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국민성장펀드 '오픈런'…흥행 아닌 실력이 관건
코스피 8000시대의 기대감 속에 출시된 국민성장펀드의 열기가 초반부터 뜨겁다. 판매 은행에선 아침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이 벌어졌고, 증권사 온라인 판매 물량도 10분 만에 소진됐을 정도다. 펀드에서 손실이 나면 정부가 메워준다는 이례적 구조에다 투자액의 최대 40%까지 소득공제를 해주는 파격적 혜택까지 더해지니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릴 만하다. 전체 판매량의 20%를 서민 전용으로 배정한 점도 눈길을 끈다.흥행 배경은 분명하다. 현재 증시에서 대기하는 고객예탁금은 130조원으로 올들어 45%가량 불어났다. 마땅한 투자처만 있으면 언제든 움직일 대기 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정책 지원까지 얹혀진 상품이 출시되자 자금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이제 관심은 펀드가 장기적으로 안정적 성과를 낼 수 있느냐다. 과거에도 녹색성장 펀드(이명박 정부), 통일 대박 펀드(박근혜 정부), 뉴딜 펀드(문재인 정부) 등이 나왔지만 집권 초기 강력한 정책 동력으로 주목받다가 시들해진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수익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자금 유입도 줄어들었다.이번 국민성장펀드가 다른 점은 인공지능·에너지·바이오 등 이전보다 많은 12개의 첨단전략 산업에서 투자 기업을 발굴한다는 구상을 내세운 것이다. 특히 부동산에 쏠린 시중자금을 증시로 옮기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머니 무브' 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투자시장 육성을 위해선 증시에 좋은 기업들이 많아져야 하고, 없다면 자금을 대고 키워야 한다. 그동안 첨단 기업이 많다는 코스닥만 해도 투기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산업 생태계와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 나스닥 같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코스피 역시 삼성전자, 하이닉스 같은 일부 대형주에 상승을 의존해온 측면이 있다다만 뜨거운 흥행 뒤에 가려진 위험 요인은 경계해야 한다. 정부가 손실을 20% 보전한다지만 이는 정책자금을 포함한 전체 펀드 기준이고, 그중 일부인 민간 투자자 보전율은 낮아질 수 있다고 한다. 세금으로 투자 손실을 메워주느냐는 논란도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조심스러운 것은 시장 상황이다. 주가가 단기간 급등한 가운데 향후 증시 변동성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글로벌 물가 상승과 국채금리 불안으로 증시 경고음이 나오는 가운데 펀드 만기는 5년으로 장기간 자금이 묶일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결국 국민성장펀드의 미래는 흥행이나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 성과에 달렸다. 정부가 민관 합동으로 기업 발굴 협의체까지 가동했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펀드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이어 미래 산업 생태계를 이끌 기업을 길러내는 새로운 플랫폼이 될 지는 결국 실력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사설]삼성 노사 타결의 '긍정'과 '위험'
삼성전자 노사가 극적으로 성과급 협상을 타결짓고 파업 사태를 피하면서 곳곳에서 안도의 목소리가 나온다. 합의안의 핵심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별도로 반도체 부문의 '특별 경영성과급'을 신설한 것이다. 재원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성과의 10.5%로 정했다. 100조원 가량 피해가 우려되던 파업 사태는 넘겼지만, 이번 협상 결과는 '긍정'과 '위험' 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클 전망이다.우선 회사 측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일률 지급하는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나름대로 성과급 원칙을 지킨 것은 긍정적이다. 특별 성과급에 여러 조건을 달아 완전한 고정화를 피했고 지급 기간도 10년으로 제한했다. 일정 부분 '성과 연동' 원칙을 반영한 셈이다. 특히 특별 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하고 처분 기간을 제한한 것도 의미가 작지 않다. 현금 대신 주식 보상 방식을 택함으로써 회사의 단기 비용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조합원에게 장기적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막판 최대 쟁점이던 적자 사업부 성과급 문제도 절충점을 찾았다. 회사는 "성과 없는 곳에 보상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지만, 적자 사업부 차등 지급 원칙의 시행을 내년으로 1년 유예하며 한발 물러섰다. 노조 역시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노조 입장에선 특별 성과급 체계가 신설됐고, 배분 재원이 10.5%로 명문화되면서 새로운 '성과 배분 구조'를 제도적으로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협상에서 주목할 대목은 '숙의'의 작동이다. 협상과 결렬, 중재와 재협상을 거듭한 끝에 도출된 결과였다.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거나 감정적 충돌로 치닫는 대신, 숫자와 논리를 앞세운 끝장 토론이 이어졌다. 마지막 협상일 6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협상이 상징적 장면이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사가 마지막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갈등을 협상의 영역으로 끌고 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하지만 위험 요인 역시 분명하다. 삼성전자의 이번 협상 모델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도미노식' 성과급 요구가 분출할 조짐이다. 이미 LG유플러스·카카오·HD현대중공업 노조에서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자칫하면 기업별·업종별 특성과 무관하게 '영업이익 N%' 요구가 일종의 새로운 기준처럼 굳어질 수 있다. 특히 적자 사업부 성과급 문제는 앞으로도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번 합의안을 적용하면 적자가 유력한 비메모리 사업부의 직원에게도 1억6000만원 수준의 보상이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성과주의 원칙과 조직 간 형평성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삼성전자 안팎에서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반도체 부문 중심의 합의라는 이유로 다른 사업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고, 일부에선 조합원 탈퇴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외부에서는 주주단체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번 합의안이 주주 재산권을 침해하며 주주총회 의결 없이 추진된 만큼 무효라는 주장이다. 삼성전자 이후 다른 사업장에서도 노조가 이번 합의안의 득실을 따지며 새로운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파업 사태는 넘겼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협상 과정과 결과에서 드러난 긍정과 위험 요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글로벌 기준에 맞으면서도 산업계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장기 보상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성장 기반과 미래 투자 여력을 훼손하지 않는 일이다. 성과 배분 갈등이 기업 경쟁력 자체를 잠식하는 순간, 그 피해는 결국 노사는 물론 국가 경제 모두에 돌아갈 것이다.
[사설]파업은 멈췄지만 질문은 남았다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협상이 파업 직전 극적으로 타결됐다. 21일 파업 돌입이 유력했지만, 긴 진통 끝에 20일 밤 노사가 접점을 찾았다. 노사 잠정 합의서에 따르면 DS(반도체) 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 성과의 10.5%'로 정해졌다. 성과급 배분 비율은 부문 40%, 사업부 60% 구조다. 다만 적용 시점은 2027년분부터다. DS부분 특별경영성과급은 세후 전핵 자사주로 지급하기로 했다. 최대 100조 원의 손실과 국가 경제 신뢰 하락을 초래할 수 있는 반도체 파업을 멈춘 것은 다행이다. 그간 갈등을 딛고 새로운 도약, 초격차 경쟁에 힘을 모아야 한다. 다만 이번 합의는 우리 사회에 무거운 과제를 남겼다. 성과급을 둘러싼 충돌은 임금 교섭의 범위를 넘어 이익 배분의 기준, 쟁의의 정당성, 주주 권한, 기업 지배구조라는 더 큰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관련 논쟁은 이미 반도체를 넘어 자동차·조선·통신 등 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쟁점의 본질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였다. 노조는 영업이익 연동을, 회사는 '경제적부가가치(EVA)' 중심 체계를 고수했다. EVA는 회사가 번 돈에서 각종 비용을 뺀 뒤 얼마나 남았는지를 따지는 지표다. 영업이익에 연동하면 보상은 이익의 사후 분배에 가까워진다. 이 지점에서 임금과 배당, 노사 협상과 주주 권한의 경계가 흐려진다. 실제로 주주단체가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며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유사한 요구가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합의 이후, 비슷한 요구가 교섭 현장의 기준처럼 인식되는 흐름도 감지된다. 성과급 기준은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반의 보상 체계와 투자 여력,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 됐다.이제 관건은 장기적으로 합리적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일이다. 영업이익이나 EVA 같은 단일 지표를 넘어 잉여현금흐름, 성과 증가분, 중장기 투자 여력을 함께 반영하는 다층적 기준이 필요하다. 현금 중심 보상에서 벗어나 장기 성과와 연동된 주식 보상을 병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그래야 임직원, 회사, 주주의 이해가 긴 호흡에서 맞물리는 지속 가능한 체계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그 기준에 대한 노사 신뢰 형성도 필요한 과제다. 노조도 성찰할 지점이 많다. 정당한 보상 요구는 존중돼야 하지만, 높은 소득과 강한 교섭력을 가진 대기업 노조가 과거의 약자 프레임에만 기대서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국가 핵심 산업의 한 축이라는 자각 위에서, 요구의 방식 또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다행히 최악의 파국은 면했지만,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일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는 삼성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물론 시장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야 하는 국가적 이슈다.
[사설]정쟁에 갇힌 지방선거, 막은 올랐는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21일 시작된다. 지방선거는 주민 삶의 질과 지역 발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치 과정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계엄과 탄핵, 정권교체 이후 1년 만에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도 작지 않다. '윤 어게인' 논란, '여당 독주' 논란 등 정쟁적 이슈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운데 선거전 초반 분위기는 기대보다 우려를 키우고 있다. 당초 선거 구도는 대통령 지지율을 바탕으로 여당 우세 흐름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보수 진영 결집 움직임 속에 서울·부산·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아직 부동층이 적지 않은 만큼 앞으로 판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럴수록 이번 선거는 지역 발전 비전과 정책 경쟁의 장이 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실망스럽다. 정책 경쟁보다 정쟁과 흠집내기가 앞서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선거만 봐도 그렇다. 여당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삼성역 구간 '철근 누락'의혹을 앞세워 현 시장인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책임론을 부각하고 있다. 야당은 정원오 민주당 후보의 폭행 전과 부실해명 의혹을 쟁점화하고 있다. 선거가 상대 후보 흠집내기에 매몰될수록 정작 시민 삶과 직결된 정책 논쟁은 실종될 뿐 아니라 정치 혐오를 유발하고 국민통합의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후보 수준 논란도 심각하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후보자 총 7829명 가운데 무려 34%가 전과자라고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음주운전은 물론 사기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이도 다수다. 후보들의 자질이 이토록 함량미달인 것은 무책임한 공천탓도 크다. 또 역대 최대 인원인 513명의 후보자가 무투표로 당선이 확정됐다. 이런 무투표 당선 사례 증가는 건강한 지방자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정당 정치의 실패이자 민주주의의 퇴보다.유력 후보들이 TV 토론회를 기피하는 모습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법상 지방선거 법정 토론은 '1회 이상'이다. 이를 틈타 일부 우세 후보들은 선관위 주최 법정 토론 1회만 참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권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가볍게 여기는 오만한 행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유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13일의 선거기간 동안 선거공보와 후보자 토론회 등을 면밀히 살펴 '누가 진정으로 지역 발전의 적임자인가'를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이번 선거가 대한민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설]삼전 노조 '파국' 대신 '도약'으로
삼성전자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을 이틀 남겨 두고, 성과급 배분 방식을 둘러싼 중앙노동위원회의 '사후 조정'이 이틀째 이어졌다. 중앙노동위원장은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고 있다"면서도 '중노위 자체 조정안'을 제시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당장 타결되기는 쉽지 않다는 기류로 읽힌다. 앞서 노사는 전날에도 3차례 협상에 나섰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산업과 공동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타협'이나 '사회적 책임' 역시 중요한 가치다. 지금은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 사이클을 타고, 여러 업종과 공급망으로 온기가 퍼지는 중요한 시기다. 몇 년간의 긴 침체를 딛고 마주한 성과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삼성 구성원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시점에 '단기적 성과급' 때문에 끝내 총파업을 강행할 경우,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 직원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은 '1억5800만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회사는 1인당 6억원 수준의 성과급(메모리 사업부 기준)도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한국 직장인 상위 1%의 2배 가까운 보상이다. 이런데도 파업을 강행할 경우 과연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반대로 협상 막바지에 노조가 대승적 결단을 내려 합리적인 수준의 최종 협상안을 받아들이면 여론의 흐름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밝혀 긴급조정권 발동을 시사했다. 하지만 긴급조정권까지 가는 결말은 대통령뿐 아니라 노사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노조 앞에는 이제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끝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가, 아니면 미래산업 도약의 '주역'으로 남을 것인가. 객관적으로 보면 답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한국 대표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사측과 함께 회사 미래를 만들어가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극한 상황까지 가는 노사 대치를 피하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경쟁하며 더 많은 성과와 보상을 이뤄내는 길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결국 노조 자신의 기반과 사회적 신뢰를 함께 지키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사설]"폭풍우 국제정세"…한일 '셔틀외교' 순항 이어져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경북 안동에서 4개월 만에 다시 마주 앉았다. 지난 1월 이 대통령의 일본 나라현 방문의 답방 형태로 성사된 이번 회담은 한·일 외교사상 최초의 '상호 고향 방문'이라는 새로운 장면을 만들었다. 다카이치 총리의 극우 성향을 우려하던 목소리를 불식시키고, 정례적 소통 채널을 제도화했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하다. 두 정상의 긴밀한 공조는 복합적인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동병상련'인 양국 처지와 무관치 않다. 미국의 동맹 재평가와 관세전쟁, 중국의 부상, 북한 핵·미사일 개발 고도화 등으로 역내 안보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한·일의 협력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대만 문제를 중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음을 내비치면서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불확실성이 부쩍 커졌다. 특히 중동 리스크 장기화로 현재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계속되고 있다. 두 정상의 "지금 국제정세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이 대통령), "대단히 어려운 시기"(다카이치 총리)라는 진단은 현재 양국이 처한 엄중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회담이 '에너지 공급망 안정'을 최우선 의제로 다루고, 비상시 원유·석유제품을 상호 융통하는 민관 대화 등 구체적 협력 방안을 '공동문서'로 도출한 것은 매우 실효성 있는 성과로 볼 수 있다. 105분간의 정상회담을 마친 후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양국이 LNG·원유 협력을 강화하고, 원유 비축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동발 공급망 쇼크에 취약한 석유 소비국인 한·일이 생존을 위한 공동 방어선을 구축한 셈이다. 양국의 정례적 소통이 난국을 극복하는 계기로 이어지길 바란다.양국 정상은 아울러 조세이 탄광에서 발견된 유해의 DNA 감정과 관련, "감정의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 설명대로 '작지만 매우 의미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한·일 관계에는 숙명적으로 역사 문제라는 불안 요소가 잠복해 있다. 지금은 명분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실리 외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번 안동 회담이 선언적 의미를 넘어 동북아의 불확실성을 돌파하고, 에너지 위기 대응에 협력 기반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사설]법원이 그은 '권리의 경계'… 삼전 노조 응답할 때
법원이 삼성전자 노조의 쟁의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수원지법은 18일, 파업 중에도 안전보호시설 유지와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을 평시 수준으로 수행하라고 결정했다. 생산시설 점거나 다른 근로자의 출입 방해도 금지했다.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파업 금지 가처분에서, 법원이 사실상 회사 측 손을 들어준 셈이다. 쟁의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지만, 국가 기간산업의 안전과 생산 기반까지 위협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단이다.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은 명확하다. 공정이 멈추면 곧바로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고, 클린룸과 설비는 24시간 관리가 필수다. 이런 구조를 외면한 채 생산 차질 자체를 압박 수단으로 삼는다면, 피해는 기업을 넘어 협력업체와 글로벌 공급망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법원이 '권리의 한계선'을 그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사법부 판단과 맞물려 사태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고, 정부는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긴급조정권은 1963년 도입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만 발동된 예외적 조치다. 대통령 역시 노동권과 경영권의 균형을 강조했다. 사법·행정·정치가 동시에 우려를 표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이번 사태가 국가 경제의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보여준다.이런 가운데 정부가 중재하는 두 번째 사후조정 회의가 19일까지 열린다. 21일로 예고된 총파업을 앞둔 사실상 마지막 협상 국면이다. 여전히 쟁점은 성과급 산정 방식과 상한선 폐지 여부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재원으로 한 성과급 제도화와 상한 폐지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현재 그런 요구가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노조 측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AI 확산과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환경에서 반도체 기업은 막대한 선행 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을 상시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눈앞의 호황을 근거로 과실의 상당 부분을 단기 성과급으로 고착화하자는 요구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잠식할 위험이 크고, 결국 그 부담은 삼성전자 구성원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파업 예고일까지 사흘도 채 남지 않았다. 삼성전자 노조는 "법원 결정을 존중해 5월 21일로 예정된 쟁의활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노조 측도 파국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보상 체계'라는 목표 아래 서로 마음을 연다면 타협의 공간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단지 한 기업이 아니다. 한국 수출과 공급망, 첨단 산업 경쟁력의 상징적 축이다. 삼성의 자존감을 보여주길 바란다. 긴급 조정권이 실제 발동되는 상황까지 가서야 되겠나.
[사설]초호황 속 갈등 딛고 지속 성장 이끄는 '시장의 힘'
반도체·방산·조선 등 주력 제조업이 동시에 치솟는 유례없는 호황 속에서, 그 성과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과 분열 역시 전례 없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 지급의 '제도화'를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출구를 찾지 못하자 정부가 최후 수단으로 여겨지던 '긴급조정' 카드까지 공개 거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HD현대중공업 등 다른 업종에서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이는 초호황의 과실이 어떻게 사회적 긴장으로 번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불황기의 갈등이 생존을 둘러싼 충돌이라면, 초호황기의 갈등은 배분 경쟁에 가깝다. 노동자는 더 많은 성과급을 요구하고, 주주는 배당 확대를 원한다. 협력업체와의 격차, 산업 간·세대 간 박탈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내수와 자영업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고, 자본과 인재 역시 승자 산업으로만 빠르게 쏠리고 있다.초호황기의 역설적 난국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합의의 틀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저마다 "이 참에 한몫 챙기고 보자"는 식의 탐욕과 한탕주의가 만연하는 사회, 이를 조정하고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 나라에 무슨 국가적 비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기업과 노조, 정부 모두 각자 위치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시장의 합리적 조정 기능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당장 삼성전자 사태만 봐도 그렇다.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15% 지급이 어떤 객관적 기준과 산업 논리에 근거한 것인지 설득력을 찾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과 싱크탱크, 언론과 시민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민간 차원의 조정 기능이다. 자본과 인재, 기술이 필요한 곳으로 흐르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집단지성의 체계가 필요하다. 노동과 자본의 기여, 미래 투자의 필요성을 놓고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금융시장은 그 기준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장치다. 단기 성과급 경쟁에 치우쳐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는 기업에는 가치 하락의 신호를 보내고, 장기 기술 축적과 미래 투자에 매진하는 기업에는 '밸류업 프리미엄'으로 응답해야 한다. 연구기관 역시 현재의 호황이 구조적 전환인지 일시적 파동인지 냉정하게 분석해 경제 주체들이 자만이나 공포에 휩쓸리지 않도록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언론과 시민사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노사 갈등을 단순 중계하거나 어느 한쪽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호황의 결실이 산업 생태계 전반과 청년 세대의 기회로 확산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기업의 성과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을 공론의 장에서 다듬는 일 역시 중요한 책무다.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기준과 방향을 만들어야 갈등 역시 줄어들 수 있다.AI 확산과 미·중 경쟁이라는 외부 환경은 최근의 호황을 일시적 특수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 국면으로 바꾸고 있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과연 이 초호황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 불황의 위험은 누구나 경계한다. 그러나 초호황기의 위험은 불황처럼 선명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배의 크기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초호황의 과실을 미래 투자와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성숙한 조정 능력이다. 호황기에 지켜낸 절제와 균형감, 합리성이야말로 결국 다음 불황을 버텨낼 힘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 사태가 어떤 결말을 맺든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사설]미중 '건설적·전략적 안정관계'… 더욱 복잡해진 '생존 공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했다. 관세 전쟁과 반도체·AI 기술 통제, 대만 문제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까지 최근 몇 년간 미·중 관계는 사실상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칠게 충돌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G2(주요 2개국) 관계의 새로운 관리 국면 가능성을 가늠할 시험대로 주목받았다.9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정상은 '뼈 있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겉으로는 비교적 유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135분간 이어진 확대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투키디데스의 함정(패권국과 신흥국의 충돌)' 극복을 언급하며 "싸우면 모두가 상처 입는다. 우리는 적이 아니라 파트너가 돼 공동 번영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충돌을 관리 가능한 공존 체제로 바꾸면서 미국의 견제와 압박 수위를 낮추려는 의도가 읽힌다.트럼프 대통령도 "미·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아질 것"이라며 "우리는 환상적인 관계이고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라고 화답했다. 이란 전쟁 장기화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시적 성과가 절실한 트럼프로선 대두·쇠고기·항공기 판매 확대와 대규모 대미 투자, 무역 불균형 완화 등 경제적 실리를 우선한 메시지를 내놓은 셈이다.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문제, 한반도 문제 등도 논의됐지만 공개적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다만 시 주석은 대만 문제에 대해 "잘못 다루면 양국 관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강한 톤으로 경고했다. 미국과의 경제 교류와 대만 문제 등을 하나의 '패키지 협상' 틀로 묶어 향후 미·중 관계의 새 규범을 중국에 유리하게 설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협력은 세계에 큰 이익"이라고 하면서도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미·중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건설적·전략적 안정 관계'를 구축하기로 뜻을 모은 것은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경제·공급망·기술 패권을 둘러싼 충돌을 일단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려는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런 흐름이 향후 상당 기간 미·중 관계의 기본 방향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자국 중심주의를 앞세운 G2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여전히 깔려 있다.이런 미·중 신질서 모색이 현실화할 경우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미·중 갈등이 일정 부분 완화되면 우리 역시 중국과의 경제·산업 교류 확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반도체·배터리·소비재·문화 산업 등에서 숨통이 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미·중 갈등 국면에서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입었던 한국 제조업의 전략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미·중 정상은 15일 한 차례 더 정상회담을 갖는다. 공동 선언문이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국제질서가 협력과 견제, 공존과 경쟁이 동시에 작동하는 훨씬 복합적이고 난해한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질서를 짜는 G2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역시 국가 생존 공식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사설]끝내 '자멸의 방아쇠' 당길 텐가
삼성전자 노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에서도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조는 '연봉의 최대 50%'라는 성과급 상한 폐지, 연간 영업이익의 15% 지급을 '제도화'할 것을 거듭 요구했고, 회사는 업계 최고 수준의 특별보상은 가능하지만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산식의 고정 제도화는 어렵다고 맞섰다. 총파업 가능성이 현실화하면서 한국 경제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무조건 성과급으로 달라는 노조의 요구는 해외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개인별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과 양도제한조건부주식 등 주식 지급 방식을 활용한다. 현금 위주의 단기 보상보다 회사 성장과 주가에 연동되는 주주 자본주의형 보상 체계를 운용하는 것이다. 노조는 EVA(경제적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OPI(초과이익성과급) 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투명하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가 일반 직원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지않은 측면도 있다. 그러나 EVA는 영업이익뿐 아니라 대규모 설비투자 비용과 자본비용까지 반영해 기업이 실제 얼마나 지속가능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는지를 따지는 방식이다. 막대한 선행 투자와 긴 업황 사이클을 감당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상당히 정교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불황기에도 수십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이어오며 미래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JP모건은 삼성전자가 노조안을 수용할 경우 영업이익이 최대 12% 감소하고 파업 시 최대 43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의미다. 지금의 반도체 초호황은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모르는 '불안한 호황'에 가깝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까지 삼성전자 노사 갈등에 공식 우려 성명을 냈다. 그런데도 노조는 상한선 없는 영업이익 15%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사내 노노 갈등을 부르고 있는 것은 물론 다른 대기업 노조들까지 영업이익의 'N%'를 요구하는 도미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국가 경제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는 발동 요건을 충족하는 만큼 정부가 21년 만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화가 우선"이라고 신중한 입장이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파업이 시작되면 생산 차질은 물론 고객 신뢰와 기업 이미지 훼손, 경쟁 국가·기업의 기술 추월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한다. 자칫 역대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르는 쟁의행위가 될 수 있다. 파업 예고일인 21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계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서 우리 스스로 '자멸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사설]'국민배당금' 불쑥 던져놓고 '개인의견'이라니
AI 산업의 호황으로 발생하는 역대급 '초과세수', 구조적 '초과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제도적 장치로 '국민배당금' 논의가 제기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2일 SNS를 통해 "한국이 구조적 희소성과 지속적 초과이윤을 기반으로 한 '기술독점경제에 가까운 구조'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AI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 쌓아온 기반 위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익의 일부를 국민과 구조적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사례로는 '청년 창업 자산' '농어촌 기본소득' 등을 거론했다.반도체 슈퍼사이클과 AI 투자 열풍은 단순한 경기 반등을 넘어 산업 지형 자체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재정 운용의 기준을 다시 고민하자는 문제 제기 자체는 의미가 있다. 초과 세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 성장의 과실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방안을 고민하는 일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다.그러나 몇 가지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우선 '배당'이라는 표현부터 적절치 않다. 기업 활동의 성과를 국가가 공동 소유물처럼 재분배하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수 증가는 기업의 투자와 시장 경쟁의 결과다. 이를 정치가 임의로 배분할 수 있는 재원처럼 접근하면 투자 유인을 훼손하고 시장 질서를 왜곡한다는 논란을 키울 수 있다. 특히 현금성 지원은 단기 체감 효과가 커 정치적 유혹과 결합하기 쉽다. 정책 의도 역시 보다 명확해야 한다. 해당 발언 직후 증시가 출렁인 것은 시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대한 '추가 과세' 신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새로운 횡재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늘어난 세수를 활용하자는 취지"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재정 메시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시장 신호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해외 사례를 단순 원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북해 유전 수익을 국부펀드로 축적해 복지 재원으로 활용해온 노르웨이 모델은 자원 소득을 장기 금융자산으로 전환한 경우다. 기업 활동 과정에서 늘어난 법인세 수입을 재원으로 하는 우리와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무엇보다 우리의 재정 여건은 넉넉하지 않다. 관리재정수지 적자와 빠르게 늘어난 국가채무를 감안하면 초과 세수가 들어온다고 해서 재정 규율까지 느슨해져서는 곤란하다. 초과 세수를 곳간에만 묶어두자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청년 고용, 저출생과 고령화 대응, 산업 전환에 필요한 교육과 기술 투자,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같은 구조 개혁 과제에 우선 투입돼야 한다. 그래야 일시적 호황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초과 세수 논의는 결국 재정 철학의 문제다. 더 많이 거둔 세금을 어떻게 미래의 힘으로 바꿀지, 그 원칙을 세우는 일이 '국민배당' 논쟁보다 앞서야 한다. 청와대는 논란이 커지자 "정책실장 개인 의견"이라고 했다. 이런 민감한 의제를 불쑥 던져놓고 '개인 의견'이라니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사설]"나무호 2차례 타격 확인"…더는 관찰자일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HMM 소속 화물선 '나무호'의 화재는 외부 공격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1차 타격으로 파손된 선미 기관실이 다시 공격받으며 폭발해 폭 5m, 깊이 7m의 구멍이 뚫렸다. 누군가 1분 간격으로 같은 지점을 타격했다는 사실은 우발적 사고가 아닌 기획된 공격임을 보여준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가 전략 물류가 직접 위협받은 이상, 한국은 더 이상 중동 분쟁의 관찰자가 아니라 피해 당사국이 됐다. 대통령실은 11일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적절한 수위의 대처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그동안 정부는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미국이 일찌감치 이란을 배후로 지목한 것과 달리 정부는 피격 여부조차 단정하기 어렵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합동 조사 이후에도 '미상의 비행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공격 주체 특정에는 선을 그었다. 주한 이란 대사를 초치하면서도 이란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관계 확인을 우선하겠다는 기조지만, 국제사회가 가해자를 특정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대응이란 지적이 나온다.정부는 지난 6일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조사단을 급파했다. 당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피격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추가 정보를 검토한 결과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초기 판단의 한계였는지 외교적 파장을 고려한 수위 조절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국면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피격이 확인된 이상 '선조사 후대응'이라는 원칙만으로 상황을 관리하기는 어려워졌다.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 선박의 안전이다. 현재도 이 해역에는 우리 선박 수십 척이 운항하거나 대기 중이다. 정부는 모든 외교적 역량을 동원해 이들이 안전하게 항로를 벗어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안전 보장을 확보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란 정부로부터 재발 방지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 상선이 위험에 노출되는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사건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이번 사태는 그간 유지해 온 '거리두기 외교'의 한계를 드러낸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해양안보 구상 참여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이는 분쟁에 가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를 입은 국가가 자국민과 자국 선박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기본 책무의 문제다. 그렇다면 호르무즈 다국적군 구상, 아덴만 청해부대의 작전구역 확장, 비전투 인력 파견 등 다양한 선택지도 더 이상 추상적 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익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외교적 모호함은 방패가 되기 어렵다.정치권 역시 이번 사태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국가 물류망이 공격받은 엄중한 안보 위기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정부는 단호하고 냉정한 대응을 모색하고, 국회는 정부의 외교적 협상력에 힘을 실어주는 초당적 협력을 보여줘야 한다. 나무호 피격은 한국 외교·안보 기조가 시험대에 오른 중대한 전환점이다. 정부는 외교적 중립이란 틀에 갇히기보다 국민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사설]무위로 끝난 개헌…결국 정치의 실패다
국민의힘을 뺀 여야 6개 정당이 공동 발의한 개헌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8일 본회의에서 "6·3 지방선거 개헌 투표를 위한 절차는 오늘로써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이 표결 불참에 이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 맞서기로 하자 더 이상 절차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써 39년 된 헌법을 바꾸려는 시도는 또다시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지난달 초 발의된 개헌안에는 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통제 강화,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정신 계승 명시, 국가의 지역균형발전 의무 구체화 등이 담겼다. 내용만 놓고 보면 여야 간 이견이 크지 않은 사안들이다. 합의 가능한 내용부터 추진하자는 이른바 '단계적 개헌'이 동력을 얻을 수도 있었지만 정치 현실이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형사·사법체계 개편을 둘러싼 갈등 속에 국민의힘은 개헌 논의에서 이탈했고, 개헌 반대를 '계엄 옹호'와 연결한 여권의 대응은 감정의 골만 더 깊게 만들었다. 국민적 관심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 불신까지 커지면서 무산은 예견된 수순에 가까웠다.헌법이 개헌 요건을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엄격히 규정한 것은 사실상 여야 합의를 전제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과는 특정 정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 전반의 실패에 가깝다. 국민의힘이 오락가락하다 개헌 논의에 불참하고 당론으로 표결을 거부한 책임이 가볍지 않지만, 민주당 역시 설득과 조율에 충분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100석이 넘는 제1야당과의 충분한 교감 없이 이탈표만 기대한 접근은 애초에 무리였다. 개헌은 오랫동안 '필요하지만 지금은 아닌 일'로 미뤄져 왔다. 그러나 1987년 체제의 헌법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널리 공유돼 있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2028년 총선이 가시권에 들어오면 개헌 논의는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 지방선거 이후라고 해서 개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정치 환경이 조성될지도 불투명하다.1987년 9차 개헌 당시 정치권은 의석수에 상관없이 여야 동수의 8인 정치회담을 통해 한 달 만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때는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시대적 에너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국민들의 관심은 미적지근하고 정치권은 내란 세력이네 아니네 하며 극단 대치를 이어가는 실정이다. 개헌은 단기적 정치 지형이나 유불리를 넘어 국가 대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중대한 과제다. 낡은 틀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이번에 논의됐던 헌법 전문과 계엄 통제뿐 아니라 권력구조 개편까지 함께 올려놓고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 역시 개헌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야가 다시 그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면, 개헌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사설]북한 '핵 헌법'…더 굳어진 김정은 1인 체제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지난 3월 하순 헌법 개정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 사용권'을 명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휴전선을 사실상의 국경선으로 설정하는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통일'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등 남북 '두 국가' 노선을 헌법에 반영했다.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두 국가 노선을 분명히 했지만 대남 적대성은 상당 부분 조절됐다" "핵 포기 의사가 없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김정은 집권 15년 차에 단행된 이번 헌법 개정은 여러 측면에서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은 국무위원장에게 있다" "국무위원장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는 내용을 헌법에 명문화한 점이다. 핵 보유를 체제 유지의 헌법 질서로 못 박은 것이기 때문이다.북한은 이미 2022년 이른바 '핵 교리'를 통해 핵 보복 원칙을 공식화했고, 2023년부터는 핵 공격 전반의 지휘통제 체계를 뜻하는 '핵 방아쇠'라는 표현도 사용해 왔다. 그러나 핵 사용 교리를 법령이나 규정 수준이 아니라 헌법에 직접 명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핵 사용권 위임 조항은 김정은 제거를 목표로 한 이른바 '참수작전' 상황에서도 자동적 핵보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북한이 남측 국경을 대한민국으로 명시하는 영토 조항을 신설한 것도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이는 김정은이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헌법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정 헌법 서문에서 김일성·김정일 관련 표현을 삭제하고, 국무위원장의 권한과 위상을 대폭 강화한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김정은 1인 절대권력을 국가 체제의 중심축으로 더욱 굳혀가는 흐름이 선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대한민국 완전 점령·평정·수복'이나 '불변의 주적' 같은 표현이 제외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북한의 대남 노선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겉으로는 정상국가 이미지를 연출하려 하지만, 핵무력과 세습 독재 체제를 헌법으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이번 개헌은 북한 핵이 더 이상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체제 자체를 떠받치는 핵심 질서로 격상됐음을 보여준다. 막연한 낙관론이나 정치적 수사에 기대기보다 북한의 의도와 한계를 냉정하게 직시한 채 안보·통일 전략 전반을 보다 현실적이고 치밀하게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사설]'꿈의 7천피' 돌파, 성취이자 경고다
코스피가 6일 사상 처음 7000선을 돌파했다. 6000선을 넘어선 지 두 달여 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0% 안팎 급등하며 '꿈의 지수'가 현실이 됐다. 외국인 통합계좌 규제가 완화되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의 복귀 여건이 조성된 영향도 컸다. 미국-이란 전쟁 등 불안한 대외 변수 속에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는 작지 않다. 그러나 이 숫자가 한국 경제 전반의 체력을 반영하는지는 냉정히 따져볼 문제다. 지금은 환호보다 지표의 이면을 점검할 때다.최근 상승장의 동력은 전형적인 경기 확장이라기보다 반도체 쏠림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시가총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수출과 생산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증가세는 제한적이다.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산업 전반으로 온기가 확산됐다고 보긴 어렵다.이 같은 편중은 구조적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도체 업황 둔화나 가격 변동이 발생할 경우 충격은 증시에 그치지 않고 성장률과 수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만 질주하고 다른 업종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산업 간 격차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도 잇따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71%로 전망했는데, 15년째 하락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과감한 구조개혁이 없다면 2030년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실물경제와 주가지수 간 괴리도 뚜렷하다. 자영업과 지방 상권의 부진은 여전하고, 내수 침체와 고용 불안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법원 경매 신청 건수가 3만 건을 넘어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수의 고공행진이 체감경기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물가와 금리 변수도 부담이다.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6% 오르며 다시 상승 압력을 보였다. 금리가 인상될 경우 '빚투'와 '영끌'에 의존한 투자자들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36조원을 넘는 상황에서 시장 변동성 확대는 곧바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결국 주식시장의 지속 가능한 상승은 경제 체질 개선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호황기일수록 구조개혁은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규제 혁신과 노동시장 개편, 산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같은 굵직한 과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특정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한 성장 구조로는 대외 충격을 견디기 어렵다. 코스피 7000선은 성취이자 경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점검이고, 축배가 아니라 체질 개선이다.
[사설]삼성 흔드는 노조 리스크…'무노조 경영' 탈피의 기막힌 역설
'초격차'를 상징해온 삼성이 뜻밖의 '노조 리스크'로 기업 경쟁력에 경고등이 켜졌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가 먼저 파업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57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삼바는 2025년 2조693억원의 영업이익을 각각 올려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음에도 축제 대신 노사 갈등이 전면화된 장면은 상징적이다. 노조 허용 6년 만에 맞은 이번 사태는 개별 기업의 노사 분규를 넘어 '제조업 강국'의 균열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노조 경영' 탈피의 기막힌 역설이다.노조의 요구 수준은 사회적 공감대를 크게 벗어나 있다. 삼성전자 노조의 '영업이익 15%'와 삼바 노조의 '영업이익 20%' 성과급 요구는 기업의 투자 구조와 지속 가능성을 감안할 때 과도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요구 규모가 연간 연구개발비를 웃도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미래 경쟁력의 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삼바도 동종업계 최고 수준의 처우를 받으면서 성과급에 '기본급 14%' 인상까지 요구하는 것은 '배부른 투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더 큰 문제는 이번 사안이 갖는 국가적 파장이다. 반도체와 바이오는 한국 경제의 중추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각국이 총력전을 벌이는 전략 산업이다. 이익 배분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기술 투자 지연과 글로벌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제조업 강국으로서 한국이 쌓아온 모멘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안은 결코 가볍지 않다.삼성 노조는 기업 성과의 성격에 대한 인식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이익은 회사 구성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근로자는 물론 주주, 협력 업체,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든 결과다. 특히 국민 세금이 소요되는 막대한 인프라와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전략 산업의 경우 그 성과는 더욱 공공성을 띤다. 그럼에도 초과이익을 특정 부문 구성원에게만 집중 배분하라는 요구는 내부 형평성은 물론 사회적 수용성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 비반도체 부문 조합원들이 대거 노조를 탈퇴하는 등 '노노 갈등'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당장의 이익 실현에만 매달리는 방식으로는 초경쟁 시대의 현실을 감당하기 어렵다. 기업은 성과 공유의 원칙과 기준을 투명하게 제시하고, 노조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자칫 이번 사태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의 요구와 행태가 '탐욕'의 경계선을 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업 경쟁력의 심각한 균열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때다.
[사설]"북한 대신 조선" 공론화…장관 뜻인가, 정부 뜻인가
통일부가 북한을 정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줄여서 '조선'으로 부르는 방안을 공론화를 거쳐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통일부는 29일 한국정치학회 주최로 열린 '평화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 북한인가 조선인가' 특별학술회의를 후원하며 호칭 변경 논의를 공식화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그간 시무식과 학술행사, 언론 간담회 등에서 북한을 '조선', 남북 관계를 '한·조 관계'로 지칭해 논란을 불러왔다. 북한이 우리를 '대한민국' 또는 '한국'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북한이 오랫동안 '남조선' '괴뢰도당'으로 부르던 우리를 2023년 7월 이후 '대한민국' '한국'으로 바꿔 부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 김여정 담화와 그해 8월 김정은의 해군사령부 연설을 계기로 공식화됐다. 그러나 이는 존중의 표현이 아니라, 관계 단절과 적대의 맥락 속에서 나온 호칭 변화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실제로 북한은 같은 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를 '불변의 주적'으로 불러 왔다. 민족 개념을 사실상 폐기하고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없애고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분명하다.정 장관의 호칭 변경 시도는 끝없는 대결의 악순환을 끝내고 평화 공존의 공간을 넓히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 단절·적대 전략에 보조를 맞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호칭을 바꾸는 것은 북한을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의 상대가 아니라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와도 충돌한다.남북 관계가 꽉 막힌 상태에서 통일부의 존재감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해법이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방향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정 장관은 지난해 통일부 명칭에서 '통일'을 제외하자는 구상을 밝혀 논란을 빚었고, 최근엔 북한 구성시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언급으로 한미 간 대북 정보 공유에 부담을 준 적도 있다. 호칭 변경은 우리의 국가 정체성과 연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정 장관 개인의 소신인지,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설]"쿠팡 총수는 김범석"…공정하고 일관된 법 적용이 답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전자상거래 대기업인 쿠팡의 동일인을 기존 '쿠팡 법인'에서 자연인인 김범석 쿠팡 Inc 의장으로 변경 지정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논란이 된 쿠팡 지배구조에 대한 당국의 첫 판단이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은 대기업 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 총수나 법인을 말한다.이번 지정은 쿠팡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2021년 이후 5년 만의 변화다. 김 의장은 그동안 외국 국적과 친족의 국내 계열사 경영 미참여 등을 내세워 동일인 지정을 피해왔다. 하지만 김 의장의 동생이 국내 법인에서 부사장 직함을 사용하며 경영에 참여하고, 140억 원에 이르는 보수와 인센티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쿠팡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이 인정됐다.동일인 지정으로 김 의장에게는 한국 내 대기업 총수와 동일한 수준의 책임과 의무가 부과된다. 4촌 이내 혈족 등 친인척 주식 보유 현황과 거래 명세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비롯한 사익 편취가 금지되는 등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 1980년대 도입된 동일인 지정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아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현재는 한국 대표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만큼 쿠팡만 예외로 둘 수는 없다. 이번 조치는 해외 상장 구조를 통한 국내 규제 회피를 막고 기업 경영의 책임성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그러나 쿠팡 문제는 일개 기업 차원을 넘어선 것도 사실이다. 쿠팡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중 규제"라며 반발하고, 행정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54명이 "미국 기업 쿠팡에 차별적 대우를 하고 있다"며 주미 한국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보냈고,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90명은 "사법주권 침해"라며 주한 미국대사관에 맞불 서한을 보내기로 하는 등 한·미 관계의 민감한 뇌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정부로선 적법하고 공평한 행정 조치라는 점을 미국 정부와 의회, 그리고 쿠팡 측에 충분히 설명하면서, 커질지 모를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번 동일인 지정이 최근 대북 정보 공유 제한 등의 문제가 불거진 한·미 관계에 불필요한 갈등 요인으로 비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쿠팡은 미국 상장 기업이지만 입점 소상공인이 30만 명을 넘었을 만큼 국내 유통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쿠팡 문제에 감정적 대응이 결부돼서는 안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공정하고 일관된 행정 조치의 적용이 궁극적으로 불신과 갈등의 소지를 줄이는 길이다.
[사설]잔인한 속도 경쟁… 삼성, '균열의 위기' 넘어서야
삼성전자 노조가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성과급 갈등으로 시작된 노사 분쟁이 공장과 교섭장을 넘어 총수의 사적 공간까지 번진 것이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28일 "실질적 결정권자 앞에서 직접 외치겠다"며 5월 21일 총파업 궐기대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전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삼성의 이익은 노사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이라며 자제를 촉구했지만, 해당 노조는 오히려 '총수 자택 앞'이라는 강공 카드를 택했다.초호황기를 맞은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처럼 성과급 갈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앞서 SK하이닉스가 노조 요구를 받아들여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하자, 그 불똥은 삼성전자로 옮겨붙었다. 삼성 노조는 초과이익성과급 상한선인 '연봉의 50%' 기준 폐지와 함께 영업이익의 15%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성과급 문제를 파업과도 연계하고 있다.갈등의 여파는 이미 생산 현장에서 감지되고 있다. 노조 측 주장에 따르면 지난 23일 집회가 열린 날 밤, 파운드리 생산은 58%, 메모리 생산은 18% 감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공정은 연속 가동을 전제로 설계돼 있어 인력 이탈이나 작업 지연만으로도 사실상 조업 중단에 준하는 손실이 발생한다. 흐름이 한 번 끊기면 정상화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노조는 다음 달 18일간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30조 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더 큰 문제는 신뢰와 공급망 안정성의 흔들림이다. 글로벌 고객사는 작은 리스크 신호에도 대체 공급선을 검토한다. 실제로 벌써부터 해외에서 공급 차질 가능성을 묻는 문의가 이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공정 검증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한 번 이탈한 고객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이번 사태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산업의 속성에 있다. 반도체는 오늘의 이익을 내일의 설비와 연구개발에 재투입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성과를 나누는 일은 필요하지만, 기준이 단기 이익에 묶이면 장기 투자 여력을 압박할 수 있다. 대만 TSMC는 투자와 성장을 우선한 뒤 잉여 이익 범위에서 성과급을 결정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칩 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는 "메모리 산업은 극단적인 경쟁과 속도를 요구한다"며 "혁신의 속도를 잃으면 경영진과 노동자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잔인한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성과급 논란은 기업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한국 증시 상승의 배경에는 AI 투자 확대와 HBM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 생산 차질과 투자 지연이 현실화될 경우 충격은 주가와 투자 심리를 거쳐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노동의 기여는 존중돼야 한다. 동시에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특성도 외면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단기 성과에 연동된 대립이 아니라 투자와 현금 흐름, 중장기 성과를 함께 반영하는 예측 가능한 보상 체계다. 더 많이 나누는 문제가 아니라, 더 오래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초호황의 역설 국면이다. 삼성 노사는 '균열의 위기'를 함께 넘어서야 한다.
[사설]'서브 2'가 연 문명사의 한 장면…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묻다
마라톤 풀코스 42.195㎞를 2시간 이내에 주파하는 '서브 2'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선으로 여겨져 왔다. 심폐 기능과 근육 피로도를 고려할 때 극도로 어려운 영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26 런던 마라톤에서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가 1시간 59분 30초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그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졌다. 2위 역시 2시간 안쪽이었다. 사웨는 "인간에게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흔히 이런 기록 경신을 특출한 개인의 탄생이나 기적 같은 우연으로 넘기곤 한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두 명의 선수가 동시에 2시간의 벽을 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의 천부적 재능을 넘어, 인류가 축적한 유전적·과학적 역량이 총체적으로 발휘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성과는 인간의 집요한 의지, 과학적으로 설계된 훈련, 정교한 식단, 러닝화 기술 등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다. 즉 인간과 기술, 환경과 지식, 공동체가 함께 빚어낸 기록이다.최근 우리는 AI의 급속한 발전 앞에서 인간의 역할이 축소될지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을 자주 접해 왔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기대보다 두려움을 키운다. 하지만 이번 기록은 '인간 한계'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한계는 고정불변의 선이 아니라, 조건이 바뀌면 함께 이동하는 유동적 경계라는 사실이다.인류는 늘 도구를 통해 스스로를 확장해 왔다. 활과 수레는 신체의 범위를 넓혔고, 인쇄술은 지식의 지평을 넓혔으며, 컴퓨터는 사고의 방식과 속도를 변형시켰다. 오늘의 AI와 데이터 과학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것은 인간을 밀어내는 존재라기보다, 인간 능력을 보완하고 증폭하는 수단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결승선에서 두 팔을 치켜든 사웨의 모습은 단순한 승리의 제스처를 넘어선다. "한계는 기술과 함께 넘는 것"이라는 인류의 선언에 가깝다. 인간과 기술의 공존이다. 새로운 문명의 시대, '서브 2'의 기록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은 한계를 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계를 끊임없이 새로 정의해가는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기술을 이유로 인류 스스로의 가능성을 축소하는 태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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