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첫 파업 예고한 하청 노조…점점 커지는 '노봉법 하투'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이 다음 달 원청 기업들을 상대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지난 3월 시행된 이후 하청 노조가 이 법을 근거로 대규모 파업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파업 대상에는 포스코와 에쓰오일, SK에너지 등 대기업 발주사와 종합건설사들이 포함됐다.플랜트건설 노조원 3만3000명은 전국 주요 사업장에서 공장 건설과 정비 작업을 맡고 있다. 파업이 현실화하면 석유화학과 제철소 등의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근로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노란봉투법이 자칫 국가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흔드는 상황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노조가 내세우는 파업의 핵심 명분은 '안전'이다. 낡은 설비가 방치되고 최저가 낙찰 관행으로 공사비가 낮아지면서 사고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특히 중앙노동위원회가 원청 업체들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는데도 대기업들이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파업을 예고했다. 반면 기업들은 사용자성을 인정한 이유를 놓고 추후 소송 다툼으로 갈 수도 있는 만큼 당장 교섭에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부 기업은 산업안전 문제에 대해 사용자성이 인정됐는데, 노조가 수당 같은 문제까지 교섭 의제를 넓히고 있다고 반발한다.노란봉투법을 계기로 촉발된 파업 움직임은 다른 기업으로 확산하면서 올여름 더욱 거세진 하투(夏鬪)를 부를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오는 15일 총파업의 핵심 요구로 원·하청 교섭 확대를 내걸었다. 현대제철 하청 노조도 최근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원청과의 교섭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하청 업체들의 교섭 요구가 잇따르는 것은 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의 급식·통근버스 하청업체인 웰리브는 선박 제조와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사용자성이 인정됐고, 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결국 문제는 노란봉투법이 규정한 '실질적 지배력'의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데 있다. 기업들은 법적 불확실성을 호소하고, 노조는 그 틈에서 교섭 범위를 확대하려 한다. 노란봉투법의 근본 취지는 근로자 보호다. 그러나 사용자 범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된다면 법적 다툼과 노사 갈등을 키우면서 애초 원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사용자 범위를 명확히 하면서, 아울러 어떤 의제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산업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사설]사관학교 통합…'합동성 강화' 필요하지만 치밀한 접근을
정부가 대통령 공약인 사관학교 통합을 본격 추진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전군에 보낸 지휘서신에서 "합동성 체질화를 위해 통합 교육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데 이어 1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도 사관학교의 근본적 개혁과 합동성 체질화를 거듭 주문했다. 특히 지휘서신에선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며 "기득권과 선입견의 저항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사관학교 통합의 가장 큰 명분은 합동성 강화다. 현대전과 미래전이 초연결·복합전 양상을 띠면서 육·해·공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영역이 서로 교차할 것이라는 전망이 합동성 강화의 군사적 배경이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국군사관학교'를 세워 사관생도를 통합 선발한 뒤 1·2학년 때는 공통 교육을 받고, 육·해·공군을 선택한 뒤인 3·4학년 때는 군별 전문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달 중 사관학교 통합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 공청회를 거쳐 국군사관학교 설치를 위한 법령 정비에도 나설 방침이라고 한다. 합동성 강화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통합 추진 과정의 개방성과 투명성, 그리고 속도다. 장교 양성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개혁인 만큼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와 치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통합 중단 요구는 20만 명에 가까운 동의를 얻었다. 군별 전문성과 특성화 약화, 오랜 전통과 정체성 희석, 소속감 저하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합동성 교육은 합동참모대학 등 상위 교육과정에서 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안보 환경이 우리와 비슷한 나라 가운데 통합사관학교를 운영하는 곳은 일본과 독일 정도라는 지적도 있다. 이스라엘 역시 통합사관학교 없이 군별 장교 양성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안 장관이 통합에 회의적인 시각을 '기득권과 선입견의 저항'으로 규정한 것은 적절치 않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을 기득권의 저항으로 치부한다면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현재 고교 2학년이 입학하는 2028학년도부터 통합 선발을 추진하는 일정도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지적을 부를 수 있다. 장교들은 드론·인공지능(AI)·합동 전 영역 지휘통제(J ADC2)·스타링크 등 첨단기술의 미래 국방을 맡을 주역이다. 이들을 길러낼 사관학교 체제를 바꾸는 일인 만큼 보다 열린 자세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신중하고 치밀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사설]법제위·사법위로 나누고 1년씩 맡으면 어떤가
국회 원구성 협상에서 여야 갈등의 핵심은 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다. 파행으로 점철된 22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의힘은 끝까지 법사위원장직 양보를 요구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단독 원구성을 불사하며 국회 파행을 감수하는 길을 택했다.이 같은 갈등의 근저에는 법사위가 쥐고 있는 막강한 권한, 즉 다른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최종 검수하는 '체계·자구 심사권'이 있다. 법사위는 이 권한을 무기로 법안의 형식뿐 아니라 실질적 내용까지 좌우하며, 합의된 법안을 장기간 묶어두거나 사실상 폐기하는 등 '상원(上院)'처럼 군림해 왔다.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가 치열한 토론을 거쳐 합의한 민생 법안조차 법사위원장의 성향이나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을 경우 체계·자구 심사권을 악용해 입법 절차를 훼방놓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회의장과 함께 법사위원장까지 여당이 차지하면 입법 독주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맞선다. 특히 이번에는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특검' 문제까지 걸려 있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을 경우 해당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거나 막을 수 있어 민주당도 쉽게 양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법사위원장 쟁탈전으로 반복되는 국회 파행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법을 개정해 법무부·법원·헌법재판소를 소관으로 하는 고유의 사법 업무는 사법위원회가 맡고, 다른 상임위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는 별도의 기구가 담당하도록 해 완성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체계·자구 심사 기구는 국회의장 산하 법제위원회 형태로 둘 수도 있고, 별도의 법제위를 신설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법사위를 법제위와 사법위로 나눈 뒤 여야가 법제위원장과 사법위원장을 1년씩 돌아가며 맡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각각 법사위 개편 방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시 양당 모두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손질할 필요성에 공감했던 만큼 절충점을 찾지 못할 이유도 없다. 소모적인 법사위원장 쟁탈전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사설]또 법사위 차지, 더 멀어진 협치
더불어민주당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서영교 법제사법위원장을 비롯한 자당 몫 11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했다. 국민의힘 몫 7개 상임위원장은 추가 협상을 거쳐 선출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국민의힘의 반발로 원 구성이 최종 마무리되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국민의힘은 "원구성 정상화 없이 어떤 상임위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여야는 이날 오후까지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을 받지 못하면 모든 상임위원장을 포기하겠다"고 맞섰고, 민주당도 법사위원장 양보를 거부했다.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원내 1·2당이 나눠 맡는 것은 17대 국회 이후 이어져 온 의회 운영의 중요한 관행이었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심사하는 관문인 만큼,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견제하는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2020년 총선 압승 이후 원 구성 협상이 결렬되자 1년 넘게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했고, 22대 국회에서도 집권 여당이면서 법사위원장까지 계속 맡고 있다. 협치를 말해온 민주당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무너진 권력 분점의 정신부터 복원하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실제로 지난 1년간 여당이 주도한 법사위의 모습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위헌 논란이 제기된 법안들이 잇따라 강행 처리됐고, 여야 충돌이 반복되면서 22대 국회 전반기 법사위의 법안 가결률은 5.33%에 그쳤다. 민주당은 집권 2년 차 민생입법 등 국정과제에서 성과를 내려면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공소취소 특검법 처리에 있다고 반박한다. 서로 자신의 논리만 앞세웠을 뿐 현실적 절충이나 해법을 모색할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여야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민주당 출신의 조정식 국회의장도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채 국민의힘 상임위원장 명단을 팩스로 통보해 야당 반발만 키우는 일도 있었다. 국민의힘 역시 "법사위가 아니면 안 된다"는 원칙론만 고수했을 뿐, 거대 여당을 설득하거나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만한 중재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원 구성은 국회가 일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선일 뿐이다. 다수 여당은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소수 야당은 거부와 반대로 맞서는 구도가 반복된다면 피해는 결국 민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여당도, 재건을 다짐하는 야당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사설]대출잔액 1100조, 연체 22조…자영업 조이는 '역대급 빚'
"정말 어렵다"는 자영업자들의 호소를 뒷받침하는 통계가 또 나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1100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대출 규모만 문제가 아니다. 연체액도 22조원에 달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불어났다. 특히 소득 하위 30% 영세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숫자로 확인된 골목상권의 현실은 반도체 호황과 수억원대 성과급이 화제가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설상가상으로 하반기에는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 안정을 위해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고,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두 차례 인상을 예상한다. 결국 시중은행 대출금리도 따라 올라가면서 자영업자를 더욱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대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금리 대출 상품으로 갈아타게 해주거나 채무 자체를 줄여주기 위한 기금도 조성했다. 또 소득이 증가할 수 있도록 소비 촉진을 위한 캠페인도 벌였다. 그러나 통계가 보여주듯 자영업자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반도체 초호황의 온기가 골목상권까지 이어지지 못하면서 빚 부담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폐업 위기로 내몰리는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 촛점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에 집중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작지 않을 것이다.김용범 정책실장은 최근 "호황의 과실은 위로 향하고 긴축의 고통은 아래로 향한다. 이것이 가장 불편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 기존 자영업 지원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내고 있는지 원점에서 점검하고, 대대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 채무 조정을 위한 기금을 확대하거나, 폐업 위기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는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만하다. 다만 이런 지원은 상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취약 계층에 집중돼야 한다. 반도체 세수가 늘어난다면 그 일부를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온라인 판로 확대나 스마트 주차 시스템 등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투자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성장의 기회와 과실이 다양한 부문에 고루 돌아가는 '모두의 성장'을 강조해왔다. 그 구호가 공허하지 않으려면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화려함에 가려진 자영업자들의 그늘도 적극 살펴야 한다.
[사설]800조 '호남 반도체' 공식화…'용인 클러스터'부터 속도내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방침을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약 800조 원을 들여 각각 2기씩 총 4기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등 서남권에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작년 12월 이 대통령이 주요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달라"고 당부한 후 불과 반 년 여 만에 대규모 투자가 발표된 것이다. 이날 보고대회는 이 대통령과 산업통상부장관 등 정부 측 인사들이 먼저 3대 첨단산업 발전 전략과 정부의 지원 방안을 설명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단상에 올라 구체적인 투자 방침을 밝히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이번 투자계획이 "기업인들의 결단에 의한 것"이란 점을 강조했지만,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기업 팔 비틀기' 논란을 의식한 듯 발표 형식까지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여러 지역 중 전력과 용수, 인력확보 그리고 인프라 등 많은 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되는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은 호남 반도체, AI데이터센터에 425조 원을 비롯해 충청, 영남 등을 포함한 전국에 2655조 원의 투자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이 회장은 HBM 팹 공장은 충청, 로봇 관련 투자는 경북 구미, 차세대 배터리는 울산 등 지역별 중점을 둘 산업을 밝히면서도 '언제 어떻게'라는 구체적 일정은 거론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급확장 프로젝트에 1100조 원을 계획하고 있다. 용인 클러스트를 12년 앞당기고 서남권에 약 400조 원을 투자해 새로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와 별도로 SK텔레콤 주도의 1000조 원 AI데이터센터 투자계획도 공개했다. 최 회장은 "참고로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저희가 9년이 걸렸다"며 부지와 용수, 인력 등 제반 여건 조성 여부가 향후 투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내비쳤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 2위 기업이 10년 이상 뒤를 내다보고 국내에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밝히는 것 자체는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이번에 확정된 입지와 관련해 각 지역의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 인재확보 가능성 등을 놓고 기업이 최적의 조건을 따져 선택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쳤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절차적 불투명성은 향후 정치적 논란과 지역 주민,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불러 사업 추진속도를 낮추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정부 관계자들은 호남의 '반도체 제2 클러스터' 추진이 기존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에 차질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속도를 더 높일 것이라고 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장기적 투자역량과 사업 추진력을 분산해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일부 국내외 투자자 등의 우려도 큰 게 사실이다. 정부는 우선 용인 클러스터 건설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지역사회의 민원, 규제 등 걸림돌부터 서둘러 제거해야 한다. 장차 반도체 사이클 급변동 등 대외적으로 심각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투자계획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둘 필요가 있다.
[사설]홍명보 초라한 퇴장…감독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34위의 참담한 성적을 기록한 한국 축구를 향해 쇄신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손흥민·이강인·김민재 등 이른바 '황금세대'를 보유하고도 졸전 끝에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국민적 실망과 분노가 홍 감독에게 집중되고 있다. 일부 편의점과 식당 등에선 '출입 금지' 문구까지 써 붙인다고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 협박 글까지 올라오는 등 비난이 도를 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홍 감독은 29일 퇴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감독 한 사람의 '초라한 퇴장'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이번 실패는 개인의 역량 한계를 넘어 대한축구협회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병폐와 난맥상이 낳은 예고된 결과라는 점에서다. 원칙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감독 선임, 정몽규 회장의 13년 장기 재임 속에 누적된 불투명한 의사 결정, 특정 인맥 중심의 운영이라는 카르텔 의혹 등 그동안 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는 2024년 축구협회 감사에서 홍 감독 선임 과정의 적절성 여부 등 9개 사안을 조사한 뒤 "정몽규 회장 지시를 이유로 규정상 권한이 없는 기술총괄 이사가 불투명한 방법으로 면접했다"고 밝혔다. 협회 측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4월 1심 법원도 문체부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에도 정 회장이 부적절하게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전력강화위원회라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감독 선임 문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축구협회는 예산 상당액을 정부 지원금과 스포츠토토 수익금 등 공적 재원에 의존한다. 그러나 공공성에 비해 운영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협회가 심혈을 기울여온 천안 축구센터 건립 과정에서는 거짓 사업계획서로 보조금을 부당하게 신청한 내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문체부가 감사 결과의 후속 조치로 정 회장과 임원들의 중징계를 요구했지만, 협회 측은 이를 이행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축구협회는 '그들만의 성'이 된 지 오래다. 박지성 해설위원은 "이번에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는데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이번처럼 국민적 공분이 크게 일었는데도 제대로 된 쇄신책이 나오지 않고 흐지부지된다면, 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10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축구협회의 인사와 의사결정 구조 전반을 원점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 망신을 한국 축구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사설]"숫자들이 낯설 것"…기업 판단 온전히 반영됐나
정부가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어 광주·전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해 충청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영남의 피지컬 AI 등 권역별 첨단산업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단연 관심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만나 투자 계획을 조율했다. 지역 균형발전은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제지만, 반도체 공장 입지는 전력과 용수, 산업 생태계, 인력 확보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할 문제다. 기업이 이사회 등을 거쳐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할 투자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발표와 관련해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보고회에서 나오는 숫자들이 낯설 것"이라며 예상보다 훨씬 큰 투자 규모를 예고했다. 주요 대기업이 참여하는 전체 투자액이 100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실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1·2위 기업이다. 쥐어짠다고 움직일 기업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관치 투자'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수년이 걸릴 입지 선정이 정부와의 협의 속에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기업이 복수의 후보지를 놓고 전력·용수, 소재·부품 공급망, 인재 확보 가능성, 물류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검토한 과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국 아마존이 230여 개 지방정부의 제안을 받아 세제 혜택과 부지, 교통망 등을 장기간 검토한 끝에 2018년 제2 본사 부지를 결정한 사례와도 대조적이다.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를 선택한 것도 소니를 비롯한 기존 산업 생태계와 의료 교육 등 '정주 여건'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광주·전남은 상당수 기반시설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이클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의 특성이 투자계획 결정에 충분히 고려됐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반도체 특수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지만, 10여 년간 진행될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기간 내내 이런 호황이 계속될 것으로 장담하긴 어렵다. 불과 3년전만 해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막대한 적자를 내 2023년분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했다. 투자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불황이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의미다.정부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투자를 독려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 핵심 산업의 장기 투자 입지 결정에까지 정부가 깊이 관여했다는 인상을 준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 일본은 정부가 기업의 입지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세제와 전력, 용수, 규제 개선을 통해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반도체는 정치 논리가 아니라 기업의 치밀한 분석과 엄격한 사업성 검토에 따라 투자처가 결정돼야 하는 산업이다. K-반도체의 경쟁력은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서 나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설]30돌 맞는 코스닥의 부진…성장 사다리부터 복원해야
코스닥 시장이 다음 달 1일 개설 30주년을 맞지만 시장 분위기는 냉랭하다. 코스피는 올들어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최근 급등락세를 반복하고 있지만, 지난 6개월간 누적 상승률은 기록적이다. 반면 코스닥은 연초보다 8%가량 떨어졌다. 1월에는 '천스닥' 기대감이 넘쳤으나 최근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코스닥은 차세대 성장 동력인 벤처 기업과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중요한 통로이면서, 동시에 투자자들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시장이다. 하지만 주목받는 기업들이 많지 않고, 거래 대금도 줄면서 2부 리그 취급을 받고 있다. 그 이유로 '반도체 쏠림' 현상을 꼽는 이들이 많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투자가 집중되면서 코스닥이 외면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열풍만으로 최근 코스닥 부진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코스닥에 수익성과 성장성이 풍부한 기업들이 더 많다면 지금처럼 소외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 네이버와 셀트리온 같은 코스닥 유망주들은 이미 코스피로 옮겨갔다. 현재 시가총액 1위인 제약바이오 기업 알테오젠도 코스피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코스닥 기업 중 절반이 수익을 못 낸다고 한다. 검증이 되지 않은 기업들이 상장된 뒤 부실이 커지면서 좀비 기업으로 전락한 사례도 많다. 시장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올 초 '코스닥 3000 시대'를 외쳤던 정부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7월부터 1000원 미만의 동전주가 퇴출당하고, 기업 정보를 제대로 알리는 공시 의무도 강화된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른바 '승강제' 도입이다. 상장 기업을 프리미엄과 스탠더드 등으로 나눠 우량 기업을 투자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처업계는 "현재의 외형만 보고 비우량 기업으로 낙인찍는 것은 코스닥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보다 정교한 제도 설계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벤처 업계에서는 정부의 자금 지원이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쏠리면서 제조업, 바이오, 소재 등 다른 산업이 홀대받는 현실부터 시정해 달라고 호소한다. 코스닥이 부진에서 탈출하려면 퇴출 같은 규제도 필요하지만, 성장 지원은 더욱 중요하다. 예컨대 최근 민관 합동으로 출범한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펀드에서 올해 10조원 규모의 지원금이 코스닥에 유입될 전망이라는데 이를 확대하는 것이다. 코스닥의 경쟁력 회복은 결국 얼마나 많은 유망 기업들이 진입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설]안전·복지 챙겼더니 '진짜 사장'…노란봉투법의 역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 100일을 넘긴 가운데 산업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다수의 하청 노조가 원청 기업에 노사교섭을 요구하면서 대기업들이 여러 노조와 동시에 협상해야 하는 상황은 이미 현실이 됐다. 특히 최근에는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거나 복지 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원청 기업이 '진짜 사장'으로 인정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원청 기업들이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안전, 복지 지원을 줄일 경우 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만든 법이 오히려 이들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실제로 사업장에서 하청 노동자의 음주 여부를 확인하거나 안전수칙 위반 사실을 문자메시지로 통보한 것까지 사용자성 판단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원청 기업으로서는 난처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챙기면 노사교섭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렇다고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안전을 강화할수록 노동관계법상 부담이 커지고, 안전관리를 줄이면 형사처벌 위험이 커지는 모순적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복지 지원도 마찬가지다. 코레일은 하청 직원들에게 제공한 휴게공간이 노사교섭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외부 법률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 노동자를 위해 휴게실을 마련한 일부 대학은 이미 사용자로 인정돼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선의로 제공한 복지 지원이 오히려 새로운 법적 의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이런 논란은 법 도입 당시부터 예견됐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정의를 기존의 '근로계약 당사자'에서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로 넓혔다. 경제계는 그때부터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불명확해 현장의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문제가 생기면 시행 이후 보완하면 된다는 식으로 지난해 법을 통과시켰고, 법은 올해 3월 10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실질적 지배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현장의 사정을 살펴 법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노동위원회는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교섭 요구 대부분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기업들이 기댈 곳은 결국 법원의 판단뿐인 상황이다.노란봉투법은 사용자 정의의 과도한 확대뿐 아니라 구조조정과 조직개편 등 경영판단 영역까지 쟁의 대상을 넓힌 점,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한 점 등으로 도입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원청에 대한 하청 노조의 무리한 교섭 요구 문제가 먼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챙기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던 원청 기업이 예기치 못한 노사협상에 불려 나가야 한다면, 어느 기업이 적극적으로 산업현장 개선에 나서겠는가.노란봉투법은 일단 시행됐지만 전체적인 점검과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재계 지적이다. 다만 당장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은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사용자성 인정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도록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안전점검, 복지 확대 등 하청 노동자에 대한 공익적 조치와 관련해 원청을 사용자로 간주하지 않는 내용을 법과 시행령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사설]수사권 개편 100일 앞, 경찰청장 공석 무슨 곡절인가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이 약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울러 경찰의 권한과 책임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그런데 정작 국가 치안을 책임질 경찰청장은 아직도 공석이다. 조지호 전 경찰청장이 12·3 비상계엄 당시 경찰력을 동원해 국회 봉쇄에 가담한 혐의로 직무가 정지된 뒤 지난해 말 파면됐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후임은 임명되지 않고 있다. 연초만 해도 인선이 임박했다는 관측과 하마평이 무성했지만 여태껏 자리가 비어 있다.현재는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조직을 이끌고 있지만 임시 체제로는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다. 먼저 적극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고 조직 통솔력을 높여야 하지만 직무대행 신분으로는 여의치 않다. 마찬가지 이유로 민감한 수사 현안을 놓고서도 주도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가 최근 성명을 내고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교육시설 확충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현장의 치안 공백과 조직 운영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도 이런 한계 때문이다. 이런 요구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불안정한 대행 체제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평상시에도 경찰 수장의 리더십이 중요하지만, 지금은 특히 그렇다. 10월부터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이 중수청으로 이관되는 대대적인 수사권 재편이 시작된다. 경찰은 중수청으로 이동할 인력의 조정, 관할이 중복될 수 있는 사건의 수사권 조율, 일선 수사경찰의 역량 강화 등 굵직한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직무대행 체제로 감당하기 힘들다. 조직을 대표하는 경찰청장이 전면에서 책임지고 나설 때 혼선을 줄이고 성과를 거둘 수 있다.더욱이 박성주 경찰 국가수사본부장도 이달 말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국회에서 국가수사본부장의 임기 중 정년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추진 중이지만 이달 안에 처리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형사사법 체계의 대전환을 앞둔 시점에 치안과 수사의 양대 컨트롤타워인 경찰청장과 국가수사본부장이 동시에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그런데도 정부는 경찰청장을 왜 임명하지 않는지, 공백이 장기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적임자를 계속 찾고 있는 것인지, 다른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것인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경찰 조직의 불안은 커지고 불필요한 의구심만 확산될 수 있다. 경찰청장 임명을 늦출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면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형사사법 체계의 대전환을 앞둔 지금, 경찰 수장의 공백부터 서둘러 메워야 한다.
[사설]정부, 호남·충청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정치 논리는 안된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이 2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비수도권 반도체 단지 조성 문제와 관련해 "논의 마무리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며 "확정되면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도권에 더 지으려 해도 땅도, 전력도, 용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외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수도권 제2 반도체 클러스터 참여를 사실상 확인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 실장은 "수도권에 짓고 있는 공장을 옮기는 게 아니다"고 했다. 이미 진행중인 경기도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와는 별개라는 것이다.청와대는 29일 '국토 공간 대전환' 민관 합동 회의를 열 예정인데, 두 기업은 이를 계기로 반도체 투자 구상을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관련 내용을 논의했고, 25일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도 만난다. 당초 두 기업은 반도체 칩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을 지방에 세우는 것을 검토해 왔다. 하지만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최첨단 회로를 그리는 팹(전 공정)까지 구축하는 방안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달 1일 출범하는 전남광주특별시와 새만금, 충남 일대 등이 대상지로 거론된다.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 하나를 구축하는데 최소 60조 원이 든다고 한다. 비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5∼10년에 걸쳐 수 백 조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도체 투자유치 공약이 쏟아졌을 때 기업의 판단에 맡겨야 할 투자 결정에 정치가 개입하는 데 대한 경제계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반도체 투자 결정 과정이 충분히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말로는 "기업이 결정할 사안"이라면서도 시기나 규모, 지역 선정 등에 대한 각종 주문을 쏟아내며 기업을 압박하는 모양새였다. 이에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정치권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기업의 투자 결정은 경제적 타당성과 기업 경쟁력 차원에서 충분히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였다.인공지능(AI) 시대의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해 메모리 반도체 설비확장이 급한 건 사실이다. 수도권에 편중된 제조업 투자를 다른 지역으로 분산해 지역균형 발전을 제고해야 한다는 논리도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정책 목표와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돼 새 시설이 초격차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호남·충청 지역의 전력 사정이 수도권보다는 낫지만, 생산전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양광·풍력 체계만으로 1년 365일 반도체 시설을 안정적으로 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발전 설비 확충과 용수 확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규모 투자가 기대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지방근무를 기피하는 인재 확보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는 국가 전략 산업이다. '정무적 판단'으로 투자를 성급히 결정할 일이 아니다. 기업이 내려가면 어떻게든 조건은 만들어질 것이라는 식은 곤란하다. 전력·용수 공급, 정주 여건 등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한 '후회없는 선택'이 어떤 길인지 차분히 생각해볼 일이다.
[사설]현대차 파업 가결…AI 시대, 중국 자동차는 질주하는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이 24일 전체 조합원 3만9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쟁의행위(파업) 찬반투표가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올해 11차례 진행된 임금협상이 난항을 겪자 합법적 쟁의권 확보에 나선 것이다. 노조는 지난해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인공지능(AI) 관련 고용 및 노동조건 보장, 정년 최장 65세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최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의 억대 성과급 논란이 결국 자동차 업계로 도미노처럼 확산하면서 쟁의 대상에 오른 것 자체가 우려스런 일이다. 반도체 업계 사례에서도 확인됐듯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떼어주는 'N% 성과급'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기업 경쟁력과 투자, 주주 가치, 노동 보상, 사회적 수용성 등이 걸린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냉정하고 책임 있는 접근이 요구된다.AI 관련 고용 및 노동조건 보장은 전 세계도 주목하는 미래형 논쟁 사안인 것은 맞다. 로봇과 AI가 결합한 자율화 스마트 공장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사의 AI 관련 고용 및 노동조건 협상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공장 자율화의 기준을 정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스마트 공장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사려 깊은 논의와 장기적 관점의 협상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번 파업안 가결은 중국의 질주라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 환경의 급변과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생존 차원에서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배터리 공급망과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전기차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자동차 수출량에서 2020년대 초반 한국을 추월한 데 이어 현재 글로벌 신차 수출 1위로 떠올랐다. BYD 등 중국 브랜드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현지 브랜드의 급성장 속에 중국 내 점유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충칭 공장을 매각하는 등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차 노조가 임금과 성과급, 고용환경을 놓고 당장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돼선 안 될 이유가 한둘이 아니다. AI와 로봇이 바꾸는 생산 현장의 미래, 그리고 중국의 거센 추격이라는 산업 환경의 구조적 변화를 직시하며 미래 지향적 교섭을 해야 한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외부의 칼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사설]김정은 "세계 압도 핵 강화" … 냉철한 대북정책 절실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우리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보유 추진과 북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위한 한·미 핵협의그룹(NCG) 활동을 비난하며 한반도 정세를 "극도로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핵 무력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세계를 압도할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며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로 하려는 의도를 재차 드러냈다. 북한 국무위원장이기도 한 김 총비서는 지난 20∼22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북한 지도자의 핵 위협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 발언은 노동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전원회의에서 나왔다는 점, 그리고 핵전력뿐 아니라 재래식 군사력 증강까지 함께 강조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특히 1만t급 전략유도탄순양함 건조 사업에 속도를 내라고 지시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이 군함이 실전 배치될 경우 핵탄두 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운용이 가능한 전략자산으로 활용돼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미국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러시아 파병의 대가로 확보한 군사기술 등을 바탕으로 핵전력과 재래식 전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이미 헌법 개정을 통해 통일 조항을 삭제하고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도 김 총비서는 대남 적대 노선을 재확인하며 남부 국경(군사분계선·MDL) 요새화 공사와 해군 기지 건설 등에 박차를 가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MDL 일대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라는 김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그동안 철조망 설치와 지뢰 매립으로 비무장지대(DMZ)를 사실상 무장지대로 만들어온 북한이 군사적 대결 구도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이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추진해온 대화 재개 노력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 신호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은 최근 유럽 순방 중 교황 레오 14세에게 북한 방문을 제안하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북·미 대화 재개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대화 분위기 조성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호응하기보다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군사력 증강 의지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북한이 이런 태도를 지속한다면 '한반도 평화 공존'을 기조로 한 정부의 대북정책도 현실에 맞는 점검이 불가피하다. 북한 도발에 대응할 독자적 억제력 및 방위태세 강화와 한·미 동맹 기반의 협력 체제 공고화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의 원잠 보유 추진과 한·미 NCG에 대한 김 총비서의 공개 비난은 역설적으로 그 필요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2일 '2026 국제 한반도 포럼' 개회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생일을 계기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통일부 장관이라면 막연한 추측보다 공신력 있는 정보와 냉철한 정세 판단을 바탕으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 북한이 핵과 재래식 전력을 앞세워 대남 위협을 노골화하는 상황일수록 정부의 언행은 더욱 정교하고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사설]"2배 ETF, 드러누워 막을 걸" … 이제라도 면밀한 대책을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22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과 관련해 "어떻게든 그때 드러누워서 막았어야 했나 개인적으로 반성하는 상황이고, 후회를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삼전닉스' 주가가 상승 또는 하락할 때 2배를 반영하는 ETF를 도입한 후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증권사만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는 비판을 인정한 것이다. 금감원장이 공개적으로 '반성' '후회' 등의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지만, 5월 말 도입 당시 증시의 투기성을 키울 거란 지적과 우려가 적지 않았던 만큼 책임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삼전닉스 2배 ETF의 부작용은 날로 커지고 있다. 2배의 수익을 기대하고 상품을 샀다가 반복되는 등락 과정에서 이른바 '음(陰)의 복리효과'로 원금이 녹아나는 투자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시가총액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코스피는 2배 ETF 허용 후 변동성이 더 커졌다. 실제로 거래 시작 직후부터 2배 ETF에는 투자자들의 돈이 폭발적으로 유입됐다. 하루 거래대금이 100조 원을 훌쩍 넘겼고, 거래 회전율도 100%를 크게 웃돌아 매일 한 번 이상 손 바꿈이 일어났다. 그 사이 증권사들은 꼬박꼬박 매매 수수료를 떼어 적게는 5조 원, 많게는 10조 원의 수익을 챙긴 것으로 추산된다. 금감원이 뒤늦게 소비자경보를 발령하며 하루 최대 60%까지 손실을 볼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이미 많은 투자자들이 위험에 노출된 뒤였다. 가뜩이나 출럼임이 심한 코스피는 2배 ETF 도입 후 하루 4∼5% 등락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변동성이 커져 '선진국 증시'란 말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시장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그 전제는 투자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위험이 관리되는 시장이어야 한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늦었지만 정책의 문제점을 면밀히 따져보고 투자자 보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 주식시장을 띄우겠다는 의욕이 앞서면서 투기성 강한 금융상품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금융당국이 간과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사설]'재정 고삐' 얘기않고 증세로 집값 잡겠다는 정부
수도권 집값을 겨냥한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강화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보유세가 서구 선진국보다 낮다고 했고,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SNS에 올린 글에서 부동산세제 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도체, 증시 호황으로 급증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에 흘러드는 걸 막으려면 부동산 증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반도체가 벌어온 국부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흡수되고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 집중된다면 호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보유세와 양도소득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건 필요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했다. 임광현 국세청장도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필요성을 언급했다. 7월 말 정부가 내놓을 세제개편안에 '초고가 1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중과, 임대 사업자 양도세 특혜 축소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정책 당국자들이 부동산 세제개편을 강조하는 건 수도권 집값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지난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는 71주 연속 올랐고, 월세도 36개월 연속 상승했다. 아파트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식으로 번 돈, 반도체 기업의 억대 성과급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돼 매매·전세·월세의 '트리플 강세'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넘치는 유동성이 집값을 흔드는 일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수도권 2기 신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10개 혁신도시 개발이 함께 진행되면서 5년간 약 100조 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렸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로 2021, 2022년 한 해 30조 원 안팎이 보상금으로 지급됐다. 이렇게 풀린 돈은 다주택자 보유세 강화 정책과 맞물려 수도권 집값은 물론이고, 서울의 '똘똘한 아파트 한 채' 값을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올해 정부 본예산은 작년보다 54조7000억 원 늘어난 '슈퍼 확장 예산'이다. 26조2000억 원의 '전쟁 추경'이 추가돼 올해 예정된 정부 지출만 753조 원으로 늘었다. 반도체, 증시 호황의 영향으로 수십 조 원의 세금이 더 걷힐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지방선거 과정에서 '5극 3특(5개 초광역권·3개 특별자치도)'을 비롯해 전국 다수의 지방자치단체에 약속한 재정 투자 계획까지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시중에 더 풀릴 가능성이 높다. 김 정책실장은 넘치는 유동성의 영향이 본격화하는 시점을 놓고 "진짜 고비는 연말과 내년 초"라며 "과거를 돌아보면 이런 돈은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드는 경향을 반복해 왔다"고 했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면 부동산 세제를 손보기 전에 확장적 재정이 유동성을 더 늘리는 건 아닌지, 이미 닥쳐온 인플레이션 시대에 재정의 고삐부터 죄어야 하는 건 아닌지를 냉정하게 점검해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사설]"민주당의 시계는 움직이질 않는다"
22일 공개된 리얼미터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40%대로 떨어졌다. 오차범위 내에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이른바 '데드크로스'도 처음 나타났다. 지난주 발표된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조금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조사 방식과 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시점에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점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당·청 갈등, 여권 내부의 볼썽사나운 권력 다툼을 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6·3 지방선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찜찜한 성적을 거두고도 집권 세력 내부는 반성과 심기일전은커녕 책임론 등을 놓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 대통령은 정 대표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과 SNS 글로 당·청 갈등 논란을 키워왔고, 정 대표도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는 말로 청와대에 맞섰다.이 모든 것엔 결국 차기 당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깔려 있다. '당원 1인 1표제'를 바탕으로 당내에 독자 세력을 구축한 정 대표는 당권 도전 의사를 숨기지 않고 있고, 친명계는 정 대표가 당권을 거머쥘 경우 사실상 이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이 현실화될 것이라며 불출마를 견제하는 형국이다. 그 사이 당원들은 친명과 친청으로 갈려 서로를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수준의 '멸칭'까지 동원하며 사실상 '내전'을 벌이고 있다.유력한 당권 후보로 거론됐던 우원식 전 국회의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던진 메시지는 곱씹어볼 만하다. 우 전 의장은 "누구를 위한 민주당인가, 무엇을 위한 전당대회인가"라며 "김대중 대통령이 시작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지금의 민주당이 그 민주당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꿈이 담긴 전국정당, 지금의 민주당이 그 민주당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민생은 하루도 쉬지 않는데 민주당의 시계는 움직이질 않는다"고 지적했다.여권이 새겨 들어야 할 내부 경고다. 국제 정세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고 안보 환경도 녹록지 않다. 고물가와 고유가, 전·월세 상승 등 민생의 어려움도 계속되고 있다. 산적한 국정 과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내려면 당·청이 힘을 모아도 부족할 판이다. 작금의 지지율 추이를 일시적 등락으로 치부한다면 더 큰 후회로 이어질 수 있다. 당·청 갈등과 당권 다툼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여권은 '민생 시계'부터 다시 돌려야 한다.
[사설]고개 숙인 '모두의 창업'…민간 해킹처럼 엄정히 다뤄야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과정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한 후보자는 프로젝트를 총괄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서 "정부를 믿고 창업에 도전한 분들의 신뢰를 지켜드리지 못했다"며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총리 인사청문회를 준비 중인 상황에서 직접 고개를 숙인 것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정부의 관리 책임 문제로 번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모두의 창업'은 국민 누구나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추진된 사업이다. 6만3000명의 지원자가 몰릴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고, 이재명 대통령도 "큰 성과에 감사하다"고 치하했다. 그러나 1차 합격자 5000명을 선정한 뒤 이들의 이메일 주소와 사업 아이디어를 요약한 정보 등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파장이 커졌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정부를 믿고 제출한 소중한 정보가 허술한 관리 속에 노출된 것이다.더욱 심각한 점은 이번 사고가 외부 해킹이 아니라 참가자 지원을 위해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한 솔루션 업체의 소행으로 파악됐다는 사실이다. 해당 업체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개인정보에 접근해 자료를 확보한 뒤 합격자들에게 홍보 메일까지 발송했다고 한다. 익명의 국내외 해커가 서버를 공격하는 일반적인 사례와 달리, 정부 사업에 참여한 기업이 정보 유출의 당사자가 됐다. 해당 업체를 어떤 기준과 절차로 선정했는지, 참여 기업들에 대한 보안 점검과 감독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유출 파문에 앞서 진행된 프로젝트 출범식 현장은 창업에 대한 열정과 희망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합격자들은 창업 경험이 전무한 30대 신혼부부, 카이스트에서 공부한 태국인, 부도 경험이 있던 60대 남성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고 참여했다. 모두가 수개월, 수년을 준비하고 고민한 사업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이런 무형의 지적 재산을 다루는 프로젝트라면 무엇보다 철저한 보안 체계가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일각에선 정보 유출 조짐이 한 달 전부터 있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보안 의식과 대응 전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정부는 한 총리의 사과 직후 창업자 아이디어를 전자문서 형태의 영업비밀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원인 규명도 분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유출 경위를 제대로 파악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책임 소재도 분명해진다. 정부는 민간 기업이 해킹으로 뚫리면 막대한 과징금을 매기고 재발 방지 대책을 주문한다. 그런 정부가 직접 추진한 사업에서 벌어진 사고라면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사설]한성숙도 '증인·참고인 0명'…'맹탕 청문회' 안된다
25~26일 열리는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가 증인·참고인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11명의 증인·참고인을 신청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모두 반대했다. 총리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이후 증인·참고인 없이 열린 사례는 지난해 김민석 총리 청문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후보자만 출석하는 청문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국무총리는 행정 각부를 통할하며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한 후보자는 민간 기업인 네이버에서 활동하다 이재명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장관 재직 기간이 약 1년에 불과해 총리로서의 국정 운영 능력과 공직 가치관, 국가관 등을 충분히 검증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만큼 민간 기업인 시절의 의사결정과 리더십은 총리 자질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 만큼 다각도의 검증이 필요하다.제기된 의혹도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네이버가 성남FC에 39억원의 광고비를 후원한 경위, 본인 소유의 서울 종로구 연건동 건물을 동생에게 헐값으로 임대했다는 의혹 등이다. 다주택 논란 역시 남아 있다. 장관 임명 당시 4주택자였는데 총리 지명 즈음 1채를 매각했으며 나머지도 처분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자료 제출률이 37%에 그쳤고, 당시 "임명 후 소명하겠다"고 했던 약속이 여전히 미이행 상태라는 지적도 나온다.국민의힘은 한 후보자의 남동생과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등을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지만 민주당은 "신상 털기이자 정권 흠집 내기"라며 전면 거부했다. 한 후보자 관련 의혹은 지난해 장관 청문회에서 이미 충분히 다뤄졌다는 것이다. 야당의 요구에 정치 공세 성격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증인·참고인 한 명 없이 후보자 답변에만 의존하는 청문회로 실질적인 검증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불과 석 달 전 자신들이 추진한 '조작기소 의혹 국정조사'에서는 야당 반대에도 102명의 증인을 채택한 바 있다. 사안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연이은 '증인 없는 청문회'는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의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런 관행이 굳어진다면 국회의 인사검증 시스템 자체를 무력화될 우려도 있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이 대통령은 청와대 브리핑에서 민주당의 역할에 대해 "좀 더 포용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국회 운영 과정에서부터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번 청문회가 '맹탕'으로 흐른다면 국민은 뭐가 달라졌는지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사설]美 의회 전작권 견제 강화…조건·역량 충분히 갖추란 의미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대한 견제를 강화한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을 가결했다. 법안은 내년 3월부터 2030년까지 90일마다 미 국방장관이 '한미 전작권 전환 로드맵' 이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합참의장과 인도태평양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의 독립적인 군사 위험 평가를 요구한 것도 눈에 띈다. 한국의 전작권 전환 상황을 의회 차원에서 확인하고 검증하겠다는 차원이다. 우리 정부는 임기 내 전환을 염두에 둔 일정 관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안규백 국방장관은 최근 "부부간에도 생각이 다른데, 나라와 나라 사이 의견이 동일할 수 있겠느냐"며 한미 간 이견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올 연말 한·미 양국 대통령에게 전환 시기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미래연합사 완전운용능력 검증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종 단계인 완전임무수행능력 평가를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양국 정부가 합의하더라도 미국 의회의 검증 절차를 우회한 속도전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한반도 안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고도화되고 있고, 북·중·러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 역시 중동, 우크라이나, 인도태평양 등에서 전략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한미동맹의 안정성과 연합방위 태세는 흔들림 없이 유지돼야 한다. 전작권 전환이 동맹 약화나 지휘 공백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전작권 전환은 군사 주권 회복이라는 상징성을 갖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질적 억지력이다. 북한 위협에 독자적으로 대응할 감시·정찰 능력과 지휘·통제 체계, 핵심 전력 운용 능력이 충분히 갖춰졌는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정치적 시간표가 군사적 조건을 대신할 수는 없다. 최근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방비 증액과 자주국방 기조를 설명한 것 역시 역량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부는 조급한 일정보다 능력 검증과 한미 간 충분한 협의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 의회의 강화된 검증 요구 역시 동맹의 불신이 아니라 전환 조건을 분명히 하라는 현실적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한 자주국방은 선언이 아니라 준비된 능력과 굳건한 동맹 위에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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