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기자노트]장기채무, '도덕적 해이'보다 재기가 먼저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정부의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정책을 둘러싼 포퓰리즘 논란에 대해 "특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을 선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앞서 장기 연체채무자에 대한 탕감을 두고 "갚을 수 없는 사람은 빨리 탕감해 경제활동에 복귀시키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도움이 된다"며 도덕적 해이 비판을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일축했다.논쟁의 중심엔 도덕적 해이가 있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와 '어차피 나중에 탕감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도 반복적인 채무 탕감이 금융 질서를 훼손하고 결국 대출 심사 강화나 금융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채권 가운데 상환 능력이 사실상 없는 취약계층을 엄격히 심사해 채무를 조정하거나 면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새도약기금과 같은 배드뱅크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 우려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따져봐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회생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장기 연체자를 제도권 밖에 계속 방치하는 비용은 결국 누가 부담하는가. 장기 연체자 상당수는 빚을 갚고 싶어도 상환 능력을 잃은 경우가 적지 않다. 급여와 계좌가 압류되면서 취업과 경제활동 자체가 막히는 것이다.해외 실증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피터 가농(Peter Ganong)과 파스칼 노엘(Pascal Noel)은 채무자의 연체가 자산 규모보다 당장의 현금 유동성에 크게 좌우된다고 분석했다. 이는 많은 연체가 고의적인 채무 회피보다 갑작스러운 유동성 악화와 상환 능력 상실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이런 상황에서 장기 연체자를 제도권 밖에 오래 방치할수록 사회적 비용은 커진다. 생산과 소비에서 배제된 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면 복지 비용과 경제적 손실이 결국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이미 충당금을 쌓았거나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채권이라면 장기간 보유하며 관리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정리하는 편이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채무조정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도 있다. 하버드대 윌 도비(Will Dobbie)와 지에 송(Jae Song)은 채무조정을 받은 이들의 취업과 소득이 증가하는 등 경제활동이 회복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채무조정이 경제활동 복귀를 돕고 사회 전체의 편익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학적으로도 채무조정을 무조건 나쁜 정책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금융회사는 애초에 연체 가능성을 감안해 금리를 책정하고 위험을 관리하는 만큼, 회수가 어려운 채권을 장기간 보유하는 것보다 정리하는 편이 오히려 비용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악의적 채무자는 엄격히 가려내야 한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상환 능력을 잃은 사람들까지 장기간 경제활동에서 배제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는 더 큰 비용이 될 수도 있다. 관건은 지원 대상을 얼마나 정교하게 선별하느냐다. 소득과 재산을 철저히 심사하고 반복 지원을 차단해야 한다. 은닉재산이 드러날 경우 채무조정을 취소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막을 장치도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성실 상환자를 위한 인센티브와 금융교육, 자립 프로그램을 함께 마련해야 정책의 형평성과 효과를 모두 높일 수 있다.장기채무 정리는 빚을 없애주는 정책으로만 볼 게 아니다. 다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경제활동으로 복귀시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수단에 가깝다.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도덕적 해이를 막을 장치를 촘촘히 마련하는 동시에,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이 닿도록 제도를 다듬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기자노트]'롤러코스피' 레버리지 ETF만 원인일까…문제는 '구조'
최근 국내 증시는 이른바 '롤러코스피'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루는 급등, 하루는 급락을 반복하며 시장 과열을 막는 장치인 '사이드카'와 '서킷 브레이커'도 수시로 발동되고 있다.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서는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사이드카가 62차례, 서킷 브레이커가 9차례 발동됐다. 코스피 사이드카는 39차례, 코스닥은 23차례였으며 서킷 브레이커는 각각 7차례와 2차례 발동됐다.문제는 이 같은 변동성 장세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과도한 공포에 잠기면서 전반적으로 작은 악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이러한 변동성 장세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개인투자자의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다. 레버리지 ETF는 기초지수 하루 수익률을 두 배 추종하는 상품이다. 지수가 오를 때는 수익이 확대되지만 하락할 때는 손실도 그만큼 커진다. 특히 최근처럼 시장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장에서는 레버리지 상품 위험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5월 상장 이후 코스피 변동성의 주범으로 지목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가 대표적이다.상승을 기대하고 몰린 자금이 급락장에서 손실을 입으면 투자 심리가 빠르게 위축된다. 투자자들의 손절매와 운용사의 기계적 리밸런싱 매도, 신용거래 반대매매가 얽히며 다시 주가가 요동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증시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되자 당국은 최근 레버리지 ETF 고위험 투자에 대한 관리 강화에 나섰다. 물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품 위험성을 보다 명확히 알리고 과도한 레버리지 거래를 억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필요하다.다만 규제 초점이 개인투자자 투자 행태에만 맞춰질 경우 최근 증시 변동성의 근본 원인을 놓칠 수 있다. 레버리지 상품이 시장 진폭을 키우는 증폭 장치라면 작은 충격에도 지수 전체가 크게 흔들리는 국내 증시의 구조는 그보다 앞서 살펴야 할 문제다.국내 증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반도체 대형주 지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거나 미국 증시에서 주요 반도체 종목들이 흔들리면 국내 반도체주도 곧바로 영향을 받고, 이는 다시 코스피 전체 변동성으로 이어진다. 일부 대형주 주가가 사실상 시장 전체 방향을 결정하는 셈이다.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높은 수급 의존도도 문제다. 국내 증시는 외국인이 대규모 매수에 나설 때 빠르게 상승하지만 반대로 외국인이 자금을 회수하면 낙폭도 급격히 커진다. '연기금의 국내주식 비중 상한 제약'이나 '단기 성과 중심의 기관 자금' 운용 탓에 외국인 매도 물량을 안정적으로 받아줄 연기금과 기관, 장기 투자자금 완충 기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결국 반도체 쏠림과 외국인 수급 의존이라는 약한 증시 체질이 변동성의 기반을 만들고, 레버리지 ETF는 그 위에서 상승 하락 속도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이를 해결하려면 단기적인 투자 규제에 앞서 국내 증시의 구조적 취약성을 개선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반도체와 일부 대형주에 집중된 지수 구조를 완화하고 다양한 업종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외국인 수급을 대신해 시장 충격을 흡수할 국내 장기 자금도 키워야 한다. 연기금의 국내 주식 운용 여력을 합리적으로 확대하고 퇴직연금과 장기 적립식 자금이 증시로 안정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상장사의 낮은 주주환원과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투자자가 장기간 믿고 자금을 맡길 기업이 늘어나야 외국인이 매도할 때마다 지수가 흔들리는 수급 구조도 바뀔 수 있다.결국 변동성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래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국내 증시 자체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인의 투자 선택만을 탓하는 손쉬운 처방이 아니라 산업 쏠림과 외국인 의존, 부족한 장기 자금이라는 국내 증시의 약한 체질을 바꾸는 일이다.롤러코스터를 멈추기 위해서는 속도를 높인 승객만 탓할 것이 아니다. 작은 충격에도 휘청이는 선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기자노트]이케아 육아휴직 논란이 쏘아올린 공
"육아휴직은 권리가 됐지만 복직은 여전히 두려움의 영역입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인사·노무 전문가의 말이다. 그는 "휴직을 사용하는 문화는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복직 이후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하는 직원들은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육아휴직자가 증가세를 보이는 가운데 이케아코리아의 육아휴직이 도마위에 올랐다. 유아휴직 복귀 임원급 직원의 평사원 강등 의혹이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것. 이달 8일 육아휴직 후 복귀한 직원이 원직 복귀 대신 하위 직급 발령과 권고사직 압박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이케아코리아 관계자는 "조직개편에 따른 인사조치였을 뿐 불이익은 없었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논란 이후 개별 기업의 인사 문제를 넘어 육아휴직 제도의 실효성과 직장 내 복귀 문화를 둘러싼 논쟁으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지난 10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해당 사안을 직접 언급하며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고 사실로 확인될 경우 엄정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파장이 더욱 커졌다.이번 논란이 더 큰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케아가 가족친화적 조직 문화를 내세운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다양성, 포용성을 강조하는 기업들조차 실제 현장에서는 제도와 문화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고용노동부의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핵심은 분명하다. 단순히 육아휴직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느냐를 넘어 휴직을 마친 직원이 다시 조직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대우를 받느냐는 문제다. 육아휴직 경험이 있는 한 대형 IT업체 여직원은 "대부분 직원들은 육아휴직을 쓰는 순간 회사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된다"며 "복귀 후 인수 인계와 업무 조정 과정에서 불만을 갖지 않도록 공정한 업무 처리가 필요하다"고 털어놨다.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급여 수급자는 약 13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성은 물론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가 늘면서 전체의 약 30% 수준까지 늘었다. 육아휴직 급여 상향과 6+6 부모육아휴직제 도입 등으로 제도적 기반도 강화됐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육아휴직 확대와 각종 출산·육아 지원 등 저출생 육성 정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실속 없는 제도 확대만으론 근본적으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업에서 부모들이 육아휴직을 마음 편히 사용하고 복직 이후에도 어떠한 불이익 없이 자신의 일터로 돌아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케아 육아휴직 논란이 우리사회에 던진 과제다.
[기자노트]코오롱티슈진 인보사 사태의 교훈
코오롱티슈진은 TG-C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를 위한 글로벌 임상 3상 톱라인(주요지표)을 이번 달 발표할 예정이다.무릎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TG-C는 과거 논란이 됐던 인보사와 같은 약이다.임상 3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품목허가로 이어질 경우 한국 기업이 독자적으로 FDA 임상 과정을 완수하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첫 사례가 된다. 국내 바이오 업계가 이번 임상 톱라인 발표에 주목하는 이유다. 코오롱티슈진은 TG-C 임상 3상 톱라인을 확인한 뒤 내년 1분기 FDA 품목허가를 신청할 것으로 관측된다.벌써 상품성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 앞선 임상에서 통증과 기능성 개선이 확인된 덕분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임상 2상 결과가 3상에서 재현되기만 해도 FDA 신약 승인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다올투자증권은 "앞서 인종과 임상 환경이 다른 두 임상에서 효과가 입증된 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했다.하지만 TG-C 상업화를 앞두고 과거 인보사 사태가 다시 회자된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선 옛 인보사 사태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복수의 전문가들은 "과거처럼 개발 당시 발견하지 못했던 사항이 추후 문제가 될 수 있어 사전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코오롱티슈진은 2017년 인보사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임상 약에 허가 내용과 다른 세포가 들어간 것으로 나타나 2019년 4월 제조·판매 중지 명령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국내 허가가 취소됐고 미국에서 진행하던 임상 3상도 보류됐다. 이 과정에서 국내 제조·판매 중지 명령 직전 7만원 안팎이었던 주가는 두 달 만에 1만6000원대 초반으로 급락했다.인보사 사태에서 문제가 됐던 건 인재(人災)에 가까웠다. 인보사는 1액과 2액으로 구성된 약물이다. 국내 허가 추진 당시 서류에 2액의 기원 성분을 연골유래 세포라고 기재했으나 실제론 신장유래 세포였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개발 초기 2액 기원 성분이 되는 세포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하며 착오가 발생한 것이다. 해당 내용이 문제 되자 코오롱티슈진은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FDA 소명 절차를 진행하고 코드명 TG-C라는 이름으로 인보사 미국 임상을 새롭게 추진해 현재까지 왔다.TG-C가 글로벌 임상 3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확보하더라도 아직 갈 길은 멀다. FDA 등 규제기관 승인을 확보해야 하고 수 많은 상업화 절차도 수행해야 한다.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새로운 인보사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기자노트]잘못된 낙인 '무섭노 논란'의 결자해지
MBC경남 시청자게시판에는 8일 하루(오후 6시 기준)에만 200여개의 글이 올라왔다. 대부분의 글은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의 일명 '무섭노' 논란에 처음 불을 댕긴 해당방송국 PD를 비판하고 항의하는 내용이다. 해당 방송국 PD가 원이의 발언을 공개 비판한 이후 온라인에서는 '일베' 표현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여기에 정치권 인사들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어 커졌다. 사안의 본질은 사라지고 진영간 극단적 대립과 소모적 감정싸움으로 치달았다. 이번 논란이 남긴 과제 중 하나는 과연 공적 영향력을 가진 언론인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느냐다. 어떤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언론인은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언론인의 발언은 일반인과 같은 무게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 영향력만큼 책임을 져야한다. 때문에 사회적 이슈에 대한 언론인의 공개 발언은 신중해야한다. 더구나 그 발언이 특정인에 대해 낙인을 찍고,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시민들이 해당 PD 발언을 반박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번 논란은 잘못짚은 낙인찍기 시도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 이후의 행동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이를 수습하려는 책임있는 행동이 뒤따라야한다. 해당 PD는 반성과 사과보다는 자기 방어에 급급한 모습이다. 그는 시민들의 거센 반박에 "사용자를 일베로 단정 짓거나 사투리를 검열하자는 것은 아니다. 혐오 표현에 뿌리를 둔 표현임을 알았을 때의 선택은 태도의 영역"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그가 연출에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뭐라하노" "어딨노" "오노" 등 영남권 사투리를 활용한 자막이 사용된 사실이 알려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도 일베다. 게시물 삭제와 계정 비활성화는 결코 책임있는 모습이 아니다. 원이가 입은 상처와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자신의 잘못을 알았을 때 상식있는 시민이 선택할 태도는 반성과 사과다.
[기자노트]편의점에서 만난 고객, 시장에서는 놓치는 현대차
그랜저가 2200원에 풀렸다. 할부도 필요 없다. 물론 진짜 그랜저는 아니다. 현대자동차가 GS25와 손잡고 선보인 아이스크림 '현차는 빵빵' 이야기다. 카스텔라 사이에 크림치즈 아이스크림을 넣은 샌드 아이스크림인데 포장을 뜯으면 현대차 승용·SUV 라인업 20종을 담은 띠부씰(스티커)이 들어 있다. 아이오닉 시리즈부터 그랜저, 아반떼, 캐스퍼까지 현대차 대표 차종이 총출동했다.발단은 농담이었다. 2022년 만우절, 현대차는 공식 SNS에 '현차'와 경적 소리 '빵빵'을 엮은 가상의 베이커리 콘텐츠를 올렸다. 하루 웃고 지나갈 이벤트였지만 소비자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진짜를 만들어 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이 이어졌고 현대차는 4년 만에 이를 현실화했다.전통적인 자동차 광고가 잘 통하지 않는 세대에게 TV 대신 편의점 냉동고로 찾아간 발상은 영리하다. 포켓몬빵이 증명했듯 수집은 재구매를 부르고 소비자는 스티커를 하나 더 얻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현대차 라인업을 익히게 된다.이 '현대차 도감'을 보고 있자니 문득 묘한 생각이 든다. 띠부씰 속에서는 캐스퍼도, 아반떼도, 그랜저도 모두 같은 22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면 손에 넣을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캐스퍼 일렉트릭은 현재 최대 28개월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최상위 트림인 EV 라운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22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 "군대 간 아들보다 늦게 나온다"는 말도 있다. 생산을 맡은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물량 상당수를 유럽 수출에 배정한 영향이다. 유럽에서 '인스터'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이 차는 지난해 A세그먼트 전기차 시장 2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소비자가 기다리는 동안 해외 판매는 계속 늘고 있다.아반떼 역시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출시된 아반떼 시작 가격은 2034만원이지만 주력 트림인 '모던'은 2355만원부터다. 옵션과 취득세, 보험료까지 더하면 사회초년생이 체감하는 첫 차 가격은 2500만원을 훌쩍 넘긴다. 최근 공개된 8세대 신형 아반떼는 배기량 확대와 플레오스 탑재 등을 반영해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현대차의 논리도 이해는 된다.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대형 디스플레이,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강화된 안전사양이 기본이 됐고,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도 크게 올랐다. 상품성을 높인 만큼 가격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도 최근 부산모빌리티쇼에서 아반떼 가격 관련 질문에 "엔트리 모델에도 최신 기술과 상품성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회사가 처음 현대차를 선택하는 고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엔트리 시장 소비자가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잔존가치보다 가격, 서비스보다 공급이다.현대차가 엔트리 모델의 상품성을 높이며 가격을 끌어올리는 사이 중국 업체들은 가격 장벽을 낮추며 젊은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싼 차'를 팔던 중국 업체가 합리적인 가격의 전기차를 앞세워 첫 차 시장을 노리는 시대가 됐다.BYD는 올해 국내에 소형 전기 해치백 '돌핀'을 출시했다. 기본 트림 가격은 2450만원이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면 실제 구매 가격은 2000만원 초반대로 떨어진다. 캐스퍼 일렉트릭을 2년 가까이 기다릴지, 지금 계약해 곧바로 탈 수 있는 전기차를 선택할지는 소비자의 몫이다.자동차 산업에서 첫 구매 경험은 차 한 대를 파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첫 차는 다음 차와 그다음 차의 브랜드를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현대차 역시 엑셀과 베르나, 클릭, 아반떼를 통해 지금의 고객층을 만들었다.문제는 냉동고 밖이다. 오늘 아반떼 띠부씰을 모으는 스무 살이 정작 첫 차를 사려는 순간 다른 브랜드 전시장을 찾게 된다면 현대차는 미래 고객을 편의점에서는 만났지만 시장에서는 놓친 셈이다. 2200원짜리 그랜저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첫 차 고객을 끝까지 현대차에 남게 하는 일이다.
[기자노트]최저임금 심사 지연 되풀이…소모적 논쟁 언제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의 심의 일정이 또 다시 지연됐다. 위원장 선임을 놓고 빚어진 신경전으로 전원회의가 시작부터 삐걱인 데다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확대적용, 업종별로 구분적용 등 주요 쟁점을 놓고 예년과 다를 바 없는 주장만 끊임없이 되풀이한 탓이다.최저임금법 시행령에 따르면 노동부 장관은 매년 3월31일까지 최저임금위원회에 다음 연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 이후 최임위가 90일 내 결론을 도출하면 노동부 장관은 8월5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최종적으로 고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법정 심의기한을 지킨 것은 단 9차례에 그친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이들을 중재해야할 공익위원들의 서로 다른 입장이 충돌하면서 매년 파행이 반복되고 있다.올해도 4월21일 개최된 첫 전원회의부터 불안한 상황이 연출됐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를 최임위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민주노총 측 근로자위원들이 강력히 반발하며 첫 회의부터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권 위원장이 윤석열 정부 시절 '주 69시간 근로'를 정당화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두번째 회의는 첫 전원회의 이후 한달을 지난 5월26일에 이뤄졌다. 그러나 이 마저도 도급제 근로자 확대 여부와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적용 문제를 놓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됐다.해당 안건들을 표결 끝에 도입이 무산됐지만, 이는 예년과 다를 바 없는 과정과 결과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사실상 매년 똑같은 쟁점을 놓고 똑같은 주장만 반복한 끝에 공익위원의 중재에 따라 안건을 표결에 부쳐 부결로 마무리지었다.최저임금의 법적 고시 일정을 감안하면 최임위가 심의를 할 수 있는 기간은 100여일 정도 뿐이다. 이 기간 동안 도급제 근로자 확대 적용과 업종별 구분적용 문제들까지 다루다보니 정작 최저임금 인상률 논의는 가장 나중으로 밀리다 시간에 쫓겨 황급이 마무리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매년 되풀이되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 국내 노동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올 수 있는 핵심 쟁점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서 기간 제한 없이 논의를 진행하고, 최임위는 정해진 일정 내에 최저임금 인상률 심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사회적으로 큰 후폭풍을 몰고올 수 있는 부담스러운 결정을 정작 정부는 뒷짐을 진채 최임위에 떠넘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길 바란다.
[기자노트]가격표와 영수증의 간극
소비자는 가격표보다 영수증을 먼저 기억한다. 라면값이 몇십 원 내렸다는 뉴스보다 장을 본 뒤 손에 쥔 영수증 속 총액이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최근 정부는 밀가루와 전분당 가격 인하를 계기로 라면 등 일부 가공식품 가격을 낮추며 물가 안정에 나섰다. 소비자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이나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은 다르다. 분명 일부 품목 가격은 내렸지만 장바구니 총액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생활비가 줄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다.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라면 가격을 50원 내린다고 소비자가 얼마나 체감하겠느냐." 처음에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처럼 들렸다. 원가 구조를 들여다보니 질문의 무게가 달라졌다. 물가는 과연 가격표만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되묻게 됐다.라면 원가에서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은 10~20% 수준이다. 나머지는 팜유와 스프 원료, 포장재, 물류비, 인건비, 에너지 비용 등으로 구성된다. 밀가루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제품 가격을 같은 폭으로 낮추기 어려운 배경이다. 여기에 국제 유가와 환율까지 변동 폭을 키우면서 원가는 여러 갈래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단순한 가격 인하만으로 흡수하기에는 구조가 복잡하다.가격 인하 요구가 이어질수록 기업의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줄어들면 연구개발(R&D)이나 설비 투자, 신제품 개발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부 품목만 가격을 조정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원가 구조를 고려하면 그 역시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나온 판단으로 보인다.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원재료다. 계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계란값이 오르면 단순히 계란 한 판 가격에서 끝나지 않는다. 빵과 과자, 김밥과 샌드위치, 도시락, 외식 메뉴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는다. 하나의 원재료가 식품 산업 전반으로 파급되는 구조다.소비자의 장바구니는 이처럼 다양한 품목이 얽혀 구성된다. 이 구조에서는 완제품 하나의 가격을 낮춘다고 해서 생활비 전체가 곧바로 내려가기는 어렵다. 소비자는 라면 한 봉지가 아니라 장바구니 전체를 기준으로 물가를 체감하기 때문이다.이 지점에서 정책과 체감의 간극이 드러난다. 정책은 개별 품목의 가격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반면 소비자는 영수증의 총액을 기준으로 물가를 판단한다. 같은 물가를 두고도 출발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가격 인하 정책 자체는 필요하다. 다만 물가를 움직이는 중심이 원재료와 공급망, 산업 간 연결 구조로 확장된 지금, 개별 품목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체감 물가를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결국 중요한 것은 영수증이다. 총액이 줄어들지 않는 한 소비자는 물가가 내렸다고 느끼지 않는다. 가격표를 낮추는 정책만으로 장바구니 전체 비용을 낮추기 어렵다. 물가를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지 않는다면 체감 물가와 정책 사이의 간극은 계속 남을 수밖에 없다.
[기자노트]대출 조이기만으론 못 막는 '벼락거지'의 기억
금융당국이 다시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카드론, 보험계약대출까지 자금 흐름을 들여다보며 가계부채 관리 수위를 높이고 있다. 증시 랠리 속에 빚을 내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 수요가 커지고, 부동산 시장으로도 자금이 흘러들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의 배경으로 주택거래 확대와 자산시장 자금 유입을 함께 짚었다.수치만 보면 경고음은 분명하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사상 최대치를 다시 썼고 인터넷전문은행 신용대출 잔액도 처음으로 30조원을 넘어섰다. 카드론 잔액 역시 43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은행권뿐 아니라 카드론과 보험계약대출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불이 붙으면서 당국의 관리 대상도 전 금융권으로 넓어지는 모습이다.당국 입장에서는 가계부채와 금융권 건전성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빚을 내 오른 주식이나 집을 샀다가 시장이 꺾이면 손실은 개인에게, 부실 위험은 금융권으로 번질 수 있다. 과열된 투자심리를 방치할 수 없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다만 지금의 빚투 현상을 개인의 무분별한 투자 성향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이미 한 차례 '벼락거지'가 되는 경험을 했다. 집값이 단기간에 급등했던 시기, 집을 갖지 못했거나 제때 사지 못했던 사람들은 자산 격차가 순식간에 벌어지는 현실을 목격했다. 성실히 저축한 사람보다 무리해서라도 집을 산 사람이 결과적으로 더 큰 자산을 갖게 되는 장면도 봤다.그 경험은 강한 학습효과로 남았다. 자산 가격이 오를 때 참여하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공포가 시장에 깊게 깔렸다. 지금 증시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모습을 보며 일부 투자자들이 신용대출과 카드론까지 동원하는 배경에도 이런 심리가 있다. 단순히 '빚내서 투자하지 말라'는 경고만으로는 이 흐름을 막기 어려운 이유다.문제는 제도와 정책이 이 공포를 지금도 충분히 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거 사다리가 안정적으로 작동했다면, 근로소득과 저축만으로도 일정한 자산 형성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집값과 주가가 오를 때마다 참여자와 비참여자의 격차가 커졌고 정책은 대체로 자산 가격이 달아오른 뒤 대출을 조이는 방식으로 움직였다.대출 규제도 필요하지만 사후적 총량 관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은행권 대출이 조여지자 카드론과 상호금융 등 비은행권으로 수요가 번지는 모습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특정 업권을 누르면 다른 업권의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현실화된 셈이다. 자금 사용처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업권만 압박하면 부채는 줄어들기보다 더 취약한 곳으로 숨어들 가능성이 크다.결국 빚투를 막으려면 개인의 투자 판단만 문제 삼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투자자가 위험을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레버리지 투자는 단순한 투자 과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집값 급등기를 지나며 형성된 자산 격차의 기억, 노동소득만으로는 따라잡기 어렵다는 체념, 정책이 늘 시장보다 늦게 움직였다는 불신이 함께 만든 결과다.당국도 자금 흐름의 위험을 모르지 않는다.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리고, 은행권 규제 이후 비은행권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흐름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위험을 확인한 뒤 대출 창구를 조이는 방식이 반복될수록 시장에는 "정책은 늘 뒤따라온다"는 신호가 남는다. 과열을 식히기 위한 규제조차 늦게 등장하면 투자자에게는 오히려 서둘러 올라타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대출 조이기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해법이라기보다 최소한의 방어선에 가깝다. 다음 빚투를 막으려면 자산 가격이 급등한 뒤에야 대출을 누르는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벼락거지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사람들은 시장이 달릴 때마다 다시 빚을 낼 것이다. 당국이 정말 줄여야 할 것은 대출 잔액만이 아니라, 빚을 내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다.
[기자노트]느린 정책, 빠른 자본…부동산 세금 집값 잡을 수 있나
"급매는 다 소진됐고 지난 4월 말에 많이 팔렸어요. 중개 사이트의 매물들은 관망 목적으로 호가를 올리는 분들로 보여요. 집값이 오르기 전 주택을 사려는 사람은 늘었는데, 팔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거래가 없는 상황입니다." - 서울 송파구 잠실동 A공인중개사오는 7월 발표하는 세제 개편안에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인상안이 담길 것으로 예고됐다. 부동산 매물 잠김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새로운 세제 개편의 방향은 실거주 여부와 보유 형태에 따라 증세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투자 목적의 주택은 보유세 부담을 대폭 높여 실거주 목적의 주택과 차등한다는 취지다.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20일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에 "부동산 과세를 정상화해야 한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옳은 방향"이라며 부동산 과세 방침을 알렸다. 우려되는 점은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는 정부 메시지와 다르게 부동산 거래시장이 영악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관망세에 돌입한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올리는 추세가 두드러졌다.서울 서초구의 대장주 아파트 아크로 리버파크(1612가구)는 지난달 전용 84㎡ 전세가 24억원에 거래됐다. 전세 실거래가는 올 1월 17억원에서 4월 20억원을 넘어선 후 한 달 만에 4억원 더 올랐다. 반년이 안 지난 시점에 7억원 올랐다. 강북 주요 단지들에서도 전세 최고가가 등장했다. 중구 서울역 센트럴자이(1341가구) 전용 84㎡의 올해 1월 전세 계약은 7억5000만원에 체결됐다. 마포 자이힐스테이트라첼스(1101가구) 전용 84㎡도 전세 10억5000만원에 신고됐다. 지난 1월 8억원대와 비교하면 2억원 이상 올랐다.정부의 세금 카드가 민간 주택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주택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지난 5월9일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됐고, 오는 7월 세제 개편에선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도 예상되며 매도 시 대폭 오른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현재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의 경우 주택 매도 시 기본세율 6~45%에 중과세율을 더해 과세가 이뤄진다.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20%포인트, 3주택 이상 보유자는 30%포인트가 각각 가산된다. 여기에 지방소득세 10%를 적용하면 3주택 이상 보유자의 실효세율은 최대 82.5%까지 올라간다. 설상가상 입주 물량은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오는 7월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총 1만4106가구로 전월(1만3505가구) 대비 4.5% 증가하는 데 그친다. 올해 하반기 전국 입주 물량은 8만6352가구(수도권 4만4613가구·지방 4만1739가구)로 상반기(9만2810가구) 대비 7.0% 감소할 전망이다.역대 정부의 부동산 과세 정책도 득보다 실이 컸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9·13 대책을 통해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은 2.0%에서 3.2%로, 2020년 7·10 대책에서 다시 6.0%로 올랐지만 매물이 잠겼고 집값은 큰 폭으로 뛰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당시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격 상승률은 ▲2018년 6.22% ▲2019년 1.25% ▲2020년 3.01% ▲2021년 6.56% 등을 기록했다.정부의 강력한 규제 정책에도 부동산 과열이 지속되는 배경에는 경기 남부로 유입된 반도체 머니가 있다. 역대급 성과급을 받을 예정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직원들의 아파트 투자, 코스피 9000선 돌파에 따른 주식 차익실현이 부동산 유동성으로 유입되며 반도체 산업벨트인 화성 동탄신도시의 지난주 아파트값 상승률은 9%를 넘어섰다.전국 시·군·구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이자 소비자물가 연 상승률의 세 배에 달한다. 부동산 정책은 단순한 '집값 관리' 차원을 넘어 자산 양극화, 초고령화,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연결한 거대한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부동산 과열현상이 자산 양극화로 이어지고 청년 세대의 박탈감과 결혼·출산 포기, 세대간 자산 격차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커지고 있다.
[기자노트]축제 같던 젠슨 황 방한, 공허한 환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9일 4박 5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출국했다. 짧은 일정 속에서도 숨 가쁜 행보를 이어가며 한국 사회를 온통 '젠슨 황 열풍'으로 물들였다. 특히 우리에게 친숙한 장소들을 잇달아 방문하며 소탈하고 격의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방한 첫날 입국 직후 곧바로 e스포츠 게임단 T1이 운영하는 PC방을 방문했고, 같은 날 저녁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구광모 LG그룹 회장·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홍대 인근에서 삼소(삼겹살에 소주) 회동에 나서며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후에도 국내 유명 예능 토크쇼 촬영에 임하거나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 홈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서는 등 글로벌 기업 총수로서 보기 드문 일정을 잇달아 소화했다. 황 CEO의 꾸밈없는 모습에 대중들 역시 열광했다. 그가 가는 곳곳마다 구름 인파가 모였고 악수와 사진 촬영 요청 역시 끊임없이 쏟아졌다. 일부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그려진 팬아트를 들고 다니며 특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젠슨 황 특유의 셀럽 마케팅이 본인과 엔비디아의 호감을 높이며 긍정적인 브랜딩 효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다만 황 CEO가 한국을 떠난 지금, 화려하고 유쾌했던 순간들은 뒤로하고 우리가 보낸 환호에 걸맞은 성과가 있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내 유수 기업 및 대학, 정부와 AI 팩토리·로보틱스·자율주행을 아우르는 AI 파트너십을 공고히 한 건 사실이나 주요 협력 계획을 구체화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SK하이닉스·SK텔레콤 등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AI 팩토리 구축에 나서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로드맵과 생산 규모 등은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있다. LG그룹도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분야에서 협력을 진행 중인 건 맞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양사는 더 세부적인 협력 내용을 추후 캘리포니아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엔비디아로에게 AI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GPU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에 있는 엔비디아가 피지컬 AI 시장까지 선도하면서, 국내 기업들 역시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사업 전략을 구상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어서다. 반도체 기업에는 엔비디아가 최대 고객이고, 피지컬 AI 업체는 엔비디아 소프트웨어 생태계 없이 사업을 확장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도 "GPU의 지배 사업자에 의해 피지컬 AI의 핵심인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월드모델)까지의 종속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제조강국인 대한민국이 왜 그들에게 상응하는 막대한 지원 없이 (단순한 쇼잉만으로) 협력할 이유가 있을까"라고 조언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에겐 2가지 숙제가 생겼다. 먼저 AI 시장의 핵심축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이를 선도하고 있는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계속해서 고도화해 나가야 한다. 이벤트성으로 마무리되는 협력이 아닌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AI 생태계에서 상부상조할 수 있는 관계가 돼야 한다. 국내 AI 인프라에 대한 실제적인 투자를 이끄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지나친 종속을 막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한국만의 AI 독자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력·제도적 인프라 등도 적극 지원돼야 한다. 황 CEO와 함께했던 즐거운 축제는 막을 내렸다. 이제 그를 향해 보냈던 환호가 일회성 열기로 끝나지 않도록 내실을 다지고 AI 생태계를 선도하는 핵심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기자노트]'2030 남성 보수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움직인 정신이 있었다. 1960년대에는 가난에서 벗어나 잘 살아보자는 열망이 산업화를 밀어붙였다. 1980년대에는 독재에 맞선 저항이 민주화를 이뤘다. 성격은 달랐지만 한 세대를 한 방향으로 묶은 분명한 지향이었다. 청년은 늘 그 한복판에 있었다.지금의 2030세대는 선 자리가 다르다. 산업화도 민주화도 이미 이뤄진 뒤다. 거대한 과업이 완수된 시대에 태어난 첫 세대다. 묶어줄 지향이 옅어지자 정당을 고르는 기준도 변화했다. 세대 정체성이 아니라 자기 이익과 손해 계산이 그 자리를 채웠다.6·3 지방선거에서 그 단면이 드러났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은 더불어민주당 33%, 국민의힘 55.8%를 지지했다. 30대 남성도 민주당 42.1%, 국민의힘 48.6%로 보수 우위였다. 반면 20대 여성은 66.4%, 30대 여성은 63.5%가 민주당을 지지했다.표면적으로 남성은 보수로, 여성은 진보로 갈렸다. 이를 두고 2030 남성이 보수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청년이 보수화된 게 아니라 저항의 대상인 기득권 세력이 바뀐 건 아닐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존의 정치 문법으로는 이들을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 계열 진보 진영은 2010년대 이후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에서 9승을 거뒀다. 국민의힘 보수 계열은 4승에 그쳤다. 최근 총선에선 진보 진영이 3연승을 거뒀다. 유례 없는 일이다. 최근 15년 사이 한국 정치의 주류가 보수에서 진보로 탈바꿈한 셈이다.주류의 얼굴은 586세대(50~6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다. 이들은 과거 독재에 맞서 싸웠다. 스스로를 진보라 부르며 평등을 말했다. 그러나 청년의 눈에는 자산과 지위를 쌓아 올린 또 다른 기성세대로 비쳤다. 청년들이 느끼는 불평등의 중심에 진보 편향의 기성세대가 있다.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자산 문제에서 두드러진다. '재분배'와 '복지'는 이미 자산을 쥔 기성세대의 언어로 들린다. 자신들은 아직 사다리를 오르지도 못했는데 사다리를 나누자는 말로 읽힌다. 코스피 8000 시대, 실용주의적 시장 정책을 지지하는 '뉴이재명'(민주당이 아닌 이재명 대통령 개인 지지 흐름)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그래서 2030 남성이 보수화됐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들이 보수에 표를 준 것은 맞다. 그러나 보수가 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기득권 세력이 된 민주당에 맞섰고 그 저항의 출구에 보수가 있었을 뿐이다. 청년이 맞선 상대가 진보라는 사실 자체가 달라진 지형을 보여준다. 진보는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고, 보수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차기 총선의 승부처도 이곳이다. 2030의 표심은 아직 어느 정당에도 정착하지 않았다.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의 승리는 '민주화 대 산업화'라는 낡은 틀을 깨고 시대정신을 먼저 읽어내는 진영의 몫일 것이다.
[기자노트]억대 성과급과 최저임금 사이…초과이윤, 상생 위해 숙의하자
최근 삼성전자 노사 갈등에서 촉발된 대기업 초과이윤 재분배 논란이 정치권과 산업계 전반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AI(인공지능) 시대에 기업에 집중될 초과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묻는 '한국형 사회연대임금' 논의를 제안하자 산업계와 야권은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마저 "반도체 이윤은 미래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로 연결해야 한다"고 선을 그으면서 정부 부처 간 엇박자 논란까지 불거졌다.그러나 이번 논란을 '기업의 이윤을 빼앗자는 낡은 주장'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문제의 뿌리에는 한국 노동시장의 오래된 이중구조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반도체 라인, 같은 공장 생태계에서 일하지만 일부 원청 정규직에게는 억단위의 성과급이 논의되는 동안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과 일자리를 걱정한다. 대기업의 초과이윤도 특정 기업 소속 임직원만의 노력으로 빚어진 결과라고만 보기 어렵다. 협력업체의 땀 어린 기술과 인력, 장기간 축적된 공급망의 역량이 함께 만들어낸 성과이기도 하다.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벌어진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는 한국 노동시장이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숙제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 대기업의 초과이윤 배분 비율을 직접 정하거나 강제하려 들 경우 부작용이 작지 않다. 배분 기준과 대상, 경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주가치 훼손, 경영 개입, 재투자 위축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자칫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고치자는 문제의식이 산업 경쟁력 훼손 논쟁으로 번질 수 있다.필요한 것은 파이를 억지로 빼앗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대기업이 거둬들인 초과이윤이 하청 생태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제도의 물꼬를 터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 초과이윤을 바탕으로 현재 원자재 가격 변동에 초점이 맞춰진 납품대금 연동제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은 어떨까. 협력업체의 임금 인상분, 안전 투자 비용, 숙련 인력 확보 비용을 원청이 함께 부담할 경우 초과세수를 활용한 세제 혜택과 정책금융 우대, 공공조달 평가 가점 등을 제공하는 방식 등이 가능하다.자본시장의 힘을 이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활용해 협력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행위를 핵심 ESG 지표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평가에 반영한다면 상생에 앞장서는 기업이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단순 기금 출연이 아니라 실제 하청 노동자의 임금 인상, 산업안전 투자, 복지 개선 등에 대한 데이터를 증빙한 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초과이윤은 승자가 독식할 전리품도, 억지로 뺏어 나눌 약탈품도 아니다.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재원으로 쓰일 때 대한민국 기업이라는 거위는 더 크고 건강한 황금알을 낳을 수 있다. 초과이익 배분을 논의하기 위한 '가칭 사회연대임금 모색 긴급토론회'는 연기됐지만 청와대도 성과 배분의 사회적 공론화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토론회 개최는 조만간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그 자리가 상생의 룰을 다시 설계하는 숙의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기자노트]사과도 똑소리 나는 무신사, 데카콘 자격 있다
"그래서 뭘 잘못했는데?"연인이나 부부 싸움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이 대사는 이제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상 콘텐츠에서 단골 밈(Meme)이 됐다. 이 대사에는 위기관리의 본질이 숨어있다. 사과의 기본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하고 수치스럽더라도 이를 가감 없이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그저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영혼 없이 "잘못했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곧 더 큰 난관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저명한 사회학자 샘 리처드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교수는 사과의 5가지 핵심 요소로 유감 표명, 책임 인정, 보상과 배상, 진심 어린 반성, 용서 구하기를 꼽았다.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이 불거지자 온라인에서는 7년 전 무신사의 비슷한 실수가 함께 소환됐다. 2019년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케 하는 문구를 SNS 마케팅에 쓴 일이다. 이미 여러 번 사과하고 수습이 끝난 사건이기에 자칫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신사는 두말하지 않았다. 지난 5월20일 발표한 공식 사과문에는 리처드 교수가 말한 핵심 요소들이 분명하게 담겼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후 어떤 조처를 했는지, 반성의 목소리와 함께 재차 사과했다. 이튿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창업자인 조만호 의장과 조남성 대표이사가 박종철센터를 직접 찾아가 고개 숙이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조 의장이 사건 직후부터 7년간 박종철기념사업회 회원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조용히, 그리고 오래. 보여주기식 사과가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진정성 있는 행보에 여론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옛말은 이럴 때 쓰인다. 위기관리 능력만큼 돋보이는 것은 차근차근 다져가는 기업의 내실과 상생 행보다. 무신사가 서울 성동구와 손잡고 추진하는 서울숲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2023년부터 임차인을 찾지 못해 3년 이상 방치됐던 성수동 유휴 공간에 패션 셀렉트숍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연내 20여개 디자이너 브랜드가 집결하는 K패션·라이프스타일 특화 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민관 협력 기반의 지속 가능한 상권 모델을 구축하며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공시를 통해 드러난 데이터는 이들의 상생 기조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브랜드 인큐베이팅과 상생을 앞세우는 유통 대기업의 인디 브랜드 투자 금액은 최근 수년간 매출 대비 0.2~0.7%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같은 기간 무신사는 동반성장펀드 등 직접 지원 자금 편성을 통해 매출 대비 4~5% 수준의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매출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상생 투자 규모도 매년 확대하는 추세다.과거 무신사가 유니콘을 넘어 기업가치 10조원 이상인 데카콘 기업을 노린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시장의 평가는 회의적이었다. 고성장 스타트업 특성상 기업가치 산정 시 최대 영업이익의 30~40배까지 평가하는 관행을 고려해도 과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무신사는 2023년 하반기 거래액 4조원을 기록할 당시 기업가치 3조5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2025년 연결 기준 무신사의 거래액은 5조원을 넘어섰고 매출 1조4679억원, 영업이익 1405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올해 이 기록을 다시 쓸 전망이다. 돈도 잘 벌고 리스크 관리도 잘하고 ESG까지 잘 챙긴다. 비상장 기업인데 웬만한 대기업보다 낫다. 재무제표에 찍히는 숫자도 매력적이지만 무신사는 시장과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데카콘 그 이상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기자노트]서울 떠나는 금융, 표심보단 숙의가 먼저
'포퓰리즘'. 정책의 실효성보단 대중으로부터의 지지와 인기를 우선하는 정치 행태를 일컫는다. 어원은 19세기 미국에서 결성된 포퓰리스트당에서 유래했다. 충분한 검토와 준비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늘 논쟁의 중심에 선다.선거철만 되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금융권 단골 이슈가 있다. 금융기관 지방이전이다. 다음달 있을 6·3 지방선거를 앞둔 올해도 관련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범위도 넓어졌다. 금융당국을 비롯해 국책은행 및 농협·수협중앙회까지 거론되며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명분은 확실하다. 서울·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발전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지방으로 분산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정치권에선 '금융의 재배치'에 대한 논의를 다룬 다양한 시나리오가 과거부터 꾸준히 언급돼 왔다.문제는 현실이다. 금융은 일반 제조업 공장처럼 건물을 옮긴다고 기능까지 고스란히 옮겨지는 업권이 아니다.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정책금융기관, 민간 금융사, 증권사, 법무·회계법인, 정보기술(IT) 기업 등이 촘촘히 연결된 생태계 안에서 서로 호흡한다.현재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금융 인프라를 감안한다면 단순한 물리적 이전만으로는 기대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노동조합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선을 앞두고 나온 선거용 포퓰리즘'이라고 반발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특히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라면 고민할 지점은 더 많아진다. 최근 중동전쟁에 따른 리스크 및 글로벌 변동성 확대 등 시장 불안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금융 생태계는 수시로 머리를 맞댄다. 급박하게 흘러가는 위기 상황일수록 시장 안정을 위해선 속도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위기에 맞서야 하는 유관기관 간 협업 체계가 흔들린다면 효율성 저하로 이어진다. 단순히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다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과연 정치권에서 이러한 우려를 염두에 두고 공약을 내거는지가 궁금하다.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 지방이전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던 올해 초와 달리 지금은 다소 수그러든 것 같다"면서도 "지선이 끝난 이후 지역별 선거공약 및 요구에 따라 관련 논의가 다시 재점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여건은 갖춰져 있다.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을 지방으로 옮기는 법안은 이미 정치권에서 발의된 상태다. 최근 들어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이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지방이전이 무조건 틀렸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선거철마다 금융의 이름을 빌린 '표심잡기'가 반복된다면 대중의 신뢰마저도 잃을 수 있다. 단순히 어느 금융기관을 '어디로 보내겠다'가 아니라 금융기관을 어떻게 바꾸고 이를 통해 무엇을 달성하려 하는지 등 내용을 담은 전략이 필요하다.숙의를 위한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 대부분 금융기관의 본점 소재지는 관련 법에 '서울'로 명시돼 있다. 지방 이전을 추진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행정·입법부의 협의가 필요한 만큼 빠른 개정이 진행되기는 다소 어렵다. 지방 이전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논의하는 그러한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
[기자노트]안전 사라지고 정쟁만 남은 GTX 부실시공 사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삼성역 공사 구간의 철근 누락 사태가 정치권 공방으로 확산되며 건설업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사 현장에서 크고 작은 오류는 발생할 수 있지만 국내 최상위 시공사와 다중 감시 체계가 투입된 국가 핵심 인프라 사업에서 치명적인 시공 오류가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해당 구간 지하 5층 기둥 80본 중 50본은 준공 구조물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시공사 현대건설은 구간 도면을 오독해 지하 5층 기둥 80곳에서 2개씩 들어가야 할 주철근을 1개씩만 시공했다. 누락된 철근은 총 178t(톤)에 달한다.서울시는 시공사로부터 관련 사실을 보고받은 뒤 약 5개월이 지나서 국토부에 공식 보고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구간은 국토부 산하 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이 서울시에 위탁해 사업이 진행 중이다.이번 사태는 지난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로 이어졌다. 하지만 회의장은 예상과는 다른 내용으로 전개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점검보다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는 진실게임으로 채워졌다.국토부와 국가철도공단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고 서울시는 "수차례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고 맞섰다. 두 기관은 지난 25일에도 서로의 입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각각 발표했다.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전불감증" "정치 감사" 같은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양측의 책임 공방이 여야 서울시장 후보 간 선거 대리전으로 번지면서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는 모양새다. 사고 책임을 규명하는 일은 필요하다. 삼성역 지하공간은 서울 동남권 핵심 교통축으로 GTX-A·C 노선과 지하철 2호선, 버스 환승센터 등이 집결하는 시설이다. 관리 책임 역시 무겁다. 지금처럼 책임자들이 "몰랐다" "보고했다"는 식으로만 떠넘기기 급급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사고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다중 감시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자체 점검에서 문제를 발견해 자진 신고했지만 이에 앞서 철근을 배치하고 콘크리트를 붓기까지 감리업체마저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발주청 서울시와 위탁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의 협력 대응도 뒤늦었다. 현장 작업자 한 명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여러 단계의 안전망이 동시에 무너졌다는 의미다.시민들이 궁금해하는 건 정치권의 공방이 아니다. GTX-A를 이용해도 안전한지,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답이다. 사고 발생 시 어느 기관이 더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보다 보고 시점,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국가 핵심 인프라의 안전 문제마저 정쟁 속에 묻혀선 안 된다.
[기자노트]23년 묵은 빚 청구서
2003년 카드대란은 오래전 일처럼 여겨졌다. 몇 년 전 드라마 소재로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상록수 논란은 그 과거가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실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상록수는 카드대란 당시 급증한 장기 연체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2003년 주요 은행과 카드사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유동화전문회사다. 금융사들이 직접 들고 있기 부담스러운 부실채권을 별도 법인으로 넘기고 이 법인이 채권을 보유·관리해온 구조다.금융사 입장에서는 부실채권을 분리한 것이지만 채무자 입장에서 빚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채권자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 채무는 20년 넘게 남아 있었다.이재명 대통령의 '약탈적 금융' 발언은 논란의 방아쇠가 됐다. 금융권은 곧바로 상록수 보유 채권 매각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장면은 씁쓸하다. 금융권은 포용금융을 말해왔고 당국은 새도약기금을 만들었다. 그런데 20년 넘은 카드대란 채권은 대통령의 질타가 있기 전까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남아 있었다.정부는 취약차주의 재기를 지원하기 위해 원금 5000만원 이하, 7년 이상 장기연체채권을 매입해 추심을 중단하고 채무조정이나 채권 소각 등을 지원하는 새도약기금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상록수 보유 채권은 민간 SPC(특수목적법인) 자산이라는 이유로 우선 정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제도는 생겼지만 카드대란의 잔재는 제도 바깥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그렇다고 상록수 논란을 곧바로 '약탈적 금융'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록수는 개별 금융회사가 지금 직접 채무자를 상대로 추심하는 구조라기보다 별도 SPC가 채권을 보유·관리하는 형태로 운영돼 왔다. 금융사들도 현재 자신들은 지분을 가진 주주 성격에 가깝다고 설명한다.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상록수를 만든 것은 금융권이고 지분을 보유한 것도 금융권이다. 채권 회수에 따른 경제적 이익 역시 금융권과 완전히 무관했다고 보기 어렵다. 직접 추심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책임의 구조를 말해줄 뿐 책임이 사라졌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금융당국도 비켜서기 어렵다. 취약차주 재기를 지원하겠다는 제도가 만들어졌는데 정작 20년 넘게 묵은 카드대란 채권이 남아 있었다면 제도의 빈틈으로 해석될 수 있다.물론 상록수 청산이 빚 탕감의 신호로 읽혀서는 안 된다. "빚 갚는 사람만 바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은 가볍지 않다. 금융은 약속 위에 선다. 빌린 돈은 갚아야 하고, 성실하게 상환해온 사람들의 박탈감도 고려해야 한다. 이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포용금융은 곧바로 특혜 논란에 갇힌다.그렇다고 이 원칙만으로 상록수 문제를 덮을 수도 없다. 상록수 채권은 최근 발생한 부실이 아니라 카드대란 이후 이어진 장기연체채권이다. 원금 1000만~2000만원 수준이던 채무가 연체이자와 시효 연장 등을 거치며 수억원대로 불어난 사례까지 알려졌다. 쟁점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지 않다.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채권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는 돈'으로 남겨둘 것인지에 있다.필요한 건 탕감의 확대가 아니라 책임의 정리다. 일괄 탕감도, 무조건적인 회수도 답이 될 수 없다. 상환 여력과 회생 가능성을 따져 책임을 물을 채무와 재기를 도울 채무를 가르는 선별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특히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오래된 채권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받아낼 수 있느냐보다 채무자가 다시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느냐를 우선 따져야 한다. 금융권과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오래된 빚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상록수 청산은 채권 처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랜 기간 미뤄온 책임의 청산이어야 한다. 카드대란은 금융사 장부에서 끝났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 청산이 단순한 채권 매각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자노트]"나만 못벌면 안 되는데"…코스피 8000 시대의 이면 '빚투'
최근 어딜 가나 주식 얘기 뿐이다.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수치에 도달하며 세계가 주목한 '코스피'가 화두다. 1년 전 오늘(2025년 5월19일) 코스피지수 종가는 전 거래일 보다 23.45포인트(-0.89%) 내린 2603.42였지만 지난 15일에는 장 중 한 때 사상 최고치인 8046.78포인트까지 찍었다. 1년 동안 5440포인트 넘게 뛰며 해외 투자자들도 주목하는 시장이 됐다.과거 코스피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저 그런 시장"에 불과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취임한 뒤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를 천명하며 "국장 복귀는 지능 순"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동안은 "국장 탈출은 지능 순"에 더 가까웠다.코스피가 투자자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오랜 시간 2000포인트 선에 머물며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투자 매력도가 떨어져서다. 이른바 '박스피'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현재 30만원에 육박한 코스피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10만 전자 후퇴', '또 6만 전자' 등 10만원 아래 장기간 갇혀 투자자들의 속을 태웠지만 올 1분기 영업이익만 57조원을 넘게 거두며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회사"라는 칭송을 듣게 됐고 주가도 크게 뛰었다.200만원에 육박하며 400만원까지 찍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시총 2위 SK하이닉스는 23년 전 상장 폐지를 걱정해야할 '동전주' 처지였다. 2011년 SK그룹에 인수된 뒤에도 적자에 허덕였지만 이제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때 미리 사둘걸"이라는 탄식을 쏟아내는 황제주 지위에 올라 있다.최근의 거침없는 코스피 상승세는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을 만난 두 회사의 기여도가 가장 크지만 정부와 여당의 세차례 상법 개정, 각 기업의 주주가치 재고 전략이 맞물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오명을 벗기는 데 함께 힘을 보탰다. 예기치 못했던 가파른 상승세의 코스피는 주식 투자 열풍을 몰고 왔지만 반대로 부작용도 양산했다. "여기저기서 주식 투자로 돈 벌었다는 소리가 가득한데 왜 나만 못 벌지?"라는 의문과 심리적 불안감이 무리한 '빚투'(빚내서 투자)로 이어져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흐트러트릴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이는 대중적 흐름이나 경향에서 나만 고립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일컫는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다. 무리한 신용대출로 주식에 투자하고 은행 예금을 빼 주식에 몽땅 쏟아 붓는 무리수까지 둔다. 청소년부터 사회초년생,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코스피에 빠져 "나만 소외될 수 없다"며 투자 성공을 다짐한다.국내 주요 10대 대형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삼성·KB·NH·신한·메리츠·키움·하나·대신)가 거둔 1분기 신용융자거래에 따른 이자 수익이 지난해 동기(3846억원) 대비 55.9% 늘어난 6000억원을 거둬들인 것도 주식 투자 열풍의 이면이다.국내외 주요 증권사와 애널리스트들도 코스피 낙관론을 내세우며 목표지수를 상향해 전망하지만 이런 분위기일수록 스스로를 통제해야 할 인내심과 자제력이 필요하다. 주식투자는 기본적으로 위험자산에 속한다. 주가지수는 가파르게 치솟다가도 언제든 다시 하향 곡선을 그릴 수 있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본 범위를 넘어선 무분별한 투자는 오히려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방해한다. 스스로 "술 덜 마시고, 담뱃값 아껴서 주식 투자해야지"라는 다짐과 "집 담보로 대출 받고 차 팔아서 주식 투자해야지"라는 다짐은 위험의 파고가 확연하다. 투자에 실패해도 내가 감당할 수준에서 움직여야 한다. 무리하게 주식투자해서 돈 벌었다는 주변 얘기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부당한 정보를 취득해 주식을 사고파는 불법행위에 대한 유혹도 마찬가지다. 그건 "나만 소외되고 있다"가 아니라 "저러면 패가망신 할 수 있다"라고 되새기는 계기여야 한다. 폭등을 노리고 큰 돈 들여 동전주를 산다고 갑자기 주가가 치솟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 오를 까봐 빚내서 무리하게 주도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주식 투자 성공 스토리를 쉽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공은 어렵게 찾아오지만 실패는 한순간이다. 수시로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는 주식투자는 더더욱 그렇다는 걸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기자노트]'좋은 금융' 기준의 변화…ESG금융이 중요한 이유
지난 13일 동행미디어 시대 주최로 열린 ESG 어워드는 단순한 시상식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수상 결과보다 인상적인 건 '좋은 금융'의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과거 금융의 역할은 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리스크를 관리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명확했다. 기후위기와 양극화, 산업 전환이라는 구조적 변화 앞에서 이 기준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이제 금융은 '어디에 투자하지 말아야 하는가'에서 '어디에 왜 투자해야 하는가'를 묻는 단계로 넘어왔다.이번 어워드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넘어 '생산·상생 포용·신뢰'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ESG가 한때 친환경 투자 중심의 개념으로 소비됐다면 이제는 산업 구조와 경제 체질을 바꾸는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이 변화는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공식화하며 금융을 통해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머물던 자금을 혁신 산업과 벤처, 지역경제로 돌리고 있다.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조성과 자본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여력 확대, 자본시장 기능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의 진단처럼 금융은 더 이상 실물경제를 뒤따르지 않는다. 대출과 투자, 기업가치 평가를 통해 산업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 어떤 기업에 돈이 흘러가고 배제되는지가 미래 경제의 윤곽이 된다.문제는 기업만으로는 ESG 전환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ESG 경영은 단기 수익을 일부 희생하고 장기 가치를 추구해야 하지만 현실의 기업 의사결정은 단기 실적과 주주가치에 묶여 있다.이 지점에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ESG는 좋은 일이 아니라 돈이 되는 구조로 설계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에 낮은 금리를 적용하거나 ESG 채권을 통해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ESG 리스크가 큰 기업에는 더 높은 자본 비용이 부과된다. 금융이 가격 신호를 통해 기업의 선택을 바꾸는 구조다.ESG 금융의 본질은 도덕이 아니라 인센티브다. 기업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이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금융은 그 이유를 만들어주는 장치다.이날 시상식이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시장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 어떤 금융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지, 어떤 자금 흐름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신호를 던졌다.저성장과 양극화가 굳어진 지금 경제 문제를 정치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해법은 시장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는 금융이 큰 역할을 한다.좋은 금융은 얼마나 벌었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흘렀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로 평가받는다. ESG 금융이 중요한 이유다.
[기자노트]실적 모멘텀에도 주가 박스권 갇힌 제약사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고 연구개발(R&D) 성과도 나쁘지 않은데 주가가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최근 만난 제약사 임직원들의 하소연은 코스피 7800 시대에 더욱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경기 불황 속에 본업의 경쟁력인 신약 개발을 위해 재투자를 이어간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일까.국내 최대 제약사 유한양행은 지난해 매출 2조1866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함께 5대 제약사로 꼽히는 GC녹십자(1조9913억원)와 종근당(1조6924억원) 대웅제약(1조5709억원) 한미약품(1조5475억원) 등도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주가는 저평가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8.27~47.57배로 동종업계 평균(56.39배)을 한참 밑돈다. 견고한 재무제표가 오히려 '무거운 주식'이라는 낙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바이오·테크 분야의 제조·개발을 위탁 수행하는 바이오텍 기업들은 매출이 전무해도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조단위 기술 수출 임박' 같은 청사진 또는 루머에 현혹된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은 결과다. 이러한 투기에 가까운 투자는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개인 투자자들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제약·바이오 섹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다. 신약 하나가 개발돼 상용화가 되기까지 10년 이상의 기다림과 천문학적 비용이 투자된다.시장에서 자리잡은 제품들은 안정된 매출로 R&D 비용을 확보할 수 있지만 투자시장은 실적의 견고함보다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기회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주가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투자자뿐 아니라 기업도 변화해야 한다. 제약사는 데이터 중심의 IR을 고도화하고 소통을 늘려야 한다. 주주 환원을 강화해 투자할 만한 우량주로서의 입지도 다져야 한다. 그리고 투자자는 실체 없는 대박을 쫓기보다 재무 건전성과 R&D의 지속 가능성을 분석하는 기본을 다시 정립해야 할 때다. 실적이 모멘텀이 되지 않는 국내 제약·바이오주는 변동성 심한 테마주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숫자가 시장의 신뢰 지표가 될 수 있도록 기업과 투자자의 냉정한 자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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