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정책실장 공백에 비서실장 사의…혼돈의 靑, 쇄신 시험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21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연이은 인사 논란과 국정 지지율 하락에 대해 종합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까지 물러나면서 청와대 인사 검증을 향한 국민적 불신이 커진 상황이다. 다만 이 대통령은 사표 수리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밝혔다. 중요한 건 사의를 수용하든 유임을 결정하든, 이번 일이 일회성 분위기 전환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인사·국정 시스템을 근본부터 손보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최근 인사 문제는 몇몇 후보자의 개인적 흠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김 후보자를 둘러싸고 신약 승인 청탁 의혹과 성비위·음주운전 등 각종 의혹이 뒤늦게 불거진 과정은 검증 절차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을 남긴다. 용 후보자의 의원직 겸직 논란 역시 국민 눈높이와 거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공직 후보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 법적 위험, 이해충돌 가능성, 업무 적합성은 인사청문회장에서 비로소 걸러낼 사안이 아니다. 사전 검증에서 확인했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은 언제나 옳다"며 인사시스템 재점검을 약속했고, 이날도 더 낮은 자세로 국정을 다듬겠다고 했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강 실장의 사의는 그 약속에 부응해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거취만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추천과 검증을 사실상 같은 라인이 주도하는 구조부터 점검해야 한다. 추천권자는 후보자의 장점과 필요성을 제시하되, 별도의 검증 라인은 결격 사유와 위험 요인을 독립적으로 가려내야 한다.검증 방식도 더 촘촘해져야 한다. 후보자 본인의 진술과 제출 서류에 의존하지 말고 재산·병역·세금·전관·이해충돌은 물론 과거 직장 및 보좌진 관계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까지 교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검증 누락이 반복될 때에는 누가 어느 단계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점검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에도 후보자의 장점뿐 아니라 위험 요인과 보완 필요성이 빠짐없이 담겨야 한다.인재풀도 넓혀야 한다. 특정 정치적 인연이나 익숙한 참모·측근 그룹에 의존하는 인사는 검증의 시야를 좁히고 국민의 의심을 키운다. 진영을 넘어 전문성과 공적 책임감을 갖춘 인재를 폭넓게 찾고, 충분한 검증을 거쳐 등용해야 한다. 참신한 인재 발굴과 엄정한 검증은 서로 대립하는 과제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인사의 두 축이다.대통령 비서실장은 최고 권력자의 심기만 살피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각종 정보와 인사의 관문 역할을 하는 이른바 '게이트키퍼'다.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고 일정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심의 경고와 내부의 위험 신호를 대통령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판단에 다른 의견을 낼 용기, 측근의 이해와 정치적 편향을 걸러낼 독립성도 필수다. 대통령 곁의 참모일수록 충성보다 직언이, 낙관보다 경계가 필요하다.강 실장의 사표가 수리되면 청와대는 김용범 전 정책실장까지 포함해 3실장 중 2자리를 비워두게 된다. 연이은 인사 논란이 청와대 핵심 참모진의 공백으로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해결할 현안도 쌓인 상황에서 정책을 조율하고 대통령을 보좌할 축마저 오래 흔들려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인사 검증을 쇄신하되, 후임을 신속히 찾아 업무 공백도 최소화해야 한다.
[사설]형사사법 수장 4곳 공석…'비상플랜'이라도 속히
형사사법체계의 대전환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핵심 기관들의 수장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아 우려가 크다. 오는 10월 2일부터 검찰청이 폐지되고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다. 중수청은 7대 범죄 수사를 맡고, 공소청은 기소를 담당한다. 통상적인 수사는 경찰이 전담한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법무부 장관, 공소청장, 중대범죄수사청장, 경찰청장이 동시에 공석인 상태에서 새 제도를 시행할 수도 있다. 제도 시행 후에는 기관마다 역할과 업무 범위가 크게 달라지는 만큼 사건 이관과 인력 재배치가 필수적이고, 수장들 간 원활한 업무 조정도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수뇌부 공백으로 시행 초기부터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법무부는 공소청 직제와 인력 배치를 확정해야 하지만, 김승원 장관 후보자의 사퇴로 인선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음 달 초까지 장관을 임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공소청장의 경우 후보추천위원회조차 꾸려지지 않았다. 검찰 출신인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야당의 반발에 따라 대통령 지시로 추가 검증이 진행 중이다. 현재 속도로는 개청 전까지 인선을 끝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게다가 검찰의 사건을 넘겨받을 경찰청장 자리도 21개월째 공석이다.제도 시행을 코앞에 두고 핵심 지휘부가 줄줄이 공석인 상황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 방침을 확정한 것이 1년 전인데도 아직 핵심 인선조차 완료하지 못했다. 부족했던 준비를 지금 만회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보인다. 그렇다고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 우선 중수청과 경찰, 공소청 사이에서 사건 처리가 지연되거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일을 막기 위한 '비상 플랜'부터 마련해야 한다. 또 기관별 직무대행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기관 간 이견이 생겼을 때 신속히 조정할 협의체의 조직과 운영 방식도 구체화해야 한다. 고소인과 피해자 등에게 자신의 사건이 어느 기관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신속하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대통령과의 정치적 친소 관계나 진영의 관점을 떠나 형사사법체계의 안정적 정착에 필요한 전문성과 조직 운영 역량을 인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 풀을 넓혀 검찰과 법원,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후보자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여권도 개혁에 대한 입장이나 과거 행적만으로 인선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개혁에 찬성했느냐가 아니라 당면한 과제를 적절히 수행할 자질과 의지를 갖췄느냐는 점이다. 형사사법체계 개편의 목표는 새 조직의 간판을 다는 데 있지 않다. 지난 1년이 개편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년은 그 성패를 증명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인선의 기준은 역량에 두되,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사설]농촌 현실 못 담은 개정 농지법…투기 문제만은 아니다
최근 논란이 큰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우리 아버지 농사짓다 힘들어서 농사 못 짓는 거 그거 강제로 팔란 말이냐' 이렇게 항의한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농사용으로 허가받아 땅을 사놓고 실제로는 다른 데 쓰는 '부동산 투기'를 가려내는 조치일 뿐 땅을 빌려준 고령농 등을 제재하려는 게 아니란 설명이다. 오해가 퍼진 건 투기꾼들이 자기편을 늘리기 위해 '선동'한 결과라고도 했다.국정 지지율 하락에 대응해 연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농지 문제를 거론한 건 이와 관련한 농촌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8월 말 본격 시행된 '개정 농지법'은 농지처분 규정을 지방자치단체장 '재량'에서 '의무'로 바꿨다. 농사를 안 짓거나, 불법으로 농지를 빌려준 소유자가 1년 안에 땅을 처분하지 않거나, 자경을 하지 않으면 강제처분 명령이 내려진다. 이조차 이행하지 않으면 매년 농지 가액의 25%까지 이행 강제금이 부과된다. 계속 버티다간 4년 만에 땅값 대부분이 이행 강제금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농지법 개정은 이 대통령이 직접 시동을 건 사안이다. 올해 2월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농지가 투기 대상이 됐다. 귀농 비용을 줄이려면 땅값을 떨어뜨려야 한다"며 헌법상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4월 발의된 농지법 개정안은 5월 초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법에 따라 5∼7월 실시된 전국 농지 전수조사에선 27%의 농지에서 불법 임대차 등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와 2차 심층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문제는 한국 농가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층으로,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가구가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힘에 부쳐 농사를 안 짓지만, 땅을 놀리긴 싫어 이웃 주민에게 빌려주는 일이 허다하다. 계약서를 안 쓰고 농작물 일부를 임대료로 받는 경우도 많다. 이미 농촌에서 보편화된 관행이지만 몇몇 법정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거나, 농지은행을 거치지 않은 개인 간 임대차는 현행법상 불법이다.고향 땅을 상속받거나, 은퇴 후 귀농할 생각으로 지방에 땅을 사둔 이들도 적지 않다. 개발이익을 기대해 땅을 산 투기꾼과 구분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근 강제금을 의식해 상속받은 땅 등을 팔려는 이들이 늘었는데, 사려는 사람은 없어 농지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직접 농사짓겠다는 소유주들 때문에 오래 빌려 쓰던 땅을 돌려줘야 하는 임차농들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석 연휴 전 보완대책을 내놓기로 한 이유다.좁은 국토 안에 잘게 쪼개져 있는 농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농지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1970년 인구의 46%였던 농가 인구는 현재 3.8%로 줄었고, 고령화와 이농, 상속으로 농지 소유자와 경작자의 간극은 크게 벌어졌다. 제헌헌법의 '자작농 주의'를 계승해 1987년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 원칙'은 농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기존의 관행을 강력히 제재하는 규정을 넣어 급하게 개정된 농지법에 농민들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책 취지를 오해한 것'이란 설명으로 해결될 수준을 크게 넘어선 만큼 전면적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사설]김승원도 낙마, 협소한 인재풀 넓히는 전기 삼아야
김승원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19일 전격 사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후보자로 지명한지 20일만이다. 이로써 용혜인 성평등가족부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데 이어 2기 개각 인사들 중 두 명이 연속 낙마하게 됐다. 김 후보자는 신약 로비 의혹, 이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를 위한 모임 대표 이력 등으로 야당이 지명 철회를 요구해왔다. 김 후보자는 "어제(18일) 대통령님 기자회견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며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음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제 부족함을 성찰하겠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후보자 한 명의 낙마를 넘어 현 정권의 반복되는 인사 실패라는 구조적 문제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김 후보자 사퇴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장관 후보자 낙마자는 벌써 다섯 명째에 달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부정 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 정책에 이어 인사가 부동의 2위를 차지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거듭되는 인사 참사에 청와대 인사 검증 부실 문제가 집중 부각된다. 이 대통령도 18일 회견에서 "인사 시스템을 재점검해보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이 대통령의 협소한 인재풀이다. 그리고 이와 맞물린 보은인사, 폐쇄적 인사 스타일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다.이 대통령은 검정고시를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리더다. 그래서 폭넓은 인맥 형성이 어려웠다. 사법연수원 동기와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교류한 사람들, 경기도지사 때 함께 일한 소수의 관료 출신이 인적 네트워크의 기반이다. 정치에 늦게 입문해 여의도 인맥도 두텁지 않고, 민주당 대표에 오른 후에야 일군의 '친명' 그룹이 형성됐다. 현재 이 대통령 주변의 권력층이 대부분 이런 유형이다. 그러다 보니 보은성 인사가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출범과 함께 이 대통령 변호를 맡았던 법조인들이 대거 요직에 기용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대통령실과 정부 기관, 국회 등에 진출한 이 대통령 사건 관련 변호인은 모두 14명에 달한다.인사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비선 라인 존재 여부가 주목받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치권에선 정권 출범 때부터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 등 대통령 최측근 개입설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 낙마한 용 ,김 후보자 지명도 누가 추천했는지를 두고 김 실장, 정 전 실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이 모든 인사를 직접 챙긴다는 얘기도 나온다. 성남 인맥을 통해 추천된 인사 당사자를 이 대통령이 꼼꼼히 따져본 뒤 낙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 공식 인사·검증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이자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쓰기 위해서는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해서는 안된다. 여당에 반대한 사람, 선거 기간 상대편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원시한다면 인재풀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특히 후임 법무장관의 경우 이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와 관련해 오해를 살만한 인사는 곤란하며, 형사·사법 체계 개편과 검찰 개혁 마무리 작업 등을 잡음없이 추진할 인물을 찾는게 바람직하다. 여권내 강경파도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원한다면 다른 진영 출신 인사 발탁에 대해 열린 자세로 지나친 공격을 자제해야 한다. 경제수장으로 보수성향의 정통관료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발탁해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용인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약화된 국정 동력을 회복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진영을 벗어나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한다.
[사설]남산 곤돌라 2심도 제동…서울시·국토부 함께 해법 찾아야
서울 남산은 연평균 방문객이 1200만 명에 이르는 시민 휴식 공간이자, 한류 붐을 타고 세계 각국 관광객이 찾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문제는 이런 위상에 걸맞지 않게 정상부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1962년부터 남산 케이블카를 독점 운영해온 한국삭도공업이 48인승 캐빈 2대만 왕복 운항하고 있어 주말과 관광 성수기마다 심한 정체가 빚어진다. 지난해 케이블카 이용객은 170만 명에 그쳤다.교통 약자에게는 접근 자체가 더 큰 장벽이다.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객 등이 케이블카를 타려면 가장 가까운 명동역을 기준으로 7개 교차로를 지나 약 850m를 이동해야 한다. 서울시가 지하철 명동역 인근 예장공원에서 출발하는 곤돌라를 설치해 수송 능력과 접근성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한 이유다. 계획대로라면 10인승 캐빈 25대가 순환 운행해 시간당 2000명 이상을 실어 나를 수 있다고 한다. 시민과 관광객의 이동 편의를 높이고 교통 약자의 접근권을 개선한다는 사업의 공익적 취지는 충분하다.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불거졌다. 서울시가 곤돌라 설치를 위해 남산의 '도시자연공원구역'을 '도시계획시설공원'으로 변경하자 케이블카 운영사 측이 2024년 9월 도시관리계획 결정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그해 10월 서울시의 도시관리계획 결정 효력을 중단했고, 이후 곤돌라 공사는 2년째 중단됐다. 지난해 1심에 이어 17일 서울고법 항소심에서도 서울시가 패소하면서 사업 재개는 더욱 불투명해졌다.공익을 앞세운 서울시로서는 답답할 수 있다. 60여년 독점 기업의 손을 들어준 1,2심 판결이 아쉬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공익적 목적을 가진 사업이라도 법과 절차를 뛰어넘어 추진할 수는 없다. '법적 관문'에서 제동이 걸렸지만 그렇다고 남산 곤돌라 사업을 여기서 접을 일도 아니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곤돌라 사업의 필요성 자체라기보다 이를 위해 도시자연공원구역을 도시계획시설공원으로 변경할 수 있느냐는 법적·행정적 절차에 있었다. 서울시는 대법원 상고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는 한편,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가장 현실적인 방안 가운데 하나가 공원녹지법 시행령을 정비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 도시자연공원구역 내 궤도·방재시설의 높이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이미 입법예고했지만 후속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이 개정이 이뤄지면 이번 소송의 쟁점이 된 용도구역 변경 없이도 곤돌라 사업을 추진할 길이 열릴 수 있다. 서울시가 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 제기에 그칠 게 아니라 중앙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의해 제도적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국토부 역시 서울시가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며 뒷짐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서울시장이 야당 소속이라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중앙정부의 판단에 끼어들 여지도 없어야 한다. 시민과 관광객의 편익, 교통 약자의 이동권이라는 공익 앞에서 여야,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따로 있을 수 없다.서울시와 국토부가 머리를 맞대고 적법한 사업 재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서울시도 중앙정부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만큼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국토부의 합리적인 요구와 역할을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 법원 판결은 존중하되,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행정의 책임이고 정치의 책임이다.
[사설]"국민이 언제나 옳다"…'국정 대전환'은 이제부터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국정 현안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취임 초 60%대를 유지하던 지지율이 30%대로 내려앉고, 부동산·인사 논란에 여권 내부 갈등까지 겹친 시점이다. 이번 회견은 단순히 국정 현안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민심 이반의 이유를 직시하고 국정 운영을 가다듬어야 하는 시험대였다. 이 대통령은 고개를 숙여 사과하며 "국민이 언제나 옳다"고 말했다. 올바른 상황 인식이지만, 회견에 대한 평가는 이후 정책과 인사에서 무엇을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일부 현안에서 분명한 선을 그은 것은 긍정적이다. 이 대통령은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자신에게 연임의 길을 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현직 대통령의 권력 연장 시도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고, 동력이 떨어진 개헌 논의를 다시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임기 단축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날 별다른 추가 언급을 하지 않았다.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해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밝힌 것도 필요한 원칙 천명이다. 중동 정세와 한·미 관계를 고려하면 해상 안전, 교민 보호, 동맹 협력의 요구는 언제든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전쟁의 한복판에 성급히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정부는 국익과 국민 안전, 활동의 목적과 위험, 국회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투명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청해부대의 임무나 활동 범위를 조정하는 경우에도 명확한 경계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그러나 민심의 불신을 온전히 씻어내기에는 한계와 아쉬움도 남겼다. 대통령은 조작기소 특검법안의 공소취소 조항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불필요한 정치 공방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발언이다. 하지만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 임기 중 공소취소를 추진하지 않겠다거나 퇴임 후 재판을 받겠다는 식의 불가역적인 선언으로 논란의 싹을 완전히 잘라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조작기소 의혹에 대한 특검의 진상 규명은 필요하다"고 언급한 대목은 향후 또 다른 정치적 공방과 후속 논란을 낳을 여지를 남겼다.부동산 정책에서도 "투기공화국을 벗어나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세제·대출 정책의 혼선으로 커진 실수요자의 불안에 대한 자성은 충분하지 않았다. 민심을 듣겠다고 하면서 기존 정책 기조만 되풀이한다면 불통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회견 당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37%, 부정 평가는 56%였다. 부정 평가 이유로 부동산과 인사가 가장 많이 꼽혔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그 점에서 김승원 법무장관 후보자의 임명 여부는 대통령의 약속을 가늠할 첫 시험대다. 이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했다. 제기된 의혹과 자질 논란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인사 시스템도 고쳐야 한다. 익숙한 사람이나 좁은 진영에 기대는 인사가 반복되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국정 철학에 공감하면서도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재라면 진영 밖에서도 폭넓게 찾아야 한다. 만기친람 우려도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대통령은 국정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길 시간도 역량도 없고, 부처에 권한을 주되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이 나온 배경에는 국무회의 등에서 세세한 사안까지 직접 지적하거나 즉흥적 의견을 내놓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부처에는 지침으로, 시장에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당장의 성과를 서두르다 정책 혼선과 부처의 책임 회피를 낳아서는 안 된다. 일상 행정은 부처가 책임 있게 처리하도록 맡기고, 사회적 갈등이 큰 난제는 충분한 숙의와 토론, 의견 수렴을 거쳐 정부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대통령은 이날 경제성장의 성과도 강조했다. 경제의 성과는 정부 정책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투자와 기술 혁신, 시장의 활력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불필요한 규제와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부터 걷어내고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과도한 간섭도 경계해야 한다. 아직 집권 2년차다. "국민이 언제나 옳다"면 그 말을 국정 운영의 변화로 입증해야 한다. 민심을 더 겸허히 듣고, 시장을 존중하는 정책과 국민이 납득할 인사, 책임과 권한이 분명한 국정 운영으로 답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회견이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일회성 소통이 아니라 '국정 대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사설]與 김승원 임명 강행 수순…'전략적 선회' 기대 난망인가
여권이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발해 퇴장한 가운데 김 후보자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여당 주도로 채택했다. 지난 15일 인사청문회가 끝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도 이날 강신철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가 야당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여당 주도로 채택됐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일곱 번째 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굳이 이런 강수를 두는 것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한다는 취지가 무색할 만큼 '맹탕'으로 끝났다. 민주당의 반대로 증인과 참고인이 한 명도 채택되지 않은 데다 김 후보자를 둘러싼 신약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과 배우자 관련 의혹 등 핵심 쟁점은 어느 것 하나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청문회가 끝난 뒤에는 김 후보자의 답변이 사실과 다르다는 논란까지 불거졌다. 신약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에 등장하는 제넨셀 설립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정모 판사와의 관계에 대해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2008년 변호사 개업 이후 정 판사가 담당하는 재판부 사건을 수임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당 재판부 사건의 소송대리를 맡았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조차 여러 의혹을 들어 김 후보자를 '부적격'으로 평가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부적합 의견이 적합 의견보다 두 배가량 높게 나타난 것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제기된 의혹을 충분히 검증하고 숙고할 시간을 갖기는커녕 청문회 이틀 만에 보고서 채택을 밀어붙였다. 게다가 여당 간사는 청문회 당시 김 후보자의 "차분하고 단단한 모습이 국민 마음에 와닿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평가하기도 했다.강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본인과 가족의 철거민 특별공급 논란과 아들의 7억 원대 상가 매입 문제 등이 청문회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강 후보자는 특별공급에 대해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보상이라고 반박했지만, 아들의 상가 매입 등에 대해서는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해 송구하다"고 했다. 한국군의 국방력이 '세계 5위권'이라며 전작권 전환을 서두르겠다고 밝혔고, 사관학교 통합에 대해 "보완해야 할 부분이 보인다"면서도 통합 의지를 보였다. 주요 국방 현안에 대해 국방 책임자로서 균형잡힌 시각을 갖추는 대신 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데 치중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안보와 군의 미래가 걸린 사안일수록 정책 방향에 대한 보다 치밀하고 균형 잡힌 검증이 필요하다.그런데도 여당은 두 후보자의 청문보고서를 잇따라 단독 처리했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시점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하락세 속에서 18일 기자회견을 갖는다. 국정 운영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 대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자리다. 그런데 바로 전날 여당이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밀어붙였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아무리 소통과 민심을 강조한들 국민에게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겠는가. 여권은 지금이라도 속도전을 멈추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이번 기자회견이 정면 돌파의 자리가 아니라 민심 흐름을 제대로 읽고 국정 운영의 방향을 바꾸는 '전략적 선회'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
[사설]시장에 떠밀려 금리 올린 美…'빚투 시대' 끝났다는 신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연 3.75∼4.0%로 0.25%포인트 올렸다. 2023년 7월 이후 3년 2개월 만에 완화에서 긴축으로 통화정책 방향을 전면 전환한 것이다. 지난달 3.0%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한국은행도 조만간 금리를 더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을 받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중저가 아파트를 급하게 매입했거나, 주가 상승을 기대하며 '빚투'에 나선 2030 청년들의 이자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미 연준은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만장일치로 금리인상을 결정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맹백한 건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고, 너무 오래 지속 됐다는 점"이라고 인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금리를 낮추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정면으로 거스른 결정이다. 40조 달러를 넘어선 미 정부 부채에 대한 우려로 30년물 국채금리가 19년 만의 최고치인 5.4%까지 치솟자,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보다 시장의 움직임을 중시할 수 밖에 없는 연준이 금리를 높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번 인상으로 0.75%포인트까지 좁혀졌던 한미 금리차는 다시 1.0%로 확대됐다.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한국 내의 달러 자금이 빠져나가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한은의 추가 금리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7%대 후반까지 높아진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머잖아 8%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대출 한도인 6억 원까지 빚을 '영끌'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15억 원 이하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는 청년, 중산층 차주의 빚 부담도 한층 늘어나게 됐다.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진 주가 상승기에 빚을 내 투자했다가 7월 주가 폭락으로 발이 묶인 '빚투' 개미들 사정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코스피가 7,000을 넘어 9,100선까지 높아지는 동안 개인들이 순매수한 주식 규모만 8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6,700선인 코스피가 다시 7,000선을 크게 넘어서야 손해를 줄일 기회가 생긴다는 의미다. 문제는 미 국채를 사두면 연 4∼5%의 이자를 챙길 수 있는 상황에서 변동성이 큰 한국 증시에 외국인, 해외 연기금 등이 단기간 내에 복귀할 가능성이 낮고, 그만큼 주가 추가 상승도 어렵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압력으로도 막지 못한 미 연준의 긴축 전환은 부동산, 주식에 빚을 내 투자해 돈을 버는 시기가 끝나간다는 분명한 신호다. 개인, 기업의 부채 관리가 그만큼 중요해졌다. 이런 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최고가 아파트'를 잡는 대신 중저가 주택의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증시 대책 역시 주가부양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올 수 있는 안정적 시장을 조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 초과세수에 의지해 재정지출을 과도하게 늘리는 건 다시 인플레와의 전쟁에 접어든 글로벌 경제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사설]7년 만의 임신중지약 도입, 입법 공백도 해결해야
한성숙 국무총리가 16일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인공임신중지 약물의 단계적 도입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11일 형법상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7년 만의 정부 조치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당시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을 위해 과도하게 침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같이 결정하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이로써 낙태 처벌 조항은 효력을 잃었지만, 법 개정 시한까지 국회가 후속 입법을 마치지 못했고 그 이후 법적 공백 사태가 이어져 왔다. 그동안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이 비교적 안전한 약을 국내에서 구하지 못해 해외에서 검증되지 않은 제품의 구입을 시도하면서 건강과 안전 문제가 불거지고, 건강보험 적용 미비로 개인 부담이 증가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됐다.이번 정부 조치로 현대약품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한 '먹는 임신중지약' 미프지미소정의 품목 심사와 허가, 그리고 연내 국내 사용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 작용을 막는 성분과 출산 때와 비슷하게 자궁 수축을 일으키는 성분을 차례로 복용해 임신중지와 임신 조직의 체외 배출을 유도하는 약이다. 1988년 프랑스에서 상표명 '미프진'으로 처음 허가받았고, 200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으며 미국·일본·프랑스·영국 등 100여 개 국가에서 사용 중이다.현대약품은 이미 2024년 12월 이 약품의 품목 허가를 신청했지만, 식약처는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임신중지의 방법으로 '인공임신중절수술'만 명시돼 있다는 이유로 심사를 보류해 왔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조기 도입 검토를 주문하고, 법제처가 지난달 "모자보건법 개정 전에도 임신중지 의약품을 품목 허가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린 데 이어 이번에 정부가 도입을 결정하면서 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또 다른 문제는 2019년 헌재의 낙태 처벌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의사만 대상에 포함되고 약사는 제외됐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초기 2년간 임신중지약의 처방은 물론 조제까지 병원에서만 허용한 것은 의약분업 원칙에 어긋난다는 약사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소비자가 임신중지약을 약국에서 살 수 있도록 국회의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임신중지 허용 주수(週數)를 둘러싸고도 '제한 없는 전면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여성계 등과 '배출된 태아가 생존할 수 있는 주수에 중지약을 사용하면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법 집행 기관이 맞선다.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 가치를 둘러싼 헌재·여성계와 일부 종교계 사이의 인식 차도 상당하다. 헌재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이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소통과 숙의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다.이런 논란에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 그리고 복지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2019년 헌재 결정으로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헌법적 기본권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설]메가특구 노동특례…'사회적 대화' 앞서 정부 태도 분명히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메가특구 특별법'에 담을 노동규제 특례를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15일 노동계에 제안했다. 메가특구의 근로시간, 고용방식 관련 쟁점들을 노동계, 기업, 정부가 만나 '원 포인트 대화'로 풀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책임 있게 논의에 임하겠다"고 했고, 민노총은 유보적 태도를 보이며 참여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건 반도체, 피지컬 인공지능(AI),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 프로젝트'가 들어설 메가특구의 성패에 노동규제 특례가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묶인 우리 기업들이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를 밥 먹듯 하는 중국 기업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경제계는 현재 2년인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 파견근로 허용범위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메가특구 내에서라도 노동 규제를 일부 완화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근로조건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노동특례에 반대하고 있다. 주 단위로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한국의 주 52시간제는 선진국 중에서 가장 경직적인 노동제도로 꼽힌다. 미국, 일본은 고소득 관리자, 연구개발(R&D) 인력을 근로시간 상한의 예외로 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한국, 대만에 뒤처진 반도체 산업 등에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8년 전 도입한 '월 45시간 잔업 규제'까지 유연하게 바꾸며 노동 규제를 재정비하는 중이다.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사회적 대화 제안은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이달 초 이재명 대통령도 양대 노총 위원장과 만나 노동규제 완화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52시간제를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삼아온 노동계가 전향적 태도를 보인다면 이번 사회적 대화는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중요한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메가특구법 제정의 골든타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계가 대화에 참여해 놓고도 노동특례 반대 입장을 고수한다면 메가특구 내 주 52시간제 완화를 포함한 노동규제 완화 문제는 블랙홀에 빠지게 된다. 메가특구의 추진은 정부가 노동계와 의무적으로 교섭해야 하는 사안도 아니다. 긍정적 취지와 달리 사회적 대화가 제도개선만 지연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부터 명확한 태도를 정해야 한다.
[사설]맥빠진 김승원 청문회, 이대로 임명수순 밟을 건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15일 열렸다. 청문회는 김 후보자의 배우자와 자녀가 근무한 발달장애인 돌봄 사회적협동조합을 둘러싸고 여야가 고성을 주고받으며 시작됐다. 그러나 정작 본격적인 검증 무대에 이르러서는 다소 맥빠진 청문회가 되고 말았다. 새롭게 드러난 의혹도, 기존 의혹을 명쾌하게 해소할 만한 사실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적극적으로 후보자를 방어했고, 김 후보자 역시 주요 의혹을 부인하거나 원론적인 해명을 내놓았다. 야당인 국민의힘의 추궁도 의혹의 실체에 다가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청문회가 실질적인 검증의 장이 되지 못한 데에는 민주당의 반대로 핵심 증인과 참고인이 한 명도 채택되지 않은 영향이 컸다. 김 후보자를 둘러싸고는 신약 임상시험 관련 청탁 의혹을 비롯해 배우자의 협동조합 특혜 의혹, 제약업체 제넨셀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 아들의 의원실 채용 논란, 변호사 시절 음주운전, 자녀 위장전입 등 여러 문제가 제기돼 왔다. 법무장관 후보자로서 꼼꼼한 사실 확인이 필요한 것들이다.특히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브로커 양모 씨의 요청을 받고 김 후보자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 처리를 서둘러 달라고 청탁한 경위는 명확히 규명될 필요가 있다. 해당 치료제의 동물실험 결과 은폐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93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됐다는 점도 논란을 키웠다. 관련 업체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다수의 소액주주가 피해를 본 만큼 김 후보자가 관여된 의혹은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김 후보자 측은 여당 청문위원들에게 38쪽 분량의 '인사청문 대비 예상 Q&A' 자료를 제공하면서도 야당의 자료 제출 요구에는 방어벽만 쳤다. 김 후보자의 해명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남았다. 제넨셀의 동물실험 자료와 관련한 질의에 김 후보자는 "저는 문과"라며 치료제의 성능을 알 수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물론 국회의원에게 의약품의 전문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해도 민간인의 부탁을 받고 해당 치료제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국가기관에 임상시험 승인을 재촉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자체가 국회의원으로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것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취소 문제에 대한 입장도 명확하지 않았다. 김 후보자는 지명 직후에는 "공소취소를 지휘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국회 서면 답변에서는 "가정적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청문회 답변에선 공소취소 특검법에 대해 "제 의견은 반대"라고 했다. 공소취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후보자가 자신의 원칙과 기준을 보다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불필요한 의심을 해소하는 길이다.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결국 핵심 의혹 상당 부분을 풀지 못한 채 끝났다. 이제 판단의 책임은 18일 기자회견을 앞둔 이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현재 여권 기류로 보면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결론을 정해놓지 말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후보자의 적격성을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어떤 선택을 하든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 역시 대통령이 감당해야 한다.
[사설]중수청장 재검증, '충성도 심사'로 변질돼선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이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으로 지명한 김지용 후보자에 대해 추가 검증을 지시했다. 검찰 출신 인선을 둘러싸고 여권 일각의 반발이 커지자 이례적으로 재검증에 들어간 것이다. 중수청 출범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후보자를 다시 살펴보는 건 잇따른 인사 논란에 대한 대통령의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다만 여권 안팎에서는 실제 후보 교체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많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이해식 의원은 15일 "추천위를 재구성해 새 후보를 제청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우려스러운 대목은 재검증이 정치적 충성도를 확인하는 절차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범여권 강경파는 김 후보자가 대검 형사부장 시절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했던 점,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할 때 반대 성명에 참여한 이력 등을 문제 삼아 사퇴를 압박해 왔다. 그러나 특정 진영의 검찰개혁 노선에 얼마나 충실했는지가 중수청장 자격의 핵심 잣대가 될 수는 없다.중수청장은 부패·경제 등 중대 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자리다. 수사 전문성 못지않게 본질적인 덕목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다. 정권에 불편한 사건도 원칙대로 다루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법과 증거에 따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여권 내 강경한 목소리에 맞추는 식으로 인선이 이뤄진다면, 중수청은 출범 전부터 권력의 눈치를 보는 기관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김 후보자 본인도 국민 앞에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는 2022년 '검수완박' 입법 추진 당시 기자간담회를 열어 사건 처리 지연과 국민 피해를 이유로 검찰 수사권 축소를 비판했다. 그런데 중수청장 후보로 지명된 뒤에는 "수사와 기소 분리라는 대원칙에 적극 공감한다"고 밝혔다.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에 관한 입장이 왜, 어떻게 달라졌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리와 권력의 요구에 따라 소신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할 수 있다.여권 내부 갈등이 탄핵이라는 금기어로까지 번진 상황도 심각하다. 추미애 경기지사가 대통령을 향해 "내란 세력에 업혀 전전긍긍한다"고 비판하자,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을 거론하며 맞섰다. 중수청장 인사 문제 등으로 당내 충돌과 탄핵의 언어가 난무하는 것은 파행적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민생 현안 대신 선명성 논란에 빠진 모습은 국민의 피로감만 키울 뿐이다.이번 재검증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충성 경쟁'의 시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수청이 권력의 하명 수사기관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후보자의 전문성과 소신, 정치적 중립 의지와 독립성을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초대 중수청장 인선의 최소 조건이다.
[사설]심상찮은 민심…대통령의 '진솔한 답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주 기자회견을 열고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과 향후 국정 운영 방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 이후 100여 일 만이다. 이 대통령이 다시 대국민 직접 소통에 나서는 것은 국정 지지율이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주 민심의 대이동이 이뤄지는 추석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회견은 향후 여론의 흐름을 가를 중대 분기점이 될 수 있다.11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후 처음으로 30%대인 38%까지 내려앉았다. 국정 운영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40% 선의 붕괴는 국정 운영 방식을 돌아보라는 민심의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청년층과 중도층,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점을 무겁게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내려가면 국정 장악력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추미애 경기지사가 이 대통령을 겨냥해 "내란 세력에 전전긍긍한다"고 공개 비판한 것부터 심상치 않은 신호다.민심이 싸늘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시장 원리를 거스른 부동산·증시 정책의 잇단 혼선에다 거대 여당이 밀어붙인 검찰 개혁을 둘러싼 피로감이 쌓였다. 특히 야당 시절 형사 사건을 정권 차원에서 무마하려 한다는 의혹을 낳은 '공소 취소 논란'과 대통령 임기 연장을 의도한 것 아니냐는 '연임 개헌' 논란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요인이 됐다. 여기에 2기 개각 후보자들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자질 논란까지 겹치면서 정권의 도덕성과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회의가 커졌다.그런 만큼 이번 기자회견이 형식적인 질의응답에 그쳐서는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국민적 의구심이 집중된 공소 취소와 연임 개헌 문제부터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추진할 뜻이 없다면 "나는 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선을 그어 논란을 끝내야 한다. 이런저런 전제를 단 모호한 수사나 원론적인 답변으로 핵심을 비켜가서는 오히려 불신만 키울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같은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 역시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도 국론 분열의 불씨가 될 수 있다.인사 논란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부적합' 의견이 43%로 '적합' 22%의 두 배에 육박했다. 이 대통령은 15일 예정된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뒤 임명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무증인' 청문회에서 여야 공방만 벌인 뒤 그대로 임명을 강행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그간 제기된 의혹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이 집권 중반기 국정 동력을 되살리는 전환점이 되려면 대통령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현안에 대해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명하고, 판단이 잘못됐거나 부족했던 부분은 겸허히 인정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 국정 책임자의 자세다. 지지율이 바닥을 찍고 반등할지, 더 추락할지는 결국 대통령이 얼마나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지, 또 무엇을 결단하는지에 달려 있다.
[사설]대입 원서접수 '먹통'…민간에 맡겨놓고 팔장 끼고 있었나
대입 수시모집을 위한 원서접수 시스템이 갑자기 멈추면서 최대 1200명 수험생들이 피해를 입었다. 지난 11일 접수 마감을 10분 남기고 대행업체인 유웨이 어플라이 시스템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대학교육협회의는 마감을 1시간 늦췄지만 수험생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교육부와 대교협은 16일까지 구제 신청을 받아 당시 접속 상황, 원서 작성 여부 등의 기록을 토대로 피해 학생을 구제할 방침이다.이번 사안은 일회성 구제 조치로 끝낼 일이 아니다. 대입 전산 시스템은 수십만명의 진학을 좌우하는 중요한 인프라다. 은행 전산망이나 증권거래 시스템처럼 마감을 앞두고 순간적으로 트래픽이 몰릴 수 있다. 이런 입시의 관문을 민간 업체에 맡기고 정부는 대체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행업체와의 계약은 각 대학이 직접 한다지만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황당한 것은 대교협이 지난달 말 접속 폭주에 따른 피해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점이다. 대교협은 원서접수 안내를 하면서 "마감 시점에 사용자 접속이 폭주하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다급하게 원서를 작성하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수험생에 대한 당부와 별개로 우려되는 접속 폭주를 감당할 수 있도록 대안 마련을 병행했어야 했다. 접수 피해와 혼란이 발생한 게 처음도 아니다. 2016년에도 유웨이 시스템에 사용자가 몰려 30분간 서비스가 일부 지연됐다.현재 대입 원서접수는 유웨이와 진학 어플라이가 나눠 맡고 있다. 초기에는 다른 회사들도 있었지만 모두 사라졌다. 접수 시스템의 처리 능력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이번 사태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서비스 품질을 제고하는 데 노력하라고 주문한 뒤 일 년여 만에 발생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5월 유웨이와 진학 어플라이가 대학들과 원서접수 시스템을 계약하기 위해 10년간 100억원 가까운 학교 발전기금과 태블릿PC·복합기 등을 제공했다며, 이를 부당한 고객유인 행위로 보고 시정 명령을 내렸다. 이어 공정위는 업체들이 시스템 보안성, 동시 접속과 장애 처리 능력 등을 놓고 경쟁할 것을 강조했다. 일감을 따내기 위해 대학에 뿌릴 돈이 있다면 시스템 확충과 개선에 먼저 사용하는 게 마땅하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14일 국회의 대정부질문에 나와 "접수 시스템을 교육부나 대교협이 직접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013년 공공 시스템을 구축하려다 민간 업체와의 법적 다툼에서 지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어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지 의문이다. 우선 민간 업체의 시스템 처리 능력과 긴급시 대처 방안 등이 충분한 지 철저한 조사와 상시 관리가 필요하다. 1200명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 이런 구제 조치가 필요 없도록 예방과 대응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수십만 수험생 미래가 걸린 대입 원서접수에 교육 당국이 팔장만 끼고 있어선 안 된다.
[사설]AI 수장들도 경고한 위험…'속도 조절론' 귀 기울여야
글로벌 인공지능(AI) 업체인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12일 최첨단 AI의 개발 속도 제동과 면밀한 감시를 촉구했다. 그러자 경쟁 관계인 오픈AI의 샘 알트만 CEO와 xAI의 일론 머스크 창업자,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CEO 등이 일제히 동조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글로벌 '최첨단 프런티어 AI 모델' 개발 경쟁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고, AI 안전과 윤리 문제가 글로벌 현안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아모데이 대표는 이날 공개한 '우리는 최첨단 기술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AI 모델 개발 과정에 대한 독립적인 평가 제도, 업계 전반에 걸친 규제, 그리고 국제적인 규제를 포함하는 3단계 계획을 제안했다. 최첨단 AI 개발을 이끌어온 수장들의 속도 조절론은 최근 새 모델들이 인간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면서 AI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아모데이의 제안 이틀 전에 나온 'AI 기술 위협정보 보고서'는 무기 개발, 사이버 작전, 감시, 사기 행위 등에 앤트로픽의 '클로드' 모델이 어떻게 악용됐는지를 다뤘다. 앤트로픽은 지난 4월 자사의 미소스 AI 모델이 인간의 지시 없이, 또는 통제를 무시하고 다른 AI를 공격하거나 협력해 공모 체계를 유지한 사실이 발견되자 모델의 공개 사용을 중지했다. 경쟁사인 오픈AI도 인간 수준에 이르는 추론·코딩, 자율적 컴퓨터 조작 능력을 갖췄다는 차세대 AI 모델 아스트라의 개발을 안전을 이유로 일시 중지했다.이런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AI 윤리를 둘러싼 논의의 장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AI 경쟁력 상위권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로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 AI 문제는 주로 기술적 경쟁 차원에서 다뤄졌지만 이젠 인간 중심의 안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협력으로 지평을 넓혀야 한다. AI 알고리즘의 공정성·투명성·책임성, 그리고 프라이버시 보호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때다.우리도 지난 1월부터 시행 중인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있다. 하지만 기술 개발과 산업 진흥을 위한 정부 지원과 규제 최소화에 무게를 두고 있어 사회적 부작용이나 윤리 문제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 11월 유네스코가 채택한 'AI 윤리 권고안'은 벤치마킹 대상이다. 193개국의 지지를 얻은 세계 최초의 AI 윤리 표준으로서 인권과 인간 존엄성 존중, 투명성·공정성과 환경의 지속가능성, 시스템에 대한 인간의 감독 등 핵심적인 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설]용혜인 결국 낙마…김승원은 "볼수록 잘된 인사"인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 2주 만에 자진 사퇴했다. 용 후보자는 13일 국정 운영과 진영 간 연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의 '자진 결단'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김태선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도 "김민석 대표의 자진 사퇴 권유를 용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문턱에도 이르지 못한 장관 후보자의 낙마는 이재명 정부의 인사 검증과 정무적 판단에 심각한 허점이 있음을 다시 드러낸 사태다.지난달 30일 지명된 용 후보자는 비례대표 의원직 겸직 고수 논란에 이어 배우자의 기본소득당 당직 '셀프 임명' 의혹과 당의 사유화 논란 등에 휩싸였다. 그런데도 그는 불과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장관과 국회의원직을 모두 유지하겠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꼼수 위성정당 방식으로 두 번이나 금배지를 달아놓고 자신의 발탁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이후 첫 야당 의원 입각이라는 주장까지 내놔 비판을 자초했다. 결국 여당 수뇌부마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결단을 요구하자 버티지 못하고 물러난 것이다. 이 대통령 지지율이 이틀 전 한국갤럽 조사에서 취임 후 최저인 38%로 떨어진 것도 여권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용 후보자는 사퇴하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을 성찰하기보다 야당과 언론 탓을 했다. 그는 "소수정당의 어려운 형편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행태와 사실 확인은 뒷전으로 미루고 반론권조차 보장하지 않은 일부 언론의 악의적인 왜곡 보도가 끝없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년층을 비롯한 국민 여론이 싸늘해진 까닭은 소수정당의 어려운 형편 때문도, 언론의 왜곡 때문도 아니다. 겉으로는 혁신과 정의를 내세우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특혜와 예외를 허용하려 한 전형적인 '내로남불' 행태 때문이었다. 사퇴의 순간까지 이를 외면한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조차 모른다는 얘기다.용 후보자의 사퇴로 이제 시선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쏠리고 있다. 민주당은 용 후보자를 정리한 만큼 김 후보자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태도다. 김 후보자마저 낙마하면 이재명 정부 2기 개각 전체가 흔들리고 정기국회 주도권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이유가 부실한 검증을 덮거나 부적격 후보자를 감싸야 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청와대와 민주당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으로 2주 동안 국정의 혼란과 소모적 논란을 초래한 데 대해 먼저 자성해야 한다. 어떤 검증 절차를 거쳤기에 예견된 논란조차 걸러내지 못했는지 원인과 책임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 역시 국민 눈높이는 외면한 채 진영 논리로만 방어하려 든다면 민심의 역풍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김민석 대표는 김 후보자를 두고 "볼수록 잘된 인사"라고 했다. 얼마나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인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하고, 권력의 눈이 아닌 국민의 눈으로 후보자를 다시 살펴야 한다.
[사설]'건폭' 다시 기승…노동현장 악습 재발 막아야
지난 정부 때 집중 단속으로 잠잠해졌던 건설현장 노동조합들의 악습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난립한 현장 노조들이 자기 조합원을 채용하라며 태업을 벌이거나, 타워크레인 가동을 중단시키겠다며 웃돈을 요구하는 폐단들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건설현장 노조의 불법행위 가능성을 점검하라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최근 국내 공사 현장에서 노조가 소속 조합원의 채용을 요구하며 진입로를 막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드론을 띄워 잠시 안전모를 벗은 근로자나 분리수거가 안 된 폐기물을 촬영해 당국에 신고하겠다고 건설업체를 압박하는 일도 벌어진다. 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소속업체가 주는 월급 외에 건설업체로부터 수 백 만 원씩 '월례비'를 받는 예전 관행도 다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공사를 발주한 건설회사 최고 경영진 집을 찾아가 시위를 벌이는 방식까지 동원된다고 한다. 이른바 '건폭(建暴)'이 재발한 데에는 심각한 건설경기 위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자재비, 인건비 급등으로 건설비용이 높아지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 등 민간 건설현장이 크게 줄고, 공공부문의 사업 발주도 감소한 상태다. 숫자도, 규모도 축소된 현장에서 난립한 노조들이 소속 조합원의 일감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과격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정부의 친노동 기조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중이다. 지난 정부 때 경찰은 150여 명을 '건폭' 관련 혐의로 구속했다. 하지만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단속은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노조의 불법행위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려면 개별 노조원의 책임을 회사 측이 입증하도록 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된 여파로 노조와 맞서는 걸 포기한 기업들도 많다고 한다.건설현장 노조의 무리한 행태는 공사비 부담을 늘리고, 공기를 연장시킨다. 그로 인한 비용 증가는 결국 분양가 상승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중국·대만·일본·미국과 초읽기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반도체 산업 건설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국가 경쟁력 훼손까지 우려된다. 이 대통령은 최근 이런 논란과 관련해 "저나 노동부 장관이나 노동자 출신이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노동자 편만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재발한 건설현장 노조의 시대착오적 행태는 '누구 편'을 따지기에 앞서 반드시 근절해야 할 사회적 병폐다.
[사설]상처와 차별 딛고 대기록…장훈이 남긴 유산
재일동포 야구의 상징이자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장훈 선생이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인 3085안타와 504홈런, 통산 타율 0.319. 숫자만으로도 그의 성취는 뚜렷하다. 그러나 장훈이라는 이름이 한일 야구계에 남긴 의미는 기록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신체적 어려움과 시대의 편견을 견디며 스스로 길을 개척한 야구인이었다.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모닥불에 화상을 입어 오른손 손가락이 심하게 변형됐다. 손바닥의 기능과 악력도 온전하지 않았다. 오른손잡이였던 그는 왼손 타자로 전향해야 했다. 왼손 타자에게도 오른손은 방망이를 끝까지 밀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수 생활에 큰 제약이 따랐지만 그는 불편한 손으로 연습을 거듭하며 타격을 다듬었다. 그가 남긴 기록에는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기본을 끊임없이 반복한 시간이 쌓여 있다.고인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3년간 일본 프로야구를 누볐다. 타격왕 7회와 출루왕 9회, 최다 안타왕 3회를 차지했고 신인왕과 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됐다. 20시즌 연속 100안타 이상을 기록했으며 9년 연속 3할 타율도 넘겼다. 통산 도루는 319개에 이른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3000안타와 500홈런을 함께 달성한 선수는 지금도 장훈이 유일하다. 정확성과 장타력, 주력을 두루 갖춘 그에게 '안타 제조기'라는 별칭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았다.고인의 야구 인생에는 재일동포가 겪은 차별의 역사도 함께 새겨져 있다. 당시 외국인 선수 제한 규정 탓에 프로 입단을 앞두고 귀화를 권유받았지만, 장훈은 한국 국적을 지켰다. "조국을 팔면서까지 야구할 필요 없다"던 어머니의 뜻을 따른 것이다. 결국 일본야구기구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 선수에게는 외국인 선수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 규정을 만들었다. 장훈의 선택과 실력이 제도를 움직이면서 뒤따르는 재일동포 선수들에게도 길이 열렸다. 고인은 은퇴 후 말년에 이르러서야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그에게 야구는 단순한 직업 이상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상흔과 가난, 신체적 어려움과 차별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세상과 맞서는 방식이었다. "힘들 때일수록 앞을 보라. 도망치면 거기서 끝이다"라는 그의 말이 무게를 갖는 것도 실제로 그런 삶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고인은 일본 야구의 전설이면서 한국 야구의 든든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특별보좌로 활동하며 한국 야구의 태동기에 힘을 보탰다.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것도 조국 야구에 남긴 발자취를 기리는 일이었다.고인의 성취는 그 한 사람의 영광에 머물지 않았다. 차별을 겪던 재일동포에게는 자부심이 됐고 뒤따르는 야구인들에게는 도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자신이 쌓은 경험을 한국 야구의 성장에 보탠 것까지, 그의 삶에는 다음 세대를 위한 몫이 있었다. 전설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기록과 그 기록이 많은 이들에게 건넨 용기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사설]'이진숙·한동훈 OUT' 공방 속에 '김승원 검증' 점점 산으로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의 수첩에 적힌 '이진숙·한동훈 OUT(아웃)'이라는 메모가 언론에 포착된 데 이어, 김 대표가 실제로 이들의 제명과 국회의원 자격 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 대표는 10일 민주당 유튜브 '민주당TV'에 출연해 "두 사람은 헌법과 법률에 대놓고 반하는 일을 하는 분들"이라며 "이 의원은 제명, 최소한 자격 정지를 추진할 것이고 한 의원도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고 했다.국민의힘 이 의원은 5·18민주화운동을 비판하는 토론회를 개최해 '폄훼' 논란을 빚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에 앞장선 무소속 한 의원은 검찰 수사팀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자료를 넘겨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대표의 주장에 한 의원은 "그런 것으로 국민만 보고 가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 의원도 김 대표가 2000년 5·18 전야제 참석 뒤 광주의 '새천년NHK'라는 유흥주점에서 술자리를 가진 사건을 소환하며 "아웃돼야 할 사람은 김민석"이라고 맞섰다.헌법상 현역 의원을 제명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 의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자 김 대표는 국회법을 고쳐 민주당 단독 의결로 두 의원의 자격을 정지시키는 대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최근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의원에 대해 최장 1년간 직무를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전임 정부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 의원이 대외비에 해당할 수 있는 수사 자료까지 동원해 폭로전에 나서는 것이 적절한지는 따져볼 문제다. 자료 취득 과정에 불법이 있었다면 수사를 통해 책임을 물으면 된다. 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제명과 자격 정지를 거론하고, 다수 의석을 앞세워 징계 요건까지 낮추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 의원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5·18민주화운동을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삼는 것도 보기에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다수당의 힘을 앞세워 자격 정지를 추진하는 것 역시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인사청문회는 증인 없이 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오는 15일로 예정된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야당이 신청한 증인 44명의 출석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무증인' 맹탕 청문회를 하겠다는 것이다. 2022년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 야당이던 민주당은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증인으로 불러 세웠다. 야당일 때와 여당일 때의 잣대가 이렇게 달라서야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국회는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가 충돌하고 조정되는 공간이다. 헌법이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도 정권이나 다수당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 있게 의정 활동을 하라는 취지다. 이 의원의 5·18 관련 토론회 개최 논란과 한 의원을 둘러싼 자료 유출 의혹은 정치적 비판과 적법한 절차를 통해 시비를 가리면 될 일이다. 지금 여야의 진흙탕 싸움은 김 후보자의 자질을 철저히 따져야 할 인사청문회의 본질만 흐리고 있다.
[사설]피터팬 아빠가 남긴 숙제…발달장애인 '국가 책임제' 제대로
정부가 가족에게 맡겨져 있던 발달장애인의 돌봄 지원을 강화한다. 보건복지부는 영유아기부터 성인까지 '생애 주기'에 맞춰 발달장애인 활동을 지원하는 '국가 책임제'를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7개 부처와 추진한다고 밝혔다. 최근 중증 자폐 아들을 '피터팬'이라 부르며 27년간 돌봤던 전경철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발달장애인 가족의 현실이 주목받았다. 전씨가 마지막까지 걱정한 것은 홀로 남을 아들의 보살핌 문제였다.지적, 자폐성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은 인지와 의사소통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발달장애인은 현재 26%에 그쳐 전체 장애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동안 필요한 돌봄의 상당 부분을 가족이 맡아왔지만 부담이 크고, 돌봄 공백도 발생해 가족에게만 맡겨두기 어려웠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70%가 성인이다. 복지부가 이번 대책에서 먼저 성인의 낮시간 돌봄을 지원하는 대상을 1만5천명에서 2030년까지 두배로 크게 늘리기로 한 것도 이를 감안했다. 특히 발달장애인이 늘면서 30년에는 34만명이 될 전망이다. 더 늦기 전에 가족 중심의 돌봄을 '사회적 돌봄'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지원 체계를 확대하고 예산도 늘릴 이유가 충분하다. 생애 주기에 맞춘 이번 대책에는 아동의 경우 양육 지원이 가능한 시간을 늘리고, 전문 어린이집도 추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특히 발달장애인들의 보호와 돌봄을 넘어 자립을 모색하겠다는 방안이 담긴 것은 의미가 있다. 부모가 노쇠해 돌보기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현재 시범사업을 본사업으로 전환하고 일자리 등을 연계할 방침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대책을 발표하면서 "발달장애인도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보통의 일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가족이 감당한 돌봄의 무게를 국가와 지역사회가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보통 일상'을 도와주는 것은, 가족 개개인이 자신의 일상을 누리도록 돕는 일이기도 하다. 전경철 작가는 간암 말기 진단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에도 아들의 앞날을 걱정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 머물 곳을 찾아 전국의 시설 1000여곳의 문을 두드렸다.중요한 것은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정 장관은 "예산이 있어도 기관과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지원 대상과 예산만 늘린다고 돌봄 서비스가 저절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발달장애인 돌봄은 장애 특성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필요한 고강도 업무다. 종사자 처우에 대한 지속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전 작가의 얘기가 더 이상 안타까운 사연으로만 남게 해선 안 된다. 어려서도,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의 돌봄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때에도, 발달장애 자녀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바로 국가 책임제가 만들어야 할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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