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미국에 삼전닉스 공장"…현실로 다가온 투자 딜레마
미국 통상 주무 부처인 상무부의 하워드 러트닉 장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며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를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뉴욕주 생산공장 기공식에서다. 그는 "마이크론이 앞장서고 있으니 경쟁사들도 결국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분이 사업을 영위해야 할 곳은 바로 미국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세계가 이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트럼프 행정부는 임기 내 세계 반도체 생산의 40~50%를 미국에서 담당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관세 카드 등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를 동원해 해외 기업의 미국 투자를 압박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론이 미국 내 투자 규모를 250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러트닉 장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직접 거론하며 투자 확대를 요구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지난 3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애리조나주에 1000억 달러 규모의 생산시설 투자를 결정한 데 이어, 이제는 한국 기업들까지 미국 생산 확대 압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삼성전자는 이미 텍사스주에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각각 짓고 있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공지능(AI)에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 제조시설(전공정 팹)까지 자국에 세우라고 종용한 것으로 읽힌다. 미국 원천기술이 들어가고 미국 시장에서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는 미국 내에서 만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문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국내에서도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팹 등에 대규모 국내 투자를 진행 중인 것은 물론 최근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8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 내 투자까지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들 수 있다. 미국의 투자 확대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경우 한미 통상 마찰로 확대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더욱이 미국은 높은 인건비와 건설비, 소재·부품·장비 공급망 부족 등으로 수익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시절 반도체법을 통해 약속했던 보조금마저 트럼프 행정부가 전면 재검토하는 등 정책의 연속성도 흔들리는 상황이다.정부와 기업 모두 치밀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과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고, 정부는 통상 압박 완화를 위한 다양한 레버리지와 논리를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여건을 갖춘 한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해 미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형태가 미국의 경제안보에도 유리하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양국간 대화 채널이 더욱 원활하게 작동해야 할 것이다.
[사설]583일만의 첫 유죄 확정…이제는 책임질 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583일 만에 처음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1월 대통령경호처 직원을 동원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재 진행 중인 내란 관련 8개 재판 가운데 첫 사법적 단죄가 이뤄진 것이다.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공수처의 수사 권한 범위였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경호처를 사실상 사병처럼 동원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집행을 저지한 것은 중대한 위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은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소추 대상이 될 수 없는 만큼 공수처가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를 개시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인지한 내란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그러나 대법원은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있다고 해도 수사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고, 직권남용죄와 내란죄의 직접 관련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의 체포 방해는 정당한 저항이 아니라 범죄라는 점을 최종 확인한 것이다. 특히 당시 상황은 시시각각 생중계되면서 온 국민이 똑똑히 지켜봤다. 서울 한남동 관저 주변은 대형버스로 차벽을 막아 세웠고, 경호처 직원과 군 부대원들이 육탄 저지에 투입돼 윤 전 대통령의 체포를 막았다. 헌정사 초유의 상황은 외신으로 타전되며 국격과 법치주의를 훼손했다.그동안 모든 혐의를 부인해온 윤 전 대통령 측은 대법원 판결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변호인단이 향후 재판소원을 통해 판결의 위헌성을 다투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다른 재판에 출석해 대법원 법정에 나오지 않았지만, 확정 판결 소식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고 한다.사법 절차에 따른 권리 행사는 보장돼야 하지만 대법원 확정판결은 우리 사법 체계가 내릴 수 있는 최종 판단이다. 그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윤 전 대통령에게는 가장 중요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비롯해 아직 7건의 재판이 남아 있다. 특히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돼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남은 재판 역시 법과 증거에 따라 엄정하게 진행돼야 하며, 윤 전 대통령 역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번 판결은 한 전직 대통령의 유죄 확정에 그쳐서는 안 된다. 어떤 권력도 헌법과 법률, 나아가 국민 위에 설 수 없다는 교훈을 다시 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설]SMR 3국 공조, 글로벌 진출과 중국 추격 발판으로
한·미·일 외교부 장관이 7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가 열린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만나 '소형모듈원자로(SMR) 배치에 관한 협력 각서(MOC)'를 체결했다. 이번 MOC는 3국 정부가 민간 기업의 컨소시엄 구성과 표준 노형 개발을 지원하고, SMR의 제3국 수출에 필요한 절차와 인허가를 간소화해 공급 경쟁력을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를 통해 미국의 원천기술과 설계 역량, 한국의 주기기 제조 및 시공 능력, 일본의 부품·자금 조달 역량이 결합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일이 인도·태평양을 비롯한 글로벌 SMR 시장을 공동 선점하고 민간 원자력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연대에 뜻을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한국으로서는 SMR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고, 축적된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파운드리로 자리 잡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협력은 그동안 국내에서 진행돼 온 SMR 육성 정책과도 맞물려 상당한 상승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전방위적인 행정·재정 지원과 SMR 특구 지정, 규제 혁신 로드맵 병행 등을 담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6월에는 부산 기장이 국내 첫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건설 후보지로 선정된 바 있다. 3국 공조의 외교적 가치도 작지 않다. 이번 MOC는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긴장 고조로 글로벌 에너지 안보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중국이 SMR 상용화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체결됐다. 그동안 북핵 대응과 안보 협력에 무게를 두었던 한·미·일 공조의 범위가 SMR 공급망 구축이라는 구체적인 산업 협력으로까지 확대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미 또는 미·일 등 양자 차원에서 논의됐던 SMR 협력이 3국 협력 체제로 제도화됐다는 점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이번 육성책 마련과 3국 협력 추진은 세계 최초 상업용 SMR 운전을 눈앞에 둔 중국을 다시 추격하기 위한 본격적인 출발점이기도 하다. 중국은 하이난성 창장에 125MW급 ACP-1(링룽-1)을 건설해 시운전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의 원전 생태계가 멈춘 사이 중국은 개발-건설-운전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서 빠르게 속도를 내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욱 치밀하고 과감한 행정적·제도적 정비와 민간 투자 활성화다. 정부는 SMR이 앞으로 반도체·인공지능(AI)·로봇·항공우주·바이오 등과 함께 차세대 핵심 먹거리 산업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탄탄하게 뒷받침해야 한다.
[사설]'오징어 게임' 경고까지 나온 증시…'방어 운전' 집중할 때
89조4000억원의 분기 영업이익을 내 '세계에서 돈 제일 많이 버는 기업'이 된 삼성전자 주가가 실적 발표 당일 7% 폭락하는 등 한국 증시가 이해하기 힘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도한 변동성과 높아진 투기성 때문에 "코스피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돼가고 있다"는 외신의 경고까지 나왔다. '반도체 고점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 장세가 이어지면서 외국인은 팔고, 개미와 국민연금이 받아내는 증시의 수급 구조가 한계에 이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8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5.35% 급락한 7,246.79에 마감했다. 코스닥은 5.56% 내린 785.0으로 10개월 만에 800선이 붕괴됐다. 코스피는 3일 연속 하락하며 하루 내리면 다음날 곧바로 반등하던 최근의 리듬이 깨진 모양새다. 지난주 메타가 남는 컴퓨팅 자원을 다른 기업에 빌려주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이번 주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반도체 중심 상승장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반도체 정점론이 재부각된 게 일단 현상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미·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충돌도 악재였다. 나아가 삼성전자 초유의 실적과 한국은행의 5월 역대 최대 경상수지 흑자 발표 등 호재가 주가하락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하면서 우리 증시의 수급구조에 대한 근본적 질문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올해 들어 코스피에서 이미 160조원 넘게 팔고 나간 외국인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매도를 이어갈 전망이다. 현재 코스피 시총 중 외국인의 비중은 작년 말부터 이어진 주가 급등의 영향으로 40%에 육박해 예년의 30∼35%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해외 연기금 등은 자체 국가별 투자 비중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한국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 반면 외국인 매도 물량을 받아내던 개미들의 투자 여력은 위축되고 있다. 지난달 4일 139조7000억원까지 늘었던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은 이달 들어 20조원 넘게 감소했다. 증시에 투자하려고 대기 중인 자금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주가가 추락할 때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하는 국민연금은 투자액 중 국내주식 비중이 목표치인 20.8%를 크게 웃돌고 있어 더 사기는커녕 오히려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파티가 끝났을 때 손실은 대부분 개인 투자자들의 몫"이라고 했다. 실제로 빚까지 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베팅'한 개미들의 투자금이 증거금 부족으로 강제청산 당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현재 증시 상황과 관련해 금융당국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과속 도입, 미리 국내주식 비중을 줄여두지 않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문제 등 책임을 따져봐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당장은 투자자 스스로 투자금을 지켜내기 위해 최대한 '방어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
[사설]50년 묵은 교육 교부금, 재설계 더는 미룰 수 없다
정부가 시도 교육청에 나눠주는 '교육 교부금'이 사상 처음 80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현행 제도는 학생 수가 급감하는데도 세수 증가에 따라 교부금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50년 넘게 유지된 배분 방식이 시대 변화에 맞는지, 장관들이 8일 공개 토론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토론회에서 "고등교육, 평생교육, 영유아 교육에 대한 투자 요구가 커진다"며 교부금 제도의 개편 필요성을 주장했다. 교부금 수혜자인 일선 교육청은 초중등 교육을 담당하는데, 다른 긴요한 교육 수요도 많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가 내국세를 걷으면 20%를 자동으로 떼서 각 교육청에 배분하고 교육감이 집행한다. 경제 성장으로 세수가 증가하면 교부금도 따라서 많아지는 구조다. 실제로 지난 10년만에 교부금 규모는 30조원 가량 순증했다.특히 올해 76조원으로 책정된 교부금은 반도체 활황에 따른 세수 증가에 힘입어 향후 80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갑자기 교부금이 늘어나면 기존의 선심성, 복지성 지출이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앞서 감사원이 시행한 실태 조사에서 서울시교육청은 입학지원금으로 960억원을 지급했고, 경기도교육청은 교복구입비로 1600억원을 나눠준 것으로 파악돼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여러 교육감이 학생들을 상대로 현금 살포성 공약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돈이 남아도느냐'는 지적을 받았다.그러나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토론회에서 현행 20% 분배율의 고수를 주장하면서 "고등 교육 등은 초과 재원을 마련해 활용하는 방안에 지혜를 모으자"고 했다. 그동안 교육청은 재정에서 줄이기 어려운 고정 비용이 80%를 차지한다면서 현행 교부금 방식을 지지해왔다. 고정비는 대부분 인건비이고, 나머지는 학교 운영비와 시설 관리비 등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 인력 운영과 시설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교육 투자는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교부금 분배 방식은 학령 인구가 100만명이던 1972년에 도입됐다. 대규모 학령 인구에 비례해 초중고를 짓고, 교육비와 교사 채용을 대폭 늘려야 했던 시절이었고 누구도 효용성에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학령 인구가 25만명에 그친다. 첨단 인재의 양성, 고령화 사회에 맞춘 평생 교육 등 시급한 과제도 수두룩하다. 특히 초중고 1인당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1.7배 수준인데, 고등교육은 0.4배에 그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합리적인 방향으로 교부금 제도를 손질해 초중고 교육과 새로운 교육 수요를 함께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그렇다면 재정도 미래를 향해 투입돼야 한다. 학생 수 감소와 첨단 인재 양성, 평생 교육 확대라는 현실을 함께 반영하는 교육 재정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사설]장윤기 사건이 던진 질문…경찰 수사는 누가 견제하나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사건을 담당했던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장에 대해 7일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그는 범행 차량에서 피해자 결박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케이블타이를 확보하지 않았고, 이를 촬영한 영상을 삭제하라고 부하 직원에게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죄의 실체를 밝혀야 할 수사 책임자가 오히려 증거 인멸에 관여했다는 의혹만으로도 충격적이다.더 심각한 것은 사건 전반에서 드러난 각종 의혹이다. 수사팀은 현직 경찰 간부인 장윤기의 아버지에게 아들의 집 주소와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줬고, 아버지는 성인용 인형 등 성범죄 정황을 뒷받침할 물품을 반출해 폐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차량도 제때 압수되지 않았고, 구속영장 신청 사실이 사전에 유출된 정황까지 드러났다. 경찰은 사건을 단순 살인 혐의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보완수사를 거쳐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부실수사를 넘어 실체적 진실 규명을 가로막은 중대한 직무유기이자 공권력 남용이다.무엇보다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 증거 인멸과 수사 정보 유출, 유착 의혹의 전모를 낱낱이 밝히고, 개인의 일탈인지 조직적인 개입이나 지휘·감독 부실이 있었는지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는 수사만이 무너진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이번 사건은 막강해진 경찰 수사권을 누가,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 다시 묻고 있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1차 수사의 중심 기관이 됐지만, 권한 확대에 걸맞은 통제와 책임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내부에서 사건이 축소되거나 은폐될 경우 이를 바로잡을 외부의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언제든 다시 생길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형사사법제도 개편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든 보완수사요구권이든 수사 결과를 외부에서 검증할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기관도 오류나 일탈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견제 장치를 폐지하려면 이를 대체할 실효성 있는 교차 검증 시스템부터 마련하는 것이 순서다.형사사법제도의 핵심은 어느 기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느냐가 아니다. 커진 권한을 어떻게 통제하고, 잘못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묻느냐가 본질이다. 장윤기 사건은 견제받지 않는 수사권이 국민의 신뢰를 얼마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 아니라, 어느 기관도 스스로를 비호하거나 사건을 은폐할 수 없는 공정하고 투명한 형사사법 시스템이다.
[사설]배재고 방문 사과…'교육적 회복'의 출발점으로
광주일고와의 야구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는 응원 구호를 외쳤던 서울 배재고 선수들이 광주를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선수들과 감독은 "부적절한 행동을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야구를 떠나 인성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했다. 광주일고 측도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여러분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음으로 사과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방문 사과와 화해가 성사됨으로써 일단 두 학교 간의 문제는 일단락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정치권과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증폭된 소모적 논쟁이다. 이번 사건의 기폭제가 됐던 5·18 민주화운동을 둘러싸고 대결과 갈등 유발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한쪽에선 혐오 발언의 단죄를 주장하고, 다른 쪽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대립각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여당 의원은 야구부 해체까지 거론했고, 배재고 등교길에선 볼썽사나운 응원과 근조 화환 대결이 벌어지기도 했다. 분열과 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해도 모자랄 텐데, 이를 부추기고 재촉하는 정치의 과잉화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그사이 놓치는 것은 사안의 본질이다. 논의의 초점을 정치적 공방이 아닌 학교에서조차 일상화된 '조롱과 혐오' 표현에 맞추는 게 우선이다. 학생들이 문제의식 없이 '놀이'처럼 혐오 표현을 소비하는 문화가 왜 생겼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조롱과 혐오는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10대들에게 손쉽게 침투하고, 유행에 민감한 또래 집단 전체에 퍼지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특성을 감안할 때 혐오 문화 자체가 바뀌도록 아이들을 가르치고 선도하는 게 먼저다. 선수들에 대한 일회성 징계와 출전 정지 등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배재고 야구부에겐 이미 6개월 출전 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프로구단들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 싫어 향후 학생들 입단에 부정적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배재고 선수들의 조롱성 응원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광주일고 학생들이 느꼈을 모멸감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선수들의 생애와 직결된 문제인 만큼 징계 방식이나 수위는 좀더 폭넓게 고려했으면 한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는 차원을 넘어 학생들의 미래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정도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다. 무엇보다 두 학교와 학생들은 '화해의 손'을 맞잡았다. 이번 사과와 화해가 '교육적 회복'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난무하는 정치적 공방이나 처벌 중심의 마무리는 교육적 회복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기에 앞서 혐오와 조롱을 일상처럼 소비하는 사회를 만든 어른들의 책임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 이번 사안을 정치적 잣대로 소비하지 말고, 아이들의 진지한 성찰을 유도하고 혐오 문화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설]與 당권 경쟁, 과거 아닌 미래로 승부해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6일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여당의 당권 레이스가 본격화됐다. 경쟁자인 정청래, 송영길 의원의 출마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김 의원은 출마 선언 일성으로 '당정 일치'를 내걸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검찰개혁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등을 둘러싸고 당·청 간 이견을 노출했던 전임 '정청래 지도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는 "지난 1년 자기 정치의 폐해가 당과 당정 협력을 혼선에 빠뜨렸다"며 정 의원을 여러차례 겨냥했다. 이번 전당대회가 격렬한 난타전으로 흐를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이미 당권 경쟁은 조기 과열 조짐을 보여왔다. 당권 주자들은 한결같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펼쳐진 양상은 국정 성공을 위한 미래 비전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2028년 총선 공천권을 쥘 수 있는 당권 향배를 놓고 과거 행적을 들추는 소모적인 '적통 논쟁'과 계파 낙인찍기만 난무할 뿐이다. 비전과 정책에서 내세울 만한 내용이 없고 차별성 부각이 힘드니, 자꾸 과거의 사소한 이력이나 행적을 '파묘'하며 경쟁자를 공격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당권 주자들은 저마다 민주당의 역사를 짚으며 자신이 정권의 '적자'임을 강변한다. 정 의원이 '노사모' 출신임을 강조하며 정통성을 강조하자, 송 의원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정 의원이 반대한 이력 등을 소환하며 맞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팩트가 틀린 폭로와 유감 표명이 이어지는 촌극마저 벌어졌다. 당원들이 '친청'과 '친명' 세력으로 갈라져 서로에게 멸칭을 퍼붓는 볼쌍사나운 모습도 연출됐다. 이런 권력 투쟁 속에서 6·3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나 민생 경제에 대한 깊은 고민은 사실상 실종됐다.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가 미래가 아닌 과거에 발목 잡힌 채 진흙탕 싸움으로 흐르면 국정 동력만 갉아먹게 된다. 민심의 시선은 이미 냉랭하다. 지방선거 이후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하향 곡선을 그리며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지금은 과거를 파헤치며 싸울 때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에너지 안보, 반도체 초호황 속 양극화 심화 등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여당의 새 사령탑이 되겠다고 나섰다면 이재명 정부의 국정 과제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뒷받침할 것인지, 민생을 살릴 복안이 무엇인지로 승부하는 게 마땅하다. 당권 주자들이 정말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원한다면 미래에 대한 정책을 내놓고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집권당에 국민이 허락한 기회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사설]고환율 시대 '24시간' 외환시장 개방… 초반 안착이 관건
국내 원·달러 시장이 외환위기 이후 30년 만에 '24시간 거래' 체제로 전환된다. 기존의 오전 9시~다음 날 오전 2시이던 거래 시간이 6일부터 월요일 오전 6시~토요일 오전 6시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동안 야간의 7시간 거래 공백을 해소하는 것은 외환 당국의 숙제였다. 특히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는 역외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면서 원화 가치가 왜곡되고, 다음날 정규장 개장과 동시에 충격이 한 번에 반영되는 일이 되풀이됐다.반복되던 부작용을 막는다는 점에서 시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수출입 업체들은 원하는 시간에 거래할 수 있어 환리스크 관리에 도움이 되고, 해외 투자자들의 경우 원화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나아가 이번 조치가 모건스탠리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의 선진국 지수 편입에 도움이 될지도 주목된다. MSCI 선진국 지수에 포함되면 외국인 자금의 증시 유입 확대를 기대할 수 있지만, 지난달 편입 시도가 실패했다. MSCI는 한국의 시급한 과제로 외환시장 접근성을 꼽고 있다.다만 중장기적인 기대감과 별개로 현재 불안한 원·달러 환율은 예의주시할 변수다. 지난 2분기의 평균 환율은 1501원으로,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1분기 이후 처음으로 1500원을 넘었다.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꾸면서 원화 약세를 부추겼고,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에 따른 달러화 강세도 복합적으로 환율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외환 당국이 다섯차례나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큰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24시간 거래가 환율 불안을 재촉하지 않으려면 초기 변동성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기에 야간 거래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환율의 단기 변동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해외의 외국환 업무 취급기관을 포함해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의 야간 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시장에서는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고도화하라는 주문도 나오는데, 이 역시 외환 당국이 주의 깊게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이번 제도는 '원화 국제화'를 위한 새로운 시금석이기도 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트라우마에 갇혀 빗장을 잠가왔던 외환 시장이 글로벌 무대로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다. 정부는 이달 중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외국인들이 해외 시장에서 자유롭게 원화를 거래하는 방안도 내놓을 예정이다. 24시간 거래 제도가 디딤돌이 되도록 초기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사설]국힘 '징계' 윤리위 재가동…언제까지 퇴행적 분열만
국민의힘 중앙당 윤리위원회가 6일 재가동되며 당내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장동혁 대표 체제가 '당의 영속성과 기강 확립'을 명분으로 내걸고 친한(친한동훈)계를 비롯해 반(反) 장동혁 진영을 향해 내부 숙청의 칼을 뽑아 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을 법적 단죄로 해결하려는 '징계 정치'는 하책(下策) 중의 하책이다. 6·3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은 선거 패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게 급선무다. 보수 재건과 당 쇄신이라는 본연의 책무는 내팽개쳐 놓고 당 주도권 싸움에 매몰된 모습은 절망감을 안겨준다.징계 대상 1순위로 거론되는 이들은 지방선거 국면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의 대구 일정에 동행했던 친한계 의원들이다. 장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던 개혁 성향 모임 '대안과미래' 소속 의원들의 징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 지도부는 이를 '해당 행위'에 대한 단죄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순수한 기강 잡기로 바라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장 대표는 6·3 지방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강성 지지층과 주변 당권파의 비호 아래 온갖 억지 논리를 들어 대표직 사수를 고수하고 있다. 장 대표는 최근 "의총에서 어떤 결정을 하든, 최고위에서 누가 어떤 발언을 하든 나는 사퇴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징계 정치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거센 반발과 우려가 터져 나온다. 한동훈 의원은 "당권파라는 사람들이 책임지고 퇴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징계를 꺼내 눈을 가리고 있다"며 "괴기스럽다"고 직격했다. 원내 사령탑인 정점식 원내대표와 당 중진들도 "의원 징계는 신중해야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올해 초 친한동훈계에 대한 장 대표의 징계 정치는 이미 두 차례나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제동이 걸린 바 있다. 잠깐 반등했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한 달만에 지방선거 이전으로 곤두박질친 것도 이런 퇴행적인 모습에 국민이 실망했기 때문일 것이다.선거 패배나 당의 위기 국면마다 징계라는 손쉬운 수단으로 내부 비판 세력의 입을 막으려 했던 시도들은 예외 없이 당의 분열을 가속화했다. 2008년 친이·친박 갈등과 2016년 '진박 감별사' 파동은 계파 보복에 매몰되었을 때 보수 진영 전체가 어떻게 궤멸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획일적인 기강잡기가 아니라, 무너진 민심을 회복할 정책적 역량과 포용의 리더십이다. 반대파를 품지 못하고 징계로만 다스리려 한다면, 장 대표 체제는 '독선과 불통'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더욱 입지가 좁아들 것이다.
[사설]강한 권력일수록 강한 견제가 필요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출생 시민권을 제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출생 시민권은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은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행정부의 정책 목표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헌법적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취지다.최근 대법원이 헌법적 잣대로 행정부를 견제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추진한 상호 관세 조치에는 위법 판단을 내렸고, 연방준비제도 이사에 대한 일방적 해임 시도를 막아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지켜냈다. 선거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를 유효표로 인정하며 선거 제도를 바꾸려는 대통령의 압박에도 제동을 걸었다. 이 같은 일련의 판결은 권력은 누구도 헌법 위에 설 수 없으며, 모든 권력은 견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더 주목할 점은 이런 판단이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들 가운데 일부는 주요 사건에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동참했다. 정치적 성향이나 임명권자보다 헌법 원칙과 사법부의 독립을 우선한 것이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올해 초 여당은 이른바 '사법 3법'을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추진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판결이 나올 때마다 정치권은 진영 논리로 재판 결과를 재단하며 재판부를 압박하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권의 과도한 행사가 삼권분립의 기본 원칙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물론 사법부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권력과 진영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선거로만 구현되는 게 아니다. 다수 의석도, 대통령의 권한도, 사법부의 권위도 모두 헌법이 정한 한계 안에서만 정당성을 갖는다. 입법부가 다수의 힘만 앞세우고, 행정부가 권한 확대에 몰두하며, 사법부가 독립성과 신뢰를 잃는다면 삼권분립은 형식만 남게 된다. 강한 권력일수록 더 강한 견제를 받아야 하고, 강한 기관일수록 더 큰 절제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원칙이다.
[사설]"탈원전, 이것은 아니다"…'신규 원전' 속도내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공급 방안과 관련해 "탈원전, 이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호남 지역 태양광·풍력 전력의 간헐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진보 진영에서 오랫 동안 금기시해왔던 신규 원전 건설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던 중 나온 말이다. '계획된 원전은 짓되, 추가로 세우진 않는다'는 이재명 정부의 '감(減) 원전' 기조가 호남 클러스터 추진을 계기로 달라질 것인지 주목된다.김 장관은 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호남 클러스터 전력공급에) 원전을 기저 전원으로 활용하고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하는 새로운 에너지믹스가 필요하다"면서 "'용인급'으로 더 지어야 한다면 (신규 원전 건설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3일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도 '추가원전 건설계획이 나올 수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호남에 지을 4개 반도체 팹에 우선은 한빛원전과 태양광 발전으로 전력을 공급하지만, 전력수요가 더 커지면 원전 추가 건설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호남 클러스터 실현 가능성과 관련해 제일 많이 제기되는 의문이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반도체 공장에 대규모 전력공급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전남 영광군 한빛원전의 6개 원자로가 생산하는 총 6GW(기가와트)의 전력을 모두 써도 반도체 팹 4개를 돌리기엔 빠듯한 수준이다. 게다가 1호기는 40년 설계수명이 끝나 정지됐고, 2호기도 올해 9월 수명이 끝난다. 3~6호기 역시 2034년부터 차례로 설계수명을 다할 예정이다. 계속운전 허가를 받지 못하면 호남 반도체 공장이 완공될 때 쯤 상당수 원전의 가동이 중단된다는 의미다.결국 안정적 전력을 확보하려면 한빛원전 수명부터 연장해야 한다. 작년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가동 기간 지난 것도 안전성이 담보되면 연장해서 쓰고, 짓던 건 잘 짓고 그러면 된다"고 했던 만큼 가능성이 작지 않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반도체 공장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들어설 AI데이터센터까지 돌리려면 작년 초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지난달 경북 영덕군에 짓기로 결정한 원전 2기 외에도 다수의 새 원전이 필요한 상황이다.정부는 향후 15년간 전력공급 방식과 에너지원을 정하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올해 말 내놓는다. '메가 프로젝트'라는 전례 없는 대규모 국가 성장전략을 내놓은만큼 그에 걸맞은 에너지 공급 전략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탄소 배출 없이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은 원전이 유일하다.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 기존 원전 수명 연장의 명확한 청사진을 12차 계획에서 상세한 일정까지 밝혀야 한다.
[사설]첫 파업 예고한 하청 노조…점점 커지는 '노봉법 하투'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이 다음 달 원청 기업들을 상대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지난 3월 시행된 이후 하청 노조가 이 법을 근거로 대규모 파업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파업 대상에는 포스코와 에쓰오일, SK에너지 등 대기업 발주사와 종합건설사들이 포함됐다.플랜트건설 노조원 3만3000명은 전국 주요 사업장에서 공장 건설과 정비 작업을 맡고 있다. 파업이 현실화하면 석유화학과 제철소 등의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근로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노란봉투법이 자칫 국가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흔드는 상황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노조가 내세우는 파업의 핵심 명분은 '안전'이다. 낡은 설비가 방치되고 최저가 낙찰 관행으로 공사비가 낮아지면서 사고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특히 중앙노동위원회가 원청 업체들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는데도 대기업들이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파업을 예고했다. 반면 기업들은 사용자성을 인정한 이유를 놓고 추후 소송 다툼으로 갈 수도 있는 만큼 당장 교섭에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부 기업은 산업안전 문제에 대해 사용자성이 인정됐는데, 노조가 수당 같은 문제까지 교섭 의제를 넓히고 있다고 반발한다.노란봉투법을 계기로 촉발된 파업 움직임은 다른 기업으로 확산하면서 올여름 더욱 거세진 하투(夏鬪)를 부를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오는 15일 총파업의 핵심 요구로 원·하청 교섭 확대를 내걸었다. 현대제철 하청 노조도 최근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원청과의 교섭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하청 업체들의 교섭 요구가 잇따르는 것은 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의 급식·통근버스 하청업체인 웰리브는 선박 제조와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사용자성이 인정됐고, 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결국 문제는 노란봉투법이 규정한 '실질적 지배력'의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데 있다. 기업들은 법적 불확실성을 호소하고, 노조는 그 틈에서 교섭 범위를 확대하려 한다. 노란봉투법의 근본 취지는 근로자 보호다. 그러나 사용자 범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된다면 법적 다툼과 노사 갈등을 키우면서 애초 원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사용자 범위를 명확히 하면서, 아울러 어떤 의제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산업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사설]사관학교 통합…'합동성 강화' 필요하지만 치밀한 접근을
정부가 대통령 공약인 사관학교 통합을 본격 추진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전군에 보낸 지휘서신에서 "합동성 체질화를 위해 통합 교육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데 이어 1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도 사관학교의 근본적 개혁과 합동성 체질화를 거듭 주문했다. 특히 지휘서신에선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며 "기득권과 선입견의 저항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사관학교 통합의 가장 큰 명분은 합동성 강화다. 현대전과 미래전이 초연결·복합전 양상을 띠면서 육·해·공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영역이 서로 교차할 것이라는 전망이 합동성 강화의 군사적 배경이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국군사관학교'를 세워 사관생도를 통합 선발한 뒤 1·2학년 때는 공통 교육을 받고, 육·해·공군을 선택한 뒤인 3·4학년 때는 군별 전문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달 중 사관학교 통합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 공청회를 거쳐 국군사관학교 설치를 위한 법령 정비에도 나설 방침이라고 한다. 합동성 강화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통합 추진 과정의 개방성과 투명성, 그리고 속도다. 장교 양성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개혁인 만큼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와 치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통합 중단 요구는 20만 명에 가까운 동의를 얻었다. 군별 전문성과 특성화 약화, 오랜 전통과 정체성 희석, 소속감 저하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합동성 교육은 합동참모대학 등 상위 교육과정에서 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안보 환경이 우리와 비슷한 나라 가운데 통합사관학교를 운영하는 곳은 일본과 독일 정도라는 지적도 있다. 이스라엘 역시 통합사관학교 없이 군별 장교 양성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안 장관이 통합에 회의적인 시각을 '기득권과 선입견의 저항'으로 규정한 것은 적절치 않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을 기득권의 저항으로 치부한다면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현재 고교 2학년이 입학하는 2028학년도부터 통합 선발을 추진하는 일정도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지적을 부를 수 있다. 장교들은 드론·인공지능(AI)·합동 전 영역 지휘통제(J ADC2)·스타링크 등 첨단기술의 미래 국방을 맡을 주역이다. 이들을 길러낼 사관학교 체제를 바꾸는 일인 만큼 보다 열린 자세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신중하고 치밀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사설]법제위·사법위로 나누고 1년씩 맡으면 어떤가
국회 원구성 협상에서 여야 갈등의 핵심은 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다. 파행으로 점철된 22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의힘은 끝까지 법사위원장직 양보를 요구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단독 원구성을 불사하며 국회 파행을 감수하는 길을 택했다.이 같은 갈등의 근저에는 법사위가 쥐고 있는 막강한 권한, 즉 다른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최종 검수하는 '체계·자구 심사권'이 있다. 법사위는 이 권한을 무기로 법안의 형식뿐 아니라 실질적 내용까지 좌우하며, 합의된 법안을 장기간 묶어두거나 사실상 폐기하는 등 '상원(上院)'처럼 군림해 왔다.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가 치열한 토론을 거쳐 합의한 민생 법안조차 법사위원장의 성향이나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을 경우 체계·자구 심사권을 악용해 입법 절차를 훼방놓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회의장과 함께 법사위원장까지 여당이 차지하면 입법 독주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맞선다. 특히 이번에는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특검' 문제까지 걸려 있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을 경우 해당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거나 막을 수 있어 민주당도 쉽게 양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법사위원장 쟁탈전으로 반복되는 국회 파행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법을 개정해 법무부·법원·헌법재판소를 소관으로 하는 고유의 사법 업무는 사법위원회가 맡고, 다른 상임위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는 별도의 기구가 담당하도록 해 완성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체계·자구 심사 기구는 국회의장 산하 법제위원회 형태로 둘 수도 있고, 별도의 법제위를 신설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법사위를 법제위와 사법위로 나눈 뒤 여야가 법제위원장과 사법위원장을 1년씩 돌아가며 맡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각각 법사위 개편 방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시 양당 모두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손질할 필요성에 공감했던 만큼 절충점을 찾지 못할 이유도 없다. 소모적인 법사위원장 쟁탈전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사설]또 법사위 차지, 더 멀어진 협치
더불어민주당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서영교 법제사법위원장을 비롯한 자당 몫 11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했다. 국민의힘 몫 7개 상임위원장은 추가 협상을 거쳐 선출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국민의힘의 반발로 원 구성이 최종 마무리되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국민의힘은 "원구성 정상화 없이 어떤 상임위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여야는 이날 오후까지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을 받지 못하면 모든 상임위원장을 포기하겠다"고 맞섰고, 민주당도 법사위원장 양보를 거부했다.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원내 1·2당이 나눠 맡는 것은 17대 국회 이후 이어져 온 의회 운영의 중요한 관행이었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심사하는 관문인 만큼,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견제하는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2020년 총선 압승 이후 원 구성 협상이 결렬되자 1년 넘게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했고, 22대 국회에서도 집권 여당이면서 법사위원장까지 계속 맡고 있다. 협치를 말해온 민주당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무너진 권력 분점의 정신부터 복원하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실제로 지난 1년간 여당이 주도한 법사위의 모습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위헌 논란이 제기된 법안들이 잇따라 강행 처리됐고, 여야 충돌이 반복되면서 22대 국회 전반기 법사위의 법안 가결률은 5.33%에 그쳤다. 민주당은 집권 2년 차 민생입법 등 국정과제에서 성과를 내려면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공소취소 특검법 처리에 있다고 반박한다. 서로 자신의 논리만 앞세웠을 뿐 현실적 절충이나 해법을 모색할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여야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민주당 출신의 조정식 국회의장도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채 국민의힘 상임위원장 명단을 팩스로 통보해 야당 반발만 키우는 일도 있었다. 국민의힘 역시 "법사위가 아니면 안 된다"는 원칙론만 고수했을 뿐, 거대 여당을 설득하거나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만한 중재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원 구성은 국회가 일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선일 뿐이다. 다수 여당은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소수 야당은 거부와 반대로 맞서는 구도가 반복된다면 피해는 결국 민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여당도, 재건을 다짐하는 야당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사설]대출잔액 1100조, 연체 22조…자영업 조이는 '역대급 빚'
"정말 어렵다"는 자영업자들의 호소를 뒷받침하는 통계가 또 나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1100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대출 규모만 문제가 아니다. 연체액도 22조원에 달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불어났다. 특히 소득 하위 30% 영세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숫자로 확인된 골목상권의 현실은 반도체 호황과 수억원대 성과급이 화제가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설상가상으로 하반기에는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 안정을 위해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고,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두 차례 인상을 예상한다. 결국 시중은행 대출금리도 따라 올라가면서 자영업자를 더욱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대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금리 대출 상품으로 갈아타게 해주거나 채무 자체를 줄여주기 위한 기금도 조성했다. 또 소득이 증가할 수 있도록 소비 촉진을 위한 캠페인도 벌였다. 그러나 통계가 보여주듯 자영업자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반도체 초호황의 온기가 골목상권까지 이어지지 못하면서 빚 부담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폐업 위기로 내몰리는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 촛점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에 집중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작지 않을 것이다.김용범 정책실장은 최근 "호황의 과실은 위로 향하고 긴축의 고통은 아래로 향한다. 이것이 가장 불편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 기존 자영업 지원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내고 있는지 원점에서 점검하고, 대대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 채무 조정을 위한 기금을 확대하거나, 폐업 위기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는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만하다. 다만 이런 지원은 상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취약 계층에 집중돼야 한다. 반도체 세수가 늘어난다면 그 일부를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온라인 판로 확대나 스마트 주차 시스템 등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투자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성장의 기회와 과실이 다양한 부문에 고루 돌아가는 '모두의 성장'을 강조해왔다. 그 구호가 공허하지 않으려면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화려함에 가려진 자영업자들의 그늘도 적극 살펴야 한다.
[사설]800조 '호남 반도체' 공식화…'용인 클러스터'부터 속도내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방침을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약 800조 원을 들여 각각 2기씩 총 4기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등 서남권에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작년 12월 이 대통령이 주요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달라"고 당부한 후 불과 반 년 여 만에 대규모 투자가 발표된 것이다. 이날 보고대회는 이 대통령과 산업통상부장관 등 정부 측 인사들이 먼저 3대 첨단산업 발전 전략과 정부의 지원 방안을 설명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단상에 올라 구체적인 투자 방침을 밝히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이번 투자계획이 "기업인들의 결단에 의한 것"이란 점을 강조했지만,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기업 팔 비틀기' 논란을 의식한 듯 발표 형식까지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여러 지역 중 전력과 용수, 인력확보 그리고 인프라 등 많은 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되는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은 호남 반도체, AI데이터센터에 425조 원을 비롯해 충청, 영남 등을 포함한 전국에 2655조 원의 투자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이 회장은 HBM 팹 공장은 충청, 로봇 관련 투자는 경북 구미, 차세대 배터리는 울산 등 지역별 중점을 둘 산업을 밝히면서도 '언제 어떻게'라는 구체적 일정은 거론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급확장 프로젝트에 1100조 원을 계획하고 있다. 용인 클러스트를 12년 앞당기고 서남권에 약 400조 원을 투자해 새로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와 별도로 SK텔레콤 주도의 1000조 원 AI데이터센터 투자계획도 공개했다. 최 회장은 "참고로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저희가 9년이 걸렸다"며 부지와 용수, 인력 등 제반 여건 조성 여부가 향후 투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내비쳤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 2위 기업이 10년 이상 뒤를 내다보고 국내에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밝히는 것 자체는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이번에 확정된 입지와 관련해 각 지역의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 인재확보 가능성 등을 놓고 기업이 최적의 조건을 따져 선택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쳤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절차적 불투명성은 향후 정치적 논란과 지역 주민,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불러 사업 추진속도를 낮추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정부 관계자들은 호남의 '반도체 제2 클러스터' 추진이 기존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에 차질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속도를 더 높일 것이라고 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장기적 투자역량과 사업 추진력을 분산해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일부 국내외 투자자 등의 우려도 큰 게 사실이다. 정부는 우선 용인 클러스터 건설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지역사회의 민원, 규제 등 걸림돌부터 서둘러 제거해야 한다. 장차 반도체 사이클 급변동 등 대외적으로 심각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투자계획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둘 필요가 있다.
[사설]홍명보 초라한 퇴장…감독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34위의 참담한 성적을 기록한 한국 축구를 향해 쇄신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손흥민·이강인·김민재 등 이른바 '황금세대'를 보유하고도 졸전 끝에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국민적 실망과 분노가 홍 감독에게 집중되고 있다. 일부 편의점과 식당 등에선 '출입 금지' 문구까지 써 붙인다고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 협박 글까지 올라오는 등 비난이 도를 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홍 감독은 29일 퇴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감독 한 사람의 '초라한 퇴장'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이번 실패는 개인의 역량 한계를 넘어 대한축구협회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병폐와 난맥상이 낳은 예고된 결과라는 점에서다. 원칙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감독 선임, 정몽규 회장의 13년 장기 재임 속에 누적된 불투명한 의사 결정, 특정 인맥 중심의 운영이라는 카르텔 의혹 등 그동안 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는 2024년 축구협회 감사에서 홍 감독 선임 과정의 적절성 여부 등 9개 사안을 조사한 뒤 "정몽규 회장 지시를 이유로 규정상 권한이 없는 기술총괄 이사가 불투명한 방법으로 면접했다"고 밝혔다. 협회 측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4월 1심 법원도 문체부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에도 정 회장이 부적절하게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전력강화위원회라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감독 선임 문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축구협회는 예산 상당액을 정부 지원금과 스포츠토토 수익금 등 공적 재원에 의존한다. 그러나 공공성에 비해 운영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협회가 심혈을 기울여온 천안 축구센터 건립 과정에서는 거짓 사업계획서로 보조금을 부당하게 신청한 내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문체부가 감사 결과의 후속 조치로 정 회장과 임원들의 중징계를 요구했지만, 협회 측은 이를 이행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축구협회는 '그들만의 성'이 된 지 오래다. 박지성 해설위원은 "이번에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는데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이번처럼 국민적 공분이 크게 일었는데도 제대로 된 쇄신책이 나오지 않고 흐지부지된다면, 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10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축구협회의 인사와 의사결정 구조 전반을 원점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 망신을 한국 축구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사설]"숫자들이 낯설 것"…기업 판단 온전히 반영됐나
정부가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어 광주·전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해 충청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영남의 피지컬 AI 등 권역별 첨단산업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단연 관심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만나 투자 계획을 조율했다. 지역 균형발전은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제지만, 반도체 공장 입지는 전력과 용수, 산업 생태계, 인력 확보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할 문제다. 기업이 이사회 등을 거쳐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할 투자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발표와 관련해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보고회에서 나오는 숫자들이 낯설 것"이라며 예상보다 훨씬 큰 투자 규모를 예고했다. 주요 대기업이 참여하는 전체 투자액이 100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실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1·2위 기업이다. 쥐어짠다고 움직일 기업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관치 투자'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수년이 걸릴 입지 선정이 정부와의 협의 속에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기업이 복수의 후보지를 놓고 전력·용수, 소재·부품 공급망, 인재 확보 가능성, 물류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검토한 과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국 아마존이 230여 개 지방정부의 제안을 받아 세제 혜택과 부지, 교통망 등을 장기간 검토한 끝에 2018년 제2 본사 부지를 결정한 사례와도 대조적이다.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를 선택한 것도 소니를 비롯한 기존 산업 생태계와 의료 교육 등 '정주 여건'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광주·전남은 상당수 기반시설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이클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의 특성이 투자계획 결정에 충분히 고려됐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반도체 특수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지만, 10여 년간 진행될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기간 내내 이런 호황이 계속될 것으로 장담하긴 어렵다. 불과 3년전만 해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막대한 적자를 내 2023년분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했다. 투자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불황이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의미다.정부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투자를 독려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 핵심 산업의 장기 투자 입지 결정에까지 정부가 깊이 관여했다는 인상을 준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 일본은 정부가 기업의 입지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세제와 전력, 용수, 규제 개선을 통해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반도체는 정치 논리가 아니라 기업의 치밀한 분석과 엄격한 사업성 검토에 따라 투자처가 결정돼야 하는 산업이다. K-반도체의 경쟁력은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서 나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대포럼] AI 대전환의 시대, AI 풀스택 대한민국의 도약](https://i.ytimg.com/vi/VcbpSJtXg6o/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