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초고가 주택, 상응하는 부담"… 보유세 인상 과속 없어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가 23일 열렸다. 부동산 전문가와 실수요자, 공인중개사, 부동산 유튜버, 맘카페 운영진 등 14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3시간 넘게 진행됐다. 정부의 내년도 세제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열린 이번 토론회의 최대 관심사는 이른바 '초고가 아파트'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커질 것인지, 세부담을 늘린다면 얼마 이상 가격의 아파트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였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 대통령은 '초고가 주택'과 관련해 "억지로 집값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사회적 부담을 상응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1주택자라도 이른바 초고가의 '똘똘한 한 채'에 대해선 보유세 부담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다만 "보유세를 통상적인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려면 최하 3배는 올려야 한다"면서도 "지금 당장 3배를 올리면 거의 폭동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나"라고 했다. 보유세 실효세율을 높일 방침이지만, 인상의 속도는 조절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보유세를 차등 부과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내놨다. 일반적인 1주택을 기준으로 '적정 기본 보유 부담'을 정한 뒤 호화·초고가 주택, 다주택, 명백한 투기 목적의 비거주 주택에는 가중 요소를 더하고, 실거주 용도나 서민·중산층용 주택, 지방 지역 요인에는 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일정 가격 이상의 고가 아파트에 종부세, 재산세를 더 물리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간 세제개편 구상인데,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규제 완화, 용적률 확대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촉진하겠다는 서울시의 주택공급 계획과 중앙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부딪힐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정비사업과 관련해 "총 가구 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며 공급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토론회 참석자는 "가구 수가 줄더라도 주택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신축 아파트를 공급하는 효과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다른 의견을 내기도 했다. 참석자들의 민원성 의견에도 일일이 대응하느라 핵심 쟁점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지지 못한 게 이날 행사의 한계였다.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매매·전세·월세 '트리플 강세'를 초래한 데 대한 부동산 당국의 반성이 없었다는 점도 아쉽다. 부동산 당국은 '정부 입맛'에 다소 맞지 않더라도 합리적, 건설적인 국민 제안들을 잘 골라내 향후 내놓을 세제 개편안, 주택공급 대책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포퓰리즘 성격의 정책도 경계해야 한다.
[사설]서울시장 '사법리스크' 현실화… 시정 혼란은 없어야
법원이 22일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시장직 상실형인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오 시장이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명태균 씨로부터 비공표 여론조사를 제공받고, 후원자인 사업가 김한정 씨를 통해 비용을 대신 지급하도록 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선출직 공직자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을 잃는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오 시장은 시장직 상실은 물론 차기 대선 출마도 불가능해진다. 5선 서울시장이자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 주자인 오 시장으로서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오 시장은 '정치 브로커' 명씨에게서 총 10차례(비공표용 7회 포함)에 걸쳐 여론조사 결과를 받고 비용 3300만원을 김씨에게 대신 내게 한 혐의로 작년 12월 기소됐다. 오 시장은 2021년 2월쯤 명씨와의 관계가 이미 단절된 상태였고, 김씨가 오 시장 모르게 자발적으로 명씨에게 여론조사비 일부를 지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할 동기가 있었고, 김씨가 오 시장의 요청 없이 비용을 대신 지급할 이유가 없었다고 봤다. 특검이 문제 삼은 10차례의 여론조사 가운데 5차례, 2100만 원 상당의 비용 대납이 인정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오 시장은 "천하의 거짓말쟁이 명태균의 진술과 간접 증거만으로 선고됐다"며 "항소심에서 다툴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1심 판단인 만큼 최종 결론은 상급심에서 가려질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재판부가 지적했듯 선거 비용 보전 제한을 피하고자 비공표 여론조사를 활용하고, 추후 제3자나 뒷돈으로 비용을 정산하는 관행이 사실이라면 이는 공정한 선거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다. 선거철마다 여론조사를 둘러싼 편법과 정치 브로커의 개입이 반복된다면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은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오 시장 개인에게도 이번 판결의 정치적 후폭풍은 적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지만, 시장직 상실 가능성이라는 '사법 리스크'를 안고 시정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도 피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수도 행정을 책임지는 지방자치단체다. 주요 정책과 현안이 재판 문제로 흔들려서는 시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오 시장은 항소심에서 충분히 법적 주장을 펼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법정 공방과 시정 운영은 별개의 문제다. 사법 절차는 법원에 맡기되, 서울시 행정만큼은 한 치의 공백도 없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이번 판결을 정치적 유불리로만 해석할 게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각종 불법 편법 관행 실태를 면밀히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설]구속영장도 법치의 원칙 안에서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마련된 지방선거 개표소에서 체육단체 직원들의 출입을 막은 30대 여성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동부지법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A씨는 지난달 16일 개표소 봉쇄에 나선 시위대와 체육단체가 내부 진입에 합의한 뒤에도, 혼자서 2시간 동안 문 손잡이를 붙잡고 버텼다. 그 여파로 업무에 필요한 물품을 반출하려던 체육단체의 시도 역시 무산됐다. A씨 행위에 대해 수사기관은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신병 확보가 없어도 수사를 계속하고 재판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속 영장은 기각됐지만 A씨의 행위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이 대목에서 A씨의 범죄 혐의와는 별개로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정치적·이념적 논란이 아니라 인신 구속이라는 '제도의 영역'에서다. 그게 누구든, 국가가 개인의 신체 자유를 제한하는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은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는 이유만으로 구속할 수 없도록 엄격한 요건을 두고 있다.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야 한다. 나아가 범죄의 중대성이나 재범 위험성, 피해자 위해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구속은 처벌이 아니라 재판과 수사를 위한 예외적 강제처분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구속영장이 마치 유죄 판결의 예고편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꼭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일수록 "구속은 곧 사회정의 실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수사기관 역시 구속 여부를 수사의 성패처럼 여기곤 한다. '영장부터 청구하고 보자'는 식의 관행이 반복돼 왔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과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사건 당시 검찰과 법원의 신경전도 이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검찰은 유모 대표에 대해 주가조작 혐의로 네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도주 우려 등이 없다며 모두 기각했다. 그렇다고 사법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 및 재판이 진행됐고, 대법원은 결국 유죄를 확정했다. 구속 여부와 유무죄는 별개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조건부 구속·석방 제도가 담긴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되 전자팔찌 부착 등 일정한 조건 아래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법원이 "형사사법의 중심이 영장 단계에 집중되고 정작 재판은 관심에서 멀어지는 비정상적 상황"이라고 지적한 것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구속 여부가 아니라 충실한 수사와 공정한 재판이 형사사법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A씨의 행위는 법과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판단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적 책임을 묻는 일과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구분돼야 한다. 국가가 개인의 신체와 자유를 제한할 때도 끝까지 원칙과 절차를 지키는 것, 바로 그것이 법치주의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길이다.
[사설]국회 50여일만 정상화…이젠 민생 협치에 진력하길
국회가 50여일 만에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됐다. 국민의힘이 21일 의원총회를 열어 여야가 합의한 선거관리위원회 특검 추천 절차를 추인하고 국회 원 구성에 복귀하기로 한것이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인 상임위원장 선출에 반발해 국회 일정을 보이콧한 지 3주일 만이다. 국민의힘은 "법사위를 일방적으로 가져간 민주당의 행태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시급한 현안을 외면할 수 없어 복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국회가 정상 가동의 첫걸음을 떼게 된 것은 다행이다.여야는 원 구성 협상 초반부터 법제사법위원장을 서로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며 대립했다. 결국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법사위를 비롯한 11개 상임위원회·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단독 선출했고, 국민의힘은 상임위 전면 불참으로 맞섰다. 이후 민주당은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와 특위를 단독 가동했고, 국민의힘은 장외에서 비판만 이어갔다. 3주 가까이 이어진 여야 대치는 선관위 특검법 합의로 물꼬를 트게 됐다. 양당은 특검 추천 방식을 놓고 이견을 보여왔으나 여야 합의로 추천하되 야당이 반대할 경우 여당이 특검을 일방적으로 추천할 수 없도록 하는 절충점을 찾은 것이다.국회는 일단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됐지만, 향후 원활하게 운영될지는 미지수다. 양당은 앞서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해병) 이후 남은 의혹을 수사하는 2차 종합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 등을 담은 특검법안을 놓고도 대치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맞섰지만 민주당은 조국혁신당 등의 협조를 받아 이날 본회의에서 특검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이 과정에서 무기력하게 물러섰고 선관위 특검 합의를 명분으로 국회에 복귀한 셈이다. 또다시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 독주와 이에 맞선 보이콧 정치가 반복된다면 협치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그동안 국회 파행으로 상임위를 통과한 민생 법안 59건의 처리가 지연됐다. 그 사이 중동 정세는 다시 불안해졌으며 민생 경제의 어려움도 깊어지고 있다. 국회가 정쟁에 발이 묶여 있을 여유가 없다. 민주당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의회 운영에서 벗어나 야당과의 협의와 타협을 복원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국회 복귀를 계기로 책임 있는 대안 야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번 국회 정상화가 실질적인 민생 협치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설]부동산 토론회, "정해진 답은 없다"는 열린 자세로 임해야
23일 대통령 주재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앞두고 의견수렴을 위해 개설된 홈페이지에 3000건이 훌쩍 넘는 국민 제안이 올라왔다. 대출길이 막혀 신혼집 잔금을 못 치르게 됐다는 청년의 하소연, 높은 보유세를 감당하기 힘겹다는 고령 은퇴자의 호소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이번 토론회는 그 자체가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난관에 부딪쳤다는 반증이다.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부동산 정책을 '2배속'으로 추진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1년여 만에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들을 잇달아 내놨다. 그런데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 상승세는 여전하고, 전세·월세 가격까지 급등해 서민·중산층의 주거 사정이 팍팍해지고 있다.작년 정부 출범 직후 나온 '6·27 대책'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고, 다주택자 대출을 전면 금지했지만 '똘똘한 한 채' 쏠림을 차단하지 못했다. 수도권에 2030년까지 135만 채 주택을 공급한다는 '9·7 대책'도 성과가 아직 불확실하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3중 규제지역'으로 묶고, 주담대 한도를 집값에 따라 2억∼6억 원으로 줄인 '10·15 대책'은 규제지역 안에선 '거래 절벽'을, 인접 지역에는 '풍선 효과'를 초래했다.올해 1월부터는 이 대통령이 직접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비거주 1주택자 세금 차등부과 등의 메시지를 냈다. 그런데도 6월 이후 부동산 시장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정답을 모두 알고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면서 청와대가 국민과 전문가를 초청해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토론회 홈페이지에는 금융당국의 대출 총량규제를 받는 은행들이 주담대 한도를 줄이거나 대출을 중단해 내 집 마련 꿈을 접게 됐다는 사연이 적지 않다. "집값이 오른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징벌적 과세로 실거주하는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고령 은퇴자의 글도 있었다. 합쳐서 6억 원이 안 되는 빌라 두 채를 보유했다고 다주택자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받아야 하느냐는 불만도 제기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미 나온 의견들뿐 아니라 현장에서 제기될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정책 방향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열린 자세로 토론회에 임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주문한 "속도감 있는 공급 대책, 현실에 부합하는 실수요자 지원 대책"도 그런 맥락에서 구체화돼야 한다. 민간 재건축·재개발을 배제한 공공 주도의 주택공급, 거래세 조정이 없는 보유세의 강화, 초고가 주택과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 등을 '정답'으로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자리가 돼선 곤란하다.
[사설]4만弗 문턱에 선 韓…분배 유혹 넘어 5만弗 도약으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 진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1500원대 고공행진을 최근 멈춘 원-달러 환율만 뒷받침해준다면 연내에 4만 달러 달성도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고속 질주하는데, 그 외 산업은 추진력을 잃어가는 'K자형 성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일부 첨단산업 덕에 국민의 평균 소득은 높아지는데, 청년 일자리는 줄고 서민의 삶이 팍팍해진다면 어렵게 맞은 4만 달러 시대의 의미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인당 GDP는 작년보다 7.6% 늘어난 3만9164달러로 4만 달러에 약간 못 미칠 전망이다. 다만 올해 들어 현재까지 1487원인 원-달러 평균 환율이 하반기 중 하락해 연평균 환율이 1456.1원 아래로 떨어지면 올해 사상 처음 4만 달러를 넘길 수 있다.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서비스의 달러 환산 가격이 높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올해 1인당 소득이 4만 달러를 넘는다면 2014년 처음 3만 달러를 돌파한 후 12년 만이다.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돌파한 이른바 '4050클럽'에 진입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5개국뿐이다. 이중 일본은 몇년 전부터 엔화 약세로 3만 달러대로 내려앉은 상태다. 대만은 TSMC 등 반도체 기업의 약진으로 올해 4만5000달러를 돌파하며 한국과 격차를 벌릴 전망이지만 인구 규모는 한국의 절반에 못 미친다.4050클럽 진입은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서 한국의 면모를 확인시켜줄 좋은 계기다. 하지만 그 이면에 걱정도 커지고 있다. 한국 제조업 중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30% 수준에서 올해 1분기 51%로 높아졌는데, 전체 고용 중 IT 제조업 종사자 비중은 2.6%뿐이다. 대규모 장치산업인 반도체로는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의미다. 급속한 AI 전환마저 청년층이 선호하는 IT 기업 신규 일자리를 빠르게 위축시키고 있다.우리 경제가 4만 달러 이후를 기약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초호황의 '일시적 과실'을 차세대반도체, 소형모듈원전(SMR), 바이오 등 새 성장동력과 기술혁신에 과감히 재투자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의 보고인 금융·의료 등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호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노조·주주·지역사회가 기업 이익에 대해 분배 요구를 먼저 쏟아내는 게 현실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기업더러 투자하라고 하지만, 성장하는 기업을 도와주는 제도는 많지 않다"고 토로할 정도로 기업 발목을 잡는 규제 문제도 여전하다.이런 상황을 놓고 한국은행은 1960년대 북해 천연가스 발견의 횡재를 맞은 뒤 오히려 인플레이션, 수출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호되게 고생한 네덜란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막대한 이익과 추가 세수가 '한국형 자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 경제에 모처럼 찾아온 미래 투자의 기회를 5만 달러·6만 달러 도약의 발판으로 만들지 못하고 제풀에 주저앉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설]학교만큼은 알고리즘에서 벗어나게…
초중고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동안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제도가 9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앞서 3월부터 '수업 시간'에 한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됐다. 하지만 수업 이외의 시간에 대해선 스마트폰 소지와 사용 등 제한 기준을 학교 자율에 맡기다 보니 정책 효과가 떨어졌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따라 교육부가 2학기부터 전국의 폭력예방 선도학교 200곳을 대상으로 먼저 스마트폰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학생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은 통계로 드러나고 있다. 10~19세 청소년의 과의존 비율은 40%에 달할 정도다. 과의존은 정신 건강은 물론 학습, 대인 관계, 일상적 삶 등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미 수업 방해 정도의 사안을 넘어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일각에선 스마트폰 규제가 학생들의 선택권과 자율권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지만, 과의존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특히 과의존은 학생의 자발적 교정이나 부모, 교사의 훈육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적인 교육 시스템이 개입할 이유가 충분하다. 실제로 숏폼과 소셜 미디어에서 유사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하는 알고리즘은 아이들이 통제하기 어렵다. 현재 10대의 동영상 플랫폼 시청은 하루 3시간을 넘는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 이용률도 70%에 달하며 절반은 매일 접속한다. 이런 습관이 학교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실태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시범 학교 제도가 성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실효성을 담보할 세부 기준과 운영 방안이 중요하다. 앞서 스마트폰 규제에 나선 학교에선 학생들이 여분으로 준비한 이른바 '공폰'을 제출한 뒤 따로 숨겨둔 '몰폰'을 사용하는 꼼수도 나왔다고 한다. 특히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하지 않는 시간에 다른 활동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병행돼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폰 프리(Phone free) 스쿨' 정책을 선언하고 문학, 예술, 스포츠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는데 참고할만하다.이번 교육부 정책은 정부의 '소셜 미디어' 사용 규제와도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14세 미만의 소셜 미디어 가입을 제한하고, 19세까지는 알고리즘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 이용 자체가 제한될 경우, 학생들의 교내 스마트폰 사용도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정책은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아이들을 좀 더 '현실 세계'에 머물도록 하자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학교만큼은 학생들이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학습과 또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번 시범 운영이 그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사설]정쟁의 도구가 된 혐오, 딥페이크 범죄까지 키웠다
얼마 전 한 여성 국회의원을 겨냥한 모욕적 딥페이크 이미지 유포 사건은 우리 사회에 혐오와 조롱이 얼마나 깊숙이 퍼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특히 혐오의 확산에 정치가 얼마나 큰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운 사건이었다. 이는 정치적 풍자로 치부할 수 없는 중대한 디지털 성범죄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인공지능 창작물이 지닌 위험성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동행미디어 시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혐오와 조롱에 짓밟히는 인격권'이라는 주제로 3회에 걸쳐 보도한 '시대 리포트'에서 지적했듯, 이번 사건은 가해 혐의자가 같은 정당 소속 당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전당대회를 앞둔 당권 경쟁 과정에서 동료를 겨냥해 저질스러운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정치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상대 정치인을 비판하고 공격할 수는 있지만, 상대의 인격을 짓밟는 폭력만큼은 결코 정치의 이름으로 용인돼서는 안 된다.민주당이 해당 당원을 즉각 제명했지만, 이는 정당 내부의 징계로 끝날 일이 아니다. 비단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다. 딥페이크 범죄가 급증한 데에는 정치권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상대 진영을 겨냥한 가짜뉴스와 악의적 편집 영상을 묵인하거나 정쟁의 도구로 소비해 왔다. 그 과정에서 혐오를 동원한 정치가 반복됐고, 디지털 범죄의 토양도 함께 커졌다. 딥페이크 기술이 허위정보를 넘어 성범죄물로까지 진화해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까지 정치권 역시 이를 방조하고 증폭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정치의 본령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통합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배재고 응원가' 논란이나 스타벅스 '탱크 데이' 마케팅 논란에서 드러났듯 혐오와 진영 대결을 부추기며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하고 갈등을 심화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인격 살해'나 다름없는 이번 딥페이크 사건 역시 그런 왜곡된 정치 풍토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한다.그동안 정부도 정치권도 디지털 범죄 기술의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실효성 없는 사후 처벌에만 의존해 왔다. 해외 플랫폼의 비협조를 핑계로 국민을 사실상 사각지대에 방치하면서 불법 콘텐츠에 대한 제재는 턱없이 미흡했다. '인격권' 보호를 위한 사전 예방, 실행 가능한 차단·삭제 장치 등 딥페이크 피해 방지 법안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혐오와 조롱을 정치적 동원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정치권의 초당적 자정 선언도 뒤따라야 한다. 정치만 달라져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사설]눈덩이 기초연금, 더 늦기 전에 손봐야
정부가 노인 소득보장 제도인 기초연금의 지원 금액과 지원 대상을 제도 시행 12년 만에 손질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16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현재 수급자 모두에게 월 34만9700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저소득층에 더 많이 주는 하후상박 방식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소득 하위 70%인 수급자 선정 기준도 '기준중위소득'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기준중위소득은 전 가구를 소득수준으로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기초생활보장·의료·주거·교육 급여 등 다양한 복지제도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준이다. 정부는 이를 적용하면 현재보다 수급 대상 증가 속도를 억제하고 지원의 형평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정부가 기초연금 손질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고령화에 따른 수급자 증가와 지급액 인상, 여기에 수급 대상 확대까지 맞물리면서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연금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는 국민연금과 달리 전액 세금으로 지급되는 만큼 지급 규모가 늘어날수록 재정 부담도 고스란히 커질 수밖에 없다.복지부에 따르면 기초연금 수급자는 2014년 435만 명에서 지난해 707만 명으로 늘었다. 2030년에는 914만 명, 2040년에는 1207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급액도 정치권의 경쟁적인 인상 논의 속에 2014년 단독가구 20만 원, 부부가구 32만 원에서 올해 단독 34만9700원, 부부 55만9520원으로 크게 늘었다.이에 따라 2014년 6조9000억 원이던 소요 재정은 올해 27조4000억 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해 단일 복지예산 가운데 가장 큰 규모가 됐다. 국민연금연구원은 기초연금 재정이 2030년 39조7000억 원, 2040년에는 76조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제도 도입 초기부터 상당 기간 '소득 하위 70%' 기준을 유지하다 보니 지금은 소득과 재산 수준이 비교적 높은 노인까지 기초연금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받고 한 달 일해 버는 금액보다 소득이 많은 고령자도 기초연금을 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정부의 기초연금 개편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다만 노인 빈곤 완화라는 제도 도입 취지에는 더욱 충실하면서도 복지 효율성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노인 빈곤율은 2014년 44.4%에서 2024년 35.9%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정된 재원을 도움이 가장 절실한 계층에 보다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복지의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기초연금이 노후 소득보장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교한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사설]합동성 강화, 사관학교 통합 서두른다고 될 일인가
정부와 여당이 16일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한 4년제 국군사관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 대전 자운대에 국군사관학교를 신설해 생도를 통합 선발하고, 1·2학년은 공통교육, 3·4학년은 군을 선택해 군별 전공교육을 받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인공지능(AI) 기반 작전환경에 맞춘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민간 교수 비율도 50%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다. 당정은 국군사관학교 설치법의 신속한 처리와 법령·제도 정비, 2027년 예산 반영 등으로 설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2028년부터 입학생을 받는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당정은 선발 시기와 전형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미래전에 대비한 장교 양성 체계를 혁신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공감할 만하다. 문제는 추진 과정과 내용이다. 국방부는 이달 초만 해도 1·2학년 통합교육, 3·4학년 기존 사관학교 교육, 육사의 전남 장성 이전 등을 담은 이른바 '2+2 방안'을 발표하려다 돌연 연기했다. '2+2 방안'을 놓고도 충분한 숙의 과정이 없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불과 열흘 만에 기존 방안과는 다른 새로운 구상을 내놓았다. 국방교육 백년대계인 사관학교 혁신을 충분한 군사적·기술적·역사적 사전 연구와 검토, 국민적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이처럼 급하게 추진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당정이 지적한대로 AI와 드론, 우주전 등 전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합동성 강화가 절실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육·해·공군을 뛰어넘는 합동성은 미래전에서 첨단기술 숙지와 통찰력, 리더십과 함께 장교의 신속한 상황판단과 지휘 결심을 위한 필수 요소다. 당정이 통합형 지휘관과 '육각형 인재'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합동성 강화가 사관학교 통합으로 해결될 문제인지는 별개로 따져볼 일이다. 과거 군별로 진행되던 영관급 지휘관·참모 교육을 합동 군사교육 체계로 혁신하기 위해 2011년 합동군사대학을 출범시켰다가 9년 만인 2020년 다시 육군대학·해군대학·공군대학으로 환원된 경험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합동성 강화는 우리 군의 국내외 합동훈련 확충, 특히 관련 경험이 축적된 동맹국과의 연합 합동훈련 확대 등을 통해 길러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견도 많다.현실적 여건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해사는 바다와 함정, 공사는 비행장과 항공시설을 교육 기반으로 삼는다. 자운대에서 교육을 받다가 특정 기간에 현장 교육을 실시하면 된다고 하지만 과연 그 정도로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군 안팎의 우려도 적지 않다. 이런 의문에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면 통합 논의는 불필요한 갈등만 키울 수 있다. 사관학교 통합이 대통령 공약이긴 하지만 좀 더 시간을 갖고 반대 논리까지 충분히 수렴해 미래 국방 교육 대계를 정교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일체의 정치적 고려는 배제돼야 한다.
[사설]한은, 긴축 시동… 확장재정과 섬세한 조율이 숙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6일 기준금리를 연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금통위는 "향후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전에 한은이 마지막으로 금리를 올린 건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3년 1월이다. 한국 경제가 3년 6개월 만에 다시 통화량을 조이는 긴축의 시대를 맞았다. 금통위는 "성장세가 수출과 투자 중심으로 강화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보이고,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도 지속되고 있다"고 금리인상 이유를 밝혔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외국인 주식매도에 따른 고환율, 이들의 영향을 받은 3%대 고물가와 과중한 가계대출 등을 반영해 결정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으로 많은 돈이 시중에 풀릴 거란 점도 고려됐다.하반기 중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은도 더는 인상을 미루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미국의 금리는 3.5∼3.75%로 이날 인상한 한국보다 여전히 1%포인트 높다. 미국과 금리차가 클수록 원화 가치는 약화돼 1500원 안팎을 오가고 있는 원-달러 환율은 더 큰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은 이미 고물가, 고환율에 대응해 지난달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을 시작했다. 문제는 향후 이어질 금리 인상이 대출받아 집을 산 중산층, 빚을 내 주식을 산 투자자들에게 곧바로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0.5%포인트 오를 경우 대출받은 사람 한 명 당 연간 이자부담이 59만 원 늘어난다. 마이너스 통장, 신용대출을 이용해 주식에 '영끌'한 투자자들도 이자의 압박을 받게 된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3.7% 오르는 상황에서 이자까지 높아지면 여러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견디기 더욱 어려워진다. 한은은 긴축에 시동을 걸었지만 정부는 확장 재정을 강조하는 상황인 만큼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상충도 걱정거리다. 정부는 반도체 특수로 늘어난 세수를 활용한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을 내비치는 한편, 내년에는 '800조 원+α' 슈퍼예산을 짜겠다고 한다. 한쪽에선 고통을 감내하며 돈줄을 조이는데, 다른 쪽은 씀씀이를 늘리는 바람에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물가와 환율이 다시 들썩이는 일이 없도록 정책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사설]위험 수위 넘는 與 당권 경쟁…아직 한달이나 남았는데
더불어민주당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당권 경쟁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후보 등록이 16,17일 양일간 진행되는 가운데 이미 유력 주자들 간의 아슬아슬한 전면전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이번 당권 경쟁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하는 정청래 의원에 맞서 친명(친이재명)계의 지원을 받는 김민석·송영길 의원이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구도다. 그러나 같은 당 동지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마저 무너진 채 상호 비방이 난무하고 있다.친명·친청(친정청래) 진영간 거친 설전은 이미 도를 넘었다. 송영길 의원은 14일 이 대통령과 정 의원의 갈등을 뜻하는 이른바 '명청대전'을 비판하면서 "옛날 같으면 역적으로 목을 잘라 진압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 의원은 "전당대회 출마가 목숨까지 위태로운 일인가"라며 "섬뜩하고 무섭다"고 반발했다. 상대를 숙청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집권당 전당대회에서 이런 표현이 공개적으로 오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상대를 향한 흠집 내기와 조롱도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난 1일 오찬을 계기로 과열 양상이 진정되는 듯했지만 잠시뿐이었다. 김 의원과 정 의원은 서로를 향해 '자기 정치'를 한다고 비난했고, 친청계 이성윤 최고위원은 김 의원이 12·3 비상계엄 당시 감기약을 먹고 자느라 국회 계엄 해제 표결에 늦었다는 논란을 거론하며 "감기약 성분을 밝히라"고 공격했다. 앞서 '적통' 논쟁이 벌어졌고, 상대의 과거 행적을 '파묘'하듯 들춰내는 일도 반복됐다. 오랜 정치 경험을 가진 중진들조차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목숨 걸고 싸우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개탄할 정도다.선호투표제 도입을 놓고도 열흘 가까이 다투다 14일 뒤늦게 당규에 명문화하는 등 겨우 봉합되긴 했지만 친청계 최고위원이 사퇴하는 등 후폭풍은 여전하다. 더욱이 이번 전당대회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비중이 같은 '1인 1표제'가 처음 도입되면서 후보들이 국민은 안중에 없고 강성 권리당원의 눈치만 살핀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주거 불안, 양극화, 청년 실업, 고물가·고환율 등 당면한 민생 과제들에 대한 정책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도 안됐는데 이 정도이니 앞으로 한달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려스럽다. 집권당의 전당대회가 막말과 비방, 계파 갈등으로 얼룩진다면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나. 이제라도 소모적인 비방전을 중단하고, 집권당다운 책임감과 품격을 보여주기 바란다.
[사설]부동산 세제, 유튜브 여론으로 다룰 일인지…
다음주 부동산 국민 토론회를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초고가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인상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유튜브 생중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얼마짜리 주택을 초고가로 볼 것인지 즉석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구체적인 가격 기준도 언급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국민, 전문가의 의견을 폭넓게 듣겠다며 토론회를 예고해 놓고 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미리 내비친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14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소위 '똘똘한 한 채'나 100억 원 이상 하는 초고가 주택에 대해 똑같이 하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있다"면서 "초고가 주택에 대해서는 차별적으로 부담을 지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 1번을,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2번을 눌러 달라"며 유튜브 댓글을 이용한 실시간 설문 조사를 제안했다. 또 댓글 90%가량이 1번이란 보고를 받고는 "실거주 1주택이라도 초고가 주택에는 (보유세를) 더 강화하자는 데 대체로 공감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초고가 주택 기준에 대한 즉석 조사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10억 원 이상이면 1번, 20억 원 이상이면 2번, 30억 원 이상이면 3번을 눌러 달라"고 시청자들에게 요청했다. 10억 단위별로 번호를 고르라는 것이었다. 30억 원을 고른 이들이 많다는 보고를 받자 이 대통령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시가 기준으로 30억 원이면 공시지가로는 십 몇 억 원밖에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이 때문에 7월 말 나올 정부 세제개편안에 시가 40억 원 또는 그 이상 가격인 1주택자 보유세율 인상안이 담길 거란 관측이 나왔다. 중요한 세금인상 사안을 논의하면서 소수의 유튜브 동시 접속자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도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에는 한 푼이라도 민감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에는 쉽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전체 주택 2000만 채 중 시가 30억 원 이상의 주택은 18만 채 정도로 1%에 못 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 상당수 국민은 '초고가 주택'의 세금을 올려도 자신에겐 영향이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매년 수 천 만 원의 보유세를 내는 건 고가 주택 소유자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집값 상승의 이익은 현실화하지 않았는데, 매년 자기 지갑에서 현금으로 세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 집에 평생 살다가 재건축·재개발로 집값이 올랐을 뿐 현재 소득은 없는 고령 은퇴자들에겐 큰 걱정거리다. 지금까지 실거주 1주택자에 대해선 집값이 비싸도 일정 부분 세금 부담을 덜어줬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세제 개편은 최대한 신중히, 부작용을 줄이는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국민 토론회의 장을 마련한 만큼 참석한 전문가,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 정책의 구체적 방향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 토론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가 이미 결론을 내린 듯한 인상을 주면 여론 수렴의 모양새만 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설]'촉법 소년' 연령 하향 가닥…'처벌과 교화' 균형점 찾아야
성평등가족부가 14일 국무회의에서 '강력·중대·반복' 범죄에 한해 촉법소년 기준을 현행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을 보고했다. 소년범죄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제도 개선 요구를 반영해 '조건부'로 연령 기준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준 하향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특정 범죄만 부분적으로 한 살 낮추는 건 너무 미약하지 않나"라며 "국민 의견 수렴과 토론을 추가로 거치자"고 했다. 이에 따라 촉법 소년 기준을 조건부로 하향할지, 일률적으로 낮출지 등 세부 결정은 추가 절차를 밟게 됐다. 지난해 경찰에 검거된 촉법소년은 2만1000여 명으로 5년 전의 두 배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절도와 폭력 비중이 여전히 크지만 성폭행 같은 강력범죄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이와 관련, 갈수록 늘고 있고 흉포화 우려도 커지고 있는 소년범죄에 대응해 형사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처벌보다 교화가 우선이라며 현행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왔다. 정부 부처 내에서도 법무부와 교육부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된 가운데 성평등가족부가 공론화 과정을 토대로 절충안을 제시한 셈이다.13세는 대부분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특정 범죄만 부분적으로 낮추는 것에 대해 일단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제한적' 연령 기준 인하는 검토해볼 만하다. 실제로 성평등가족부가 관계 부처와 전문가,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절차를 진행한 결과 부처∙전문가로 구성된 사회적 대화 협의체는 현행 유지에 무게를 실은 반면 온라인 공청회에서는 '일괄 하향'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반면 숙의 토론 등을 거친 시민참여단 212명은 '조건부 하향'에 손을 들어줬다. 사회적 수용성 등을 감안할 때 현행 유지나 일률적 인하 보다는 일단 강력 범죄에 한해 촉법소년 기준을 인하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연령 기준 논의에만 매몰돼 교화와 재범 방지 대책에 대한 논의가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 성평등가족부는 보호처분 개선과 과밀 소년원 해소 등 보완 대책도 함께 보고했는데 이런 조치 역시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소년범죄를 줄이는 길은 처벌 강화만으로도, 교화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응당한 책임과 실효성 있는 교화의 정교한 균형점을 찾을 때 갈수록 늘고 있는 소년 범죄 예방이라는 제도 개선의 목적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사설]'유조선 척당 450억'…'트럼프 통행세' 부담까지 닥치나
'사실상 전쟁 재개'란 분석이 나올 정도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군사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발효된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를 당장 폐기할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나아가 미국이 해협을 군사적으로 통제하고, 이곳을 지나는 배에 '통행세'까지 받겠다고 한다. 이 해협을 통해 원유의 70%를 수입하는 한국으로선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출 빠른 유가 하락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트럼프 대통령은 13일 트루스소셜에 "이란 봉쇄를 재개한다. 이란 선박이나 이란과 거래하는 선박은 해협을 드나들지 못한다"고 썼다. 앞서 이란이 해협을 지나는 민간 상선을 공격한 데 대응해 미국은 이란에 대한 대대적 야간공습을 4일 연속 진행했다. 같은 날 라디오에 출연한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적대 행위를 60일간 중단하기로 한 종전 MOU와 관련해 "그것은 (이란을) 시험하기 위해 만든 것일 뿐"이라며 의미를 깎아내렸다.트럼프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들은 이란의 추가도발을 차단하고, 이란 지도부의 백기투항을 압박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란 분석이 있다. 하지만 이란 측은 민간 선박과 주변 걸프국 내 미군기지를 향한 보복 공격을 좀처럼 멈출 기색이 없다. 2월 말 시작된 미·이란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한술 더 떠 트럼프 대통령은 "공정성 차원에서 미국은 (해협을 지나) 운송되는 모든 화물에 대해 20% 비율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 방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해협의 수호자' 역할을 맡는 대신 '보호비'를 받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원유를 가득 실은 초대형 유조선에 실제로 20%가 부과될 경우 척 당 통행세만 450억 원이다. 이란이 요구했던 통행료의 15배다. 한 해 해협을 통과해 한국에 들어올 선박의 전체 통행료는 최대 17조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관련 업계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원유도입 비용을 높여 한국의 물가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수준이다.군사 갈등이 다시 격화하면서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10% 급등해 배럴당 80달러 대로 올라섰다. 전년 동월 대비 25% 올라 전체 소비자물가를 3%대로 끌어올린 석유류 가격 하락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석유 최고가격제를 유지하는 데 드는 재정부담도 불어날 것이다. 국내에 필요한 두 달 치 원유가 확보됐다지만, 정부는 중동 긴장의 장기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트럼프 통행세'가 현실화할 경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과 국제 공조체계도 점검해야 한다.
[사설]코스피 7,000 두 달 만에 붕괴…ETF 투자 문턱 당장 높여야
SK하이닉스 주식예탁증서(ADR)의 성공적인 나스닥 데뷔가 국내 증시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13일 코스피는 9% 가까이 폭락하며 7,000선이 무너졌다. 미국·이란 전쟁 재개 우려, 미국 빅테크들의 인공지능(AI) 투자 축소 가능성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장세다. '롤러코스피'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지나친 변동성에 피로감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 개인투자자의 공포 심리 확산 등이 낙폭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코스피는 오전에는 5% 이상 하락 시 적용되는 매도 사이드카가, 오후에는 8% 이상 급락 시 적용되는 서킷브레이커가 각각 발동됐을 정도로 하루 종일 급락을 계속하다 전날보다 8.95% 하락한 6,806.93에 마감했다. 코스피가 7,000선 아래로 내려앉은 것은 지난 5월 6일 사상 처음 7,000선을 돌파한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지난 10일 미국 나스닥 상장 첫날 13% 급등했던 SK하이닉스는 이날 국내 시장에서는 15.37% 폭락한 184만5,000원에 장을 마치며 한 달여 만에 200만 원 선이 무너졌다. 삼성전자도 10.7% 하락한 25만4,500원에 마감했다.저가매수 기회를 노린 개인이 3조8000억 원 넘게 샀지만, 기관과 외국인이 각각 2조2000억, 1조7000억 원 어치 주식을 내던지면서 주가는 급락세를 탔다. 7,000선이 무너지자 사모펀드 등 기관의 프로그램 매도가 급증했고, SK하이닉스 ADR 상장으로 미국에서도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된 외국인이 국내 반도체주를 팔면서 낙폭이 커졌다. 반면 개인투자자의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최근 한 달 동안 30조 원 가까이 줄면서 시장을 떠받칠 매수 여력도 약해지고 있다.코스피가 지난주 8,000선에 이어 7,000선마저 내주면서 주가 회복을 기대하며 돈을 넣은 투자자들이 받을 충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2배 레버리지 ETF에 빚까지 낸 투자자의 경우 하루 손실액이 원금의 절반을 넘을 수도 있다.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의 수익률이 상장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손실 구간에 접어든 만큼, 빚을 내 투자한 개미 계좌의 강제청산(반대매매) 규모는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이런 장에서 개인투자자의 무리한 저가 매수 시도는 위험하다. 이달 말 실적 발표가 예정된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메타·아마존 가운데 단 한 곳이라도 AI 인프라 투자 축소 가능성을 시사할 경우 반도체주는 다시 크게 출렁일 수 있다. 금융당국은 극도로 위험성이 커진 시장의 안정성 회복에 주력해야 한다. 레버리지 ETF의 예탁금을 올려 투자의 문턱을 높이거나, 하루 거래 횟수를 제한하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시행해야 한다.
[사설]"생명을 위협하는 더위"…'행동 요령'만으론 충분치 않다
극심한 무더위로 '폭염 중대 경보'가 처음 발령되면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다. 기상청과 질병관리청이 함께 발표한 행동 요령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더위'라는 문구까지 등장했다. '살인적 더위'라는 표현이 이제는 과장이 아닌 것이다. 기상청은 지난 일요일 경북 포항시와 경산시에 중대 경보를 발령했다. 체감온도가 이틀간 최고 35도 이상인 지역에서, 추가로 체감온도 38도 또는 최고기온 39도가 하루를 넘길 것으로 예상될 때 중대 경보가 내려진다.폭염 중대 경보는 지난달부터 처음 시행됐다. 경보 조건이 까다로운데도 한 달여 만에 바로 발령된 것이다. 이제는 40도 가까운 극단적 폭염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폭염은 장마 도중에 갑자기 발생했다.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을 두 겹으로 뒤덮는 '열돔 현상'이 나타난데다, 평소보다 바다 온도가 높아지면서 뜨거운 바람이 유입됐다. 이상 기후가 일상화하면서 정부 예측과 대응력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당초 기상청은 폭염 중대 경보가 10년 정도에 한 번 내려질 것으로 내다봤다. 폭염이 일상화하면 노인과 빈곤층, 야외 작업자 등이 큰 타격을 받는다. 특히 65세 이상은 체감온도 38도 이상에서 사망 위험이 19% 높아진다고 한다. 경보가 울리면 지방자치단체가 쪽방촌 노인 관찰, 무더위 쉼터의 연장 운영, 야외 작업의 중단 권고 등 조치에 나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더위 쉼터만 해도 접근이 어렵거나, 운영 시간이 짧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외 작업 중단도 무시될 때가 다반사다. 정부가 제시하는 '폭염 행동 요령'도 필요하지만, 여기서 나아가 도시 재설계와 인프라 확충의 문제로 폭염 위협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최근 열돔 현상으로 수천 명이 숨진 유럽은 반면교사 사례다. 과거 날씨를 기준 삼아 설계된 인프라와 제도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냉방 인프라가 미비한 프랑스에선 시민들의 에어컨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주택 창문을 은박으로 가려 햇볕을 차단할 정도다. 학교, 철도, 발전소 등 기반 시설 곳곳도 운영에 지장을 받고 있다.이제 폭염은 상시 위협이라는 전제를 깔고 지속적인 정책 정비에 나서야 한다. 도심 쉼터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운영 실효성을 높이고, 야외 작업 중단의 대상과 기준을 명확히 정해 현장에서 지키게 해야 한다. 또한 교통망 같은 핵심 시설의 내열성 강화도 서둘러야 한다. 개인이 알아서 대피하는 대신 사회 전반의 인프라가 폭염을 견디도록 만드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사설]주담대 죄는 은행들…청년·무주택자 숨통 틔울 대책 내놔야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대출의 통로를 바짝 조이고 있다. 가계 대출액이 금융당국에 보고한 연간 증가목표에 바짝 다가섰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규 대출을 중단한 은행도 있다.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낮추기 위해 부득이한 조치라고 한다. 하지만 전세·월세난을 피해 중저가 주택을 사려고 준비하던 실수요자들로선 갑작스레 높아진 대출 문턱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만에 7조6000억 원 급증해 1년 10개월 만에 증가 폭이 가장 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연간 증가목표의 80% 수준까지 높아졌다. 이런 추세라면 한 달 안에 연간 목표를 초과할 수 있다고 한다. 부동산 거래가 늘어 주담대 수요가 급증한 데다, 주식투자를 위해 신용대출을 받은 이들이 많아진 영향이다.이에 대응해 KB국민은행이 10일 자체적으로 주택 구입자금 대출 한도를 6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췄다. 수도권 규제지역 내 15억 원 이하 주택을 살 때 6억 원까지만 대출해주도록 한 정부 규제보다 훨씬 강한 통제다. 신한은행은 '모기지 보험' 가입을 제한해 실질적인 주담대 한도를 축소했고,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도 같은 방식으로 한도를 수 천 만 원씩 줄였다. 하반기 중 집을 사는 사람이 은행에서 기대했던 만큼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것이다.대출액 축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건 중저가 아파트 매입을 고려하던 이들이다. 5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3억5000만 원으로 취득세 등 거래세, 부동산 중개 수수료 등을 고려할 때 최소 현금 12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부모 지원 등 다른 수단이 없다면 갑자기 줄어든 은행 대출한도만큼 현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할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서울에서 아파트를 산 사람 10명 중 4명이 30대였던 만큼, 청년층의 주택마련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가계대출 급증은 막아야 한다. 집값 상승의 풍선효과가 수도권 외곽으로 번지는 것도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수천 채 아파트 단지에도 전세 매물이 한두 채에 불과하고, 월세 가격도 급등하는 상황에서 중저가 주택을 서둘러 장만하려는 중산층 실수요자의 대출을 옥죄는 건 지나치다. 금융당국은 투기목적의 대출은 차단하면서도 내 집 마련을 위해 무주택 실수요자가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길은 열어줄 대책을 내놔야 한다.
[사설]국방장관 병역 의혹, 자료 공개가 먼저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단기사병(방위병) 복무 시절 군무이탈(탈영)을 했다는 의혹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안 장관이 이재명 대통령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순방을 수행한 뒤 귀국하자 야당은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12일 안 장관이 병적 기록부를 공개해 의혹을 해소하거나 자진 사퇴하지 않는다면 탄핵 소추에 나설 것이라고 압박에 나섰다. 정치 공방과는 별개로 이 문제는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안 장관 의혹은 김영수 청렴사회를 위한 공익신고센터장의 최근 기자회견으로 재점화되기 시작했다. 예비역 해군 소령 출신인 김 센터장은 안 장관이 1984년 방위병 복무 중 약 7개월간 무단 군무이탈을 했다가 헌병대에 체포돼 영창 처분을 받았으며, 그 결과 정상 복무 기간보다 8개월가량 더 복무했다고 주장했다. 병적기록부와 육군 인사명령서, 헌병대 수사 기록 등으로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국민의힘이 제기한 의혹이다.그동안 국방부는 이 의혹을 '40년 전 행정 착오에 따른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일축해 왔다. 행정 오류로 전역일이 잘못 기록되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혹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병적기록부 등 핵심 증거 문서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잘못된 기록을 공개하면 사실과 무관하게 오해를 키울 수 있다는 해명이지만, 이는 불필요한 의구심만 키운다.국방부 장관의 병역 관련 의혹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45만 국군의 군령(軍令) 및 기강 확립과 직결된다. 국방부 장관은 군정(군사 행정)과 군령을 총괄하며 나라의 안위를 책임지는 엄중한 자리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점은 안 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방첩사 개편,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등 군 내부의 반발과 논란이 첨예한 안보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 안보의 근간을 바꾸는 정책일수록 추진 주체의 신뢰도가 필수적이다.안 장관 측은 현직 신분으로 병무청에 기록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압력이 될 수 있어 '퇴임 후 정정 청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안 장관 탄핵을 요구하는 청원이 31만명을 넘는 등 국민적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 퇴임 이후로 미루겠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공정성 시비가 우려된다면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들에게만이라도 관련 문서를 비공개로 제출해 검증을 받는 방법도 있다. 이미 의혹이 국정 현안으로 번진 만큼 말끔한 해소 없이는 군령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어렵다.
[사설]혐오의 증폭, 결국 정치가 문제다
걸그룹 멤버의 '무섭노' 발언을 일베식 표현이라고 비판했던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가 공개 사과했다. 방송에 나온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설명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쓰였던 '와이리 무섭노'라는 표현에서 '와이리'를 생략하는 것이 젊은 세대 관행인데 이를 몰랐다는 것이다. 뒤늦게라도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충분한 확인 없이 특정 표현을 혐오의 상징으로 단정하고 정치적 공방을 부추겼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이번 사과는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의 응원 구호로 촉발된 혐오 표현 논란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시작된 논란에 정치권이 앞다퉈 뛰어들고, 더욱 자극적이면서 날카로운 용어로 논란을 증폭시키는 악순환 고리가 일상화됐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갈등 증폭 사회'라는 주제로 3회에 걸쳐 보도한 '시대 리포트'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섭노 공방, GS25와 넥슨의 집게 손 논란, 배우 조진웅의 과거 이력 문제 등에서 정치권이 말 폭탄을 던지며 싸우는 동안 청소년의 혐오 표현 노출, 젠더 갈등 해소, 유명인의 사회적 책임 등 본질적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사회 이슈의 소모적 정치화가 말싸움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무조정실이 한 대학에 발주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념 갈등으로 집회·시위 참가자가 늘면서 이들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생기는 손실이 지난 32년간 1981조원에 달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정치권과 지도층의 변화를 먼저 주문하고 있다. 국민통합위원회 조사에서 시민 응답자 25%는 '정치권이 지지층 결집과 대립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갈등을 활용한다'고 답했다. 냉정한 평가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충분한 사실 확인과 전문가 의견을 거쳐 입장을 내놓고, 오류가 있으면 즉시 바로잡는 절차와 관행부터 마련돼야 한다. 근본적으로 혐오 표현의 생성과 일상화를 막기 위해선 체계적 교육과 함께 소셜미디어의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예컨대 미국 남가주대(USC) 쇼아 재단은 홀로코스트, 르완다학살 같은 역사적 사건을 놓고 생존자와 목격자 증언을 학생들에게 들려준 뒤 토론을 통해 다원적 관점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 소셜미디어 역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유해한 표현을 더욱 적극적으로 걸러내 경고하고, 삭제하며, 반복 시 제재할 필요가 있다. 정치와 교육, 플랫폼이 함께 갈등을 줄이는 구조를 끊임없이 숙의하고 이를 사회적 제도와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갈등 증폭의 진앙이 되어온 정치권부터 깊이 반성하고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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