐 의혹 수사는 경찰로 넘어갔지만 4개월 넘는 기간 동안 지지부진하다. 지우고 감추는 은폐 관행이 확실히 매듭지어지지 않으면 미토스의 공격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공격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기존 보안 패러다임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개월간 설계한 방화벽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첨단 AI 방어 시스템만이 아니다. 보안 사고를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습관을 발본색원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문제를 발견해도 이를 제대로 알리고 밝히지 않으면 보안 취약점이 구조적으로 방치되는 것인데 미토스와 같은 AI에게는 이러한 부분이 좋은 먹잇감이다. 사고를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은폐한 의혹은 미토스보다 더 위험한 '내부의 적'이다. 아무리 강력한 방화벽을 구축해도 이를 관리하는 주체가 외면하는 데 급급하다면 무용지물이다.SK텔레콤이 역대 최대 과징금 1347억원을 부과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KT와 LG유플러스에 대해서도 경미한 처벌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출 규모와 피해 양상이 다른 점을 감안하더라도 위약금 면제, 영업정지 등과 같은 부분에서 제재 수위가 다르다면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받게 된다.미토스의 공개가 잠정 보류됐지만 언젠가는 미토스 수준의 AI 해킹 도구가 등장할 것이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강력하고 빠를 것이다. 미토스발 AI 해킹 시대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성과 반성 없이는 AI 보안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마지막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말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은폐 관행을 뿌리 뽑고 엄격한 처벌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기자노트]헝가리산 차체 중국산 심장, BMW '눈 가리고 아웅'
"글쎄요, 정확한 건 나와봐야 알겠지만… 우선은 일본 회사 제품일 확률이 가장 높긴 합니다. 그런데 EVE에너지라고 중국 회사도 같이 들어와서 개발을 하긴 했거든요. 최종적으로 어떤 배터리가 탑재될지는 아직 저희도 모릅니다."최근 서울 시내의 한 BMW 전시장에서 신형 iX3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1억원에 가까운 프리미엄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에게, 판매 일선의 딜러조차 '심장'인 배터리의 제조사를 확답하지 못한다. 세 개의 후보군이 있다는 둥, 일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둥 모호한 답변만 늘어놓았다. BMW는 신형 iX3를 홍보하며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 생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른바 '메이드 인 유럽' 마케팅이다. 유럽산 전기차라는 타이틀은 소비자들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세심한 조립 품질, 엄격한 유럽의 환경 및 안전 기준,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산'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하지만 이 지점에서 BMW의 마케팅은 교묘한 정보의 왜곡을 일으킨다. 조립 국가인 헝가리를 강조함으로써 정작 차 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배터리 국적은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배터리 정보를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공식 홈페이지의 온라인 사전 예약 페이지를 들어가 봐도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확인하려면 스크롤을 맨 하단까지 내려야 겨우 발견할 수 있다. 회사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배터리의 밀도를 높였다는 말 뿐 제조사를 언급한 적은 없다.이러한 행태는 과거 iX3가 겪었던 '학습효과'에서 기인한 우회 전략으로 풀이된다. 앞서 BMW는 iX3 모델을 유럽에서 생산하면서도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당시 '무늬만 유럽차'라는 오명을 썼던 BMW 입장에서는 이번 신형 모델에서도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취재 과정에서 만난 딜러들은 "헝가리에서 생산되니 걱정 마시라"는 말로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확답을 피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일본산 배터리 탑재설'을 흘리며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영업 현장의 숙지 미달로 치부하기엔 부족하다. 본사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전달되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오는 3분기 국내 출시되는 신형 iX3에는 중국 EVE에너지의 배터리가 탑재된다. EVE에너지는 BMW의 신규 파트너사로, 헝가리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BMW의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노이어 클라쎄'에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메이드 인 유럽'이라는 이름표 안에는 결국 중국 자본과 기술로 만들어진 배터리가 들어간다. 중국산 배터리의 기술력이 과거보다 진보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소비자가 내가 사는 물건의 핵심 부품이 어디 제품인지 정확히 알고 구매할 권리'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해 배터리 안정성에 대한 민감도가 극에 달해 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브랜드 네임밸류나 조립 국가만을 보지 않는다. 어떤 셀이 들어갔는지, 에너지 밀도와 화재 안전성은 어떠한지를 직접 따져보고 선택하고자 한다.BMW가 진정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한다면 생산지의 후광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배터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품질을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헝가리산'이라는 수식어가 배터리 제조사를 가리는 가림막이 돼서는 안 된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마케팅은 일시적으로 소비자의 눈을 속일 순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독이다.전기차 1억원 시대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정보의 약자가 아니다. 제조사가 정보를 파편화하고 은폐할수록 시장의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에 공개하고, 왜 그 배터리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배터리가 헝가리산 차체와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기자노트]황금거위 배 가르자는 삼성전자 노조 '성과급 몽니'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도를 넘어섰다. 당초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0%를 달라던 노조가 이제는 영업이익의 15%를 조건으로 내놓았다. 최근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원을 돌파해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한 데 이어 올해 연간 기준으로도 신기록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자 더 많은 성과급을 받아야겠다며 사측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가 가정한 올해 연간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 전망치는 270조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15%를 지급하면 40조5000억원을 보상 재원으로 편성해야한다. 증권가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연간 반도체 영업이익이 30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이 경우 45조원 이상을 성과급으로 줘야하는 셈이다.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무시한 것도 아니다. 사측은 메모리사업부가 국내 1위를 달성할 경우 OPI(초과이익성과급) 상한(연봉 50%)을 초과하는 특별 포상을 지급하고 영업이익의 13%를 성과급 재원으로 편성하겠다고 제안했었다. 사실상 노조의 최초 요구안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보상안이다. 그럼에도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일방적인 주장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요구는 기업 가치에 부정적이다. 현재 노조가 요구하는 40조~45조원의 성과급은 지난해 삼성전자의 연간 연구개발비 37조7000억원을 넘어선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다툼 심화로 추가적인 투자가 절실한 상황에서 회사 재원의 상당 부분을 미래를 위한 재투자가 아닌 보상으로 투입해야 한다.노조의 요구가 반도체 부문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 가운데 95%가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가전·TV·스마트폰 사업을 맡고 있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의 목소리를 사실상 소외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DX부문 직원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실적만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주게되면 사업부간 보상 격차가 벌어지고 DX 부문의 박탈감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번진다.현재 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이달 23일 평택캠퍼스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이후에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5월21일부터 6월7일까지 18일 간 총파업을 실행할 계획이다. 노조가 파업을 강행해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납기 지연, 고객 신뢰 하락 등 연쇄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파업 리스크가 부각될 경우 투자심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최대 반도체 기업의 노조가 자신들의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장을 멈춰 세우겠다고 위협하는 행위는 한국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회사는 이미 파격적인 보상 조건을 제시했다. 노조 역시 미래 경쟁력을 다지는 관점에서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할 때다.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것인가.
[기자노트]K뷰티 짝퉁 1.1조원…정품 마크로는 부족하다
K뷰티 짝퉁 피해가 1조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진품임을 증명하는 '정품 인증 마크' 도입을 해법으로 내놨지만 이것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진화하는 위조 화장품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K뷰티는 제품이 아니라 신뢰와 이미지를 파는 산업이 됐고 그 신뢰를 겨냥한 짝퉁은 마크 하나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이 같은 문제의식은 이미 현장에서 생생하게 확인되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한국어가 어색하게 적힌 이른바 'K짝퉁' 화장품을 들고 당혹스러워하는 해외 유튜버들의 영상이 잇따라 확산하는 장면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신호다.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공들여 쌓아온 K브랜드의 근간이 훼손되고 있다는 경고음이어서다.수치가 보여주는 위기의 규모는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 지난해 단속에 적발된 K브랜드 위조 물품은 6361건에 달한다. 품목별로는 화장품이 5096건으로 전체의 80.1%를 차지해 단연 1위였다. 패션이나 식품이 주요 피해 분야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화장품이 짝퉁 시장의 가장 큰 먹잇감이 된 셈이다. 적발 물품의 97.7%가 중국과 홍콩에서 발송됐고 지식재산처는 뷰티 분야 피해액만 1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정부는 뒤늦게나마 방패를 들었다. 특허청 등 관계 부처는 올해 하반기부터 수출용 제품에 진품임을 보증하는 인증 마크를 부착하는 'K브랜드 정부 인증제'를 도입한다. 개별 기업이 각자도생식으로 대응해 오던 상표권 침해 문제에 국가의 공신력을 더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짝퉁의 진화 속도가 정부 대책보다 훨씬 빠르고 교묘하다는 점이다. 과거 위조품이 로고를 그대로 베끼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새로운 브랜드인 것처럼 위장하며 한국산 이미지만 차용하는 '미투 브랜드' 전략이 확산하고 있다. 한글을 단순한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거나 'Made in Korea'를 연상시키는 문구를 교묘히 끼워 넣어 법망을 피해 간다. 상표권을 정면으로 침해하지 않으면서 글로벌 소비자를 기만하는 방식이다. 이런 변칙 판매를 막기에는 정품 마크 부착이라는 처방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자칫 생색내기용 라벨링에 그칠 우려도 크다.정부 인증제는 정책의 종착점이 아니라 강력한 단속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마크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해외 이커머스 플랫폼과 실시간으로 공조해 위조품 판매 페이지를 즉각 차단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추진 중인 위조 화장품 판매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회수·폐기 근거 마련도 더 늦춰선 안 된다.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어렵게 쌓아 올린 K뷰티의 품격이 껍데기만 빌려 쓴 가짜들에 의해 잠식되는 일이다. 이번 정부 대책이 일회성 처방에 그치지 않고 우리 기업의 땀방울과 K브랜드 가치를 지켜내는 수호자가 되길 기대한다.
[기자노트]방산 수주전에도 '은메달'을 수여하자
스포츠에서 2등은 '값진 은메달'의 주인공이지만 방산 수주전의 2등은 패자다. 승자독식 구조 속에서 막대한 개발비와 시간을 쏟은 탈락 기업의 노력은 소수점 차이로 물거품이 된다. 결과에 대한 승복 대신 이의제기와 소송이 반복되는 이유다.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 K방산은 유례없는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선 수주를 둘러싼 '집안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경쟁 기업 간 갈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한 소송전이 잇따라 사업 지연은 부지기수가 됐다.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이 대표적이다. HD현대와 한화오션 간 갈등으로 2년 넘게 지연된 데 이어 최근 HD현대가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면서 추가 소송전으로 확대됐다.육군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도 평가 방식을 둘러싸고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대립하며 2년여간 표류했다.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 역시 경쟁에서 탈락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면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 같은 갈등을 특정 기업의 '몽니'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방산 수주전은 대개 소수점 단위의 미세한 점수 차로 당락이 갈리는데 결과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다.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임에도 보상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승자독식 구조가 업체 간 갈등을 부르는 핵심이다.방산 기업들은 일 년에 몇 안 되는 수주에 막대한 개발비와 인력을 투입한다. 수주 실패는 곧 생산 공백과 숙련 인력 유휴화로 이어지고 투자 비용은 매몰 비용으로 남는다. 국내 운용 실적이 없으면 수출도 쉽지 않다. 수주 승패가 기업의 장기 생존을 좌우하면서 결과를 뒤집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실정이다. 반복되는 출혈 경쟁을 끊기 위한 해법은 복수낙찰제다. 복수낙찰제는 경쟁 입찰에서 둘 이상의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2024년 3월 국가계약법 제10조 제4항에 도입되며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방위산업 분야에서는 아직 활용된 사례가 없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도 지난해 1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복수낙찰제 도입을 건의한 바 있다. 이 청장은 "무기 체계별로 대체로 2개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성능이나 국익 측면에서 과당 경쟁의 폐해가 많다"며 "복수 낙찰을 통해 서로 조정해가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복수낙찰제를 도입하면 단일 업체 선정에 따른 공급망 불안, 일정 차질 등의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 수주를 위해 연구개발을 지속해온 기업들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기술 개발의 연속성도 확보된다. 특정 기업으로 역량이 쏠리는 구조를 완화하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방위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제도 도입에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맞섰다. 책임 소재 등 후속 부작용을 경계하는 지적도 일리가 있지만 사업 지연이 일상화된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더 큰 손실이다. 현상 유지는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수조원대 해외 수주전에서 K방산이 '원팀'으로 결집하기 위해서라도 소모적인 내부 갈등은 멈춰야 한다. 승자독식을 넘어 실력을 갖춘 2등에게도 은메달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2등도 언젠가는 1등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기자노트]수입산 공세에도 우유자조금은 여전히 옛 문법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적인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되는 이 격언은 오늘날 유업계가 직면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경고로 다가온다. 유통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소비 촉진의 최전선에 서야 할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의 대응은 여전히 과거 문법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수입산 멸균우유의 공세가 자리한다. 2019년 처음으로 1만톤을 넘긴 멸균우유 수입량은 지난해 5만1000톤까지 늘어났다. 수입 멸균우유는 국산 신선 우유 대비 가격이 60% 수준에 불과한 데다 유통기한도 비교적 긴 편이다. 지난 1월 미국산 유제품에 이어 오는 7월부터 EU산에도 관세율 0%가 적용될 예정이라 낙농업계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저출생 등으로 인해 핵심 소비층이 줄어들고 두유나 아몬드유 등 대체음료가 확산하면서 시장은 축소되는 흐름이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2.9kg를 기록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역대 최저치다. 국내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은 2021년 26.6kg, 2024년 25.3kg 등으로 가파른 하락세를 보인다.이처럼 각종 지표가 위기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소비 촉진을 담당하는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의 시계는 여전히 과거에 멈춰 있다. 유통 구조나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하기보다는 광고·전시 등 소비 촉진 사업에 예산의 상당 부분을 투입하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물가 속에서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중시하는 흐름이 뚜렷해졌지만, 자조금은 여전히 '국산의 신선함'을 강조하는 홍보에 머물러 있다.이러한 문제는 일시적인 판단의 착오가 아니라 조직이 지닌 구조적 한계와 맞닿아 있다. 자조금은 생산자(농가)들이 납부한 재원을 기반으로 운영되지만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에서 견제와 책임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 구조다. 예산을 편성하는 자조금관리위원회와 생산자들의 이익단체인 협회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균형을 잃은 결과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기존의 관성을 답습하고 있다.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이 살아남지 못하듯, 이대로라면 자조금은 역시 도태를 피하기 어렵다. 수입산이 주도하는 가격 경쟁이 일상이 된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장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산업의 자생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복되는 화려한 광고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뿐이다.자조금이 본래의 목적대로 산업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외부 주도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환경 변화에 맞춰 역할을 재정립하고 정기적인 외부 감사를 통해 사업 방향과 운영방식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 자조금관리위원회는 내부의 관성에 기대어서는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낙농가에서 피땀 흘려 모은 재원이 변화에 뒤처진 대가로 소진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노트]카드사 인프라, 이제는 '버리는 카드'?
한 나라가 가장 가파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보편화된 결제수단은 이후에도 그 국가의 핵심 결제 인프라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전후 경제 부흥기에 신용카드를, 중국은 2010년대 모바일 혁명기에 QR 기반의 빅테크 간편결제를 중심으로 국가 전체의 결제 기반을 놨다.한국도 그렇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고도성장기에 우리 국민의 손에 들린 것은 신용카드였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내수 진작과 과세 투명성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파격적으로 장려하면서 지금의 카드 중심 결제 인프라가 뿌리를 내렸다.오늘날의 카드 결제망은 단순한 지급수단을 넘어 소비와 유통, 데이터를 잇는 국가 핵심 금융 인프라다. 수천만 명의 일상을 지탱하는 플랫폼이자 금융권에서 소비자와 가장 밀접한 접점을 가진 채널로서 그 위상은 공고하다.현재 카드업계가 마주한 현실은 이러한 위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가맹점 수수료는 지난 12년간 꾸준히 인하됐다. 그 결과 전체 가맹점의 약 96%에 달하는 영세·중소 사업자 구간에서는 수수료율이 원가(적격비용) 수준이거나 그 이하로 떨어지는 '역마진' 구조가 고착됐다. 결제 규모는 매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지만, 본업인 결제 부문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결제의 역설'이 이어지는 이유다.이러한 수익성 악화의 이면에는 겹겹이 쌓인 규제의 벽이 자리하고 있다. 3년마다 돌아오는 '가맹점 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는 도입 이후 사실상 단 한 번의 인상 없이 수수료를 낮추기만 하면서 업계의 활력을 앗아갔다. 여기에 가계부채 관리의 일환으로 카드론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결제 부문의 손실을 보전해주던 대출 사업마저 움츠러들었다.여기에 카드사는 은행과 달리 예금을 받을 수 있는 수신 기능이 없어 사업 자금의 대부분을 시장에서 여전채(카드채) 발행을 통해 조달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금리 상승기마다 조달 비용이 급증해 사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이를 타개할 신사업 진출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나 부수 업무 제한 등의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으면서, 데이터 비즈니스나 스테이블코인 접목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기보다 기존의 위축된 시장에 머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그럼에도 카드사의 유용성 때문에 각종 위기 상황에서는 카드사들이 빠짐없이 동원된다. 최근에도 미국-이란 전쟁으로 기름값이 급등하자 당국은 카드사에 주유비 할인 혜택 추가 또는 환급 확대 등의 조치를 요구했다. 지난해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이 실현됐을 때도 카드사들은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를 추가로 인하해야 했다. 가맹점과 기업, 소비자 모두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접점을 보유한 결제 인프라 기업이라는 이유에서 감당해야 했던 수난이었다.카드사들의 수난은 단지 카드업계의 위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카드사는 트래블카드와 같은 혁신 서비스의 형태로 소비자들의 금융 경험을 확장시켜왔다. 고유가나 재난 상황에서는 각종 할인이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민 지원 정책을 수행하는 '보이지 않는 축'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수익 기반이 계속 흔들리면 결국 '알짜카드'의 대거 단종, 부가서비스 축소 등 형태로 '비용의 소비자 전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금융 소비자 선택권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얘기다.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지난 20여 년간 카드사가 구축해온 방대한 결제 인프라와 데이터, 이용자 접점을 지금처럼 규제로만 묶어두는 것이 과연 국가 경제에 바람직할까. 빅테크 중심의 플랫폼 결제 환경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검증된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기보다 낡은 규제로 틀어막는 방식은 금융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우려가 크다.기술 환경이 변한 만큼 카드업계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변화를 스스로 도모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알아서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라'는 식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최근 논의되는 스테이블코인이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등 새로운 결제 생태계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견고한 카드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도 침체된 카드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다.카드업계의 고충을 그저 '그 회사들만의 사정'으로 치부하는 건 곤란하다. 이제는 수수료 인하와 규제 강화라는 단편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존 인프라를 살리고 이를 디지털 금융 혁신의 교두보로 확장하기 위한 정책적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기자노트]서울 시민의 선택, 부동산 공약의 치밀함
6·3 지방선거가 6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최대 승부처로 불리는 서울시장 선거는 부동산 민심이 어디로 향할지 초미의 관심이다. 여야가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총 6명을 확정한 가운데 주요 후보들은 저마다 부동산 공급을 강조한 공약을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여권 후보들은 공공성에 방점을 찍었다. 용산 등 주요 도심과 역세권의 부지에 공동주택을 건설하고 개인이 수십 년 간 임차했다가 미래 세대에 물려주는 '구독형 주택', 청년과 신혼부부, 무주택자가 20~30년간 분할 매입하는 '지분 적립형 주택 분양'(주택 리츠) 등 청년과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내놓은 공약이 눈길을 끈다. 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은 공공 중심의 주택공급을 강조했다. 서울시가 정비사업 준공부터 착공까지 책임지는 '착착 개발'을 필두로 전문가가 밀착 관리하는 매니저 제도를 도입한다. 500가구 미만 소규모 정비사업의 인허가 권한을 서울시에서 자치구로 이양해 병목 현상을 해소하는 게 핵심이다. 지방정부가 권한을 갖고 단기 효과를 낼 수 있으나 대형 프로젝트 등에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떨어질 우려는 있다. 국민의힘 유력 후보인 오세훈 현 서울시장은 민간 중심의 재건축·재개발에 속도를 낸다.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 비율)을 500%까지 올리고 민간이 주택을 공급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의 민간 주도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해 공급 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와 개발 중심의 특정 지역이 급등하는 양극화 현상은 리스크 요인이다. 서울 부동산 거래시장은 선거를 앞두고 혼란의 연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연일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서울 집값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한강 벨트를 중심으로 상승세가 꺾였고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외곽은 키 맞추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가 주택이 밀집한 동남권 아파트의 호가가 큰 폭 내렸지만 실거래가는 여전히 높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는 오는 5월 9일 이후 매물이 잠기고 집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권은 유한하고 부동산은 영원하다'는 인식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유권자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선거 결과를 정하는 '경제 투표'는 특히 서울에서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와 2021년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 투표율은 각각 59.9%, 58.2%로 1995년 민선 첫 선거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을 달성했다. 당시 서울 아파트의 연평균 상승률은 10~15%에 달했다.중동전쟁 장기화로 유가와 환율이 치솟으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향방마저 오리무중 상태다. 서울 부동산 안정을 위해선 금리 변동성 대응과 주택공급의 속도가 중요하다. 정당의 성과를 나타내기 위한 공급 수치와 공공·민간의 비중은 중요하지 않다. 표심이 목적인 공약은 단기 성과일 뿐이다. 930만 서울시민의 내 집 마련, 부동산 안정대책의 성패는 서울시정의 치밀한 부동산 공약에 달렸다.
[기자노트] 기초연금, 표퓰리즘 넘어 '숙의의 장'으로
우리나라에선 65세 이상 어르신의 소득 하위 70%(약 708만명)가 기초연금을 받는다. 매달 최대 34만9700원씩이다. 단독가구 기준으로 월 소득인정액이 247만원 이하면 수급 대상이 된다. 올해 1인 가구 중위소득 256만4000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70%'일까. 딱히 근거는 없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놓은 "모든 어르신에게 월 20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이 집권 후 예산의 벽에 부딪히자 궁여지책으로 나온 기준이다. 이후 노인들의 소득과 자산 수준이 오르면서 기초연금 선정 기준은 중위소득에 근접했다. 2015년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대비 59.6%였던 기초연금 수급 커트라인은 올해 96.3%로 상승했다. 소득이 한 푼도 없는 노인과 중위소득에 가까운 돈을 버는 노인 모두 기초연금을 받는단 얘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자살까지 유도하는 노인 빈곤을 줄이려면 기초연금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며 "지금까지 지급되는 것은 그냥 두고 향후 증액만 하후상박으로 하는 것도 방법일 듯한데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고 적은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보편 복지라는 기존의 기조를 틀어 '보편+선별 혼합형' 복지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반론도 없지 않다. 기초연금은 노후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보편적 수당' 성격의 연금인만큼 소득에 따른 차등 지급은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에 이미 저소득층의 수익비를 높이는 '소득 재분배' 기능이 탑재돼 있다. 기초연금까지 가난할수록 더 많이 주는 하후상박 구조로 뜯어고칠 경우 두 연금 간 정책 기능이 중복되며 연금 체계 전반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납세자와 면세자 간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현재 한국 근로자의 소득하위 30% 정도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다. 기초연금을 차등화할 경우 성실히 세금을 납부한 중산층보다 평생 소득세 한 푼 안 낸 저소득층이 더 많은 돈을 받게 될 수 있다.그럼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참담한 노인 빈곤율을 직시하면 기초연금 제도의 보완은 불가피하다. 2022년 기준 한국 은퇴 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7%로, 영국(14.9%), 일본(20%), 미국(23.1%) 등을 압도한다. 다만 개선안은 노인 빈곤 문제 뿐 아니라 다층적 연금 구조, 납세자와 면세자 간의 형평성, 국가 재정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해야 도출해야 한다. 이런 고차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정치권의 '표'퓰리즘적 접근이다. 대신 전문가들이 참여한 사회적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숙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게 하면 어떨까. 정치권이 주도하는 임기응변식 연금 개혁은 끝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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