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24년만 신규 원전, 첫 SMR…'탈원전' 교훈 잊지 말아야
신규 대형 원자력발전소 건설 후보지로 경북 영덕군이, 국내 첫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건설 후보지로 부산 기장군이 각각 선정됐다고 한국수력원자력이 밝혔다. 지난해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영덕에는 2037~2038년까지 1.4GW(기가와트)급 대형 원전 2기가, 기장에는 2035년까지 0.7GW(700MW)급 SMR 1기가 들어설 예정이다.국내에서 신규 원전 부지가 선정된 것은 2002년 신한울 원전 이후 24년 만이다. 2011년 강원 삼척 대진 원전과 경북 영덕 천지 원전 부지가 선정됐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계획이 백지화된 바 있다. 그만큼 이번 부지 선정은 한국 원전 산업 재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나아가 신규 대형 원전과 SMR 건설은 한국 경제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목적 포석으로 평가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 첨단 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무탄소 전원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동시에 글로벌 차세대 원전 시장 진출을 위한 경쟁력 강화의 성격도 있다. 특히 대형 원전보다 건설 기간이 짧고 출력 조절이 용이해 미래형 전력원으로 평가되는 SMR의 국내 첫 건설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SMR은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 등 전력 수요지 인근에 맞춤형으로 건설해 송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제 시작이지만 글로벌 시장 진출에 필수적인 '실적'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두산에너빌리티와 SK㈜·SK이노베이션 등 한국 업체들이 미국·영국·캐나다 등과 협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눈여겨볼 것은 중국의 속도다. 중국은 하이난(海南)성 창장(昌江)에 건설한 125MW급 SMR인 ACP100(링룽-1)의 시운전을 마치고 세계 최초 상업 운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이 탈원전 정책으로 대형 원전과 SMR 개발을 사실상 중단한 사이 중국은 차세대 원전 시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것이다. 정부와 원자력 업계는 이번 신규 원전과 첫 SMR 부지 선정을 설계·건설·운용에 이르는 원전 기술 생태계 복원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원전 산업을 다시 궤도에 올려 AI 시대 전기 수요 폭증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그간 중동산 화석연료에 치중했던 '에너지 믹스(에너지원의 구성 비율)'를 개선하는 발판으로 활용할 때다. 이를 위해선 경쟁력 있는 원자력 분야를 반도체·AI 등과 함께 미래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일관된 의지가 절실하다.
[사설]외유성 출장에 부부 동반…선관위 신뢰 추락 어디까지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재임 중 세 차례 해외 출장에 배우자를 동반하고, 관련 비용을 선관위 예산으로 집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 의전서열 5위에 해당하는 선관위원장의 지위를 감안하더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위원장은 2024년 7박 9일간 독일과 에스토니아를 방문하면서 부인을 대동했고 수천만의 선관위 예산을 썼다고 한다. 출장 명분은 해외 선거관리 기관과의 협력 방안 논의였다. 지난해 국제 네트워크를 증진한다는 목적으로 덴마크·스웨덴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부부 동반으로 갔고, 한 석에 1200만원이 넘는 비즈니스석도 이용한 걸로 나타났다. 2022년 호주와 뉴질랜드를 찾았을 때도 배우자가 함께했다고 한다. 공무원 여비 규정은 공무 수행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배우자에게도 여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배우자가 어떤 공적 역할을 수행했는지, 공식 초청이나 의전상 필요성이 있었는지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위원장의 지위와 역할에 상응하는 '예우'를 고려해 배우자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례'를 따른 것이고, 향후 국민 눈높이에 맞게 예산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전에도 위원장 출장에 배우자가 동반했는지, 비용이 근거에 맞게 제대로 지급됐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 검증이 필요하다. 더욱 의아스러운 대목은 선관위가 외부에 공개한 자료에는 배우자 동반 사실이 기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 내부 문건에는 '부부 동반'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단순 누락이 아니라면, 선관위 스스로도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이번 논란은 출장비 수천만 원의 적정성만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예외적 지위를 방패 삼아 조직 내부의 특권 의식과 폐쇄적 문화가 누적돼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얼마 전에는 선관위 직원들이 몰디브와 코타키나발루 같은 휴양지로 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부실 논란을 자초했는데도 직원들에게 예정대로 특별 수고비를 지급한다는 발상도 이해하기 어렵다. 선관위 개혁은 투표 업무와 관련한 규정 몇 개를 손질하는게 전부가 아니다. 조직 전체가 청렴성을 회복하고, 업무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이 수반돼야 한다. 선관위는 일반 행정기관과 다르다. 그 어떤 기관보다 국민의 신뢰를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에게 믿지 못할 집단으로 낙인찍히면, 선거가 의심받고, 결국 민주주의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설]3000억弗 이란 재건 기금, 동맹에 떠넘길 일 아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핵 문제를 포함한 종전 합의의 대가로 이란 재건을 지원하기 위한 3000억달러(약 450조원) 규모의 투자기금 조성을 검토 중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미국 고위 관계자는 FT에 "유럽은 물론 한국·일본 등 아시아와 미국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이라면 미국이 동맹국 기업들의 참여를 전제로 이란 재건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민주당이 퍼뜨린 가짜뉴스"라고 반박했지만, J D 벤스 부통령은 다른 인터뷰에서 "이란이 (합의) 의무를 이행할 경우에만 기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재건기금을 이란의 핵 프로그램 폐기와 합의 이행을 유도하는 당근책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미국은 이란의 합의 이행 정도에 따라 석유 금수 등 제재 완화와 투자 허용을 단계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문제는 그 부담을 누가 질 것이냐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를 비판하며 현금성 보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지만 이란은 종전 협상 과정에서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요구해 왔다. 만약 미국이 자신들은 직접 비용을 부담하지 않은 채 동맹국 기업과 민간 자본을 동원해 재건기금을 조성하려 한다면 적지 않은 논란이 불가피하다. 동맹과 상의도 없이 전쟁을 일으켜놓고 이제와서 그 뒷수습 부담을 동맹에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 재건기금이 필요하다면 우선 이란에 대한 석유 수출 통제를 완화하거나 동결된 이란 자금을 풀어주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수순일 것이다. 그동안 이란 정부는 전 세계에 동결된 자국 자산이 1000억달러에 이른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여기엔 한국에 묶여 있다가 2023년 카타르 중앙은행으로 이전됐던 이란의 석유 판매 대금 60억달러도 포함된다. 또다른 문제는 기금 조성 방식이나 실체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30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임에도 성격이나 용도, 관리·배분 주체와 방식 등에 대한 정보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우리로서는 서둘러 판단할 이유가 없다. 오는 19일 예정된 종전 양해각서 서명 이후 진행될 후속 협상을 지켜보며 최종 합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 기업의 참여 여부도 중동 정세와 경제성 위험성 등을 따져 주체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재건기금 참여 문제를 관세나 무역 협상과 연계해 동맹국을 압박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 식의 비상식적 '동맹 팔 비틀기'에는 일본과 유럽 등 다른 동맹국들과 공조해 원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사설]반도체 성과급, 주식 수익…부동산 쏠림 우려된다
경기도 동탄이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불씨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의 아파트 가격은 최근 1주일 만에 2% 가까이 급등했다. 전국 최고 상승률로, 서울 평균 상승률(0.27%)을 크게 웃돈다. 전용면적 84㎡인 한 아파트는 최근 22억원을 넘겨 거래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넉 달 전보다 3억원 이상 오른 가격이다.현지 중개업소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직원들의 발길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반도체 호황이 동탄 집값 상승의 촉매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 분위기도 하루가 다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가계약서를 썼다가 가격이 오르자 집주인이 위약금을 물고 더 높은 가격에 다시 매물을 내놓는 사례까지 나온다고 한다.반도체 호황에 따른 부동산 시장 자극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수억원대 성과급과 5억원 규모의 저리 주택자금 대출 등이 직원들의 아파트 매수 심리를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았다. 거액 성과급 지급이 예상된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동탄은 여전히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투자 목적의 수요까지 가세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문제는 동탄의 불씨가 다른 지역으로 번질 가능성이다. 조짐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미 용인 기흥과 수원 영통 등 반도체 종사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이른바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 지역에서도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남부 집값이 들썩이면 서울은 물론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특히 반도체 성과급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급등한 주식시장의 '차익 실현' 자금이 부동산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올들어 4월까지 증시에서 경기도 부동산으로 유입된 자금은 9659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규모의 72%에 달했다. 서울 역시 같은 기간 2조4396억원이 유입돼 지난해의 62%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주택산업연구원은 서울의 주택사업자들이 증시 수익금의 부동산 유입 가능성에 주목해 사업 전망을 밝게 본다는 취지의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정부는 출범 이후 부동산에 쏠린 자금 시장 구조를 바꾸겠다며 증시 활성화 정책을 펼쳐 왔고, 실제로 상당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최근 주택 가격이 다시 꿈틀대고 전·월세 시장까지 불안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일부 증시 수익금이 다시 부동산으로 향하는 '머니 역주행'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려되는 신호다. 주식 투자 수익이나 반도체 성과급 등의 '부동산 회귀'가 확산하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펴가며 좀 더 입체적인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어렵게 형성된 자본시장 활력이 다시 아파트 시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악순환만큼은 경계해야 한다.
[사설]최저임금 '차등적용', 제한적 시범실시 어떤가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다르게 적용할지 여부를 놓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문제는 양측이 해마다 첨예하게 맞서는 대표적 쟁점이다. 경영계는 업종마다 임금 지급 능력이 다른 만큼 최저임금도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식·숙박업, 택시업 등 일부 영세 업종은 일률적으로 정해 놓은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기준을 낮추자는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업종별로 최저임금이 제각각이면 저임금 근로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모든 근로자의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번에도 양측의 공방은 팽팽할 전망이다. 경영계는 회의에 앞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음식·숙박업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1만1513원인 반면 금융·보험업은 2만3026원에 달한다며 업종별 임금 수준과 지급 여력의 차이를 강조했다. 반면 노동계는 최저임금의 기준은 사용자의 지급 능력이 아니라 노동자의 최소 생계 보장이라고 맞선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저임금 업종에 대한 '낙인 효과'를 유발해 오히려 구인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이 같은 논쟁은 해마다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만 표결로 무산되곤 했다. 매년 비슷한 다툼이 반복되는 데에는 현행 최저임금법도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경영계는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제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차등 적용을 요구한다. 하지만 업종별 기준을 정하기 어렵고 노동계도 반발하면서 차등 적용은 최저임금이 처음 시행된 1988년 한 차례 실시된 뒤 사실상 사라졌다. 이후 지금까지 단일 최저임금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올해는 현실적인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영계는 일부 업종이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인 실태를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로부터 소상공인을 위한 세금이나 영업 지원을 끌어내고, 생산성 향상 대책을 통해 최저임금 지급 여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내놔야 한다. 노동계 역시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업종별 경영 현실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용자의 영업 기반이 지속적이지 않다면, 해당 업종의 최저임금 지급이 존속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런 맥락에서 특정 업종을 시범적으로 정한 뒤, 제한적으로 차등 적용을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과거에도 경영계가 이·미용, 편의점, 택시 등 업종에 대해 시범 실시를 주장한 적이 있지만 이뤄지진 않았다. 이번에는 가장 피해가 큰 업종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에 걸쳐 차등 적용을 시행해 '사업자 부담 완화, 근로자 소득 수준, 구인난' 등 정책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면 보다 생산적 논의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 데이터가 도출되면 쟁점도 좁혀질 수 있지 않겠나. 올해만큼은 찬반 공방을 넘어 생산적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사설]선관위 개혁 본질 흐리는 장동혁의 '재선거 정치'
6·3 지방선거는 여야 모두에 변화와 쇄신을 요구하는 민심을 보여줬다. 특히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강성 지지층에 기대는 정치를 넘어 새로운 보수의 길을 모색하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윤 어게인' 논란과 거리를 두고 중도 확장과 실용 노선을 내세운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선전한 것은 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런 점에서 연일 전국 재선거를 주장하는 장동혁 대표의 행보는 민심의 흐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유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선거 관리의 신뢰를 흔든 중대한 사건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은 반드시 해야 할 과제다. 여야가 45일간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하고 국민의힘이 특위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치적 공방보다 사실 규명과 제도 개선에 집중해야 할 이유다.그러나 선관위의 관리 부실과 전국 단위 재선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특정 투표소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판단을 구하면 된다. 공직선거법 역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선거 무효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선관위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과 선거 결과 자체를 뒤집는 일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장 대표가 당내 충분한 공감대도 없이 재선거 주장을 사실상 당론처럼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서울 등 6개 지역에 대해 재선거를 요구하는 선거소청 제기를 의결했지만 당내에선 신중론이 적지 않다. 의원총회 소집 요구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긴급 최고위 결정만으로 중대한 정치적 방향을 정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더욱이 전국 재선거론은 당내 총의를 거쳐 확립된 당론으로 보기 어려운데도 장 대표는 "소청은 시작일 뿐"이라며 이를 당의 공식 목표인 양 내세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선관위 개혁이라는 중대한 과제가 특정 당의 당권과 지도체제 논란과 맞물려 자칫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장 대표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전국 재선거론을 앞세워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고 당내 리더십 논란을 돌파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관위 개혁이라는 본질은 뒷전이고 잠실 개표소에 모여 참정권 시위를 벌이는 2030의 목소리를 정치적 방패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소모적인 재선거 공방이 아니다. 국정조사를 통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선거 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하는 일이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선거 관리 체계와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 같은 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장 대표 역시 이제라도 '재선거 정치'보다 선관위 개혁과 당 쇄신이라는 본질적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요구한 변화에 조금이라도 응답하는 길이다.
[사설]미·이란 종전, 경제도 북핵도 긴장 늦출 때 아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106일 만에 사실상 종료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이란과의 협상 타결을 발표했고, 이란 외무차관도 "모든 전선에서 영구적이고 즉각적인 종전이 선언됐다"고 밝혔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양측은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종전 서명식을 열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를 비롯한 중동 위기는 해소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이번 종전은 미국과 이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당초 4~6주 안에 끝내겠다던 전쟁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석 달 넘게 이어진 것은 미국에도 큰 부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기간 내내 유가 상승 압박에 시달렸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냉담한 국내 여론도 추슬러야 했다. 이란 역시 치명적인 경제 제재와 국토 초토화 위기 속에서 체제 생존을 위한 타협이 절실한 상황이었다.전쟁은 멈췄지만 우리 경제를 짓눌렀던 충격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합의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제한과 미국의 제재 완화를 맞교환하는 '원칙적 양해각서(MOU)' 성격이 짙어, 향후 60일간 진행될 세부 이행 과정을 둘러싼 갈등의 불씨가 여전하다. 급등했던 국제 유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공급망과 물류 비용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온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더구나 전쟁 기간 우리 내부에서는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중동발 충격으로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를 넘어섰고,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은 산업계 부담은 물론 공공요금 인상 압력으로 번졌다. 종전에 안도만 하지 말고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 확대, 해상 안보 역량 강화 등 그간 제기된 과제들에 대한 철저하고 지속적인 점검과 이행에 나서야 한다.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동 가능성 등도 대비해야 한다. 중동의 군사적 부담을 덜어낸 트럼프 행정부의 시선이 이제 동아시아와 한반도로 향할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 합의 발표 전날인 13일 자신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의 모습이다. 이란 핵문제를 일단락한 뒤 북한 핵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겠다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이란의 핵물질 폐기가 어떻게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북한의 핵능력은 이란보다 훨씬 고도화돼 있다. 이미 60여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고 30개 이상의 핵탄두를 추가로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만큼 이란과 달리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핵동결 대가 제재 해제'를 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트럼프의 '즉흥성'이다. 자칫 우리는 관전자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사실상 북핵 용인을 전제로 군축 협상에 나서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한·미 신뢰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게 중요하다.
[사설]상용 일자리 26년만 감소…외환위기 직후도 아닌데
일자리 감소의 경고음이 심상치 않다. 향후 1년 이상 일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용 근로자'가 지난달 1674만 명으로 1년 전보다 7000명 줄었다. 단순히 감소 폭의 문제가 아니다. 상용 근로자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외환위기 여파가 이어지던 1999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경제성장률은 높지만 고용은 냉랭한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안정된 일자리로 여겨지는 상용직이 줄어든 탓에 체감 충격은 더 크다. 세부 통계도 우려스럽다. 상용직 감소가 20~30대 청년층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고용 악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졸 이상 실업자는 지난달 50만3000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어섰다. 고학력 인력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등의 분야에서 취업자가 크게 감소했다. 인공지능(AI)의 영향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정보통신업 분야 상용직 고용은 20대에서 감소한 반면 30대에서는 증가했다. AI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사회 초년생들이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부터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정부는 고용 부진의 배경으로 대외 불확실성을 꼽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위기 등으로 기업들이 투자와 채용을 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용직 감소가 청년층에 집중되고, 정보통신과 과학 분야 등에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은 경기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제 전쟁은 마무리 단계다. 하반기에는 고용이 반등할 것인지, 아니면 AI 확산과 산업구조 변화라는 다른 구조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보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무엇보다 반도체 호황과 고용은 별개의 문제라는 인식 아래 일자리 대책을 짜야 한다. 반도체 산업이 나라 전체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그 온기가 채용시장 전반으로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산업별 양극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반도체는 대표적인 '자본·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취업 유발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반면 고용 기여도가 큰 다른 제조업과 서비스업 상당수는 여전히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업종을 중심으로 보다 촘촘한 일자리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성장과 고용은 함께 간다'는 과거의 공식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AI 활용이 늘면서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에서도 인력 대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성장하는데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고용 현실이 가속화할 수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최근 "청년 고용 확대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은 경제성장률 숫자가 아니라 일자리에서 경기를 체감한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는 고용지표 경고음을 결코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사설]500만명 무너진 학생 수…반도체만 미래인가
전국의 초중고 학생 수가 사상 처음으로 500만명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정부가 '학교 통폐합'과 '소규모 혁신 학교' 운영이 보다 용이하도록 정책 수정에 나섰다고 한다. 올해 학생 수는 484만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100만명 넘게 감소했다. 학교는 그대로인데 아이들이 크게 줄면서 교육 체계의 변화도 불가피한 상황이다.급변하는 현장을 감안해 이번에 교육부가 학교 통폐합과 관련한 과거 기준을 폐지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기존에는 학부모 반발 등을 감안해 학생 수가 적은 학교도 유지했지만, 앞으로는 시·도 교육청이 지역별 특수성을 감안해 자체적으로 통합 절차 등을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생 수가 감소한 지역의 학교 통합과 거점학교 육성 등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이번 결정은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아찔한 '인구 절벽'의 단면을 또 한 번 드러낸 상징적 사안이다. 학생 감소로 곳곳에서 폐교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증가하고 교과목 운영이나 급우 관계 형성, 진로 교육 등이 힘든 학교가 늘고 있다. 교육 붕괴를 막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줄어드는 학생에 맞춰 학교 구조조정과 혁신이 절실하다.문제는 학령 인구의 감소 추세가 더 가파를 수 있다는 우려다. 5년 뒤에는 400만명 선이 무너지고, 2035년까지 빠른 감소가 예상된다. 학교 통폐합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교육 시스템 재설계가 필요하다. 이는 비단 교육부만의 숙제가 아니다. 학생 수 감소를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저출산 해법'을 강화하는데 국가적 역량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 최근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사업을 포함해 미래의 성장 동력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반도체 육성에 인재가 필요하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학생과 학교가 사라지면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정부도 심각성을 감안해 국정 과제를 통해 아동 수당을 확대하고, 돌봄 서비스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저출산 대책을 추진 중이다. 다만 지금 펼치는 정책으로 가파른 학생 감소 추세에 대응할 수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국가의 역량 배분 측면에서 이대로 충분한지, 추가적인 대책과 예산 지원이 필요한지 등을 다시 짚어보자는 것이다. 민간이나 산업계와 공조할 수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한∙일 저출산 대책 교류위원회'를 출범시켜 양국의 저출산 정책과 연구 경험을 공유키로 했다. 산업계 스스로가 저출산과 노동력 감소를 심각한 걸림돌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장은 몇 년이면 지을 수 있지만, 아이들 교육과 인재 육성에는 십수 년이 걸린다. 학생 수 감소가 보내는 경고음을 흘려들어선 안 된다.
[사설]쿠팡 6247억 과징금, 책임 엄중히 묻되 법과 원칙은 냉정히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쿠팡에 624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3750만 명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새고 온라인 활동기록도 무단 수집한 데 따른 조치다. 단일 개인정보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심각성을 고려하면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정보 보호는 기업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국민 기본권과 직결된 공적 의무다.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퇴직자의 인증키가 장기간 방치됐고, 비정상적인 접속이 수개월 동안 이어졌는데도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파기해야 할 탈퇴 회원의 개인 정보도 적절히 삭제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내부 통제와 개인정보 관리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플랫폼 기업이 방대한 이용자 정보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면, 그 정보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 역시 성장의 규모만큼 커져야 한다.다만 책임의 중대성과 제재의 적정성은 구분해 따져야 한다. 이번 과징금은 쿠팡의 연간 영업이익에 육박한다. SK텔레콤이나 카카오페이, 해외 빅테크 기업 등 국내외 유사사례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큰 액수다. 한 결혼정보업체의 경우 더 예민한 개인정보가 유출됐지만 과징금은 10억원대였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기업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하고 있다. 유출 정보의 민감성이나 실제 피해 규모, 사고 이후 기업의 대응 노력 등이 얼마나 정교하게 반영되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결국 이번 처분의 최종 판단은 법정에서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쿠팡이 행정소송 방침을 밝힌 만큼 과징금 산정 방식, 감경 사유,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 법 적용의 일관성을 놓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정부는 여론의 분노에 기대지 말고 법률과 증거로 처분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쿠팡 역시 소송을 방패 삼아 책임을 희석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용자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 대책, 독립적 보안 감사 등 신뢰 회복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이와 함께 경제와 통상에 미칠 영향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쿠팡은 전국 물류망 확대와 대규모 고용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이다. 일부 미국 정치권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만큼 불필요한 통상 마찰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도 있다. 정부는 국내법에 따른 정당한 집행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도 국제적 논란은 최소화해야 한다.이번 사건은 한 기업의 일탈을 넘어 디지털 경제의 규제 원칙을 묻는다. 개인정보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면서도 제재의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상당 기간 이어질 법적 공방 속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결론은 감정적 찬반이 아니라 보다 합리적이고 일관된 규제 기준일 것이다.
[사설]집권 2년차 할 일 태산인데, 심상찮은 與 파열음
6·3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당권을 둘러싼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이재명계와 친정청래계가 선거 책임론을 놓고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전체 광역단체장 선거 12대4 승리의 의미가 퇴색한 가운데 여권내 권력투쟁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11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친명계를 중심으로 정청래 대표 책임론이 쏟아졌다. 재선의 장철민 의원은 "정 대표가 당 대표에 다시 도전할 의사가 있다면 오늘이라도 사퇴해야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3선의 신정훈 의원도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 대해 "결과와 과정이 굉장히 거칠었다"고 비판했다.앞서 황명선 최고위원은 "실패한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 출마하지 않는 것이 도리"라며 정 대표를 겨냥했고, 대통령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원로 박지원 의원은 정 대표의 사퇴와 불출마를 대놓고 촉구했다. 이에 친청계는 서울시장과 부산 북갑 등 주요 격전지 패배의 책임이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선택한 후보들에게 있다며 맞서고 있다. 선거 결과에 담긴 유권자의 뜻을 각자 유리하게 해석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해석도 끊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 출국 환송 행사에 정 대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반면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김민석 국무총리는 자리를 지켰다. 이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이겨야 할 곳을 졌다. 승리는 최소한 아니다"라고 평가한 것을 두고도 정 대표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급기야 정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대변인이 유튜브 방송에서 "윤석열이 당 대표를 찍어내려 한다고 비판했는데 대통령이 지금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 대표 역시 "대통령의 평가에 공감한다"면서도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문제는 이런 권력 다툼이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느냐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9% 포인트 가량 하락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의 경고에도 여권이 민생과 국정보다 책임 공방과 당권 경쟁에 더 몰두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국민께 죄송하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여론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집권 2년차는 5년 임기 중 가장 많은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다. 할 일이 태산이다. 이 귀중한 시간을 여권이 내부 권력다툼으로 허비했다간 민심의 경고는 더 큰 질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사설]이번엔 기본소득까지…점점 더 혼란스런 '초과 이익' 논의
'초과 이익을 나누자. 사회연대임금을 하자. 초과 세수를 국부 펀드에 넣자.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쓰자. 지역 균형을 위해 공장을 짓자.' 초호황 가도를 달리는 반도체 산업의 대규모 이익을 분배하자는 논의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초과 이익 일부를 일반 대중에게 분배하기 위해 기본소득 지원금과 같은 새로운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초과 이익 논쟁은 신중해야 한다'던 입장과는 결이 다르다. 청와대는 향후 직면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를 말한 것이라고 추가 설명을 내놓았다.이 대통령이 언급한 기본소득은 지난달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거론한 '사회연대임금'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김 장관은 반도체 대기업의 초과 이익을 하청업체와 나눠 임금 격차를 축소하자면서 연대임금 논쟁을 촉발했다. 이후 논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초과 세수' 개념을 꺼내면서 국부 펀드에 넣어 미래 투자에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며칠 전에는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초과 세수를 언급하면서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데 쓰자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 인터뷰에선 초과 이익을 언급하며 자신의 오랜 정책 구호인 기본소득 개념을 다시 꺼낸 것이다. 기업이 거둔 초과 이익, 그리고 정부가 걷은 초과 세수는 전혀 다른 개념인데도 최근 논의에선 두 가지가 뒤섞이거나 함께 쓰이면서 혼란을 키운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적 지원을 한 축으로 삼아 성장했다는 점에서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 또 반도체 활황으로 늘어난 세금을 정부가 필요한 곳에 예산으로 책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부분을, 얼마나, 어떻게 나눌지 정부 내부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혼란스러워하는 국민이 많다.특히 초과 이익의 경우 명확한 개념 정립부터 필요하다. 아울러 재원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도 더 구체적이고 통일된 내용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격차 해소, 미래 투자 등 다양한 활용처를 원한다면 그대로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면 된다. 초과 이익의 기준과 규모, 용처를 정할 때도 이익 주체인 기업들과 대화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롭게 떠오른 반도체 공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것이라는 얘기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이에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환영론과 지역 안배를 벗어나 철저하게 기업 자율에 맡기라는 주문이 맞서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무조건 한국에만 짓는 건 아닐 수 있다"면서 일본을 후보 지역의 하나로 언급했지만, 김민석 국무총리는 한국에서 안 된다는 생각 대신 "어떻게 한국에서 되게 할 것인가를 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오는 29일 청와대에서 정부와 주요 그룹 총수들의 간담회가 열린다고 한다. 기업 입장을 경청하면서도 필요한 지원을 제시해 국내 최적의 입지에 공장을 짓도록 하는 것이 최선책일 수 있다.이런 모든 논의에서 간과하면 안 될 것은 반도체 이익의 영속성 여부다. 지금의 호황을 새로운 밑천으로 삼아야 끊임없이 분배할 이익도 생길 수 있다. 파이를 키우는 전략보다 나누는 논의가 앞서면, 초과 이익도 반도체 신공장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사설]국힘 원내대표에 '당권파' 정점식…쇄신이 우선이다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에 3선의 정점식(경남 통영·고성) 의원이 10일 선출됐다. 국민의힘이 6·3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내주며 사실상 참패한 지 불과 일주일 만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가까운 정 신임 원내대표는 장동혁 대표 체제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낸 친윤 당권파로 분류된다. 이번 선출은 위기 상황에서 당내 결속과 안정을 우선시한 선택으로 읽힌다.그러나 민심의 매서운 심판 직후 치러진 당내 경선이라는 점에서 과감한 쇄신보다 현 체제 유지에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지방선거 결과가 보여준 민심은 분명하다. 뼈를 깎는 변화다. 정 원내대표가 당선 직후 "특정 세력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계파를 넘어 당의 쇄신을 이끌어내는 것이 그의 첫 번째 과제가 돼야 한다.더 큰 문제는 선거 패배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장 대표의 태도다. 장 대표는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사퇴 요구에 대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보라"며 일축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 등 일부 지역 승리를 근거로 전체 선거 결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장 대표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빌미로 '전국 재선거' 와 사전투표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 역시 선거 패배 책임을 외부로 돌리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선거 책임론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당의 공백과 혼선만 깊어질 뿐이다. 적당한 봉합은 답이 아니다. 장 대표의 거취 문제 외에도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한동훈 의원의 복당 문제 등 당내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들이 한둘이 아니다. 정 원내대표는 "친윤 계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이 중요하게 보는 것은 계파의 명칭이 아니라 실제 운영 방식이다. 정 원내대표는 당내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본인의 다짐대로 '집단 지성'을 이끌어내야만 '도로 친윤당'이라는 안팎의 우려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을 견제하며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 본연의 역할도 회복해야 한다. 실력 면에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극우 지지층이나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지 않고 상식과 책임의 정치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국민의힘이 이번 선거 패배 이후 가장 먼저 답해야 할 과제다.
[사설]"정말 어렵다"…다시 시험대 오른 부동산 세제
부동산 시장의 이목이 다음 달 발표될 '세제 개편안'으로 쏠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보유세가 대체로 낮다"며 세금 강화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구체적인 정책 방향도 하나둘 거론되고 있다. 보유세의 경우 이른바 '똘똘한 한 채'로 불리는 고가 1주택자와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강화에 무게가 실린다. 거래세와 관련해선 비거주 소유자의 양도소득세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 등이 언급된다.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올해 들어서는 보유세와 장기보유특별공제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계속 올려왔다. 세제 손질 의지를 공개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부동산은) 정말 어렵다. 묘하게 소위 개혁 정부가 들어서면 올라간다"고 토로했는데, 기대와 달리 좀처럼 잡히지 않는 시장 상황이 잇따른 세금 관련 발언의 배경으로 보인다.정부의 목표는 세제를 통해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다. 그래야 부동산 시장이 실거주 위주로 재편되고, 가격도 안정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몇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우선 보유세와 거래세 부담을 동시에 강화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다. 매물의 퇴로를 막아 정책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가격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종부세 부담이 커진 집주인이 주택 매도 대신 '버티기'를 선택할 경우 임차인에게 부담을 전가해 전월세 가격을 자극할 수도 있다. 양도소득세 강화 역시 자연스럽게 거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달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재개된 이후 매물이 잠기면서 서울 아파트값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억울한 1주택자들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실거주하지 못한 이들은 투기 세력과 같은 잣대로 평가받으며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은퇴자들 역시 수십 년 살아온 집의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는 데 강한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재정경제부는 주택의 '매입-보유-매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부담하는 '총 세금'을 기준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다양한 시장 불만과 요구, 집값 안정 효과 등을 면밀히 따져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내놓길 바란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공급이다. 투기적 수요만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가구를 짓기로 했고, 도시형 생활주택 같은 비아파트 공급을 확대해 주거 사다리를 놓겠다고 했지만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가격 상승의 진원지인 서울에서는 신규 택지가 부족하고,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의 아파트 공급도 충분치 않다. 이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신축이든, 택지 개발이든, 재건축·재개발이든 속도를 내서 빨리 하자"고 했다. 균형 있는 세제 개편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공급 대책을 지속적으로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 집값 안정의 목표를 달성하는 해법일 것이다.
[사설]선관위 사태, 정쟁 소비 말고 시스템 혁신 집중해야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총체적인 관리 부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선관위는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를 처음 14곳이라고 밝혔다가 50곳, 다시 91곳으로 정정했다. 선거 당일 준비 부족에 이어 사후 현황 파악 과정에서도 혼선을 빚은 셈이다. 주요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급증해 온 실태도 확인됐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문제점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국민적 불신은 커지고 있다. 2030 청년들을 중심으로 개표소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점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이번 사태는 특정 직원이나 개별 투표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운영과 관리 체계 전반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낸다.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 역시 채용 비리와 내부 통제 부실, 폐쇄적 조직 문화 등 수년째 이어져 온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개혁 논의는 매번 동력을 잃어왔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감사원의 직무감찰에 대해 독립성 침해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선관위는 외부 통제 강화나 감사 제도 도입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결국 개혁 논의는 독립성과 통제의 충돌 속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이어왔다.이제 필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제도 개혁이다. 선관위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은 각종 개혁 법안을 쏟아냈지만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선거 관리 실태를 상시 점검하는 특별감사관 제도, 외부 인사 중심의 감사위원회 설치 방안도 국회 상임위에 장기간 계류돼 있다. 선관위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개혁 과제를 방치해 온 정치권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말뿐인 쇄신으로 끝난다면 유사한 논란은 다음 선거에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개혁의 방향은 분명하다. 선거 준비와 위기 대응 절차를 표준화하고 투표용지와 선거인명부, 개표 관리 전 과정을 외부에서 상시 점검할 수 있는 감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관리 소홀이나 보고 누락이 확인될 경우 책임을 명확히 묻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대법관과 지역 법원장이 선관위원장을 비상임으로 겸직하는 관행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립성은 지키되 책임성과 투명성은 높이는 방향으로 선관위 운영과 선거 관리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다만 개혁 논의가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정파적 공방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전국 단위 재선거 주장이나 근거 없는 의혹 확산은 문제 해결보다 사회적 불신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재선거 여부는 법률이 정한 절차와 증거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국정조사와 수사 역시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사실관계 규명과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별건 수사나 책임 떠넘기기식 결론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이번 논란의 본질은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가 선거 시스템의 실패에 있다. 정치권과 선관위는 책임 공방에 머물 것이 아니라 국민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는 선거 관리 체계를 복원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 기본 시스템을 바로 세우라는 게 개표소 항의 시위에 나선 2030 청년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이번 일을 또 하나의 정쟁 소재로 소비한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기회마저 잃게 될 것이다.
[사설]숙제 남긴 '삼소 회동'…AI 동맹은 강화, 의존은 피해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의 3박 4일간의 방한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는 국내 대기업 총수들과 잇따라 회동하며 주목을 받았고, 삼겹살과 소주를 곁들인 이른바 '삼소 회동'과 야구장 시구 등 친근한 행보로도 관심을 끌었다. '동맹'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그가 한국에 보낸 러브콜은 국내 인공지능(AI) 산업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특히 이번 방한을 통해 AI 협력의 범위가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장됐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화제를 모은 삼소 회동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뿐 아니라 이해진 네이버 의장도 참석했다. SK텔레콤과 네이버는 엔비디아 제품을 공급받아 차세대 지능형 데이터센터인 'AI 팩토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대차와 LG그룹은 로보틱스를 포함한 '피지컬 AI' 분야를 주요 협력 과제로 삼고 있다.화려한 협력의 장면 뒤에는 냉철한 이해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AI 칩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해야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다. AI 생태계 역시 자사에 유리하게 짜일수록 이익이 커진다. 문제는 AI 팩토리나 로보틱스 같은 차세대 사업을 추진하려면 엔비디아에 없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손을 내민 상대가 바로 '한국 제조업'이다. 한국 기업에 칩을 공급하는 동시에 핵심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셈이다. 물론 한국 기업이 얻는 이익도 크다. AI 공급망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선도적 사업자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AI 팩토리가 성공할 경우 SK와 네이버의 기대처럼 세계 곳곳에 수출을 할 수도 있다.그러나 여러 이해득실을 떠나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이 있다. 협력은 강화하되 의존은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의 쓴소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배적 칩 사업자에게 한국의 독자적 로보틱스 모델이 종속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현대차의 AI 로봇 사업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변화무쌍한 AI 생태계에서 특정 사업자와의 밀착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오히려 성장 전략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현 시점에서 엔비디아와의 협력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인다. 그러나 협력이 의존으로 변질되면 한국의 AI 경쟁력과 기술 주권은 약화될 수 있고, 'AI 3대 강국'이라는 국가적 목표도 빛을 바랠 것이다. 협력은 두텁게, 의존은 최소한으로. 이것이 화제의 '삼소 회동' 이후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이다.
[사설]李 '겸손' 다짐…공소취소는 '법과 상식' 따른다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6·3 지방선거 결과와 관련해 "국민이 저 또는 이 정권에 주는 경고"라며 "더 낮은 자세로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기대에 못 미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청년들의 강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나 역시 '주권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고 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뒤늦었지만 필요한 자세였다.하지만 일부 정책에 대한 평가는 이런 겸손한 다짐과 적지 않은 간극을 드러냈다. 특히 서민 삶과 직결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인식은 민생 현장의 체감과 괴리가 있어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간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상승 압력을 나름 잘 막아왔다"고 자평했다. 전세 품귀 현상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일종의 사금융인데 사라져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서민들이 겪는 현실은 전·월세 불안과 주거 부담이다. 실효성 있는 공급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적 처방도 국민의 체감 온도를 높이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특히 가장 예민한 이슈 가운데 하나인 공소취소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여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조작 기소 특별검사' 도입에 대해 "(진상규명을) 안 할 수는 없는 것", "법과 상식대로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고 잘못된 게 없으면 그대로 두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취소 권한까지 특검에 부여하는 특검법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공소취소 권한을 누가 행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특검 수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면 된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공소취소 논란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과 우려를 불러온 쟁점이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검찰 기소에)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들이 꽤 많다"며 '조작기소 특검' 도입에 힘을 실으면서도 정작 특검에 공소취소 권한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러니 "결국 특검에 의한 공소취소 의지를 접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공소취소 권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것이 대통령이 강조한 '낮은 자세'이자 법과 상식에 부합하는 태도일 것이다.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초격차 산업강국', '규범과 규칙이 지켜지는 정상사회' 등 4대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집권 2년 차인 올해를 '대체 불가 대한민국'의 담대한 꿈이 시작되는 해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에 대해서는 "결론은 일할 사람을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과 중심의 국정 운영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집권 2년 차는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다. 치밀한 이행 전략으로 국정 과제의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취임 당시 약속했던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초심이 말이 아니라 정책과 국정 운영으로 증명되길 기대한다.
[사설]아침마다 노심초사, 37조원 빚투 어쩌나
코스피 8000선이 무너지면서 투자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8일 증시에선 20분간 주식 매매를 중단시키는 서킷 브레이커도 석 달 만에 다시 발동됐다. 이날 '검은 월요일'은 예고됐었다. 앞서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대인 10% 급락했기 때문이다. 이후 주말 사이 인터넷 종목 토론방은 노심초사하는 투자자들로 넘쳤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락률을 2배로 따라가는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한 이들의 공포가 확산했다.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른바 '빚투'다. 대출받아 투자한 빚투가 무려 37조원에 이른다. 통장을 깨고 증시로 향하는 투자 행렬은 최근에도 멈추지 않는다. 은행권 신용대출은 이달 들어 사흘 만에 1조원이 늘었다고 한다. 자금 상당액이 증시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빚투가 늘면 주가 하락 시 대출금 상환을 못해 증권사가 강제로 매도하는 '반대매매'가 증가하고, 이것이 다시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도미노 충격을 부를 수 있다.경고음이 울리고 있는데도 개인 투자자 매수세는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걱정스럽다. 8일에도 외국인들이 21일 연속 매도에 나선 가운데, 개인이 이 물량을 받아냈다. 떨어질 때 더 산다는 이른바 '물타기' 또는 '저가 매수' 투자가 확산하면서 하락장에서도 과감하게 주식을 매입하고 있다.주가 변동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비교적 낙관적인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내 증시가 "아직도 저평가된 상태"라면서 최근 변동성 역시 대폭락이 아닌 "적정한 가격 균형점을 찾아가는" 숨 고르기로 평가했다. 모든 투자자도 그러기를 바랄 것이다. 실제로 반도체 기업을 포함해 국내 상장사들의 2분기 실적이 탄탄한 만큼 다시 상승세를 회복할 것이란 전망도 많다.하지만 증시 앞에 놓여있는 부담스러운 외부 변수들도 적지 않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 미국-이란 전쟁의 장기화 등이 그렇다. 17년 만에 최고치를 이어가는 원·달러 환율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면서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역으로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손 우려가 추가 매도를 유발하는 악순환 우려도 제기된다.금융위원회는 최근 반도체 레버리지 ETF의 과열 조짐과 관련해 투자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점검 회의를 했다. 출시 직후 수조 원의 개인 자금을 빨아들인 상품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빚투 현황에 대한 모니터링과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증시 전체의 장기적 미래를 낙관할 수는 있겠지만, 빚투의 위험은 방관해선 안 된다.
[사설]시진핑 방북…더 절실해진 한·미·일 공조
중국 당국과 북한 관영 매체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6월 8~9일 평양 국빈 방문을 공식 발표했다. 시 주석의 평양행은 지난 2019년 6월 이후 7년 만이자, 김정은 집권 이후 두 번째다. 이번 발표가 중국 외교부가 아닌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중련부)를 통해 나온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방북이 단순한 국제 외교를 넘어, 사회주의 동맹 특유의 '북·중 양측 간 전략적 교류'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정상의 만남은 지난해 9월 베이징 정상회담 이후 9개월 만이다. 이번 방북의 일차적 배경은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안보 협력을 대폭 강화하며 밀착하는 최근의 정세와 맞물려 있다. 북·러가 밀착 행보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북한의 최대 교역국이자 후원국인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등판해 우호 관계를 재확인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여전한 '중국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는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 체결 65주년이라는 정주년(5·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이기도 하다. 양측은 이를 계기로 전통적인 우호관계와 동맹 의식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상징적 무대로 이번 방북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방북이 최근 열린 미·중 정상회담과 중·러 정상회담 직후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시진핑이 지난달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한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김정은까지 단기간에 만나는 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북·중·러 3각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중국 전승절 3국 정상 동시 참석에 이어 북·중·러 연대 강화의 결정판이 이번 시 주석의 방북이라고 할 수 있다. 북·중·러 밀착과 더불어 특히 걱정스러운 대목은 시 주석 방북이 중국이 북한 핵개발을 사실상 용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는 점이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3일 새 핵물질 생산공장을 시찰하며 핵무력 강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시 주석의 방북 직전 핵시설 공개 방문은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러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채 대북 제재 반대 입장을 강조한 것도 이같은 관측을 부추겼다.정부는 북한의 고도화되는 핵 위협에 비례해 북핵 폐기의 목소리를 더욱 단호하게 높여야 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의 확고한 이행에도 앞장서며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전선을 주도해야 한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한·미 동맹의 이상기류는 우려스럽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 핵시설' 발언, 미국의 대북 정보 공유 제한 등으로 불협화음을 낸 데 이어 한·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을 놓고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외교적 과제는 명확하다. 한·미 동맹의 균열을 조속히 수습하고, 한·일 안보협력은 물론 한·미·일 다자 공조 체제를 그 어느 때보다 빈틈없이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굳건한 한·미·일 3국 안보 공조를 바탕으로, 중국을 향해 '한반도 비핵화 견인'이라는 책임 있는 역할을 압박하는 대중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사설]조정식 국회의장, '협치 복원' 책임 무겁다
제22대 국회 후반기를 이끌 국회의장단이 5일 본회의에서 선출됐다. 지금 국회는 극심한 진영 대립 속에 협치가 실종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입법부 수장이자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책임은 어느 때보다 무겁다. 국민이 신임 의장에게 거는 기대도 분명하다.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을 복원하는 일이다.이번 6·3 지방선거는 정치권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민주당은 전국적으로 우위를 점하며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성이 큰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유권자들은 국정 안정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권력 집중에 대한 견제 의사를 함께 보여줬다. 여당에는 책임을, 야당에는 쇄신을 요구한 복합적 메시지였다.지방선거가 보여준 민심은 후반기 국회에도 예외일 수 없다. 여당이 압도적 의석수만 믿고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거나, 야당이 대안 없는 반대와 장외투쟁에 매달리는 것은 국민이 원하는 정치가 아니다. 그 첫 시험대가 원 구성 협상이다. 법제사법위원장 등 주요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충돌이 벌써 예고되고 있다. 대통령 관련 공소취소 논란과 검찰개혁, 개헌 문제 등 여야가 첨예하게 맞설 현안도 적지 않다. 자칫 후반기 국회 역시 시작부터 정쟁의 늪에 빠질 수 있다.이럴 때일수록 국회의장의 중재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의장은 다수당을 대변하는 자리가 아니다. 다수의 힘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도록 조정하고, 소수의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자리다. 국회법이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의장석에 앉는 순간 정당이 아니라 국회 전체를 대표해야 한다.그런 점에서 조정식 신임 의장이 당선 인사에서 국민주권과 사회적 대화, 민생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의미가 있다. 개헌 역시 후반기 국회가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국회의장의 역할은 입법의 속도를 높이는 데 있지 않다. 첨예한 갈등을 조정하고 여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조 의장이 제시한 비전도 대화와 협치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번 지방선거가 보여준 민의는 절제와 균형이었다. 국민은 일방적 독주도, 발목잡기도 원하지 않았다. 책임 있는 협치를 요구했다. 신임 국회의장은 그 뜻을 가장 앞에서 실천해야 할 위치에 있다. 여야의 대화를 복원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후반기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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