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더니 '필버' 무력화 나선 與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제도를 손질하겠다며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패스트트랙 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것은 물론, 상임위원장이 정당한 이유 없이 법안 심사를 지연한다고 판단되면 위원장까지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2012년 여야 합의로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변화다.민주당은 국민의힘이 22대 국회 들어 필리버스터를 32차례나 신청하며 모두 750시간에 걸쳐 국회를 마비시켰다고 주장한다. 소수 의견 보호를 위한 제도가 민생 입법을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한 문제 제기다. 국민의힘이 습관적으로 필리버스트를 활용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수당의 견제 장치 자체를 제도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현행 제도에서도 필리버스터는 이미 제한적이다.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무제한 토론을 시작할 수 있지만, 24시간이 지나면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이 찬성할 경우 강제 종료된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32차례의 필리버스터 가운데 28건을 하루 만에 종결시켰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무제한 토론은 고사하고 그저 단독 통과를 하루 늦추는 수단으로만 기능하고 있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과 방송 4법, 상법 개정안 등 주요 쟁점 법안도 이 절차를 거쳐 모두 처리했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하고자 했는데 하지 못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마저도 의사당에 나와 있는 의원 수가 재적 5분의 1 아래로 줄면 필리버스터를 멈출 수 있도록 완화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 "의회 독재를 막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며 40년 만에 필리버스터를 부활시켰던 사실을 잊은 건가. 패스트트랙 제도 개편도 우려스럽다. 민주당은 현재 최장 330일인 심사 기간을 90일로 단축하겠다고 한다. 현재 패스트트랙 심사 기간은 '상임위원회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60일'인데, 이 기간을 '상임위 60일, 법사위 30일, 본회의 부의 후 첫 본회의 상정'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상임위원장이 회의 개최나 의사진행을 거부하거나 법안 심사를 현저히 지연한다고 판단되면 운영위 의결로 위원장을 교체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이 교체를 요구하고 과반이 찬성하면 위원장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입법 폭주와 소수당의 물리적 저지를 동시에 막기 위해 여야가 어렵게 타협해 만든 제도다. 운영 과정에서 손질이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개정의 방향이 입법의 속도와 효율성만 앞세우는 쪽이면 곤란하다. 여야의 처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국회의 다수결 원칙은 존중돼야 하지만, 소수 의견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까지 허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여야 모두 얼마나 대화와 타협의 노력을 했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사설]노총 '회계공시 연동' 삭제…투명성 후퇴 조장하나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상급단체와 산하 노동조합이 모두 회계 내용을 공개하는 경우에만 조합비를 세액공제해 주던 규정이 폐지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양대 노총은 회계를 공시하지 않아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한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양대 노총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3년 만에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용노동부는 상급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아도 산하 노조만 공시에 참여하면 노조원들이 조합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이르면 다음 달 입법예고할 방침이라고 한다. 노조 회계공시 제도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착을 목표로 2023년 도입된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개혁 정책이다. 조합원 1000명 이상인 노조가 회계를 공시하면 연말정산 때 조합비의 15%를 세액공제해 주되, 해당 노조의 상급단체가 회계 공시를 거부하면 산하 노조 조합원도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지난 정부가 소득세법을 개정해 산하 노조와 상급단체의 회계 공시를 연동시킨 것은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서 조합비 횡령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수백억 원 규모의 조합비를 다루는 거대 노총의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양대 노총은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산하 노조 조합원들 사이에서 "상급단체 때문에 연말정산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커지자 마지못해 회계 공시에 참여했다. 이번에 상급단체와 산하 노조의 회계 공시 연동 규정을 없앨 경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굳이 회계 내용을 공개할 이유가 없어진다.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의 회계 공시 참여율은 89.1%로 대단히 높다. 월급에서 떼어 낸 조합비가 정당한 곳에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노조원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산하 노조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의 일부가 상급단체로 전달되고, 두 노총에 지난해에만 100억 원이 넘는 국고 지원까지 이뤄진 만큼 양대 노총의 돈 씀씀이 역시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마땅하다.'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기업에는 '투명 경영'을 요구하면서 노동계의 회계공시 제도 폐지 주장을 사회적 여론 수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이재명 정부가 노동계에만 관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회계 투명성은 기업만이 아니라 노동단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원칙이다.
[사설]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손질…'인격권' 보호 함께 가야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현행 형법의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지금은 내용이 진실이더라도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처벌 대상을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을 적시한 경우로 한정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대신 요건을 강화하는 쪽으로 손보겠다는 취지다.이번 개정안은 표현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보장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동안 공익적 목적으로 사실을 알린 경우까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공직자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한 사람이 현행법에 따라 되레 명예훼손 혐의로 보복 소송을 당하는 사례도 반복돼 왔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가치이다. 아울러 명예와 인격권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다. 특히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인격권 침해의 전파 속도와 파급력이 실로 엄청나다. 설령 그 내용이 진실이더라도 무분별하게 공개되면 개인의 삶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사생활 폭로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이른바 '사이버 렉카'가 대표적 사례다. 헌법재판소가 2021년 5대 4 의견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합헌이라고 판단한 이유도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 결과였다.그 점에서 개정안이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을 적시한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해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한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다만 문제는 중대한 비밀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 사생활과 공적 관심사의 경계가 어디인지 등에서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동안 이런 부분을 명확히 하고 보완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공익적 사실적시와 권력 감시는 보호하되 사적 보복과 신상털기, 사이버 렉카식 인격 침해는 막을 수 있는 정교한 입법이 요구된다.
[사설]방만 논란 교부금 개편, 靑이 나서 정리해야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내국세의 20.7%를 시도 교육청에 나눠주는 현행 '교육 교부금' 제도의 개편안을 마련 중이며, 조만간 법안도 발의하겠다고 방송에 나와 밝혔다. 앞서 그는 지난 8일 열린 교육계와의 공개 토론에서도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의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육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50년 묵은 교육 재정의 근간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현재 교부금 제도는 초중고 교육을 담당하는 일선 교육청에 예산을 나눠주고, 이를 교육감이 집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학령 인구가 100만명이던 1972년 도입된 제도라는 점이다. 당시엔 초중고 학교 시설과 교사가 많이 필요했고, 내국세를 걷어 일정 비율의 막대한 예산을 자동으로 지원하는 제도의 효과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학령 인구가 25만명으로 줄었다. 게다가 초중고 외에 첨단 인재 배출, 평생 교육 같은 새로운 예산 용처가 갈수록 늘고 있다.특히 교부금은 경제성장에 따라 매년 크게 증가하면서 운영의 방만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육감이 마치 쌈짓돈처럼 쓴다는 것이다. 교육감 선거 때마다 현금성 지원금 공약이 난무했고, 적립금으로 쌓아두는 금액도 상당했다. 그때마다 개편 여론이 일었지만 교육계 표심을 고려한 정치권과 정부의 소극적 움직임으로 흐지부지됐다. 최근 교부금 논란이 다시 점화한 것은 반도체 호황 때문이다. 수출 증가로 세금이 늘면서 교부금이 역대 최대인 8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급증한 교부금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이 기획처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현행 분배율의 고수를 주장하고 있다. 인건비와 학교 운영비 등을 감안할 때 줄이기 어렵다는 논리다.교부금 논쟁이 힘겨루기로 흘러선 안 된다. 우선 순위로 고려할 것은 국민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학생 수는 주는데 교부금은 갈수록 증가하는 구조라면 합리적인 조정안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계 반발이 거세지면서 내년도 예산 편성 시한인 8월 말까지 교부금 개편안 마련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이런 사안일수록 청와대의 적극적인 조정 역량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 기획처와 교육부의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 하지만 교육계 반발은 토론 이후 더욱 강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전국 교육감들이 긴급 회의를 열어 개편에 반대했고, 전국 176개 교육지원청 교육장들이 모여 내국세 연동률의 유지를 주장했다. 청와대가 적극 나서 입장 차이를 정리하고 교육계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교육 재정은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국가 자산이다. 학생 수와 교육 수요의 변화에 맞춰 재설계를 끌어내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사설]'집권당 전대'인지, '신천지 전쟁'인지
더불어민주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이 '신천지' 논란으로 얼룩지고 있다. 당권 경쟁이 일찌감치 네거티브로 흘러간 가운데 특정 후보를 겨냥한 '신천지 개입설'까지 더해져 경선은 말 그대로 이전투구 양상이다. 국정의 한 축을 책임진 집권당 전당대회라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정책비전 경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예비경선을 통과한 후보들이 이번주 순회 경선에 돌입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지난 주말에도 신천지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김민석 의원은 25일 신천지 의혹을 거듭 언급하며 "계엄을 경고했을 때처럼 신천지 의혹을 꺼내놓은 것은 당과 미래를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이에 유착 당사자로 의심받는 정청래 의원은 26일 "당을 위험에 빠트린 해당 행위를 당에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촉구했다. 급기야 당내에선 "(전당대회가) 명청 갈등만 조장하고 신천지 전쟁"이라는 우려까지 나왔다.신천지 개입설은 김 후보가 20일 합동연설회에서 "반명, 분열주의, 신천지의 3자 비밀 연합을 깨는 것이 이번 전당대회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면서 본격화됐다. 21일엔 라디오 방송에서 "3자가 사실상의 연합으로 형성돼 핵심 배후가 되는 상황"이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고, 진행자가 근거를 묻자 "적절한 시기에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이에 정 후보와 친청계 최고위원 후보들은 "근거가 없으면 책임지고 사퇴하라"며 반발했다. 신천지 측은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다"고, 강준현 수석대변인은 "수상한 입당자도, 의도적 개입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특정 종교 단체가 조직적으로 정당 활동에 개입했다면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행위로 묵과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도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교 유착은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고 했다. 더구나 신천지는 무리한 교세 확장 과정에서 나타난 반사회적 일탈 행위들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종파다. 따라서 신천지 연루설은 해당 정치인에게는 실제 '유착'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치명적 타격이 된다. 그럴수록 의혹제기는 신중해야 하고 사실이라면 끝까지 규명해야 한다.그런데도 김 후보는 의혹을 제기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도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22일에는 기자들에게 "나는 신천지 정치개입 문제점만 지적했고 특정 후보를 연결 짓는 것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특정 후보를 연상시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의혹을 제기한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수 없다. 물론 검경 합동수사본부 가 신천지의 조직적 민주당 집단 가입 정황을 발견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만큼 관련 의혹을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다. 그럴수록 김 후보는 시간을 끌지 말고 근거 조속히 공개해 타당성을 검증받기를 바란다. 이번 사안은 의혹만으로도 정당 민주주의를 교란하는 엄중한 사안인 만큼 사실관계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의혹은 명명백백히 가리고 경선은 미래를 놓고 경쟁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설]日 '적극재정' 추진하자 '엔' 폭락…나랏빚이 이렇게 무섭다
일본 엔화 가치가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중동 전쟁 재확산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 미국보다 2.75%포인트 낮은 기준금리의 영향 등이 누적된 결과다. 하지만 이번 주 들어 나타난 엔화 가치 급락에는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랏빚을 늘려서라도 재정 지출을 확대하겠다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의 '적극재정' 방침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4일 달러 당 엔화 환율은 163.9엔까지 상승(엔화 가치는 하락)했다. 대미 무역흑자 축소를 압박한 미국의 요구로 일본이 엔화 가치를 급하게 끌어올리던 1986년 연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해 초 156엔에서 출발한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초 160엔을 넘어선 데 이어 이번 주 들어서는 163엔대에 진입했다. 일본은행(BOJ)과 정부가 환율 방어에 나서 한 달 간 무려 12조 엔을 쏟아부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21일 각의에서 확정된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 방침(일명 호네부토·骨太, 굵은 뼈대)'이 엔화 약세에 가속도를 붙였다. 일본 정부는 올해 통과시킨 방침에서 '책임 있는 적극재정'을 강조하는 한편, 25년간 사용되던 '재정 건전화' 표현을 '재정의 지속 가능성'으로 완화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엔화 가치는 급락하는 '호네부토 쇼크'가 발생했다. 선진국 중 빚이 가장 많은 나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00%가 넘는 일본이 '빚을 더 내 돈을 풀겠다'고 나선 데 대해 시장이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로 인해 줄곧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엔화와 원화의 '디커플링'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SK하이닉스 주식예탁증서(ADR)의 미 나스닥 상장으로 인해 한국에 달러가 유입되는 효과까지 겹치면서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1년 8개월 만에 900원 선 아래로 떨어졌다. 반도체 초호황 으로 세수가 급증하고 있는 한국은 일본과 달리 올해 추가로 나랏빚을 낼 필요가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국은 정부부채 비율이 51% 정도로 일본에 비해 재정 여력이 있는 편인데도, 올해 들어 원화는 엔화와 함께 주요 통화 중에서 유난히 약세를 보여 왔다. 게다가 한국에는 '선진국 중 나랏빚 증가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다닌다. 언제 꺾일지 예측하기 힘든 반도체 호황만 믿고 정부 지출을 늘린다면 우리도 언제든 원화 가치 급락 등 시장의 역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설]투표율 허위 입력까지…선관위 일탈, 끝은 어디인가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지역 선관위를 연이틀 압수수색했다. 6·3 지방선거 당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직원의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단순한 행정 잘못을 넘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훼손한 법 위반 행위다. 게다가 압수수색 대상이 된 서울·경기권 외에 충청권에서도 추가 조작 정황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직원들은 선거 당일 투표자 수를 잘못 입력하자 이를 감추기 위해 전산상 통계 수치를 임의로 수정했다고 한다. 잘못 기재된 인원을 다른 투표소에 분산 입력해 시간이 지나며 수치가 맞춰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합수본에 따르면 이들은 내부 메신저를 통해 상부 보고나 공식 결재 없이 숫자를 맞추자고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과정에서는 "최종 투표율이 중요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까지 내놨다고 한다. 입력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바로잡는 과정은 정해진 절차를 따르고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한심하고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지위를 방패 삼아 온 선관위의 무능과 부실, 일탈과 기만적 행위는 이제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으로 공정성에 상처를 입었고, '소쿠리 투표'와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관리 능력에도 의문을 남겼다. 이번에는 시간대별 투표율 통계까지 임의로 수정이 가능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내부 통제와 전산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다. 유권자의 판단과 정당의 선거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시간 투표율이 자의적으로 수정될 수 있었다면 선거 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합수본은 관리 책임자의 묵인이나 조직적 관행이 있었는지, 다른 선거에서도 유사 사례가 있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곧바로 부정선거 주장으로 확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은 투표율 통계 수정 의혹이지 후보별 득표수를 조작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근거 없는 음모론은 또 다른 사회적 혼란만 키울 뿐이다. 외부 감시 확대, 감사·보고 체계 강화, 전산 시스템 재설계 등 해체적 수준의 선관위 쇄신을 서둘러야 한다.
[사설]사우디에 '우라늄 농축' 길 터준 美, 한국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다. 미 에너지부는 22일 "양국이 '평화적 핵 협력 협정'과 '양자 핵 안전조치 협정'에 서명했다"며 "높은 수준의 핵 안전, 안보, 핵 비확산 기준을 유지하게 된다"고 밝혔다. 문제는 미국 원자력법 123조에 따른 외국의 '독자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는 '황금 기준'이 이번 협정에선 빠졌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한국·아랍에미리트(UAE)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등 51개 국가·국제기구와 원자력협정을 맺으면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이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왔다.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협정으로 미국은 사우디에 원전을 건설하고 원전 연료용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이전한다. 기존 국제 원자력 원칙·규범을 포기한 이번 협정은 사우디 원전 건설 사업에 러시아와 중국의 진출을 봉쇄하면서 미국 참여를 보장받는 일종의 '딜'로 보인다. 사우디에 사실상 '우라늄 농축'의 길을 터준 셈이다. 다만 농축과 재처리엔 미국 인력만 접근하도록 제한하는 '블랙박스' 방식으로 사우디 핵 개발 시도를 견제할 제동장치는 남겨뒀다. 사우디의 선례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한국의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협의를 통해 이 권한을 포괄적으로 확보해야 우리 원전산업이 핵연료 주기를 완성하고 핵연료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현재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시설 포화상태로 가동 중단 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원전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지난해 10월 경주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의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처리 절차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지난해 12월 워싱턴 등에서 미국 측과 원자력 잠수함 협력, 농축 및 재처리 등 후속 협의를 진행했다. 지난 1월엔 '한·미 원자력 협력 범정부 협의체(TF)'도 출범했다. 이후 지난달 1차 실무 협상이 이뤄졌지만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보를 위해선 긴밀한 한·미 신뢰와 협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강경화 주미대사가 이례적으로 귀국해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에 참석하는 등 한·미 관계에 이상징후가 엿보이는 것은 우려스런 흐름이다. 관세, 남북관계, 동북아 정세, 쿠팡 문제 등 양국 간 현안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면서 원자력 질서 변화에 따른 양국 협력을 새롭게 도모할 필요가 있다. 중동 원전 진출 경험이 있는 한국과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미국은 사우디 공동진출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상의 파트너다.
[사설]"초고가 주택, 상응하는 부담"… 보유세 인상 과속 없어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가 23일 열렸다. 부동산 전문가와 실수요자, 공인중개사, 부동산 유튜버, 맘카페 운영진 등 14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3시간 넘게 진행됐다. 정부의 내년도 세제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열린 이번 토론회의 최대 관심사는 이른바 '초고가 아파트'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커질 것인지, 세부담을 늘린다면 얼마 이상 가격의 아파트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였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 대통령은 '초고가 주택'과 관련해 "억지로 집값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사회적 부담을 상응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1주택자라도 이른바 초고가의 '똘똘한 한 채'에 대해선 보유세 부담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다만 "보유세를 통상적인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려면 최하 3배는 올려야 한다"면서도 "지금 당장 3배를 올리면 거의 폭동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나"라고 했다. 보유세 실효세율을 높일 방침이지만, 인상의 속도는 조절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보유세를 차등 부과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내놨다. 일반적인 1주택을 기준으로 '적정 기본 보유 부담'을 정한 뒤 호화·초고가 주택, 다주택, 명백한 투기 목적의 비거주 주택에는 가중 요소를 더하고, 실거주 용도나 서민·중산층용 주택, 지방 지역 요인에는 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일정 가격 이상의 고가 아파트에 종부세, 재산세를 더 물리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간 세제개편 구상인데,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규제 완화, 용적률 확대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촉진하겠다는 서울시의 주택공급 계획과 중앙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부딪힐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정비사업과 관련해 "총 가구 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며 공급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토론회 참석자는 "가구 수가 줄더라도 주택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신축 아파트를 공급하는 효과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다른 의견을 내기도 했다. 참석자들의 민원성 의견에도 일일이 대응하느라 핵심 쟁점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지지 못한 게 이날 행사의 한계였다.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매매·전세·월세 '트리플 강세'를 초래한 데 대한 부동산 당국의 반성이 없었다는 점도 아쉽다. 부동산 당국은 '정부 입맛'에 다소 맞지 않더라도 합리적, 건설적인 국민 제안들을 잘 골라내 향후 내놓을 세제 개편안, 주택공급 대책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포퓰리즘 성격의 정책도 경계해야 한다.
[사설]서울시장 '사법리스크' 현실화… 시정 혼란은 없어야
법원이 22일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시장직 상실형인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오 시장이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명태균 씨로부터 비공표 여론조사를 제공받고, 후원자인 사업가 김한정 씨를 통해 비용을 대신 지급하도록 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선출직 공직자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을 잃는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오 시장은 시장직 상실은 물론 차기 대선 출마도 불가능해진다. 5선 서울시장이자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 주자인 오 시장으로서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오 시장은 '정치 브로커' 명씨에게서 총 10차례(비공표용 7회 포함)에 걸쳐 여론조사 결과를 받고 비용 3300만원을 김씨에게 대신 내게 한 혐의로 작년 12월 기소됐다. 오 시장은 2021년 2월쯤 명씨와의 관계가 이미 단절된 상태였고, 김씨가 오 시장 모르게 자발적으로 명씨에게 여론조사비 일부를 지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할 동기가 있었고, 김씨가 오 시장의 요청 없이 비용을 대신 지급할 이유가 없었다고 봤다. 특검이 문제 삼은 10차례의 여론조사 가운데 5차례, 2100만 원 상당의 비용 대납이 인정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오 시장은 "천하의 거짓말쟁이 명태균의 진술과 간접 증거만으로 선고됐다"며 "항소심에서 다툴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1심 판단인 만큼 최종 결론은 상급심에서 가려질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재판부가 지적했듯 선거 비용 보전 제한을 피하고자 비공표 여론조사를 활용하고, 추후 제3자나 뒷돈으로 비용을 정산하는 관행이 사실이라면 이는 공정한 선거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다. 선거철마다 여론조사를 둘러싼 편법과 정치 브로커의 개입이 반복된다면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은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오 시장 개인에게도 이번 판결의 정치적 후폭풍은 적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지만, 시장직 상실 가능성이라는 '사법 리스크'를 안고 시정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도 피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수도 행정을 책임지는 지방자치단체다. 주요 정책과 현안이 재판 문제로 흔들려서는 시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오 시장은 항소심에서 충분히 법적 주장을 펼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법정 공방과 시정 운영은 별개의 문제다. 사법 절차는 법원에 맡기되, 서울시 행정만큼은 한 치의 공백도 없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이번 판결을 정치적 유불리로만 해석할 게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각종 불법 편법 관행 실태를 면밀히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설]구속영장도 법치의 원칙 안에서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마련된 지방선거 개표소에서 체육단체 직원들의 출입을 막은 30대 여성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동부지법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A씨는 지난달 16일 개표소 봉쇄에 나선 시위대와 체육단체가 내부 진입에 합의한 뒤에도, 혼자서 2시간 동안 문 손잡이를 붙잡고 버텼다. 그 여파로 업무에 필요한 물품을 반출하려던 체육단체의 시도 역시 무산됐다. A씨 행위에 대해 수사기관은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신병 확보가 없어도 수사를 계속하고 재판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속 영장은 기각됐지만 A씨의 행위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이 대목에서 A씨의 범죄 혐의와는 별개로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정치적·이념적 논란이 아니라 인신 구속이라는 '제도의 영역'에서다. 그게 누구든, 국가가 개인의 신체 자유를 제한하는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은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는 이유만으로 구속할 수 없도록 엄격한 요건을 두고 있다.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야 한다. 나아가 범죄의 중대성이나 재범 위험성, 피해자 위해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구속은 처벌이 아니라 재판과 수사를 위한 예외적 강제처분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구속영장이 마치 유죄 판결의 예고편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꼭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일수록 "구속은 곧 사회정의 실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수사기관 역시 구속 여부를 수사의 성패처럼 여기곤 한다. '영장부터 청구하고 보자'는 식의 관행이 반복돼 왔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과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사건 당시 검찰과 법원의 신경전도 이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검찰은 유모 대표에 대해 주가조작 혐의로 네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도주 우려 등이 없다며 모두 기각했다. 그렇다고 사법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 및 재판이 진행됐고, 대법원은 결국 유죄를 확정했다. 구속 여부와 유무죄는 별개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조건부 구속·석방 제도가 담긴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되 전자팔찌 부착 등 일정한 조건 아래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법원이 "형사사법의 중심이 영장 단계에 집중되고 정작 재판은 관심에서 멀어지는 비정상적 상황"이라고 지적한 것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구속 여부가 아니라 충실한 수사와 공정한 재판이 형사사법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A씨의 행위는 법과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판단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적 책임을 묻는 일과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구분돼야 한다. 국가가 개인의 신체와 자유를 제한할 때도 끝까지 원칙과 절차를 지키는 것, 바로 그것이 법치주의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길이다.
[사설]국회 50여일만 정상화…이젠 민생 협치에 진력하길
국회가 50여일 만에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됐다. 국민의힘이 21일 의원총회를 열어 여야가 합의한 선거관리위원회 특검 추천 절차를 추인하고 국회 원 구성에 복귀하기로 한것이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인 상임위원장 선출에 반발해 국회 일정을 보이콧한 지 3주일 만이다. 국민의힘은 "법사위를 일방적으로 가져간 민주당의 행태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시급한 현안을 외면할 수 없어 복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국회가 정상 가동의 첫걸음을 떼게 된 것은 다행이다.여야는 원 구성 협상 초반부터 법제사법위원장을 서로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며 대립했다. 결국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법사위를 비롯한 11개 상임위원회·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단독 선출했고, 국민의힘은 상임위 전면 불참으로 맞섰다. 이후 민주당은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와 특위를 단독 가동했고, 국민의힘은 장외에서 비판만 이어갔다. 3주 가까이 이어진 여야 대치는 선관위 특검법 합의로 물꼬를 트게 됐다. 양당은 특검 추천 방식을 놓고 이견을 보여왔으나 여야 합의로 추천하되 야당이 반대할 경우 여당이 특검을 일방적으로 추천할 수 없도록 하는 절충점을 찾은 것이다.국회는 일단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됐지만, 향후 원활하게 운영될지는 미지수다. 양당은 앞서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해병) 이후 남은 의혹을 수사하는 2차 종합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 등을 담은 특검법안을 놓고도 대치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맞섰지만 민주당은 조국혁신당 등의 협조를 받아 이날 본회의에서 특검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이 과정에서 무기력하게 물러섰고 선관위 특검 합의를 명분으로 국회에 복귀한 셈이다. 또다시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 독주와 이에 맞선 보이콧 정치가 반복된다면 협치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그동안 국회 파행으로 상임위를 통과한 민생 법안 59건의 처리가 지연됐다. 그 사이 중동 정세는 다시 불안해졌으며 민생 경제의 어려움도 깊어지고 있다. 국회가 정쟁에 발이 묶여 있을 여유가 없다. 민주당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의회 운영에서 벗어나 야당과의 협의와 타협을 복원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국회 복귀를 계기로 책임 있는 대안 야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번 국회 정상화가 실질적인 민생 협치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설]부동산 토론회, "정해진 답은 없다"는 열린 자세로 임해야
23일 대통령 주재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앞두고 의견수렴을 위해 개설된 홈페이지에 3000건이 훌쩍 넘는 국민 제안이 올라왔다. 대출길이 막혀 신혼집 잔금을 못 치르게 됐다는 청년의 하소연, 높은 보유세를 감당하기 힘겹다는 고령 은퇴자의 호소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이번 토론회는 그 자체가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난관에 부딪쳤다는 반증이다.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부동산 정책을 '2배속'으로 추진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1년여 만에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들을 잇달아 내놨다. 그런데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 상승세는 여전하고, 전세·월세 가격까지 급등해 서민·중산층의 주거 사정이 팍팍해지고 있다.작년 정부 출범 직후 나온 '6·27 대책'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고, 다주택자 대출을 전면 금지했지만 '똘똘한 한 채' 쏠림을 차단하지 못했다. 수도권에 2030년까지 135만 채 주택을 공급한다는 '9·7 대책'도 성과가 아직 불확실하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3중 규제지역'으로 묶고, 주담대 한도를 집값에 따라 2억∼6억 원으로 줄인 '10·15 대책'은 규제지역 안에선 '거래 절벽'을, 인접 지역에는 '풍선 효과'를 초래했다.올해 1월부터는 이 대통령이 직접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비거주 1주택자 세금 차등부과 등의 메시지를 냈다. 그런데도 6월 이후 부동산 시장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정답을 모두 알고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면서 청와대가 국민과 전문가를 초청해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토론회 홈페이지에는 금융당국의 대출 총량규제를 받는 은행들이 주담대 한도를 줄이거나 대출을 중단해 내 집 마련 꿈을 접게 됐다는 사연이 적지 않다. "집값이 오른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징벌적 과세로 실거주하는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고령 은퇴자의 글도 있었다. 합쳐서 6억 원이 안 되는 빌라 두 채를 보유했다고 다주택자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받아야 하느냐는 불만도 제기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미 나온 의견들뿐 아니라 현장에서 제기될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정책 방향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열린 자세로 토론회에 임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주문한 "속도감 있는 공급 대책, 현실에 부합하는 실수요자 지원 대책"도 그런 맥락에서 구체화돼야 한다. 민간 재건축·재개발을 배제한 공공 주도의 주택공급, 거래세 조정이 없는 보유세의 강화, 초고가 주택과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 등을 '정답'으로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자리가 돼선 곤란하다.
[사설]4만弗 문턱에 선 韓…분배 유혹 넘어 5만弗 도약으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 진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1500원대 고공행진을 최근 멈춘 원-달러 환율만 뒷받침해준다면 연내에 4만 달러 달성도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고속 질주하는데, 그 외 산업은 추진력을 잃어가는 'K자형 성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일부 첨단산업 덕에 국민의 평균 소득은 높아지는데, 청년 일자리는 줄고 서민의 삶이 팍팍해진다면 어렵게 맞은 4만 달러 시대의 의미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인당 GDP는 작년보다 7.6% 늘어난 3만9164달러로 4만 달러에 약간 못 미칠 전망이다. 다만 올해 들어 현재까지 1487원인 원-달러 평균 환율이 하반기 중 하락해 연평균 환율이 1456.1원 아래로 떨어지면 올해 사상 처음 4만 달러를 넘길 수 있다.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서비스의 달러 환산 가격이 높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올해 1인당 소득이 4만 달러를 넘는다면 2014년 처음 3만 달러를 돌파한 후 12년 만이다.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돌파한 이른바 '4050클럽'에 진입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5개국뿐이다. 이중 일본은 몇년 전부터 엔화 약세로 3만 달러대로 내려앉은 상태다. 대만은 TSMC 등 반도체 기업의 약진으로 올해 4만5000달러를 돌파하며 한국과 격차를 벌릴 전망이지만 인구 규모는 한국의 절반에 못 미친다.4050클럽 진입은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서 한국의 면모를 확인시켜줄 좋은 계기다. 하지만 그 이면에 걱정도 커지고 있다. 한국 제조업 중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30% 수준에서 올해 1분기 51%로 높아졌는데, 전체 고용 중 IT 제조업 종사자 비중은 2.6%뿐이다. 대규모 장치산업인 반도체로는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의미다. 급속한 AI 전환마저 청년층이 선호하는 IT 기업 신규 일자리를 빠르게 위축시키고 있다.우리 경제가 4만 달러 이후를 기약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초호황의 '일시적 과실'을 차세대반도체, 소형모듈원전(SMR), 바이오 등 새 성장동력과 기술혁신에 과감히 재투자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의 보고인 금융·의료 등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호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노조·주주·지역사회가 기업 이익에 대해 분배 요구를 먼저 쏟아내는 게 현실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기업더러 투자하라고 하지만, 성장하는 기업을 도와주는 제도는 많지 않다"고 토로할 정도로 기업 발목을 잡는 규제 문제도 여전하다.이런 상황을 놓고 한국은행은 1960년대 북해 천연가스 발견의 횡재를 맞은 뒤 오히려 인플레이션, 수출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호되게 고생한 네덜란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막대한 이익과 추가 세수가 '한국형 자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 경제에 모처럼 찾아온 미래 투자의 기회를 5만 달러·6만 달러 도약의 발판으로 만들지 못하고 제풀에 주저앉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설]학교만큼은 알고리즘에서 벗어나게…
초중고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동안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제도가 9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앞서 3월부터 '수업 시간'에 한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됐다. 하지만 수업 이외의 시간에 대해선 스마트폰 소지와 사용 등 제한 기준을 학교 자율에 맡기다 보니 정책 효과가 떨어졌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따라 교육부가 2학기부터 전국의 폭력예방 선도학교 200곳을 대상으로 먼저 스마트폰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학생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은 통계로 드러나고 있다. 10~19세 청소년의 과의존 비율은 40%에 달할 정도다. 과의존은 정신 건강은 물론 학습, 대인 관계, 일상적 삶 등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미 수업 방해 정도의 사안을 넘어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일각에선 스마트폰 규제가 학생들의 선택권과 자율권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지만, 과의존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특히 과의존은 학생의 자발적 교정이나 부모, 교사의 훈육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적인 교육 시스템이 개입할 이유가 충분하다. 실제로 숏폼과 소셜 미디어에서 유사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하는 알고리즘은 아이들이 통제하기 어렵다. 현재 10대의 동영상 플랫폼 시청은 하루 3시간을 넘는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 이용률도 70%에 달하며 절반은 매일 접속한다. 이런 습관이 학교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실태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시범 학교 제도가 성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실효성을 담보할 세부 기준과 운영 방안이 중요하다. 앞서 스마트폰 규제에 나선 학교에선 학생들이 여분으로 준비한 이른바 '공폰'을 제출한 뒤 따로 숨겨둔 '몰폰'을 사용하는 꼼수도 나왔다고 한다. 특히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하지 않는 시간에 다른 활동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병행돼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폰 프리(Phone free) 스쿨' 정책을 선언하고 문학, 예술, 스포츠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는데 참고할만하다.이번 교육부 정책은 정부의 '소셜 미디어' 사용 규제와도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14세 미만의 소셜 미디어 가입을 제한하고, 19세까지는 알고리즘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 이용 자체가 제한될 경우, 학생들의 교내 스마트폰 사용도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정책은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아이들을 좀 더 '현실 세계'에 머물도록 하자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학교만큼은 학생들이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학습과 또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번 시범 운영이 그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사설]정쟁의 도구가 된 혐오, 딥페이크 범죄까지 키웠다
얼마 전 한 여성 국회의원을 겨냥한 모욕적 딥페이크 이미지 유포 사건은 우리 사회에 혐오와 조롱이 얼마나 깊숙이 퍼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특히 혐오의 확산에 정치가 얼마나 큰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운 사건이었다. 이는 정치적 풍자로 치부할 수 없는 중대한 디지털 성범죄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인공지능 창작물이 지닌 위험성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동행미디어 시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혐오와 조롱에 짓밟히는 인격권'이라는 주제로 3회에 걸쳐 보도한 '시대 리포트'에서 지적했듯, 이번 사건은 가해 혐의자가 같은 정당 소속 당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전당대회를 앞둔 당권 경쟁 과정에서 동료를 겨냥해 저질스러운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정치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상대 정치인을 비판하고 공격할 수는 있지만, 상대의 인격을 짓밟는 폭력만큼은 결코 정치의 이름으로 용인돼서는 안 된다.민주당이 해당 당원을 즉각 제명했지만, 이는 정당 내부의 징계로 끝날 일이 아니다. 비단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다. 딥페이크 범죄가 급증한 데에는 정치권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상대 진영을 겨냥한 가짜뉴스와 악의적 편집 영상을 묵인하거나 정쟁의 도구로 소비해 왔다. 그 과정에서 혐오를 동원한 정치가 반복됐고, 디지털 범죄의 토양도 함께 커졌다. 딥페이크 기술이 허위정보를 넘어 성범죄물로까지 진화해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까지 정치권 역시 이를 방조하고 증폭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정치의 본령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통합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배재고 응원가' 논란이나 스타벅스 '탱크 데이' 마케팅 논란에서 드러났듯 혐오와 진영 대결을 부추기며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하고 갈등을 심화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인격 살해'나 다름없는 이번 딥페이크 사건 역시 그런 왜곡된 정치 풍토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한다.그동안 정부도 정치권도 디지털 범죄 기술의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실효성 없는 사후 처벌에만 의존해 왔다. 해외 플랫폼의 비협조를 핑계로 국민을 사실상 사각지대에 방치하면서 불법 콘텐츠에 대한 제재는 턱없이 미흡했다. '인격권' 보호를 위한 사전 예방, 실행 가능한 차단·삭제 장치 등 딥페이크 피해 방지 법안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혐오와 조롱을 정치적 동원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정치권의 초당적 자정 선언도 뒤따라야 한다. 정치만 달라져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사설]눈덩이 기초연금, 더 늦기 전에 손봐야
정부가 노인 소득보장 제도인 기초연금의 지원 금액과 지원 대상을 제도 시행 12년 만에 손질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16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현재 수급자 모두에게 월 34만9700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저소득층에 더 많이 주는 하후상박 방식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소득 하위 70%인 수급자 선정 기준도 '기준중위소득'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기준중위소득은 전 가구를 소득수준으로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기초생활보장·의료·주거·교육 급여 등 다양한 복지제도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준이다. 정부는 이를 적용하면 현재보다 수급 대상 증가 속도를 억제하고 지원의 형평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정부가 기초연금 손질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고령화에 따른 수급자 증가와 지급액 인상, 여기에 수급 대상 확대까지 맞물리면서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연금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는 국민연금과 달리 전액 세금으로 지급되는 만큼 지급 규모가 늘어날수록 재정 부담도 고스란히 커질 수밖에 없다.복지부에 따르면 기초연금 수급자는 2014년 435만 명에서 지난해 707만 명으로 늘었다. 2030년에는 914만 명, 2040년에는 1207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급액도 정치권의 경쟁적인 인상 논의 속에 2014년 단독가구 20만 원, 부부가구 32만 원에서 올해 단독 34만9700원, 부부 55만9520원으로 크게 늘었다.이에 따라 2014년 6조9000억 원이던 소요 재정은 올해 27조4000억 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해 단일 복지예산 가운데 가장 큰 규모가 됐다. 국민연금연구원은 기초연금 재정이 2030년 39조7000억 원, 2040년에는 76조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제도 도입 초기부터 상당 기간 '소득 하위 70%' 기준을 유지하다 보니 지금은 소득과 재산 수준이 비교적 높은 노인까지 기초연금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받고 한 달 일해 버는 금액보다 소득이 많은 고령자도 기초연금을 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정부의 기초연금 개편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다만 노인 빈곤 완화라는 제도 도입 취지에는 더욱 충실하면서도 복지 효율성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노인 빈곤율은 2014년 44.4%에서 2024년 35.9%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정된 재원을 도움이 가장 절실한 계층에 보다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복지의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기초연금이 노후 소득보장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교한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사설]합동성 강화, 사관학교 통합 서두른다고 될 일인가
정부와 여당이 16일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한 4년제 국군사관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 대전 자운대에 국군사관학교를 신설해 생도를 통합 선발하고, 1·2학년은 공통교육, 3·4학년은 군을 선택해 군별 전공교육을 받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인공지능(AI) 기반 작전환경에 맞춘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민간 교수 비율도 50%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다. 당정은 국군사관학교 설치법의 신속한 처리와 법령·제도 정비, 2027년 예산 반영 등으로 설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2028년부터 입학생을 받는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당정은 선발 시기와 전형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미래전에 대비한 장교 양성 체계를 혁신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공감할 만하다. 문제는 추진 과정과 내용이다. 국방부는 이달 초만 해도 1·2학년 통합교육, 3·4학년 기존 사관학교 교육, 육사의 전남 장성 이전 등을 담은 이른바 '2+2 방안'을 발표하려다 돌연 연기했다. '2+2 방안'을 놓고도 충분한 숙의 과정이 없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불과 열흘 만에 기존 방안과는 다른 새로운 구상을 내놓았다. 국방교육 백년대계인 사관학교 혁신을 충분한 군사적·기술적·역사적 사전 연구와 검토, 국민적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이처럼 급하게 추진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당정이 지적한대로 AI와 드론, 우주전 등 전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합동성 강화가 절실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육·해·공군을 뛰어넘는 합동성은 미래전에서 첨단기술 숙지와 통찰력, 리더십과 함께 장교의 신속한 상황판단과 지휘 결심을 위한 필수 요소다. 당정이 통합형 지휘관과 '육각형 인재'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합동성 강화가 사관학교 통합으로 해결될 문제인지는 별개로 따져볼 일이다. 과거 군별로 진행되던 영관급 지휘관·참모 교육을 합동 군사교육 체계로 혁신하기 위해 2011년 합동군사대학을 출범시켰다가 9년 만인 2020년 다시 육군대학·해군대학·공군대학으로 환원된 경험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합동성 강화는 우리 군의 국내외 합동훈련 확충, 특히 관련 경험이 축적된 동맹국과의 연합 합동훈련 확대 등을 통해 길러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견도 많다.현실적 여건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해사는 바다와 함정, 공사는 비행장과 항공시설을 교육 기반으로 삼는다. 자운대에서 교육을 받다가 특정 기간에 현장 교육을 실시하면 된다고 하지만 과연 그 정도로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군 안팎의 우려도 적지 않다. 이런 의문에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면 통합 논의는 불필요한 갈등만 키울 수 있다. 사관학교 통합이 대통령 공약이긴 하지만 좀 더 시간을 갖고 반대 논리까지 충분히 수렴해 미래 국방 교육 대계를 정교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일체의 정치적 고려는 배제돼야 한다.
[사설]한은, 긴축 시동… 확장재정과 섬세한 조율이 숙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6일 기준금리를 연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금통위는 "향후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전에 한은이 마지막으로 금리를 올린 건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3년 1월이다. 한국 경제가 3년 6개월 만에 다시 통화량을 조이는 긴축의 시대를 맞았다. 금통위는 "성장세가 수출과 투자 중심으로 강화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보이고,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도 지속되고 있다"고 금리인상 이유를 밝혔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외국인 주식매도에 따른 고환율, 이들의 영향을 받은 3%대 고물가와 과중한 가계대출 등을 반영해 결정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으로 많은 돈이 시중에 풀릴 거란 점도 고려됐다.하반기 중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은도 더는 인상을 미루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미국의 금리는 3.5∼3.75%로 이날 인상한 한국보다 여전히 1%포인트 높다. 미국과 금리차가 클수록 원화 가치는 약화돼 1500원 안팎을 오가고 있는 원-달러 환율은 더 큰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은 이미 고물가, 고환율에 대응해 지난달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을 시작했다. 문제는 향후 이어질 금리 인상이 대출받아 집을 산 중산층, 빚을 내 주식을 산 투자자들에게 곧바로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0.5%포인트 오를 경우 대출받은 사람 한 명 당 연간 이자부담이 59만 원 늘어난다. 마이너스 통장, 신용대출을 이용해 주식에 '영끌'한 투자자들도 이자의 압박을 받게 된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3.7% 오르는 상황에서 이자까지 높아지면 여러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견디기 더욱 어려워진다. 한은은 긴축에 시동을 걸었지만 정부는 확장 재정을 강조하는 상황인 만큼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상충도 걱정거리다. 정부는 반도체 특수로 늘어난 세수를 활용한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을 내비치는 한편, 내년에는 '800조 원+α' 슈퍼예산을 짜겠다고 한다. 한쪽에선 고통을 감내하며 돈줄을 조이는데, 다른 쪽은 씀씀이를 늘리는 바람에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물가와 환율이 다시 들썩이는 일이 없도록 정책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사설]위험 수위 넘는 與 당권 경쟁…아직 한달이나 남았는데
더불어민주당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당권 경쟁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후보 등록이 16,17일 양일간 진행되는 가운데 이미 유력 주자들 간의 아슬아슬한 전면전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이번 당권 경쟁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하는 정청래 의원에 맞서 친명(친이재명)계의 지원을 받는 김민석·송영길 의원이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구도다. 그러나 같은 당 동지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마저 무너진 채 상호 비방이 난무하고 있다.친명·친청(친정청래) 진영간 거친 설전은 이미 도를 넘었다. 송영길 의원은 14일 이 대통령과 정 의원의 갈등을 뜻하는 이른바 '명청대전'을 비판하면서 "옛날 같으면 역적으로 목을 잘라 진압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 의원은 "전당대회 출마가 목숨까지 위태로운 일인가"라며 "섬뜩하고 무섭다"고 반발했다. 상대를 숙청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집권당 전당대회에서 이런 표현이 공개적으로 오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상대를 향한 흠집 내기와 조롱도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난 1일 오찬을 계기로 과열 양상이 진정되는 듯했지만 잠시뿐이었다. 김 의원과 정 의원은 서로를 향해 '자기 정치'를 한다고 비난했고, 친청계 이성윤 최고위원은 김 의원이 12·3 비상계엄 당시 감기약을 먹고 자느라 국회 계엄 해제 표결에 늦었다는 논란을 거론하며 "감기약 성분을 밝히라"고 공격했다. 앞서 '적통' 논쟁이 벌어졌고, 상대의 과거 행적을 '파묘'하듯 들춰내는 일도 반복됐다. 오랜 정치 경험을 가진 중진들조차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목숨 걸고 싸우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개탄할 정도다.선호투표제 도입을 놓고도 열흘 가까이 다투다 14일 뒤늦게 당규에 명문화하는 등 겨우 봉합되긴 했지만 친청계 최고위원이 사퇴하는 등 후폭풍은 여전하다. 더욱이 이번 전당대회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비중이 같은 '1인 1표제'가 처음 도입되면서 후보들이 국민은 안중에 없고 강성 권리당원의 눈치만 살핀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주거 불안, 양극화, 청년 실업, 고물가·고환율 등 당면한 민생 과제들에 대한 정책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도 안됐는데 이 정도이니 앞으로 한달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려스럽다. 집권당의 전당대회가 막말과 비방, 계파 갈등으로 얼룩진다면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나. 이제라도 소모적인 비방전을 중단하고, 집권당다운 책임감과 품격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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